[네덜란드 여행 네덜란드(Netherlands) 여행정보(현지문화 / 교통정보 / 치안, 위험 등)

 

 

기본 정보

ㅇ 위치 : 북위 52° 22", 동경 4° 53"(암스테르담 기준)

ㅇ 수도 : 암스테르담

ㅇ 면적 : 41,543

ㅇ 인구 : 1728만명(2019년도 기준)

ㅇ 종교분포 : 카톨릭 24%, 개신교 15%, 이슬람교 5%, 기타 5%, 비종교 50%

ㅇ 언어 : 네덜란드어

ㅇ 인종 : 게르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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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문화

일반 문화

ㅇ 신체적 인사법으로는 양쪽 뺨에 소리만 내는 키스를 합니다. (연인이 아닌 경우는 소리만 살짝 냅니다)

 

종교 관련

ㅇ 종교 관련하여 특별히 유의할 사항은 없으나,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지나치게 해당 종교만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자제하셔야 합니다.

 

팁 문화

ㅇ 기본적으로는 필요 없으나 간혹 택시나 호텔 등에서 서비스를 받았을 경우 1유로 정도를 지불합니다.

ㅇ 레스토랑 등에서도 계산서에 ‘Inclusief’라는 단어가 쓰여 있다면 동전을 남겨 두는 것 정도로 충분합니다.

 

[TV방송]

ㅇ 공영채널 총 3(NPO1, NPO2, NPO3) 및 그 외 NOS, NTR, KRO-NCRV, AVROTROS와 민영채널 RTL Nederland 등이 있으며 해외 방송프로그램의 경우 영문 자막을 제공합니다.

 

[신문]

De Volkskrant, Het Fianacieele Dagblad, NRC Handelsblad가 네덜란드 3대 신문사로 불립니다.

 

[마약]

ㅇ네덜란드는 마리화나와 같은 소위 연성 마약의 판매를 제한적으로 용인하고 있으나, 우리 국민 여행객의 경우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특정 장소에 관계없이속인주의에 따라 모두 처벌받게 됩니다.

 

[차별 금지, 난민과 이민]

ㅇ네덜란드는 헌법 제1조에 모든 형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고, 소수민족의 인권을 보장하며 전통적으로 이민, 난민 등에 관용적인 정책을 취해왔으나 최근 난민 심사, 영주권 및 시민권 획득 요건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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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및 기타

날씨

ㅇ 날씨정보 : http://www.knmi.nl(영문)

ㅇ 일반적으로 네덜란드는 비가 자주 오며, 건조하기보다는 습한 날씨가 지속되는 편이며, 하루에도 날씨 변화가 심한 편입니다. 따라서 겨울철이 아닌 경우에도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4~8(, 여름)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맑은 날이 많으며 해가 길어 날씨가 상대적으로 좋습니다.

ㅇ 겨울은 일조시간이 짧고 흐린 경우가 많으며, 눈보다는 비가 자주 오는 편입니다.

 

[코로나19 관련 정보]

ㅇ 네덜란드 정부 사이트 : www.government.nl/topics/coronavirus-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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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정보

주요 교통 법규 및 문화

ㅇ 자동차 운전석 위치는 한국과 동일합니다.

ㅇ 사거리 우회전 신호 시 우회전하여 만나는 횡단보도가 동시에 초록불인 경우가 많으므로 운전자 및 보행자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ㅇ 국제운전면허증 관련하여 다음 사항을 유의하십시오.

- 국제운전면허증은 체류기간 동안만 유효해야 하며 입국 후 6개월까지만 인정됩니다.

- 현지 경찰은 국제운전면허증을 국내 면허의 단순 번역본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반드시 국내면허증을 함께 소지하여 운전해야 합니다.

 

ㅇ 네덜란드는자전거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자전거 중심의 교통문화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 /우회전시 항상 차도 양 옆의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자전거가 오는지 살피고 운전합니다.

 

ㅇ 차량 또는 자전거 주행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적발 될 경우 벌금을 낼 수 있으니 유의하여야 합니다.

 

사건사고 사례

ㅇ 자전거-자동차 추돌 사고

- 네덜란드에서 자전거와 자동차간 사고는 대부분 차 운전자의 과실로 결론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ㅇ 주차된 차량의 유리를 깨고 금품, 전자기기 등을 도난

- 렌트카를 타겟으로 특히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지역의 야외 주차장에서 야간 시간에 빈번하게 발생합니다.(암스테르담, 로테르담)

- 차안에 소지품을 두고 내리지 마십시오.

 

 

사건사고 발생시 대처방법

ㅇ 응급상황 등 다친 경우/경찰이 바로 와야하는 경우 : 112(경찰 Politie, 소방 Brandweer, 엠뷸런스 콜 통합)

- 비응급: 0900-1814(경찰서 일반), www.politie.nl(온라인 신고)

- 엠뷸런스는 필요 없지만 의료 상담이 필요한 경우

- 암스테르담 : +31-20-592-3434

- 헤이그 : +31-70-346-9669

- 로테르담 : +31-10-290-9888

  * 24시간 운영, 네덜란드 지정 의사(GP)가 없는 관광객만 해당

 

 

ㅇ 대로변 차량 고장으로 정차/견인 필요 시(Roadside Breakdown) : ANWB(네덜란드여행협회), +31-88-269-2888

* 24시간 운영, 수리견인서비스 비용 발생하므로 사전에 견적 문의

 

 

대중교통

ㅇ 기차 : http://www.ns.nl

 

ㅇ 버스/트램

- 암스테르담 : http://www.gvb.nl

- 로테르담 : http://www.ret.nl

- 헤이그 : http://www.htm.nl

ㅇ 기차, 버스/트렘연계 안내 : http://www.9292.nl

 

기타 유의사항

ㅇ 네덜란드는 대도시 시민의 약 25%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만큼 특히 자전거 통행량이 극히 많은 출퇴근 시간(17~19)에는 주의를 더욱 기울여 운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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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사건ㆍ사고의 유형

ㅇ 강력사고는 드문 편이나, 주요 관광지, , 호텔, 식당, 공항 등에서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 및 절도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 사례 1 기차 내 가방분실(선반에 놓아둔 가방을 잠든 사이 분실, 가방을 좌석에 놔두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분실, 낯선 사람이 지도 등을 들이밀고 말을 건다거나 기차 바깥 창문을 두드리거나 동전을 눈앞에 뿌려 시선을 끈 후 가방을 가져가는 경우 등)

- 사례 2 공항에서 짐을 잠시 방치한 후 체크인을 기다리며 한 눈 파는 사이 분실

- 사례 3 호텔 등 숙박시설 내 분실(체크인하는 사이 짐 분실, 조식 중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잠시 소지품을 방치하였다가 분실, 호스텔 락커에 넣어둔 캐리어 분실 등)

- 사례 4 노상주차장에 주차한 차를 파손하고 노트북, 카메라 등 절도

 

 

ㅇ 스키폴공항 입국심사는 다른 국가에 비해 엄격하고 까다로워서 우리 국민이 입국 거부 또는 경유 거부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 사례 1 방문 목적이 불분명하고, 체류할 곳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여 입국 거부

- 사례 2 방문기간에 따른 여행 경비를 소명할 수 없어 입국 거부

 

※ 네덜란드 또는 유럽 내 최종 도착국가에 연고가 없이 무비자로 입국하는 경우 반드시 초청장, 현지 숙박 장소(또는 방문 기관) 및 소속 기관을 증명하는 서류를 소지 후 해명 필요

 

- 사례 3 거액의 현금을 소지하였으나 신고하지 않고 입국하려다 체포되어 구류 및 현금 압수, 장기적인 재판을 통해 벌금형

 

※ 네덜란드 입국시 10,000유로 상당(통화 불문)의 현금을 소지한 경우 반드시 사전에 신고하여야 함

 

 

ㅇ 특히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을 경유하여 여행하는 경우에 최종 목적지 국가에서는 문제 되지 않을 사항이 경유지인 네덜란드에서는 문제가 되어 네덜란드에서 거부되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종종 발생하오니, 아래와 같은 사레 등을 참고하여 불이익을 당하는 일 없도록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사례 1 스키폴공항을 경유하여 스위스 친척 집으로 향하던 대학생이 스위스 체류 기간 동안 체류비용이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체류 기간중 친척의 비용 부담 확약서에 스위스 정부의 공증을 요하여 경유 지연

- 사례 2 폴란드어로 발급된 노동 허가 서류를 소지한 채 스키폴공항을 경유하여 폴란드로 입국하려던 우리 국민에 대해 노동 허가 서류가 영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행기관의 즉각적인 확인 fax 등을 요구하였고 우리 국민이 확인을 못 받자 입국을 거부

 

 

자연재해

ㅇ 특별한 자연재해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날씨 변화가 심하고 비를 동반한 강풍이 부는 날이 자주 있습니다.

 

유의해야 할 지역

ㅇ 네덜란드는 여행 시 특별히 유의해야 할 특정 위험 지역이 있는 것은 아니나,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기차역 및 Dam 광장 주변, 로테르담 및 헤이그 기차역 주변은 소매치기 및 가방 탈취범이 많으므로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ㅇ 최근에는 국제선 열차 및 국내선 열차 안에서도 가방 등 소지품 도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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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연락처

대사관 연락처

ㅇ 주소 : Verlengde Tolweg 8 2517 JV, Den Haag

ㅇ 이메일 : koreanembassynl@mofa.go.kr

ㅇ 대표번호(근무시간 중) : (31) 70-740-0214

ㅇ 긴급연락처(사건사고 등 긴급상황 발생 시, 24시간) : (31) 64-264-8412

 

주재국 신고

ㅇ 화재, 범죄, 응급 요청 시 : 112

ㅇ 전화번호 안내 : 1888

ㅇ 차별피해 신고(익명) : 0800-7000

ㅇ 무료법률상담(정부지원) : 0900-8020

ㅇ 공항경찰(입국심사대) : 0800-1814(2> 5)

 

의료기관 연락처

ㅇ 암스테르담

- 병원 : VU medisch centrum

- 전화번호: 020-444-3636(긴급)

- 주소 : De Boelelaan 1117 1081 HV Amsterdam

 

 

ㅇ 로테르담

- 병원 : Erasmus University Medical Center

- 전화번호 : 010-704-0704

- 주소 : Doctor Molewaterplein 40, 3015 GD, Rotterdam

 

 

ㅇ 헤이그

- 병원 : Haaglanden Medical Center

- 전화번호 : 088-979-7900

- 주소 : Lijnbaan 32, 2512 VA, Den Ha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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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여행] 그리스 여행정보(현지문화 / 교통정보 / 치안, 위험 등)

 

기본정보

ㅇ 국명 : 그리스 공화국 (The Hellenic Republic)

ㅇ 수도 : 아테네(Athens)

ㅇ 면적 : 131,957k(본토 81%, 도서 19%, 한반도의 2/3)

ㅇ 언어 : 그리스어

ㅇ 화폐단위 : 유로(Euro)

ㅇ 시차 : 한국보다 7시간 느림(서머타임인 3월 마지막 일요일~10월 마지막 일요일 : 6시간 느림)

 

현지 문화

일반 문화

ㅇ 아침 인사 Καλημέρα [Kalimera/깔리메라]

ㅇ 오후 인사 Καλησπέρα [Kalispera/깔리스페라]

ㅇ 상대방에게 손바닥을 보이며 팔을 쭉 내뻗는 행위는 욕에 해당되므로 주의

ㅇ 여름에는 그리스인들에게 시에스타(낮잠)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낮에는 큰소리를 내거나 전화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음

 

종교 관련

ㅇ 수도원 또는 교회 방문 시, 다리가 다 드러난 옷은 피하여 종아리 아래로 내려오는 긴 스커트 혹은 긴 바지를 입고 들어가야 함(일부 수도원 및 교회에서는 긴 천을 빌려주기도 함)

ㅇ 그리스 정교의 성산인 아토스산의 경우 여성의 입산이 금지되며 또한 남성이라도 비자가 필요함

 

팁 문화

ㅇ 식당에서는 보통 5-10% 정도의 팁을 주는 것이 보통이나, 경제 위기로 인해 팁을 주고 가는 사람이 많이 줄어듦

 

 

날씨 및 기타

날씨

4계절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은 고온 건조하며, 겨울은 우기임

ㅇ 겨울에 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많지는 않지만 습하고 바람이 강하여 실제 체감온도는 영하 이하로 느껴짐. , 가을은 한국 기후와 유사함

ㅇ 여름은 40도 이상 올라가는 날이 종종 있으니 우산, 양산, 모자, 선글라스 등 햇빛을 차단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꾸준한 수분 섭취를 통해 일사병을 예방해야 함

 

그리스 유적지 및 박물관 무료개방일

3 6 : Melina Merkouri 기념일

4 18 : International Monuments Day

5 18 : International Museum Day

9월 마지막 주말 : European Heritages Day

10 28 : Ohi Day(민족자긍일)

11월부터 3월까지 매달 첫 번째 일요일

※ 위 날짜는 변동될 수 있으며, 적용되지 않는 유적지 및 박물관이 있을 수 있음

 

 

교통정보

주요 교통 법규 및 문화

ㅇ 한국 국제운전면허증(발급일로부터 1년 유효)/영문운전면허증 및 여권 소지 시 운전 가능

※ 렌터카 회사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예약 전 문의 필수

6개월 이상 장기체류자의 경우, 체류허가증 발급 185일 이후부터는 영문/국제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이 불가능하며 체류허가증 신청일 이후 185일 이후부터 한국운전면허증을 그리스 운전면허증으로 교환하여 운전해야 함

 

[주요 교통 법규 차이]

- 별도 우회전 신호가 있습니다.

- 시내 차선이 불분명하고 한국과 달리 신호등이 위가 아닌 옆에 위치한 경우가 많아 안전에 유의하여 운전하여야 합니다.

- 도로의 경우 좁은 2차로 또는 일방통행로가 대부분입니다.

-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에서는 오른쪽 진입 차량이 우선권을 가집니다. 라운드어바웃에 이미 진입해 있는 차량이라도 우측에서 차량이 진입하려는 경우 정지하여야 합니다.

ㅇ 젊은이들 중심으로 난폭한 운전자가 많이 있으며, 특히 오토바이의 시내 주행이 많아 운전 시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관련 사건사고 사례

ㅇ 우리 관광객이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근처 도로에 차를 세워 두고 식사 후 돌아와 보니, 차량의 유리가 깨져있고 안에 들어있던 여권, 가방 등의 소지품을 도난당한 사례가 있습니다.

- 이처럼 렌터카 등 차량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경우, 일반 길가에 주차를 하면 차량털이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관리인이 상주하는 근처 유료주차장을 이용하여야 하며, 가급적 귀중품은 차 안에 두고 내리지 않토록 유의합니다.

ㅇ 크레타 섬을 여행 중이던 우리 관광객이 모퉁이 길을 돌다 상대편 차량과 부딪힌 사례가 있습니다.

- 대부분 섬에는 신호등이 없고 길이 고르지 않아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합니다. 서행 운전을 하고 사거리, 모퉁이길 등에서 STOP 표지판을 보는 경우엔 반드시 멈추어 확인 후 출발하여야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오는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 운전자들이 STOP표지판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잦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교통사고 발생 시 경미한 사고여도 만일을 위해 교통 경찰을 불러 사고 조서를 작성하고, 사고 사실을 렌터카 회사에 전달하여야 합니다.

 

관련 사건사고 발생시 대처방법

ㅇ 렌터카의 경우 사고 발생시, 렌터카 서류상 기재된 긴급연락처, 보험사 또는 경찰에 신고합니다.

ㅇ 차량고장 : 가입한 보험사에 먼저 연락하되, 긴급한 경우 ELPA (Tel.10400), EXPRESS SERVICE(Tel.1154, 210-952-4950)에 연락하면 즉시 처리가 가능합니다. 단 별도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대중교통]

ㅇ 지하철, 버스, 트롤리 및 트람 중 종류에 관계없이 정해진 티켓의 시간 동안 자유롭게 환승(공항행/발 버스 및 지하철 제외)

- 1회권(90분) : 1.20유로

- 5회권: 5.70유로

- 10+1회권: 12유로

- 1일권(24시간): 4.10유로

- 5일권 : 8.20유로

- 3일권(공항 왕복 포함): 20유로

- 한 달 이상은 정기권 구매 가능

ㅇ 학생증과 여권을 소지한 만 24세 이하 학생, 여권을 소지한 7-18세 청소년 및 65세 이상 성인 할인

ㅇ 티켓은 지하철역에서만 구입 가능. , 공항버스 티켓은 버스 안에서도 구매 가능

ㅇ 승차권을 소지하고 있더라도 탑승 시 티켓 기계에서 개찰하지 않으면 무임승차로 간주, 60배의 벌금을 부과

ㅇ 자세한 정보는 https://www.athenacard.gr/komistra.dev/ 참조

 

[지하철(Metro)]

ㅇ 노선

- 1호선(초록색) : Piraeus – Kifissia

- 2호선(빨간색) : Elliniko – Anthoupoli

- 3호선(파란색) : Aghia Marina - Doukissis Plakentias – Airport

※ 공항행 지하철은 30분에 한 번씩 운행하며, 공항 구간은 별도 티켓 구매 (편도 일반 10유로, 편도 학생 5유로, 왕복 혹은 2인용 일반 18유로)

ㅇ 운행시간 : 05:30 ~ 00:30 (, 2,3호선: 05:30 ~ 02:00)

 

[지상경전철 (Tram)]

ㅇ 노선

- 1호선(초록색) : Piraeus – Kifissia - 2호선(빨간색) : Elliniko – Anthoupoli - 3호선(파란색) : Nikaia - Doukissis Plakentias – Airport

※ 공항행 지하철은 30분에 한 번씩 운행하며, 공항 구간은 별도 티켓 구매 (편도 일반 9유로, 왕복 16유로)

ㅇ 운행시간 : 05:30 ~ 00:30 (, 2,3호선: 05:30 ~ 02:00)

 

[버스(Bus, Trolley)]

ㅇ 전동차(트롤리)와 일반버스 두 종류

ㅇ 운행시간 : 05:00 ~새벽 (노선마다 상이)

ㅇ 공항버스 : X93, X95, X96, X97 노선은 24시간 운영(일반 6유로, 학생 3유로)

 

[택시(Taxi)]

ㅇ 합승이 보편화되어 있음

ㅇ 요금은 시간, 거리 병산제, 심야할증 부과

ㅇ 기본 요금 : 3.47유로

Taxi Beat 어플을 통해 택시를 부를 수 있음 (UBER는 서비스 정지 상태) [기차]

ㅇ 아테네 라리사역(Larissa Station)에서 기차로 메테오라, 테살로니키 등 방문 가능

ㅇ 승차권은 역 내 매표소에서 구매 가능. 인터넷 예매 시, 메일로 발송된 티켓을 출력해 가거나 티켓번호/예약번호를 알아가야 함

 

[시외버스]

ㅇ 아테네 키피소스(Kifissos) 터미널 (터미널 A)

- 코린토스, 테살로니키, 자킨토스 등 운행 - 100 Leoforos Kifisou, Peristeri (전화 : +30 210 512 4910)

ㅇ 아테네 리오시온(Liossion) 터미널 (터미널 B)

- 델피, 메테오라 등 운행 - 주소 : 260 Liossion, Thymarakin (전화 : +30 210 831 7153)

 

기타 유의사항

ㅇ 음주운전 검문검색이 주로 새벽에 이루어집니다. ㅇ 그리스 중북부 지역의 경우 산악지역으로 겨울철 강설량이 많아 빙판길 미끄러짐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니 체인 등 장비 장착이 필요합니다.

 

사건/사고

사건ㆍ사고의 유형

ㅇ 그리스 치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에 속하나, 관광객을 노리는 다양한 형태의 소매치기, 도난 사건 등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음

ㅇ 최근 아크로폴리스 및 아레이오파고스 언덕, 필로파푸스 언덕 등에서 가방을 발 밑에 두고 아크로폴리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가방을 통째로 도난 당하는 사건이 급증하고 있음. 짐을 내려놓는 등의 행동은 도난의 위험이 매우 높음

ㅇ 식당이나 카페에서 메고 있던 가방을 옆자리에 내려놓는다거나 휴대폰 등의 소지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가 도난 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함. 소지품은 가방에 넣고, 가방은 무릎 위에 올려 놓는 것이 안전함

ㅇ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매고 있던 가방이 열려있고 소지품을 도난 당하는 경우가 가장 많이 발생함. 현지인들도 배낭을 앞으로 멜 정도로 소매치기가 극성이니 도보, 계단, 에스컬레이터, 대중교통 등 이용 시에는 반드시 배낭을 앞으로 메고 잠금장치 부분을 잘 확인해야 함. 잠금 장치가 풀기 어려운 가방을 메는 것도 좋은 예방책임

ㅇ 길거리에 주차되어있는 차량의 창문을 깨고 안에 있는 소지품을 가져가는 사건도 종종 발생함. 트렁크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인이 상주하는 유료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함

2013년 여름 우리 국민이 아크로폴리스 주변 관광 중 우연히 만난 외국인이 권하는 과자를 먹고 정신을 잃은 사이 모든 짐을 도난 당한 사고가 있었음

ㅇ 지하철 내에서 관광객 대상으로 4명 이상 팀을 이뤄 말을 걸거나 출입구를 가로막고 밀치며 소매치기 하는 등 그 수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음

ㅇ 여름에는 ATV(4륜 오토바이) 운전 중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는 사고가 간혹 발생함. 운전 시 안전에 유의해야 하며, 특히나 섬에는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교차로에서는 무조건 멈춘 후 다른 차들을 확인 후 지나가야 함

ㅇ 아테네 중앙역 또는 객차 안에서 검표원을 사칭해 승객의 승차권과 여권을 확인하는 척하면서 여권을 갖고 도망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어서 열차 이용 시 각별히 주의가 필요함

ㅇ 그리스 입국 시 ‘1만 유로 이상 현금반드시 신고해야 함

ㅇ 그리스 아테네 및 섬(산토리니, 미코노스 등) 내 숙박 공유 서비스(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여행객들의 도난사고 및 성폭력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함

ㅇ 그리스 섬(크레테, 자킨토스 등)에서 차량임차 관련 분쟁이 발생하고 있음. 계약서 작성 시 계약서의 모든 조항과 내용(사고 시 보험처리)을 숙지하고, 임차차량 수령 시 차량의 상태를 영상 또는 서면으로 기록하는 것이 좋음

 

유의해야 할 지역

ㅇ 아테네 오모니아(Omonia), 빅토리아(Victoria), 메탁수르기오(Metaxourgio), 빠네삐스티미오(Panepistimio) 지하철역 부근은 아테네 내에서 절도, 시위 등의 사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임. 가급적 우리 국민은 동 지역 방문을 자제바라며, 불가피하게 방문하게 되는 경우 신변에 각별히 유의 요망

ㅇ 아테네 시내 Ermou 거리, 신타그마 광장, 아크로폴리스 부근, 오모니아역, 모나스티라키역, 그리고 지하철 내부는 소매치기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 소지품 관리에 유의

ㅇ 산토리니(이아 마을, 일몰 관람 시), 자킨토스 등 관광객이 많은 섬에서도 소지품을 도난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 공항 혹은 항만에서도 소지품 관리에 유의

ㅇ 그리스 북부 메테오라(Meteora)는 여행객들의 조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산악지역임. 조난 사고 발생 시 구글맵, GPS를 활용한 위치 파악이 가장 중요하며, 휴대폰에 오프라인에서도 사용 가능한 GPS 지도 다운로드 권장

ㅇ 아테네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 가방을 맨 여행객을 중심으로 등쪽의 가방과 옷에 오물을 투척 후 닦는 척하며 소지품을 가져가는 사례 유의

 

자연재해

ㅇ 그리스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나라로, 최근 아테네 근교에서도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

 

사건∙사고 발생 시

ㅇ 사건사고 발생 지역 관할 경찰서에서만 사건 접수 가능. 소지품 분실 시 분실지역 관할 경찰서 또는 아테네 관광객 지원 센터에 도난 신고 후 분실신고서(Police report/Lost declaration/Stolen declaration) 발급 신청 1. 관광객 지원 센터 (Tourist Information Center / Tourist Police)

- 주소 : Dragatsaiou 4, 105 59, Athens (전화 : +30 210 322 2230)

2. 아테네 관광 경찰서 (Tourist Police Department of Athens)

- 주소 : 43-45 Veikou, 117 42, Athens (전화: +30 210 920 0724)

3. 신타그마 경찰서(Syntagma Police Station)

- 주소 : Mimnermou 6, 106 74, Athens (전화 : +30 210 725 7000/01/04/05)

4. 산토리니 경찰서(Police Dept. of Thira, Santorini)

- 주소 : Karterados, Fira, 847 00, Santorini (전화 : +30 228 602 2649)

5. 자킨토스 경찰서(Zakynthos Police Station)

- 주소 : Lomvardou 62, 291 00, Zakynthos (전화 : +30 269 502 4450)

6. 테살로니키 경찰서(Department of the Tourist Police of Thessaloniki)

- 주소 : Monastiriou 326, Evosmos 562 24 (전화 : +30 231 055 4871/4874)

7. 아테네 공항 분실물 센터 (전화:= +30 21 353 0515)

 

여권 분실 시

ㅇ 대사관에서 긴급여권 혹은 여행증명서 발급 가능 ㅇ 사진 2(없을 시 대사관에서 찍을 수 있음), 수수료(긴급여권 USD53, 여행증명서 USD7), 분실한 여권의 사본 필요. 발급에는 약 1시간 30분 소요 수수료는 매 반기마다 고시되는 환율을 적용하여 유로(EUR)로 지불함. 해당 환율이 적용된 수수료는 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

 

사망사고 발생 시

ㅇ그리스에서 사망한 경우, 병원에서 사망원인을 확인한 후 사망확인서를 발급함. 병원에서 사망원인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부검이 진행될 수 있음. 한국에서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경우, 그리스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유골의 화장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시신을 한국으로 운구하여야 함

 

현지연락처

대사관 연락처

ㅇ 주소 : Athens Tower A’ Building, 19th floor, 2-4 Mesogion Avenue, 115 27, Athens, Greece

ㅇ 대표번호(근무시간 중) : (30) 210-698-4080

ㅇ 긴급연락처(사건사고 등 긴급상황 발생 시, 24시간) : (30) 694-611-7098 E-mail : gremb@mofa.go.kr

 

주재국 신고

ㅇ 통합 긴급전화 : 112

ㅇ 경찰 : 100

ㅇ 관광경찰(외국인 비상전화, 영어) : 1571, +30 210 322 2230/2232

ㅇ 화재 : 199

ㅇ 긴급의료지원 및 앰뷸런스 요청 : 166

ㅇ 긴급의료진 : 1016

ㅇ 야간 약국 및 병원 : 14944

ㅇ 테러신고 : 10414, 1014

 

의료기관 연락처

[아테네 시내]

Alexandra General Hospital

- 주소 : Lourou, 115 28, Athens (전화 : +30 210 338 1100)

Evangelismos General Hospital

- 주소 : Ipsilantou 45-47, 106 76, Athens (전화 : +30 213 204 1000)

Laiko General Hospital

- 주소 : Agiou Thoma 17, 115 27, Athens (전화 : +30 213 206 0800)

Ippokrateio General Hospital

- 주소 : Vas.Sofias 114, 115 27, Athens(전화 : +30 213 208 8000)

 

[아테네 외 지역]

Tzaneio Hospital (피레우스 항구 근처)

- 주소 : Leoforos Afentouli ke Zanni, 185 36, Pireaus (+30 213 208 1000)

Asklepieion Hospital of Voula (글리파다 지역)

- 주소 : Leof. Vasileos Pavlou 1, 166 73, Voula (+30 210 892 3000)

Santorini Hospital (산토리니)

- 주소 : Karterados, 847 00, Thira, Santorini (+30 228 603 5300 / 외국인 환자 +30 228 603 5306)

Zakyntos General Hospital “Agios Dionisios”(자킨토스)

- 주소 : Zakynthos, 291 00, Zakynthos (+30 269 536 0500)

General Hospital St.George(크레테, 하니아 지역)

- 주소 : Agiou Eleftheriou, 733 00, Chania, Crete (+30 282 134 2000)

General Hospital of Irakleion “Venizeleio-Pananeio”(크레테, 이라클리온 지역)

- 주소 : Leoforos Knosou, 714 09, Irakleio, Crete (+30 281 036 8000)

G.Gennimatas General Hospital of Thessaloniki (테살로니키)

- Eth. Aminis 41, 546 35 Thessaloniki - 연락처 : +30 231 330 8100

ㅇ 국립병원들은 24시간 운영하나 병원마다 매일 근무하는 과가 돌아가며 바뀌기 때문에 방문 전 확인 필수 전화문의 14944 또는 171, 웹사이트 www.vrisko.gr/en/hospital-duties/athens/all-clinics 참고 ㅇ 그리스 약국은 월수는 8:00~14:30까지, 금은 8:00~14:30, 17:30~20:00까지 영업함 (주요 관광지 부근 약국은 쉬는 시간 없이 20시 전후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음) 야간 및 휴일 근무 약국 전화문의 14944 또는 웹사이트 www.vrisko.gr/en/pharmacy-duties/athens/ 참고

 

2018.02.02 - [해외여행 정보/세계 날씨 정보] - [그리스 여행] 그리스 아테네 날씨(연중 날씨, 옷차림, 여행시기 등) 총정리!

 

[그리스 여행] 그리스 아테네 날씨(연중 날씨, 옷차림, 여행시기 등) 총정리!

[그리스 여행] 그리스 아테네 날씨(연중 날씨, 옷차림, 여행시기 등) 총정리! 고대 그리스어(語)로는 아테나이(Athénai), 현대 그리스어로는 아티나이(Athínai), 고어로는 Athenae입니다. 이름은 시(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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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여행] 아이슬란드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아이슬란드 (Iceland)

추운 이름을 가진 아이슬란드가 꽃보다 청춘 촬영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뜨겁게 부상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빙산, 온천, 간헐천, 활동중인 화산, 눈으로 덮인 산의 정상, 용암으로 된 넓은 황무지 등이 있는 자연적 특성 때문이다. 천연의 자연경관 외에도 풍부한 역사이야기, 문학, 민속학적 전통이 있어 관심을 끈다. 그러나 이러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가장 비싼 물가 때문에 아이슬란드로의 여행을 망설이게 한다. 그렇다고 절약형 여행가가 이 나라를 여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금전문제 때문에 은행직원을 자주 접하지 않고 아이슬란드를 충분히 관광하려면 얼마 동안은 텐트에서 자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통계 자료

국명: 아이슬란드 공화국

면적: 103,000 평방 km

인구: 272,000

수도: 레이캬빅(Reykjavík인구 17만명)

인종: 97% 아이슬란드인

언어: 아이슬란드어 (영어와 독일어 통용)

종교; 95% 복음루터교, 3% 다른 종파의 기독교, 1% 로만 카톨릭, 고대 노르웨이종교인 아우사트루 추종자들이 일부 있다.

 

 

지리, 지도 및 기후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아이슬란드는 스코틀랜드(Scotland)의 북서쪽, 노르웨이의 서쪽, 그린랜드 남동쪽의 대서양에,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이다. 동에서 서로 500km, 북에서 남으로 300km 펼쳐있는 본 섬은, 황무지고원, 모래삼각주, 화산, 용암대지, 만년빙산 등이 그 특징이다. 국토의 절반 이상이 높이가 400m 이상이고, 최고 높은 흐반나달스누쿠르(Hvannadalshnúkur) 2119m이다. 해안을 따라 국토의 21%만이 주거지이며 경작 가능하다. 아이슬란드 인구와 농경지의 대부분은 레이캬빅 (Reykjavík)과 비크(Vík) 사이의 남서부 해안에 밀집해 있다. 아이슬란드는 화산활동에 의한 주기적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비교적 새로이 형성된 땅덩어리이다. 지진은 이 나라에서는 아침식사처럼 약간 흥분된 일로, 사람들은 폭발 때문에 그들의 털모자가 기울어 지는 것이 성가실 뿐이다. 폭발로 인해 과거에 바다가 섬이 되기도 하고 땅이 다시 침식하기도 한다.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게 하는 우르르하는 소리, 진동, 화염 등과 같은 현상은 흔히 있는 일이다(집중적인 조림사업을 하여 약간의 휴식공원과 관목이 우거진 자작나무구역이 조성되었지만). 거대한 툰드라, 초원, 소택지, 불모의 황무지 등이 또한 있다. 북극곰이 때때로 그린랜드에서 얼음덩이를 타고 떠내려왔지만 환영 받지 못해 토착동물은 되지 못했고, 북극여우만이 토착동물이다. 순록, 밍크, 들쥐 등이 소개할 만 하다. 조류는 풍부하며 특히 바다 새가 많다. 그리고 해양 표유류와 어류가 많다. 민물 어류는 장어, 연어, 송어, 북극메기류 등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남쪽과 서쪽 연안지역은 멕시코만류의 영향으로 엄청나게 많은 비가 오기도 하지만, 겨울은 비교적 온화하다. 예를 들면 1월에 레이캬빅은 평균3일이 맑은 날이다 (6월에는 하루 정도 맑은 날이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7월과 8월이 가장 따뜻하며, 일반적으로 북쪽이나 동쪽으로 가면 맑은 날씨 더 많아진다. 중북부의 아쿠레인(Akureyri)과 뮈바튼호수(Mývatn) 주변은 쾌청한 날이 많고, 동쪽에 있는 예일스타도이르(Egilsstaðoir) 근처가 가장 따뜻하다. 하지만 두 곳 모두다 견디기 어려운 찬 바람이 분다. 내륙의 황무지에서는 해안지역 보다 날씨가 더 청명하기는 하지만, 강한 눈보라가 불고 바람이 높아 먼지와 모래가 회오리 치는 등 자갈 섞인 큰 소용돌이가 치는 어려움을 겪는다.

 


역사

최초로 아이슬란드에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9세기 초까지 이 섬을 일종의 은둔처로 생각했던 아일랜드 수도승들이었다. 그들의 뒤를 이어 노르웨이에서 최초의 정착민들이 이동해 들어온다. 870년에서 930년대는 소위 정착의 시대로 스칸디나비아 본토에서 정치적 갈등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왔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정치적 갈등을 피해, 아이슬란드에 정착한 사람들은 군주제대신 의회제를 택한다. 지역구 의회와 국회(Althing)의 기초를 마련했고 법전을 입안하였다.

999년에는 국가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거나 신의가 의심될 때 국가적인 일치를 갖게 할 수 있는 기독교국이 되었다. 그 다음 세기에는 국가가 번성하고 농경제가 안정되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 탐험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추방당한 노르웨이인의 아들인 붉은 에릭(Eric the Red)은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하여 982년 그린랜드를 식민지화하였다. 그리고 에릭의 아이슬란드인 아들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son)은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북아메리카 해안을 탐험한 후 그곳을 빈란드(Vinland the Good)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믿을만한 아이슬란드 전설에 따르면 레이프 에릭손은 14년 전 이미 해안을 탐험했던 다른 아이슬라드인 비야르니 헤르욜프손(Bjarni Herjolfsson)으로부터 빈란드에 관해 들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이러한 긴 여정의 탐험여행은 유럽문학의 정수를 이루는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초기 문학의 전통은 영웅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시에서 시작하였다. 12세기 후반부터13세기에 이르는 동안 서사시, 초기 정착기의 일화, 연애담, 논쟁, 아이슬란드의 발전사 등을 기록했던전설의 시대(the Saga Age)는 시로 대치되었다. 이것들은 아이슬란드인에게 문화유산의 공통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매섭게 추운 겨울 밤 긴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을 주었다.

13세기 초에는 200년간 지속되던 평화로운 문명시대가 끝을 내린다. 아이슬란드는 정치적 반역과 폭력이 난무했던 혼란의 시대인 악명 높은 시절(Sturlung Age)로 접어든다. 기회주의자 노르웨이왕 하우콘 하우코나르손(Hákon Hákonarson)이 즉각 침입하였고,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의 하나의 지방이 되고 무자비한 약탈을 당한다. 게다가 불운이 겹쳐, 1300, 1341, 1389년에 폭발한 헤클라화산(Mt Hekla) 때문에 무수한 인명피해와 파괴를 겪는다. 또한 1349년 노르웨이를 휩쓸어 무역과 물자공급을 중단시켰던 흑사병이 나라 전체를 휩쓴다. 14세기말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교회와 국가 사이의 분쟁은 1550년 종교개혁과 루터주의를 국교로 강요하기에 이른다. 그 후 2세기에 동안 사나운 덴마크의 착취에 절름발이상태가 되었고, 해적들에 시달렸으며 수없이 자연재해를 겪어야만 했다. 아이슬란드가 헌법을 초안하고 국내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도록 허가 받는 1874년에 비로소 덴마크의 억압은 약화된다.

 

 1918년 덴마크의 지배를 벗어나 덴마크왕국에 속하지만 하나의 독립국가가 된다. 하지만 국방과 외교문제는 코펜하겐이 여전히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1940년 덴마크는 독일에 점령된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왕국이 더 이상 그들의 문제를 관장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1년 후 독립을 요구하였고, 1944 6월 독립을 보장 받는다. 덴마크의 침략과 아이슬란드의 주권선언을 경험한 후, 섬나라라는 지리적 약점은 연합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하였다. 그 결과 영국과 미국군대가 들어온다.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남아있어 그들이 나가기를 바라는 아이슬란드인의 원성이 늘어가고 있다. 영국인들은 1970년대에 아이슬란드의 어업영해권 확장을 거부하여 그들의 분노를 샀다. 수년 동안 소위 대구전쟁(Cod Wars)이라 불리는 아이슬란드 무장헬리콥터와 영국 전함 간의 포격은 어획철마다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최근 아이슬란드 경제는 불안해 보인다. 어업할당제가 부활했고, 실업률의 상승과 크로나(króna)의 가치하락을 겪고 있다. 환경 단체과 아이슬란드 포경산업의 마찰로 인해 1992년 세계 포경위원회에서 탈퇴하였지만,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못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이제 호전되고 있으며, 통신의 발달과 도시인구의 증가는 자연재해의 충격을 상당히 감소시키고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 US$ 166

1인당 국민총생산 GNP : US$ 63,830

연성장률: 1.7%

인플레이션: 4.9%

주요산업: 어업, 양식업, 알루미늄제련, 지열발전

주요무역국: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

 

문화

탄력적이고 독립적인 아이슬란드의 문화는 험한 지형과 중세 스칸디나비아 독재자를 피해온 농부와 군인 자손들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미지의 세계로 피신해온 이들은 안정된 정착생활을 위해 건물을 짓고 농장을 일구었다. 서구 중세문학작품 중 가장 훌륭하다고 인정 받는 아이슬란드의 풍부한 문학적 전통은 투쟁, 전투, 영웅담, 종교, 침략 등을 소재로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였다

 

아이슬란드 최고 작가이자 195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할도르 락스네스(Halldór Laxness)와 같은 작가는 현대문학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 주로 목동의 노래와 구슬픈 자장가인 전통음악은 여전히 대중적이며, 또한 장난스러운 리더 가수 비요르크(Björk)가 이끌던 예전의 슈가큐브(Sugarcubes) 밴드는 놀라운 국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아이슬란드는 공식적으로는 기독교 국가이지만 고대 노르웨이족 종교로 알려진 아우사트루 (Ásatrú)교가 점점 인기를 끌고 있어 신흥종파로 인정받고 있다. 1970년에 양떼 농장주가 아이슬란드판 아우사트루를 부활시켰다. 고대신들이 상징하는 자연의 힘과 조화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아이슬란드의 전통음식은 듣는 것처럼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실제로 몇 가지 요리는 먹을만하다. 한가지 분명한 예외인 하우카를(hákarl)은 충분히 부패하도록 6개월 이상 땅에 묻어 두고 썩힌 상어고기이다. 오래된 신 우유에서 응고된 부분을 뺀 물에다 양의 고환을 절여서 케이크 안에 눌러넣어 먹는 흐루트스푼구르(hrútspungur)와 삶거나 생으로 혹은 절여서 먹는 스비드(svið)는 두 눈이 그대로 있어 확실히 양인지 알 수 있지만 그래도 먹을 만 하다

양고기의 남은 부분을 섞어서 다진 다음, 창자에 집어넣고 묶어서 익힌 슬라우투르(slátur)도 권할 만 하다. 하르드피스쿠르(harðfiskur – 대구의 일종), 블레이크야(bleikja – 매기류), 룬디(lundi -섬새의 일종) 등은 훨씬 덜 기이한 음식이다. 이런 음식들을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다면 고래의 지방, 고래스테이크, 바다표범고기도 시식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아주 독특한 쉬르(skyr)는 저온 살균 탈지우유에 박테리아를 배양하여 만든 요구르트와 비슷한 혼합음료이다. 커피는 국민전체가 즐겨 마시며 맥주, 와인, 주류도 비싸기는 하지만 쉽게 구할 수 있다. 전통적인 아이슬란드 주류는 감자와 캐러웨이열매로 만든 일종의 슈냅스인 독주 브렌빈(brennivín)이다.

 

 

축제 및 행사

일 년 중 가장 거국적인 경축일은 6 17일 독립기념일로 다채로운 가두퍼레이드,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기, 야외극장 등이 열리며 모든 사람들이 유쾌하게 즐기는 날이다

그 외 국가적인 축제는 6월 첫째 주에 열리는 뱃사람들을 위한 선원의 날 축제(Sjómannadagurinn)가 있다. 수영대회, 줄 달리기, 해양구조 경기 등에 참가하여 경쟁을 펼친다.

6 24일의 하지 축제는 백야의 이슬은 신비한 치료효과가 있어 19가지의 각가지 병을 고친다는 전통적인 믿음과 관련이 있다.

4월의 셋째 목요일은 한 해의 첫 번째 여름날을 기념하는 카니발형식의 숨마르다구린 퓌르스티 축제(Sumardagurinn Fyrsti)가 열린다

지방축제 가운데는 8월에 열리는 피요드하우티드(Pjódhátíð)의 베스트만나이야르(Vestmannaeyjar)는 땅이 흔들릴 만큼 요란스런 행사를 벌여 모닥불을 피우고 캠핑을 하며 춤추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며 취하는 날이다. 역시 8월에 있는 베르슬루나르만나헬예 (Verslunarmannahelgi)는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바베큐, 말타기 경주, 캠핑, 가족모임, 과도한 음주 등을 즐기는 공휴일이다.

 

 

여행자 정보

비자: 서방 유럽인,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홍콩, 싱가포르 등의 시민권자와 그 외 많은 나라의 시민권자도 비자가 필요 없다. 여행자는 최고 3개월까지 체류가 보장되며 경찰서에서 쉽게 연장도 가능하다.

건강상 유의사항: 트레킹을 한다면 체온이 저하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시간대: 그린위치 표준시와 같다.

전압: 220볼트, 50싸이클

도량형: 미터법

관광객: 일년에 15

 

 

 

경비 및 환전

통화: 크로나 Króna (Ikr)

환율: US$1 = Ikr 72

 

여행경비

저렴한 식사: US$5-10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12-20

저렴한 호텔: US$15-45

중급의 호텔: US$90+ (double)

북대서양에서는 모든 생필품이 수입되기 때문에 음식, 숙박, 교통비 등의 물가가 높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여행자의 주머니를 쪼들리게 하는 나라로 전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에 US$500을 쓸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한정된 경비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예산을 넘기지 않도록 애써야만 한다. 안락함을 즐겁게 포기한다면 유스호스텔에서 자고, 스넥바에서 식사하고 버스로 다니면, 하루 평균 약 US$35 의 지출을 유지할 수 있다. 유럽인들은 캠핑용 차량이나 캐라반 같은 개인 교통수단을 가지고 아이슬란드에 오기도 하는데, 이 경우 약간 더 편리하고 즐겁게 여행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적당한 예산안에서 경비를 써야 한다. 휘발유 값이 1리터당 US$1이 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국여행자수표, 우편환, 가계수표 등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은행에서 환전 가능하다. 액수에 관계없이 약 US $2.50의 환전수수료가 부과된다. 주요 신용카드는 대부분의 장소에서 사용가능 하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카드사용을 무척 즐겨서 식품이나 작은 물건을 살 때 조차도 카드를 쓴다. 팁은 요구하지 않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는 자동적으로 계산서에 봉사료가 추가되기 때문에 팁을 더 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아주 특별히 훌륭하거나 친절한 서비스에 꼭 팁을 주고 싶다면 거절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 시기

매년 8 15일이 되면 사람들은 아이슬란드로의 여행길을 멈추고 아이슬란드의 관광거리도 서서히 줄어든다. 호텔, 유스호스텔, 캠핑장 등은 문을 닫고 버스운행도 멈춘다. 늦은 여름에 온 관광객들은 볼만한 구경거리는 9 15이후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몹시 실망한다. 그리고 9 30일쯤부터는 마치 나라 전체가 깊은 동면에 들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는 달라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여행계획을 세울 때 이런 점들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주요 여행지

레이캬비크 (Reykjavík)

 

아이슬란드의 수도는 여느 유럽의 도시들과는 다르다. 레이캬비크는 ‘연기 나는 만이라는 뜻으로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수도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후반에 세워진 비교적 신 도시이다.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부는 바람과 지열에 덕택으로 오늘날 레이캬비크는 ‘연기 없는 도시로 알려졌다. 레이캬비크는 흥미로운 옛날 마을, 하얀 목조건물, 줄지어선 밝은 색의 콘크리트 집들 뿐만 아니라 현대 유럽도시의 외양을 자랑하고 있다.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모두 구시가에서 걸어 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시의 중심인 구시가지는 잔디 공원, 호수, 시장, 박물관 등이 함께 있는 전원분위기이다. 먼 북구의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의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교적, 민속적 유물과 정착시절 사용하던 연장 등을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을 가보아야 한다. 전시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노르웨이 전쟁장면을 묘사한 1200년경에 새겨진 교회 문이다, 지하실에는 항해용이나 농업용 기구들, 옛날 고기잡이 배, 아주 창의적인 농업기구 등이 있다. 박물관 바로 뒤에 있는 아우르니 마흐누손(Árni Magnússon)협회는 북구전설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안에는 아이슬란드가 독립할 때 덴마크로부터 돌려받은 란드나마북 (Landnámabók)과 니얄스(Njáls)의 모험담을 포함한 유명한 작품집이 있다. 현대적인 모습의 레이캬빅은 구시가의 동쪽으로 뻗어있으며, 용암으로 산 모양 비슷하게 만들어진 웅장한 할그림스교회 (Hallgrímskirkja) 등 몇 가지 볼거리가 있다. 교회를 보는 순간 용암 때문에끈적거리는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시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분명하다. 1940년대 후반에 건축이 시작되어 1974년에 완성된 이 교회는 아이슬란드의 가장 유명한 시인 할그리무르 페투르손(Hallgrímur Pétursson)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강렬한 빛이 가득 찬 실내를 둘러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75m 높이의 고층 탑에 오르면 시의 경치가 대단히 멋지다. 교회 잔디밭에는아이슬란드인의 아들이자 빈란드(오늘날 뉴펀드랜드나 라브라도)의 발견자`(‘Son of Iceland, Discoverer of Vinland')로 자랑스럽게 알려진 레이프 에릭손의 동상이 있다. 외양이 끈적끈적하게 보이는 곳으로 화산쇼 극장(the Volcano Show)이 또 있다. 다시 한번 디자인 때문에 흥미를 잃지는 마라: 이 극장은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는 가지각색의 화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치있는 곳이다. 1963년 마치 엑소시트를 연상시키는, 바다에서 솟아올라 스며나온 수르트세이 (Surtsey)의 탄생을 보여주어, 유명한 상을 수상한 영화 등 화산분출의 장대하고 극적인 장면을 담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가볼 만한 다른 곳으로는 쾌적한 식물원, 대중적인 놀이공원, 아이슬란드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박물관 등이 있다. 저렴한 숙박시설과 음식, 경제적인 쇼핑은 구 시가지나 바로 시가 동쪽에서 찾을 수 있다. 여흥으로는 영화 (아이슬란드어자막과 함께 원어로 상영하는), 문화행사(연극, 오페라, 교향악, 무용), 가벼운 구경거리(무용담, 정착기 이야기와바이킹을 소재로 하는) 등이 있다. 룬투르(Runtu)는 최고의 연주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시내 힙바, 생음악현장, 디스코 등을 샅샅이 돌아다니는 레이캬빅의 단체이다.

 


굴포스와 게이시르(Gullfoss & Geysir)

 

아이슬란드에서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두 곳 모두 중앙남부에 있으며 자연현상과 유적지로 유명한 장소이다.. 사진으로 자주 보는 두 층으로 되어있는 폭포가 굴포스이며, 자주는 아니지만 해가 날 때 폭포의 거대한 물보라에서 무지개를 볼 수도 있다. 이 곳은 한때 수력발전개발을 위해 국제경매에 붙여지기도 했지만 정부가 사들인 후, 국가기념물로 보존하고 있다. 근처에는 한때 남부 아이슬란드의 학문의 전당인 하우카달루르(Haukadalur)가 있다. 굴포스의 바로 서 쪽는 온천이 분출하는 간헐천중 최고인 게이시르가 있다. 14세기부터 분출하기 시작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간헐천을 분출시키려고 돌과 진흙을 던진 후 20세기 초기에야 멈추었던 ‘Great Geysir’가 가장 볼만하다.. 다행히 근처 스트록쿠르(Strokkur)의 다른 간헐천을 대신 발견했다. 이 온천은 3분마다 정확히 20m까지 치솟으며 물보라를 뿜어낸다. 하지만 단 몇 초 동안만 분출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 외에도 다채로운 온천, 증기를 뿜는 구멍, 따뜻한 시냇물, 황홀한 조류, 광물침전물 등을 근처에서 볼 수 있다.

 

 

뮈바튼, 미바튼 (Mývatn)

 

아이슬란드 북동부에 있는 뮈바튼은 세계적인 자연의 경이로움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대부분의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화산이나 지열표면현상이지만, 보호지역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수많은 새들로 넘치는 아름다운 푸른 호수이다. 게다가 거대한 만년설에 가려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이므로, 이 보호구역은 아이슬란드에서 날씨가 가장 좋은 곳이다. 여행객들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하며 1주일 정도 캠핑을 할 수도 있고, 크베르크피욜(Kverkfjöll) 빙하동굴, 아스캬(Askja) 화산의 원형 함몰지형, 흐베르펠(Hverfell)분화구 등이 있는 요쿨사우르글루푸르 (Jökulsárgljúfur) 국립공원까지 소풍을 갈 수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헬가펠 (Helgafell)

헬가펠은 아이슬란드역사와 문학에 특별히 자주 등장하는 신성한 산이다. 실제로 이 산은 73m 높이의 언덕이지만 어떤 신비한 힘을 확실히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등반할 때 몇 가지 간단한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세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첫째, 말하지 않고, 뒤를 돌아다 보지 않고 남서쪽 경사를 따라 성전의 옛터까지 등산한다. 둘째, 소원은 선을 위한 것이어야만 하고, 악의 없는 마음으로 바래야 한다.. 셋째 동쪽경사를 따라 내려와만 하고, 누구에게도 그 소원을 말해서는 안된다. 헬가펠은 스튁시스홀무(Stykkishólmu) 5km 남쪽으로 아이슬란드 중서부에 있다.

 

 

케르린가르스카로드 (Kerlingarskarð)

케르린가르스카로드는마녀의 통로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무시무시한 장소에 한 여자트롤(난장이 귀신)이 통로의 동쪽 면을 이루는 케르린가르피얄(Kerlingarfjall)산 기슭에서 돌기둥으로 변할 때까지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근처에는 이 마녀가 고기를 잡았다고 하는 호수가 있다. 1800년대에 한 주민이 호수로 들어가는 큰 발자국을 보았다고 전해지며, 그 후에도 록 네스(Loch Ness; 스코틀랜드의 한 호수에서 목격되었다는 거대한 용모양의 동물) 같은 동물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 용기가 있다면 호수 주위에 캠핑을 하며, 주위를 탐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날씨가 매우 나쁘다. 통로를 가로질러 레이캬빅과 스튁시스홀무르 사이에 버스가 있다.

 

 

 

그림세이 (Grímsey)

본토 북쪽 41km에 있는 그림세이섬의 일부는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북극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지도상으로 볼 때 신비한 위치라는 것 이외에 여기를 찾는 주 이유는, 섬에 둥지를 틀고 있는 새 군락지로 이상적인 장소인 100m에 이르는 절벽을 보기 위해서다. 그림세이는 또한 아이슬란드의 가장 열정적인 체스 플레이어들의 고향이다. 역사적으로 체스경기에 패배한 후, 어리석은 실수를 한 선수가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을 한적이 있었다. 결국, 체스에서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되었다. 이후 열정이 조금 식기는 했지만 체스게임을 제안 받으면 너무 간단히 응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스키야 (Askja)

 

50평방km에 달하는 거대한 아스키야 화산분화구지대는 아이슬란드에 문물이 들어오는 것 만큼이나 멀리 외따로 떨어져있다. 춥고 바람불어 접근하기 어려운 이 지역은 자연의 거대한 창조력을 보여준다. 1875년 원 분화구를 형성한 지각변동이 크게 일어났으며, 이때 화산재로 인해 유럽대륙까지 엉망이 되었다. 화산활동은 이후 약 30년 동안 지표물질이 크게 붕괴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새로 생긴 함몰지는 물로 채워졌으며, 깊이 217m에 달하는 이 호수는 아이슬란드에서 제일 깊다. 선명한 사파이어블루색의 호수는 일년 내내 거의 얼어있지만, 안쪽에 새로이 생긴 작은 분화구는 아직도 뜨겁고 수영하기에 이상적이다. 아스키야는 중부 아이슬란드에 있으며, 4륜 구동의 차량을 이용하거나 여행계획을 잘 세워 가는 것이 최선이다.

 


요쿨사우르글루프르 국립공원(Jökulsárgljúfur National Park)

 

요쿨사우르글루프르(빙하강 계곡을 뜻하는) 국립공원은 아이슬란드의 새로운 자연보호지역이다. 가끔 아이슬란드의그랜드 캐년이라고 인용되는 이 공원에는 아이슬란드에서 제일 큰 계곡, 풍부한 식물군, 기묘한 암석의 형성, 동굴, 가파른 아우스뷔르예 (Ásbyrgi) 계곡, 무수한 폭포 등이 있다. 또 다른 인기 있는 장소로는 메아리가 울리는 흐료드아클레타르(Hljóðaklettar)암석, 철철 넘치는 아름다운 온천 홀마툰구르(Hólmatungur), 유럽에서 제일 아름다운 데티포스 (Dettifoss)폭포 등이다. 공원은 후사비크(Húsavík)의 동쪽에 있으며, 아이슬란드 북동쪽에 위치한다.

 

 

레저스포츠

아이슬란드에는 트렉킹 코스가 무수히 많은데, 오후 한나절만 걷는 하이킹부터2주일 동안 대자연을 즐기는 트레킹까지 다양하다. 가장 좋은 하이킹코스는 란드만나라우가르(Landmannalaugar),라우트라비야리(Látrabjarg), 호른스트란디르(Hornstrandir) 등과 같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지만, 레이캬빅 바로 근처에 있는 레이캬네스폴크반구르(Reykjanesfólkvangur)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스키장은 레이캬빅, 아쿠레인(Akureyri), 레이캬빅 바로 남동쪽에 있는 블라우피욜(Bláfjöll), 아쿠레인 가까이 있는 흐리다르피얄(Hlíðarfjall)에 있다. 랑요쿨(Langjökull)의 만년설에서 썰매타기, 하얀 강이라는 뜻의 흐비타(Hvítá)에서의 급류타기, 후사펠 (Húsafell) 근처에 할문다르흐라운(Hallmundarhraun) 동굴에서 아마추어동굴탐사, 실내에서의 말타기, 지열을 이용한 수영장에서의 수영 등을 즐길 수 있다. 그 외 특별한 것을 하고 싶다면, 전 세계의 아마추어 및 프로 골퍼가 참가하여 아쿠 레인에서 밤새도록 열리는’Arctic Open’ ‘심야의 태양골프토너먼트에 참가할 수도 있다.

 

 

 

아이슬란드 으로 가는 길

국내 항공사인 아이슬란드에어는 유럽과 미국으로 가는 정기직항이 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항공편이 비싼 것을 염두에 두라. 항공료를 싼 가격에 구하려면, 가능하면 일찍 계획을 세우고, 여러 여행사를 다녀보며, 적어도 출발 30일전에 항공표를 구입하라. 유럽과 아이슬란드를 즐겁게 여행하기 위해서 페리를 이용할 수도 있으나, 다소 시간이 걸리고 요금은 여전히 비싸다. 페리편은 덴마크 남서쪽에 있는 에스베리 (Esberg)에서 5월 말부터 9월초까지 있는데, 여행객은 이틀을 중간 기항지 파로섬(Faroe Islands)에서 보내야 한다. 또 그린랜드에서 아이슬란드를 거쳐 덴마크까지 가는 페리편이 12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있다. 그리고 9월 둘째 주에 출발하여 10월 첫째 주에 돌아오는 페리가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사이를 운항한다. 6월과 8월 사이에는 스코틀란드 북동쪽의 셰틀런드섬(the Shetland Islands)의 러윅(Lerwick)에서 아이슬란드로 가는 페리편이 있다.

 

 

 

국내 교통편

국내선, 프루글레이디르(Flugleiðir)는 눈과 얼음이 대부분의 육상교통을 마비시키는 겨울철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교통편이다. 항공료는 다소 비싸지만 레이캬빅과 대부분의 주요도시를 매일 운행한다. 아이슬란드에는 철도가 없으며, 간선도로는 유럽에서 제일 개발이 덜 되었다. 하여간 비프레이다스터드 이스란드(Bifreiðastöd Íslands) 장거리버스운송회사는 다소 불편하지만 상당히 적절하게 전국을 잘 연결하고 있다. 또 항구를 연결하는 페리가 많다. 대부분의 도시에 자동차대여회사가 있고, 기본 요금은 견딜만하지만, 초과km당 부가요금, 강제적 보험가입, 세계에서 거의 가장 비싼 기름값을 더하면 아주 비싸진다. 비포장도로, 가파른 경사길, 험한 날씨 등을 고려할 때, 아이슬란드는 자전거타기에 적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려는 관광객이 늘어나서 대부분 도시의 호텔과 호스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관광을 위해 대여할 수 있는 택시와 지방버스가 지역교통편으로 이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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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영국/잉글랜드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영국, 잉글랜드(United Kingdom, England)

20세기는 영국에게 그리 호의적인 시기는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제국은 쇠락했고, 무역기반을 잃었으며, 정부의 완고함은 현대세계에서 그 역할을 감퇴시켰다. 그러나 왕실 권력과 영국인 생활에 초석이 되어온 많은 제도들이 변화를 일으켰다. 20세기 후반의 불가항력적인 환경과 방대한 도시 스프롤 현상은 그 동안 신사의 나라 영국의 전통적인 상징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다. 노동당의 토니블레어가 이끄는 예고된 '신 영국인은 우울한 대처주의에서 고 다이아나의 숭배로 옮겨갔고, 여왕과 찰스 황태자는 서민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Spice Girls가 페미니즘의 새 얼굴로 떠올랐고, 버릇없고 무표정의 형제들이 대형포스터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직도 기사작위와 판사의 가발이 남아있는 나라이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는 계속 될 것이다.


통계 자료

면적 : 129,720 평방 km

인구 : 4,800백만

수도 : 런던 (London)

인종 : 앵글로 색슨, 스코트랜드인, 웨일스인, 아일랜드인, 서인도인, 파키스탄인, 인도인 등

언어 : 영어

종교 : 영국성공회, 감리교, 침례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정체 : 의회 민주주의

국가 대표 : Queen Elizabeth II



지리, 지도 및 기후



영국의 면적은 24만 평방 km로 뉴질랜드와 비슷하거나 프랑스의 절반 정도이다.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가 약 1000km이고 너비는 500km이하이다. 아주 큰 산은 없지만 많은 산맥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북서 웨일즈의 스노우도니아 산맥, 북서 잉글랜드의 컴브리안 산맥, 남서 스코틀랜드의 글렌켄 산맥 등 모두 대략 1000m에 이른다. 스코틀랜드 그램피언 산맥에는 저지대와 고지대 사이를 가르며 경계선 구실을 하고 있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1343m의 벤 니비스 (Ben Nevis)산이 있다.


잉글랜드는 Great Britain섬 안에 나뉘어진 세 지역 중 가장 넓은 지역이다.

북으로 스코틀랜드, 서로 웨일즈와 경계진 잉글랜드는 대부분 국토가 평평한 저지대이다. 북쪽은 페나인 산맥의 석회암 지대이고, 서쪽은 컴브리안 산맥과 디스트릭트 호수(Lake District)지대이다. 페나인 남쪽은 인구밀집지역인 미들랜드(Midlands)이고, 웨스트 컨트리(West Country)인 반도의 남서쪽은 화강암, 비옥한 농토, 바위 해안이 있는 고원지대이다. 나머지 국토는 잉글랜드 저지대로 불리며, 농토와 낮은 산, 산업지대 그리고 방대한 런던이 있다. 잉글랜드는 과거 숲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유럽에서 아일랜드 다음으로 숲이 없는 곳이 되었다. 정부는 숲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오히려 소나무는 땅을 산성화시키고, 이전의 많은 토탄지대를 황폐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외 수림으로는 오크와 느릅나무, 밤나무, 라임, 물푸레 나무, 너도밤나무 등이 있다

큰 식물군은 없으나, 봄철에는 수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다 - 아네모네, 수선화, 블루벨, 앵초, 미나리아재비, 서양깨풀 등. 붉은 사슴이 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은 포유류종이며 여우, 오소리, 호저 등도 있다. 미국산 회색 다람쥐가 들어오면서 토종 붉은 다람쥐가 줄어들고 있다. 잉글랜드에서 유일한 독뱀인 살모사는 극히 수가 적어 보호되고 있다. 과거 영국에는 조류탐사가 인기 있을 정도로 수많은 조류가 있었으나 현재 많은 서식지가 파괴되어 수도 줄고 멸종한 것도 많다


잉글랜드의 국립공원은 국토의 7%정도로, Dartmoor, Exmoor, Lake District, Peak District, Yorkshire Dales, North York Moors, New Forest, Broads, Northumberland 등이 있다. 영국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얕고 따뜻한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난하다. 이러한 요인으로 영국은 아주 춥거나 아주 더운 기온도 없고, 햇빛 나는 날도 적고, 구름 없는 날도 드문 온화하면서 변화무쌍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겨울(12-2)에도 얼음이 얼지 않고, 여름(6-8)에는 30도 이상의 기온을 보인다. 북쪽이 가장 추운 지역이며, 런던, 남동부와 서부지역이 가장 따뜻하다

산악지대와 West Country가 가장 강수량이 많은 곳이다. 우중충한 날씨가 주를 이루는 영국은 하루 종일 해가 쨍쨍한 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여름조차 여러 날 해를 볼 수 없을 때가 많고, 소나기, 폭우는 당연한 것이다(하루에 열두 번 바뀌는 날씨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박, , , 쨍쨍 내리 쬐는 햇볕이 서너 시간 안에 차례로 등장하기도 한다. 영국이란 나라를 즐기려면 끊임없이 '난 비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주입시켜야 할 것이다.



역사

*켈트족과 로만족

BC4000년 경, 새로운 이주자들이 유럽에서 들어왔을 때, 영국은 오랫동안 소수 수렵족들이 정착해 살아온 터전이었다. 석기를 사용했던 새 이민족들은 이 섬나라에 처음으로 큰 자취를 남겼다. 솔즈베리 평원의 언덕에서 농경을 시작하였으며, 돌무덤을 만들었고, BC3000년 경에는 에이버리(Avebury)와 스톤헨지에 거대한 의식제단도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 유입된 민족은 켈트족으로, 청동과 철기를 사용하던 중부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두 형태의 켈트어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는 지금도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에서 쓰여지는 겔릭어(Gaelic)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는 잉글랜드 지역에서도 쓰여졌지만 지금은 웨일즈 지역에서만 쓰이는 브라이토닉어(Brythonic)이다. 서기 43년 로마인들이 토착민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무력으로 잉글랜드에 정착하여 7년동안 대부분의 잉글랜드를 장악하였다. 웨일즈와 스코트랜드 산간지방은 켈트족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으나 잉글랜드는 350년간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로마인들은 안정과 잘 뻗은 도로, 기독교를 이 곳에 가져왔으나 그 댓가로 영국인들이 준 것은 골칫꺼리뿐이었다. 결국 410년 경 제국이 쇠퇴함과 함께 로마인은 '결코 패하지 않고, 단지 사라졌을 뿐'


*영국민족

로마인이 철수하고, 영국은 라인강 북쪽에서 유래한 앵글족, 쥬트족, 색슨족의 독차지가 되었다. 5세기 무렵 그들은 영국에 남아 있던 로마문화들을 바탕으로 각자 발전하였고 7세기가 되어서야 그들 자신을 처음으로 하나의 민족, '영국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켈트족 중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켈트족은 라틴어와 로마기독교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바이킹과 노르만인 9세기 중반 영국은 새 침입자들의 물결에 다시 한번 여지없이 당하고 만다. 노르웨이의 바이킹족은 스코트랜드 북부와 컴브리아(Cumbria), 랭카셔(Lancashire)지방을 정복했고, 데인족(Danes)은 요크를 수도로 삼으면서 잉글랜드 동부를 정복했다. 잉글랜드 동부는 데인로우(Danelaw)로 불리게 되었다

그 뒤 알프레드 대왕에 의해 이들의 침략은 끝을 맺게 되었고, 계승자들이 미약하나마 연합된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덴마크인들의 침입이 계속되었고 1016년 에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두 나라의 왕인 카누트(Canute)대왕이 왕좌를 빼앗았다

덴마크 통치시기 후에 참회왕 성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른다. 그는 사촌 윌리암 공과 함께 프랑스에 있는 바이킹 공작 소유인 노르망디에서 자랐다. 에드워드의 죽음은 두 명의 왕위계승자, 영국인 매형 해롤드 고드윈(Harold Godwin)과 노르만인 사촌 윌리암을 남기게 된다. 1066년 윌리암이 1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상륙하여 헤이스팅즈 전투에서 해롤드를 패배시킨다. 북쪽 노르만인의 잉글랜드 정복은 이로써 막을 내리고 영국귀족층이 불어를 쓰는 노르만인으로 대체되고, 장엄한 성들이 세워졌으며 연방체제가 실행되었다.


*중세영국

12세기에 왕위계승문제로 일어난 참혹한 시민전쟁 후에 앙주백작이었던 헨리2세가 왕이 되었다. 반 이상이 프랑스 혈통인 헨리2세는 왕권을 프랑스왕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이 백년전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영국의 패배로 끝이 난다. 왕위계승문제로 계속되는 분쟁은 의회에 더욱 강한 힘을 주는결과를 가져왔다. 요크 집안과 랭카셔 집안 사이의 왕위투쟁이었던 장미전쟁도 30년이나 지속되었다. 결국 1485년 헨리 7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튜더왕조가 시작되었다

헨리8세 때 교황의 권력에 대항한 영국왕들의 투쟁은 결국 승리를 거두었고, 의회는 헨리8세를 성공회의 수장으로 거두게된다. 16세기는 황금기로 희랍학문과 무역이 부흥하였고 셰익스피어가 작품활동을 한 시기이다

엘리자베스1세 이후 의회와 귀족적인 스튜어트왕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이 갈둥이 결국 1642년 시민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북쪽과 서쪽 지방을 권력기반으로 하던 카톨릭 신자들과 옛 귀족들은 찰스1세를 지지했고, 런던과 남동부 도시에 기반을 둔 신교도들과 민중들은 의회를 지지하였다. 의회가 참신한 지도자로서 크롬웰(Oliver Cromwell)을 내세운 결과, 왕당파는 패배하였고, 1649년 찰스1세가 처형당하게 된다

크롬웰은 독재정치를 자행하였지만 육, 해군을 재정비함으로써 대영제국을 위한 초석을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1658년 그가 죽은지 2년 후 재구성된 의회는 추방당했던 찰스2세를 불러들였다. 왕정복고기는 곧 영토확장의 시기였다. 식민지가 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퍼져나갔고 동인도 회사가 봄베이에 본부를 설립하였다.


*대영제국시기와 산업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노버의 왕들이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 의회에 많이 의지하였고, 로버트 왈폴 경(Robert Walpole)이 명목상의 첫 수상이 되었다. 1770년까지 프랑스가 캐나다의 모든 영토와 인도의 프랑스 무역지점 두 곳을 빼고 모두 양보하는 반면, 영국의 쿡 선장은 호주를 계속 영국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제국의 첫 번째 큰 반전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이 1783년 독립을 쟁취하였을 때 찾아왔다. 또한 1780년대는 산업혁명을 발전시킨 첫 움직임이 이루어진 시기로 운하의 이용과 기차의 등장, 석탄, 수력과 증기력으로 생산과 교통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빅토리아여왕이 왕좌에 앉은 1837년까지도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영국함대는 해상을 손에 쥐고 그 큰 대영제국을 이어주고 있었고, 영국의 공장은 세계무역을 움직이고 있었다.


*20세기

빅토리아 여왕은 이 새로운 세기 초창기에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전 세기를 지배하던 구제도들은 1차 대전으로 무너지는데, 1918년에 끝난 이 전쟁으로 백만명의 영국 남성이 목숨을 읺었으며 국가 자본 중 15%가 소비되었다. 1939 91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1940년대 중반까지 유럽 대부분이 나치 통치하에 놓여 있었다. 스탈린은 평화조약을 맺었고 미국은 중립적 태도를 취했으며 윈스턴 처칠의 탁월한 지도력 하에 있던 영국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1940년 로얄공군이 영국전투에서 승리하여 히틀러의 침략계획은 실패하게 되었다.

 1960년대는 전쟁의 복구시기였고 Beatles, Rolling Stones, Mary Quant, David Bailey, Twiggy, Jean Shrimpton 등의 활약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무대가 되어있었다. 또 전후 대영제국의 많은 식민지들이 독립을 얻었다. 1970년대, 오일파동, 극심한 인플레이션, 3일 태업, 계층간의 반목 등 혼란이 가중되던 중 1979년 마가렛 대처가 나타나 이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녀는 조합의 균열과 국가산업 사유화, 우등 교육제도 등을 설립하였고, 남미 포클랜드제도에 함대를 보냈으며, 영국사회를 분극화시키는 등 많은 업적으로 이 세기에 가장 오래, 가장 두각을 나타내어 활동하였다. 1990년 임명된 존 메이져는 보수당에게 집권을 넘겨주지 못하고 97 5월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에게 자리를 넘기게 된다. 토니 블레어가 수상으로 임명된 후 영국도 변화가 일어났다. 20여 년간 보수당의 영향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만, 희망적인 분위기로 서서히 변화되고 있다: 아일랜드의 평화가 첫 발을 디디고 있고, 젊은 왕자들은 대중가수 스파이스 걸에 열광하는 등 변화의 길을 가는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 6,455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5,575

연 성장률 : 3%

인플레이션 : 3%

주요 생산품 : 금융, 강철, 운송시설, 석유, 가스, 관광

주요 교역국 : EU USA



문화

예술에 대한 영국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극장, 문학, 건축물에 있다. 물론, 모든 예술가에게 적용될수는 없지만 영국의 소위 위대하다고 하는 화가나 조각가나 작곡가는 그에 비해 덜 위대했다고나 할까. 그만큼 영국의 극장, 문학, 건축이 이루어낸 업적이 찬란하다는 얘기다. 아마도 가장 뚜렷한 건축현상은 풍경을 어지럽혀 놓을 정도로 많은 수의 특이한 시골 저택들일 것이다. 19세기와 19세기 귀족들은 이 건축물의 가치를 알았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택과 정원 속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예술품을 수장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후손들은 비록 오만한 성질은 물려받았으나 상속세부과로 인하여 그들의 저택문을 열고 개방한 채, 값 비싼 예술품을 대중에게 공개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은 모든 시대와 전 대륙으로부터 모아진 걸작품들의 보물 창고인 셈이다. 반면 20세기 현대 건축활동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데, 고속도로와 고층건물, 겉만 번지르르한 근교지건설을 제외하고는 정지상태인 것이다.

영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학유산 또한 산더미이다. 어디서부터 문학작품 기행을 시작하면 좋을지 몇 작품만 소개한다면, 제일 먼저 '켄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를 들 수 있다. 지루한 면이 없지 않으나, 중세사회의 생생한 묘사, 특히 켄터베리로 가는 성지 참배는 여행자들의 삶을 그리면서 교훈의 효과도 실감나게 얻어낸다.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Chaucer, Shakespeare, Dickens, Morrissey의 문학 업적은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것이다. 특히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Stratford-Upon-Avon과 그가 연극을 상연했던 런던의 Globe Theatre에서 그의 발자취를 막연히 따라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영국 문화의 업적은 영어이다. 그러나 국제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는 영어가 영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많은 억양의 차이를 보이는데, 남부 잉글랜드 사람이 옥스퍼드 이북에 사는 사람에게 말할 때 통역을 요구하는 일이 자주 일어날 정도이다.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 16세기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나온 기독교의 일파로서, 영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부자이며 영향력 또한 크다. 많은 인구가 예배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영국인들은 그들을 성공회 신자라고 생각한다. 신교로는 감리교, 침례교, 구세군이 있으며, 10명 중 1명만이 카톨릭 신자임을 자처한다. 최근 들어 백만이 넘는 이슬람교와 적지 않은 힌두와 시크교도들도 있다. 특징이 없고 비싼 영국음식은 그리 평가 받지는 못하지만, 런던은 음식의 다양함과 창조적인 면에서는 알아줄 만하다. 본토음식 중에서 그래도 가장 꾸준히 계승되어 온 것이 감자 요리이다.



축제 및 행사

영국에서는 1년 내내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심지어는 작은 마을에서도 주마다 장이 서며, 전통적인 관습과 의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런 행사 중에는그 기원이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다. BTA(영국 관광청)에서 발행되는 Forth Coming Events Art Festival은 한해 동안 일어날 행사와 축제를 선별해 놓은 리스트로서 정확한 날짜까지 기입되어 있다.

* 1231

새해 전야제(Hogmanay-에든버러에서의 큰 거리축제)

* 3월 마지막 주

에딘버러 민속 축제

옥스퍼드/캠브리지 대학간 조정 경기(탬즈강의 Putney에서 Morklake까지)

*4월 첫 번째 토요일

그랜드 내쇼날 장애물 경마대회(리버풀의 Aintree)

*5월초

FA 컵 결스언(축구 토너먼트 결승전, 런던 Wembley 스타디움)

글래스고 5월축제 Mayfest(고품격 예술축제, 3주간 계속됨)

*5월 마지막

Chelsea Flower Show(최고의 꽃 축제, 런던 Royal Hospital)

*6월 첫째 주

Beating Retreat(군악대 연주와 행진, 런던 Whitehall)

*6월 중순

Trooping The Colour(화려한 구경거리가 펼쳐지는 여왕의 생일 잔치 퍼레이드, 런던 Whitehall), 로얄 에스코트(경마행사와 화려한 모자 의상, Berkshire에 있는 Ascot 경마장), Appleby Horse Fair(전통적인 집시축제, Cumbria Appleby)

*6월 말

윔블던 테니스 선수권 대회(Lawn Tennis Championships, 2주간, 윔블던), Henry Royal 조정 경기, Oxfordshire Henry-on-Thames), Glastonbury Festival(거대한 야외 음악 축제와 히피들의 해프닝, Somerset Glastonbury)

*7월 말

Cowes Week(요트를 타고 하는 우스꽝스런 행위, 와이트 섬(Isle of Wight)

*8월 초

Edinburgh Military Tattoo(온갖 구경거리와 군대의 야간군악연주, 3주간)

*8월 중순

Edinburgh International & Fringe Festival(최고의 국제 예술 축제, 3주간)

*8월 말(8월 뱅크 홀리데이)

Notting Hill Carnival(대 규모의 카리브 축제, 런던),  Reading Festival(3일간 야외 Rock & Roll 공연, Berkshire Reading)

*9월 초

Royal Braemar Gathering(하이랜드 게임, 킬트와 긴 장대, Braemar Grampian 지역)

*115

Guy Fawkes Day(카톨릭 교도인 가이 폭스가 국왕과 의회를 폭파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카톨릭 쿠데타를 기념하여 영국 여러 곳곳에서 큰 모닥불과 불꽃놀이가 벌어짐)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6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특별 사항 없음

시간대 : 그리니치 표준시 (한국은 영국보다 9시간 빠르고, 써머 타임 실시기간에는 8시간 빠르다.)

전압 : 240V, 50Hz

도량형 : 미터제(, 맥주는 파인트제(pint)


경비 및 환전

통화: 파운드


여행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 US$5-10

중급 레스토랑 식사 : US$15-25

고급 레스토랑 식사 : US$30 이상

저렴한 숙박지 : US$15-30

중급 호텔 : US$40-100

고급 호텔 : US$100 이상

영국은 물가가 높은 편이고, 그 중에서도 런던은 끔찍할 정도이다. 런던에서 1 US$35 정도면 최저생계비 정도이다(도미토리 숙박과 1일 교통패스, 기본적인 식비 정도). 아주 간단한 볼거리나 나이트라이프를 즐긴다면 US$25정도 추가될 것이다. 호텔숙박과 레스토랑 식사를 하게 되면 간단히 US$90이 소비될 것이다. 교통패스를 끊고 담배를 자제하며 식사를 자체해결 할 경우 경비는 매우 줄어들 것이다. B&B(Bed & Breakfast)에서 묶고 식당에서 먹고, 입장료를 아끼지 않는다면 1 US$65정도 소요된다.은행에서 여행자수표는 쉽게 환전할 수 있고, 두 번 환전되는 손실을 피하려면 파운드화 여행자 수표를 직접 바꾸어 가는 것이 더 좋다. 런던 환전소는 최악의 커미션과 환율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환전하기 전에 잘 체크해 보자. 국제공항의 환전소는 예외적인 환전규정을 취하는데, 대부분 은행보다 수수료가 적고, 파운드 여행자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경우 수수료 없이 해 준다. 현금자동인출기는 대중적이며 대부분 신용카드사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잘못하여 카드를 기계에 넘겨버린 경우 거의 회수하기가 힘들다. 대부분 은행은 삼켜진 카드를 잘라버린 후 본국의 은행에 보낸다 -대단히 고맙게도... 식당에서는 아주 써비스가 형편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10%정도의 팁을 남기는 것이 상례이다- 대부분 웨이터들은 팁을 예상하여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을 상기하자. 계산서에 써비스료가 포함된다면 굳이 별도의 팁을 남길 필요는 없다. 택시를 탈 경우(특히 런던에서) 10%정도의 팁을 내는 것이 상례이다.



여행 시기

여름과 봄은(5월에서 9) 리투아니아를 여행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이다. 대부분의 외국관광객은 7월과 8월 사이에 방문하며, 아주 경제적인 호텔과 호스텔은 예약이 완료된다. 겨울(11월에서 3)에는 눈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반면, 낮 시간이 매우 짧다.



주요 여행지

런던 (London)



한때는 세계를 주름잡았던 제국의 수도 런던은 여전히 비중있는 유럽도시 중의 하나로, 영어를 쓰는 이들이 동경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만큼 춥고, 어둡고, 더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런던은 제3세계와 제1세계가 복합된 형태를 띤 거대한 도시이며, 세는 방법에 따라 7백만에서 1200만명의 거주자와 연간 2천만명의 관광객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부유한 관광객들이 매우 많이 눈에 띄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관광객들은 검소한 편으로 자신이 이 중 어떤 타입의 여행객에 속하는 지는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런던은 장시간 낮은 임금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도시라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런던이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야 할 상황이 곳곳에서 기다리므로 적은 돈으로 여행할 때는 미리 계획을 세우고 예약해서 우선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몇몇 극장, 전시, 상점, , 유흥지에 대해 충분히 예산을 투자하지 못한다면, 붐비는 사람들 틈 속과 불편한 지하철, 깨끗치 못한 환경을 견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런던에서 중요한 지리적 요소는 탬즈강으로, 서쪽으로 흐르면서 도시를 남부와 북부로 나누고 있다. 런던은 매우 거대한 지역이긴 해도 지하철이 대부분 지역을 잘 연결하고 있어 가장 많이 이용되는 교통수단이다. 대부분 관광 명소, 극장, 식당과 값싼 숙소는 지하철 Circle Line(순환선)을 기준으로 그 안쪽 지역에서도 탬즈강 북쪽에 분포되어 있다. 런던은 고층건물이 별로 없는데다 있다해도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쉽게 개방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전망대로는 Golden Gallery의 성 베드로 성당(St Paul Cathedral)인데, 무려 3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Hampstead Heath(Regent's Park의 북쪽) Greenwich Park(강 하류 런던 중심부)에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켄터베리 대성당(Canterbury Cathedral)



현재의 성당 모습은 1070년에서 1184, 1391년에서 1505년 사이의 2단계를 거쳐 세워진 것이다. 1170년 이 성당에서 교회의 독립에 대한 논쟁을 벌였던 대주교 Thomas Becket은 헨리 2세의 4명의 기사에게 살해되었고, 그 후 순교당한 Becket을 위한 예배가 생겨났다. 이곳 켄터베리는 중세 유럽 순례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Geoffrey Chaucer '켄터베리 이야기'라는 불후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기도 한 곳이다. 성당은 두드러진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나 확실히 경탄을 자아내는 곳이며 예배자들과 군인, 순례자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2차대전 당시 공습으로 심하게 파괴되기도 했고 특히 성당 남쪽 부분이 좀 엉성하게 재건되기도 했으나 오랜 역사의 터로 늘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아름다운 수도원을 포함해 성당을 둘러보는 데는 반나절이 걸린다. 입장료는 US$5.



스톤헨지(Stonehenge)



5000년 역사의 스톤헨지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선사시대 유적이다. 고리모양의 수많은 돌들은 천체의 움직임에 맞춰 정렬되어 있는데 그 쓰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이곳에서 대부분 관광객들이 감탄하는 이유는 그 유적지의 종교적인 의미때문이라기보다는 이 곳의 일부 돌덩이들을 South Wales에서 옮겨오느라 모든 수단을 동원한 사람들의 인내심때문이다. 50 톤짜리 돌 하나를 캐기위해 600명의 사람들이 동원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곳에 가까이 오기 전 도로에서도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 Salisbury에서매일 7대의 버스가 있다.



바스(Bath)



거의 2000년이 넘는 바쓰의 번영은 온천과 관광의 덕이다. 로마식목욕탕과 조지안식 건축물로 유명한 바스는 세계적으로 꼽히는 유적지이자 관광의 메카이다. 이 작고 세련된 도시는 18C를 통해 가장 멋있고 품위있는 영국 사교계의 장소였다. 그들은 좋은 감각과 재산으로 훌륭한 건축가들을 여럿 고용하였는데, 단순함과 대칭으로 특징지어지는 팔라디오풍 테라스 주택을 디자인하였으며 이런 양식이 도시전체에 퍼져있다. 플로렌스에서처럼 인상적인 선의 다리들이 많이 있는데, 때때로 그것은 이국적인 쇼핑몰로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햇살이 꿀색깔의 건물들을 비추고, 악사와 떠돌이 공연자가 거리를 채울때면 이곳의 경이적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바쓰는 적당히 걸어다니기 좋게 되어 있다. Guidhall옆의 시장과 Abbey Churchyard 북쪽에 있는 미로같은 오솔길은 놓치지 말고 가봐야 할 곳이며, 5월 마지막 주부터 6월 첫째 주까지 열리는 Bath International Festival도 볼 만하다. YMCA근처 Walcot St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열리는 벼룩시장이 있다. 이 외 바쓰 성당(Bath Abbey)과 로마 목욕탕, Pump Rooms 그리고 상점이 늘어선 Pultney Bridge 등이 볼 만하다. 여름에는 많은 여행객 인파가 길가를 메운다.



코츠월드(The Cotswolds)



Bristol 북동쪽에서 18마일 떨어져 있는 이 석회암 언덕지대는 Severn Vale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아름다운 황금빛 돌 마을들과 어울러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부드럽고 매끈한 돌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영향으로 몇 곳의 도시들은 관광버스와 상업주의로 물들어 있다. 유명한 도시로는, Bibury(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자칭하는)와 쵸콜렛 상자마을인 Bourton-on-the-Water, 멋진 풍경의 Chipping Camden 등이다. 콧츠월드를 만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보여행으로, 100마일에 이르는 Cotswold Way는 오랜 역사와 흥미로운 지형, 지루하지 않은 볼거리 등으로 최고의 하이킹장소 중 하나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실리 군도(Isles of Scilly)

랜즈엔드(Land's End) 남서쪽에서 28마일 떨어진 향기로운 실리군도는 140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곳의 따뜻한 기후는 영국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과 나무들을 자라게 해주어 이곳의 주요한 산업이 되게 하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5개 섬은 여유롭고 온화한 분위기이다. 가장 큰 섬인 St Mary's가 가로 세로 2, 3마일정도이므로 이곳에서는 자동차가 필요없다. 대부분 섬은 모래 백사장과 맑고 투명한 물, 난파선들로 다이버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이다. 주요 관광장소는 Tresco에 있는 Tresco Abbey의 아열대 공원이며, 가장 좋은 해변은 St Martin's이고 가장 멋진 풍경을 보이는 곳은 Bryher's Hell Bay이다. 이곳에 오려면 Land's End, Exeter, Newquay, Plymouth, Bristol에서 St Mary's까지 항공을 이용할 수 있고, Penzance에서 보트를탈 수도 있다.


뉴 포레스트 (New Forest)


남부 휴양지 Southampton Bournemouth사이에 끼인 이곳은 145평방마일의 숲지대로, 영국에서 가장 광활한 초목지대이다. 1079년 명명된 이 지역이름은 정복왕 윌리암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가축을 풀어놓고 풀을 먹이는 등 이곳에는 아직도 많은 옛날 전통들이 남아 있다. 5000마리의 야생조랑말과 소들이 풀을 뜯고 있으며 오크와 너도밤나무, 가시나무 숲 사이에는 많은 사슴과 오소리, 여우 등이 살고 있다.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경치도 멋있겠지만, 도로에서 벗어난 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가는 것이 더 멋있는 여행코스이다.



슈롭셔(Shropshire)



슈롭셔의 인상적인 파란언덕들은 이곳을 영국에서 가장 아릅답고 평화로운 지역 중 하나로 만들었다. 또 지형이 완만하고 한적하여 자전거와 도보여행에도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이 지역의 중심지인 슈르즈베리(Shrewsbury)는 영국에서 가장 멋진 튜더풍의 도시로 꼽히며 목골연와조 건물과 꾸불꾸불한 중세거리로 유명하다. 인근의 Wroxeter 4번째로 큰 영국의 로마 도시 Viroconium 유적지가 자랑거리이다. Telford 남쪽에 있는 Ironbridge는 산업혁명시기의 실리콘밸리였고 Ironbridge Gorge박물관은 영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산업고고학 박물관이다.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Northumbria Ango-Saxon왕국(Humber강 북쪽)에서 이름이 유래된 이곳은 잉글랜드의 시골마을 중에서도 가장 자연 그대로이며 훼손되지 않은 곳이다. 잉글랜드의 타 지역에 비해 성과 전쟁터를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길고 참담했던 스코트랜드인과의 투쟁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흥미로운 유적지는 하드리안 성벽(Hadrian's Wall)이다. Northumberland 국립공원은 영국분위기답지 않게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며, 공원의 일부인 Cheviot Hills는 풀이 우거져 있는 아름답고 고립된 하이킹지역이다. 주요도시인 Berwick-upon-Tweed는 잉글랜드의 최북단도시이며,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Brampton Corbridge이다.



레저스포츠

영국은 어느 지역, 어느 곳이나 수많은 오솔길과 산책로들이 얽혀 있고, 작은 마을과 동네는 산책로로 에워싸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이커들의 천국이다. 하이킹에 가장 좋은 지역은 남서부 해안지역의 Somerset Devon, Cornwall, Dorset 등으로 그 중에서도 장거리 도보여행에 최고의 지역은 그림 같은 Cotswold Way이며, 인상적인 황무지와 해안배경을 갖는 Cleveland Way도 손꼽히는 하이킹지역이다. 자전거도 외진 지역을 여행하기에 좋은 수단으로 주요도로만 피한다면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하기에 아주 좋다. 수영하기에 가장 좋은 해변은 Devon Cornwall에 있는 것이고, 가장 멋진 써핑장소는 Cornwall의 서부 해안지대로 특히, Newquay가 유명하다.




영국으로 가는 길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항공교통 중심지의 하나이자 할인티켓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에만 5개의 국제공항(Heathrow, Gatwick, Luton, Stansted, London City)이 있고,Manchester, Newcastle, Bristol에도 국제선이 연결된다. 출국세는 US$34이고 EU국으로 간다면 US$17이다. 빙하기 후 처음으로 영국은 유럽본토와 연결로를 가졌는데, Channel Tunnel을 통해 두 종류가 운행된다. 유로스타(Eurostar)는 런던, 파리, 브뤼셀간을 고속으로 연결하며, 유로터널(Eurotunnel)은 영국쪽의 포크스톤(Folkestone)항과 프랑스쪽의 깔레(Calais)항을 왕복하며자동차, 오토바이, 버스 등 차량 셔틀 써비스를 제공한다. 터널을 이용하지 않고 신선한 공기를 원한다면, 유럽 본토행의 버스나 기차를 타고 페리(또는 하버크래프트)로 들어가 보자. 가장 짧은 선박노선(도버나 포크스톤에서 깔레나 불로뉴( Boulogne)까지) 90분 소요되며, 하버크래프트로는 35분 걸린다. 페리로 갈 수 있는 곳은, 영국 동부와 남부 항에서 프랑스,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로, Portsmouth에서 스페인으로, 영국 서부항에서 아일랜드 등지로 갈 수 있다.


국내 교통편

영국의 대중교통수단은 시설이 좋은 반면 비싸다. 가장 저렴한 버스나 코치는 속도가 느리고 노선이 길수록 경치 좋은 길은 줄어든다. 기차여행은 아름답고 한적한 노선을 지나므로 인상적이며 속도도 빨라 정말 바쁘지 않다면 국내항공을 이용할 필요를 못 느끼게 한다. 외딴 지역을 여행할 경우는 자동차 렌트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런던에는 택시들이 많이 다니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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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 러시아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러시아 (Russia)

정치적 우상과 이데올로기는 무너졌지만, 외국인들은 아직도 러시아의 생활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최근, 시장경제의 붕괴로 인해 범죄, 매춘, 마약, 엄청난 실업, 식량 부족 등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이러한, 러시아의 불확실한 이미지는, 우울한 분위기와 의기충천한 분위기, 무례함과 친절함, 비밀주의와 솔직함이라는 기묘한 조합으로 더욱 고조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러시아인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통계 자료

국명: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

면적: 1,710 sq km

인구: 1 5천만 명(인구증가율 0.2%)

수도: 모스크바(Moscow - 인구 9백만 명)

인종: 러시아계 80% 타타르계 및 핀우그릭계 4%, 그 외 다양한 소수민족이 있음

언어: 러시아어

종교: 러시아정교, 이슬람교, 정령신앙

정체: 연방제



지리, 지도 및 기후



제국은 붕괴되었다 해도, 러시아의 땅은 여전히 거대하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접한 국경으로부터 시작해, 서쪽으로는 터키에 접하고 카자흐스탄, 몽고, 중국과도 국경이 닿아, 6000km나 이어져 태평양에 닿는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펼쳐지는 평원에는, 해발 1900m를 넘지 않는 우랄(Ural)산맥과 극동의 산맥들만이 두드러져 보인다. 주요 수맥이라 할 만한 세 개의 강, 즉 드네프르(Dnepr) , (Don) , 볼가(Volga) 강은 모두 우랄산맥 서쪽에서 흐르며, 모스크바에서 400km 이내의 거리에서 남쪽으로 흘러가 흑해와 카스피해에 합쳐진다. 러시아의 극동은 시베리아(Siberia) 지역으로 그 이름에서는, 동토(凍土), 스텝대초원, 산맥, 유배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떠오른다. 그 크기에 비례해, 러시아에는 다양한 환경대가 존재한다

북쪽의 소나무와 가문비나무숲에는 순록과 늑대, 갈색곰이 서식하며, 낙엽수와 침엽수로 섞여있는 숲에는 사슴과 스라소니, 시베리아 호랑이(블라디보스톡 교외를 돌아다닌다고 알려짐)가 산다. 검은 토질의 스텝대초원은 아시아의 곡창지대다. 눈표범, 치타, 호저, 가젤영양, 야생 염소, 샤무아 영양이 중앙 아시아 사막에 서식하지만 환경오염과 모피사냥꾼들로 인해 많은 종이 멸종 위기에 있다. 러시아에는 140개 이상의 국립 보호구역이 있으며, 보호구역의 번식 프로그램 덕분에 유럽 들소를 비롯한 많은 동물종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여름 평균기온은 비슷해 섭씨 24도 정도다. 모스크바는 11월말부터 얼어붙기 시작해 4월초까지 눈이 남아있고 1월의 평균기온은 영하 12도 전후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여름에는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 반면, 겨울에는 하루 다섯시간 정도만 낮이 지속된다. 여름 평균 기온은 덥다기보다, 따뜻한 영하 8도 정도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봄이면 대해빙이 일어나며, 도로에 차량들이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인 대혼란도 다시 시작된다. 러시아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는 러시아 극동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온화한 기후가 지속된다.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13도 정도로,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 중 가장 춥다고 하는 북동부의 오이미아콘(Oymyakon)에 비하면 아주 기분 좋은 온도라고 할 수 있다. 오이미아콘의 겨울 온도는 영하 65도까지 떨어진다고 하는데...



역사

862, 유틀란드의 바이킹 루릭(Rurik)이 노브고로드(Novgorod)를 건설했는데, 이를 러시아라는 나라의 시발로 보고 있다. 20년 후 루릭의 후계자인 올레그(Oleg)는 키에프(Kiev) 공국의 지배자가 되었고 키에프 공국은 10세기와 11세기, 주변 지역을 지배했지만 무역로의 변화로 인해 상업적인 침체를 겪게 된다. 노브고로드 상인들은 결국 키에프 공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발트해 및북해 무역을 지배하는 도시국가 연합인 한자동맹의 일원이 된다.번영과 성장의 시대는, 13세기, 몽고계 타타르인의 침략으로 갑작스럽게 종결되고 이러한 동요는 1480년까지 계속된다


16세기에 러시아는 영토를 확장하지만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의 통치기간 동안 볼가 지역을 침략해 주변국인 폴란드 및 스웨덴과 반목하게 됨으로써 이후, 대가를 치르게 된다. 700년간 이어진 루릭 왕조는, 표도르(Fyodor) 왕이 후계자를 두지 못해 끝나게 되자 복수심에 가득찬 스웨덴인과 폴란드인들이 침입해 러시아 왕좌를 놓고 혈전을 벌였다. 이 문제는 1613년에 이르러서야 해결을 보는데, 16세의 미하일 로마노프(Mikhail Romanov)가 즉위하여 1917년까지 지속되는, 로마노프 왕조를 열은 것이었다로마노프 왕조의 가장 강력한 왕은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그는 러시아를 세계적인 강국으로 만들었다.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고자, 스웨덴으로부터 뺏은 땅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는데, 그 도시가 바로 상트 페테르부르그이다. 아름다운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그는 황당한 세금들을 많이 도입했는데, , 수염, 하층계급 성인남성의 영혼에까지 세금을 부과했던 것이다.



비공식적인 이야기

나폴레옹 덕분에 총탄으로 시작한 19세기는 불길한 혼란과 함께 끝났다.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농노들이 1861년 해방되었고,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짜르 지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농부들은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땅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에 분개했고, 자유주의자들은 서구 유럽의 제도를 본 딴 정체개혁을 주장했으며 테러리스트들은 1881년 알렉산더(Alexander) 2세를 암살하는데 성공했다.


많은 급진파들이 외국으로 망명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이는, 후에 예명인 레닌(Lenin)으로 더 잘 알려진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Vladimir Ulyanov)였다.젊지만 유약했던 니콜라이(Nicholas) 2세 치하에서 겪었던 러일전쟁(1904-1905)에서의 치욕스러운 패배는, 계속된 사회적 불안을 불러 일으켰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청원하던 군중들에게 군대가 발포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피의 일요일'로 알려진 이 사태는 대규모 파업, 폭동, 지주와 사업가들의 피살로까지 이어졌다. 사회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노동자 연맹, 즉 소비에트(soviet)를 구성했고, 1905 10월의 총체적 파업으로 인해 정부는 무릎을 꿇게 되었다. 짜르는 마침내 굴복하여 러시아 최초의 의회(두마(duma)) 구성을 승인했지만, 의회 내 좌파의 요구를 증오하게 되면서 곧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는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었다

독일인들은 200만 러시아인들의 시체를 넘어 전진했고 엄청난 땅이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군대와 경찰 역시 폭동을 일으켜, 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새로이 소집된 두마는 교육받은 상업 엘리트 대표로 구성된 정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 및 병사들의 소비에트(Soviet)도 구성되어 2중 권력 구조가 이루어졌다. 짜르의 퇴위 요구를 위해 양자는 통합했고, 1917년 3월 1일 짜르 니콜라이는 그들의 요구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 10월 25일 사회민주당의 한 분파(망명 중인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Bolshevik))가 권력을 잡았고 소비에트에 권한을 부여해 지배 의회로 만들었다. 레닌이 영도하고 트로츠키와 그루지야 출의 스탈린이 지지하는 소비에트 정부는 빠른 속도로 개혁을 추진했다. 토지는 그 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재분배되었고 독일과의 휴전조약이 조인되었으며 반대파와 싸우기 위해 비밀 경찰 세력(Cheka)이 구성되었고 트로츠키의 통제하에 붉은 군대가 창설되었다. 


1918년 3월 볼셰비키당은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수도 역시 페트로그라드(Petrograd, 독일풍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새 이름)에서 모스크바로 옮겼다. 전 짜르 및 그 가족의 살해 역시 조직적인 체포, 고문, 처형 사태의 일환이었다. 공산주의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남부와 동부에 거점을 두었고, 그들을 통칭해 백군(the Whites)이라 불렀지만, 백군이 유일하게 기댈 것이라고는 단결뿐이었다. 3년간 지속된 내전 결과 약 150만의 러시아인이 해외로 망명했다.내전은 경제적으로 참혹한 결과를 가져와 1920년에서 21년 사이, 극에 달한 기근으로 400만에서 500만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이 1922년 건국되었고, 1924년 1월 레닌이 사망한 후 그의 후계자인 스탈린(Stalin)에 의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동족 박해의 기록이 세워졌다. 

그는 집단 농장 체제를 도입하여 농민 계급을 몰락시켰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계수단까지 망쳐놓았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저항했고, 수백만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및 중앙 아시아의 수용소로 유배되었다.러시아와 독일간의 불가침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되었으며, 히틀러와 스탈린은 양국 사이에 있는 나라들을 마치 사과 따듯이 정복해나갔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41년 히틀러가 바르바로사(Barbarossa)작전을 실천에 옮겼을 때로, 이로 인해 유혈의 전쟁과 고난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인구 1/6에 해당하는 260만에서 280만 러시아들인이 사망하는 결과를초래했다. 레닌그라드(Leningrad, 이전의 페트로그라드) 전투와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오늘날은 다시 볼고그라드(Volgograd)로 알려져 있음) 전투는 특히 오래 끌고 지겨웠던 전투였다.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상징적으로 중요했던 레닌그라드를 지키기 위해, 소비에트 군 백만명이 희생되었다.2차 대전 이후 소련의, 소위 동유럽 '해방'은 잘못된 명칭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동유럽 대부분 지역에 대해 러시아의 지배권을 확대하는 것은, 세력을 회복하고 세계의 두 강대국 중 하나로 등장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스탈린은 예측할 수 없는, 숙청이라는 예전의 방침을 다시 확립했고 냉전이 진행됨에 따라 서구의 이데올로기 및 영향을 국가 공통의 적으로 만들어버렸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rushchev)가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고 그는 조심스럽게 당에서 스탈린의 영향력을 떨쳐내려고 시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베짱좋게 쿠바(Kuba)를 무장시켰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스탈린을 다시 국가 초석의 자리에 놓은 보수적인 브레즈네프(Brezhnev)와 미 케네디 대통령의 외교 정책(극단 정책)에 의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억압이 가중되는 와중에 반체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는 공산당 엘리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방식에 대한 분노로 더 힘을 얻었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진행되는 중이었고 러시아 공산주의의 가난한 이미지는 소련의 인습 타파주의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ov)에 의해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고르바초프는 정치적, 경제적 개혁(페레스트로이카)에 나섰고 이는 대개방(글라스노스트)이라 불렸다. 그는 1988년, 권력을 공산당에서 신정부로 이양하는 문제를 투표에 붙여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억압이 줄어들자 발트해 공화국들을 비롯한 15개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다. 세력 범위가 줄어들고 경제 위기가 심화되자 고르바초프는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199년 8월의 반동 쿠데타는 그의 지위를 약화시켰고, 결국 보다 급진적인 후계자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권력과 자산은 서서히 소비에트에서 러시아의 손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독립국가연합(Confederation of Independent States, CIS)이 새로운 독립 러시아의 대통령으로 옐친을 내세우며 나타났다. 이후 보수적인 옛 인사들과의 갈등은 다소의 유혈사태와 함께 해결되었고새로운 정치체제가 통과되었다. 

현 상태의 민족주의자 및 공산주의자 집단과 개혁주의 정당 사이에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학관계가 발전했다. 오늘날, 끈덕지고 지저분한 내전이 체크냐(Chechnya)에서 질질 끌고 있는 동안 러시아의 국내 문제는 더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부패한 장교, 사업가, 재정가, 경찰, 철저한 범죄자(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들의 잘못된 거래 관행이 사회 구석구석 모든 계층까지 퍼져 있다. 마약 남용이 늘어나고 있으며 살인률은 미국의 두 배이고, 경제는 폭력단원들에게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상황이 가까운 미래에 아주 좋아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와 성과에 대한 대중의 실망이, 다양한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반영되지는 않았다. 

1996년 중간 선거에서 러시아인들은 어쩔 수 없이 우유부단하고 독재적인(술까지 많이 마시는) 옐친에게 다시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상황은 더 불안정해 보였다. 옐친이 이미 죽었고 현재의 옐친은 진짜와 유령처럼 꼭 닮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엄청나게 나돌았고(내각을 자주 갈아치우는 것은 평소 옐친의 방식 그대로였는데도), 경제는 점점 더 우울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98년 8월 루블은 사실상 변동환율제로 바뀌어 곧 엄청나게 추락했다. 1999년 5월 옐친은 수상 예프게니 프리마코프(Yevgeny Primakov)를 비롯한 내각 전체를 해고했고 하원은 옐친을 탄핵하기 위한 투표를 준비했다.



경제

자유 시장 경제로의 개혁은 러시아에 그다지 우호적인 결과를 불러오지 못했다. 변화의 일보와 고질적인 풍토병인 부패에 대한 의구심 사이의 혼란은 불확실성을 야기시켜, 생산과 투자는 엄청나게 감소하고 말았다. 4000만 가량의 사람들이 빈곤기준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국내 총생산 GDP: US$ 1 6,078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US$ 9,075

연간성장률: -4.0%

인플레이션: 187%

주요 생산품: 석유, 석탄, 철광석, 목재

주요 교역국: 독일, 동유럽



문화

19세기 러시아의 문화 유산은 압도적이며 문학, 건축, 발레, 작곡, 연극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성과를 보였다. 상트 페테르부르그 왕립 발레 학교(St Petersburg Imperial Ballet school),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 바슬라브 니진스키(Vaslav Nijinsky) 같은 무용수와,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 미하일 포킨(Mikhail Fokine) 같은 안무가를 배출했다


1909년 발레 루스(Ballets Ruse)는 파리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광은 키로프(Kirov) 발레단과 모스크바의 볼쇼이(Bolshoy) 발레단으로 돌아갔지만, 일련의 이탈사태로 발레단의 수준이 떨어지기도 했다. 콘서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성과는,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Korsakov),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등 귀에 익은 이름들 덕분에 가능했다. 러시아의 가장 독특한 건축 양식은 양파 모양의 돔이 있는 교회로. 북쪽의 나무 교회가 벽돌과 화려한 타일로 된 건축물로 바뀌면서 나타났다. 미술 쪽에서는 성상, 미래파 작품, 혁신적인 그래픽 아트 등이 러시아적 형태로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시 항상 중요한 예술 형태이자 여가 취미이기도 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Sergey Eisenstein) '전함 포템킨(Battleship Potyomkin)'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에는 혁명시기가 잘 묘사되어 있고, 보다 최근의 경험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상징적 작품들에 나타나 있다. 민속예술은 그루지야 국립 무용단(Georgian State Dance Company)의 씩씩한 발구르기 춤과, 각 지역의 수예품과 목조각, 러시아 인형과 동쪽의 조각 목조 주택으로 대표된다.러시아어는 정부의 공식언어이며 인구의 절반 정도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이다. 중앙 아시아 거주민들은 터키어를 사용하며 이슬람 교도들이다. 공산주의와 종교는 최고의 동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살아남았고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도 점점 세력을 더해가고 있다. 불행히도 유태인들은 비타협적인 반유대주의로 인해 해외이민을 선택해야 했다.


비공식적인 이야기

오랫동안 '양배추, 또 양배추'라는 농담의 표적이 되어온 러시아 요리는, 유명한 비트 뿌리와 양배추 수프 등 여러 종류의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뭉그러진 야채로 둘러싸여 걸쭉한 소스 속에 헤엄치는 지나치게 구워진 고기 덩어리로 이어진다. 대도시에서는 스시, 햄버거, 피자 등 밀려오는 국제요리의 물결 속에 토속 음식이 사라져가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메뉴에 나와있는 것은 다 먹을 수 있는 샐러드바나 샌드위치 가게를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는 서구식의 슈퍼가 많이 있고 그곳에는 외국에서 수입된 식품들도 얼마든지 있다. 크바스(Kvas)는 호밀 빵을 발효시킨 액체로 부드러운 알코올 음료이며 여름에는 청량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술다운 술 보드카는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후추, 과일류, 들소 풀, 사과 잎, 레몬, 생강, 정향 등을 넣어서 마시기도 한다.


축제 및 행사

부활절과 크리스마스에는 한밤중의 행사와 촛불행진, 성대한 민속예술 등이 열린다. 4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국제적인 고전음악 축제인 뮤직 스프링(Music Spring)이 열리고, 6월 말에는 10일 동안 백야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때는 결혼식이 많이 치러지며 모두들 늦은 시간까지 즐긴다. 모스크바에서는 홀수 년도 가을마다 영화제가 열린다. 러시아 겨울 축제(Russian Winter Festival)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모스크바, 노브고로드에서 11월말부터 1월초까지 열리고 여기에는 민속 박람회와 보드카가 빠질 수 없다. 또 다른 겨울 축제로는 새해 첫 날이 있는데 선물과 샴페인, 더 많은 보드카가 축하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비자를 받아야 함

보건위생: 디프테리아, 뇌염, A형 간염, 장티푸스

시간대: 러시아에는 11가지 시간대가 있음, 한국은 모스크바보다 9시간 빠르다.

전압: 220V, 50 Hz

도량형: 미터제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


경비 및 환전

통화 :루블(Rouble)

 

여행경비

저렴한 현지 식사 : US$4

일반 레스토랑에서 식사: US$8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US$15

저렴한 숙소: US$30

중급 호텔 : US$50-75

최고급 호텔: US$100 이상

엄청나게 절약하고, 비행기, 택시, 국제 전화, 괜찮은 레스토랑을 무시하고 가장 저렴한 숙소에서 묵는다면 하루 $30로 여행할 수 있다. 항상 편안한 호텔에 묵고 매일 두 세끼를 레스토랑에서 먹으려면 하루 $85이상은 예상해야 한다. 모스크바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호화로운 호텔의 보송보송한 시트에서 잠들고 싶다면 하루 $350 정도! 가능한 한 다양한 종류로 여행비용을 휴대하는 것이 좋다. 환전하기 제일 편한 것은 미국 달러이다. 위험이 배가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금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위태롭기는 하지만, 여행자수표를 환전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도시에서는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어디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팁을 주어야 하는 곳이 거의 없다.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계산서에 5%에서 15% 정도가 포함되고, 포터들은 짐 하나에 $1 정도를 예상한다. 상점은 정찰제이지만 시장에서는 흥정이 필수.


여행 시기

7,8월은 가장 따뜻한 달이며 많은 이들의 휴가 기간이다. 그렇지만 가장 습기가 많은 달로 하루에도 세 번씩 비가 올 수 있다. 인파와 비를 피하고 싶다면 5-6월이나 9-10월이 좋다. 초가을이면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버섯과 과일을 딸 수도 있다. 겨울에는 모진 추위가 닥치지만, 극장이 문을 열고 보드카가 나오기 시작하며 건물 안은 따뜻하고 내리는 눈은 아름답다. 봄에는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되어서 통상적으로 끔찍하다.



여행 시 주의사항

외국인을 상대로 한 거리 범죄는 러시아 주요 도시의 골칫거리다. 강도들은 지하철, 밤기차, , 공항, 시장, 관광지 등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며 사람이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는 호텔방에도 난입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대도시에서 관광객들은 편집증 환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부주의해서도 안된다. 체첸 공화국(Chechen Republic), 다게스탄(Dagestan), 북 오스티아(North Ossetia), 인구쉐티아(Ingushetia), 카바르다-발카르(Kabarda-Balkar, 엘부르스(Elbrus)지역 포함) 지역 및 그 접경지역은 여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러시아-체첸 전쟁 이후 불안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체크냐(Chechnya)에서 살해된 여행자들도 몇 있지만 여행자들에게 닥치는 가장 큰 위험은 납치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여행지

모스크바 (Moscow)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의 수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아니다. 이따금 알파빌(Alphaville)에서 보면 모스크바는 행정적인 거대도시로 보이고, 기념비적인 빌딩과 넓은 회색 도로가 펼쳐져 있다. 그렇지만 회색 도로를 벗어나면 스탈린 시대 이전의 모스크바가 남아 있으며, 황금빛 양파 모양 돔이 좁고 구불거리는 시내 도로 곳곳에 흩어져 있고, 수많은 아파트의 실내가 들여다보이는 빛나는 창문들도 볼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크렘린(Kremlin)과 붉은 광장(Red Square)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St Petersburg)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풍의 도시로, 궁전 근처의 수로 덕분에 '북쪽의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표트르 대제가 세운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다행히 스탈린주의의 습격을 피했고 짜르 시대의 웅대한 유물들도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다. 핀란드만에 위치해 여러 섬과 구불구불한 네바(Neva) 강을 끼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정돈된 우아함을 갖추고 있어 지리학적으로도 경치가 좋은 곳이지만, 이 곳에서 양파형 돔은 찾아볼 수 없다. 주요 관광지는 에르미타주 국립 박물관(State Hermitage Museum) 표트르와 폴 요새(Peter & Paul Fortress) 네브스키 대로(Nevsky Prospekt) 등이다.



노브고로드 (Novgorod)



9세기에 처음 사람들이 정착했으며, 600년간 러시아의 선구적인 예술, 정치 중심지였던 노브고로드는, 러시아 역사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190km 남쪽에 있는 이 도시는, 이반 3세에 의해 합병되어 이반 뇌제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나찌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치워졌지만 여전히 볼 것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도시의 성채 안에는 비잔틴 양식의 성 소피아(St Sophia)성당과 러시아 천년 기념비(Millennium of Russia Monument), 성상으로 가득찬 패싯실(Chamber of Facets), 연구에 기반한 역사 예술 박물관(Museum of History & Art)등이 있다. 성채 건너편 야로슬라브 코트(Yaroslav's Court) 안에는 중세 시장, 교회, 아케이드, 궁전이 남아 있다. 일리노 구원 교회(Church of Our Saviour-at-Ilino)는 아기자기한 장식과 박공, 내부의 비잔틴 프레스코 벽화로 러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rans-Siberian Railway)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여행하는 것은 광대한 러시아를 눈으로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6일간 9446km를 여행하면, 끝없는 자작나무와 소나무숲, 통나무 오두막집 정착지, 광대한 스텝대초원을 스쳐 지나며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갈 수 있다. 열차 여행은, 함께 여행하는 사람, 가지고 간 소설책, 열차 승무원의 태도(아주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에 따라 여행이 지루할 수도 즐거울 수도 있다. 이 노선은 시베리아의 바이칼(Baikal)호도 지나는데, 이 호수는 벨기에만큼이나 크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 바다표범이 서식하는 곳이다. 복합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이르쿠츠크(Irkutsk)는 이 노선에 있는 도시 중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울란 우데(Ulan Ude)에는 러시아의 불교 중심지 이볼긴스크 다스탄(Ivolginsk Datsan)이 있다. 열차가 정차하고 출발하는 리듬에몸을 맡기고 나무숲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을 지나고 있으면 이 열차여행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볼가 강(The Volga)

3700km의 볼가 강(유럽에서 제일 긴 강이다)은 항상 러시아의 핵심지역을 관통하는 수로였으며, 모스크바 북쪽 야로슬래블(Yaroslavl)에서 볼고그라드까지 굽이치고, 볼고그라드에서 그 지류가 카스피해로 흘러 들어간다. 볼가-돈 선박 운하를 통해 돈 강과 이어지고 아조프(Azov)해로 통한다. 유람선과 기선이 볼가강을 정기적으로 오르내리는데 가장 타 볼 만한 노선은 볼고그라드에서 로스토프온돈(Rostov-on-Don)까지이다. 이 노선으로 여행하면,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타타르 마을에 속하며 석회암 궁전과 많은 모스크가 있는 카잔(Kazan), 레닌의 출생지로 많은 대사건이 일어났던 곳인 울리야노프스크(Ulyanovsk), 이전에는 스탈린그라드라 불렸으며 2차 대전 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 끈 전투가 있었던 장소인 볼고그라드 등을 거칠 수 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 다시 세워진 이 도시에는, 적당히 험상궂은 박물관과 기념비가 늘어나고 있다.



소치(Sochi)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을 배경으로 하는 흑해의 소치 리조트는, 오데사, 얄타와 비슷한 곳이다. 기후가 아열대성이고 바다는 따뜻하며 근처에 복합 리조트 다고미스(Dagomys)가 있음으로 해서 이 리조트는 예전부터 국가 원수, 외국인 여행객, 러시아 본국인들이 모두 좋아하는 장소이다. 이 도시의 특징은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고 치료 시설과, 권력자나 유명인의 다차(dacha, 시골 별장)가 많다는 것이다. 내륙으로 들어오면 폭포, 경치 좋은 언덕, 온천, 높은 산의 전망도 즐길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유명한 태평양 항구이며 해군 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유럽권 러시아의 끝이라 할 수 있다. 2차대전 이전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번영하는 복합문화적 상업 중심지였으나, 1958년에서 1990년까지는 외국인에게 완전히 폐쇄된 도시였다. 그림같은 언덕과 바다의 전망 덕에 블라디보스토크의 풍경은 샌프란시스코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지만,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전함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변은 극동 해양 보호지역(Far East Maritime Reserve)과 우수리 자연 보호지역(Ussuri Nature Reserve)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수리 자연 보호지역에는 흑 곰과 갈색 곰, 시베리아 멧돼지, 우수리 호랑이, 희귀종인 아무르 표범, 수백종의 텃새와 철새가 산다.



무르만스크(Murmansk)



모스크바와 북극 사이의 중간지점, 북극권 200km 북쪽에 있는 무르만스크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다. 주변 모두가 동토이며 12월과 1월 대부분 기간 동안 암흑만이 계속되는 이곳은, 러시아 원자력 쇄빙선의 근거지이며, 자치 거주지로 둘러싸여 있다. 3월 마지막 주에 순록 경주와 스키 마라톤 등의 행사가 열리는 북극 축제(Festival of the North) 기간 동안은 북쪽 섬에서 온 관광객들로 무르만스크가 활기를 띈다.



비보르그(Vyborg)



핀란드 만에 있는 항구로, 헬싱키-상트 페테르부르그 노선의 주요 도시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만의 바위산에는 당당한 중세 성곽이 남아 있다. 이 땅은 주인이 여러번 바뀌었다.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넘겨졌다가 1710년에는 러시아 영토가 되고 1세기 후에는 다시 핀란드 땅이 되었고, 1939년 스탈린이 이 도시를 다시 수복했지만 2차대전 동안 핀란드와 독일의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서 모든 핀란드인을 추방하는 조처가 취해졌다. 오늘날 그 모든 사건을 겪고 남아 있는 건물들을 보면 핀란드의 흔적이 여전하며, 심지어는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아르누보식의 아름다운 건물도 마찬가지이다. 바이보르그는 어부, 조선업자, 목재 운반자 등이 많이 찾는 곳이다.



솔로베츠키 군도(Solovetsky Islands)



최북단의 도시인 켐(Kem)에서 출발하면 백해(White Sea)의 솔로베츠키 군도로 갈 수 있다. 이 군도의 수도원들은 한때 스탈린의 악명높은 굴라그(Gulag) 수용소로 사용되었으며, 중세풍의 솔로베츠키 수도원(Solovetsky Monastery)은 중세 시대부터 투옥과 유형의 장소로 이용되어 왔다. 기후가 현저하게 온화하여 섬 주변을 보트로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고 안전한 여행이 된다. 섬 안의 호수와 내부 수로에서 보트를 타는 것도 좋다.



레저스포츠

러시아에서의 모험 여행은 또 다른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러시아의 많은 도시와 마을마다 있는 모험 여행사에 신청하면 된다. 코카서스나 콜라 반도(Kola Peninsula)에서 트레킹이나 등산을 할 수도 있고 카렐리아(Karelia)의 삼림, , 호수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카약을 탈 수도 있다.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사이를 자전거로 달릴 수도 있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코카서스의 엘브루스 산(Mt Elbrus)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활강 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아니면, 북극으로 느긋한 탐사를 떠날 수도 있다.



러시아로 가는 길

유럽의 모든 주요 도시와 뉴욕, 홍콩, 기타 아시아 여행중심지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가 매일 있다. 많은 유럽 수도에서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오는 비행편도 매일 있다. 유럽권 러시아로 오기 위한 서구의 철도 관문은 헬싱키, 바르샤바, 프라하, 부다페스트이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에서도 베를린과 바르샤바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오는 노선이 매일 운행된다. 베를린에서 옴스크(Omsk)까지 오는 노선도 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도 탈 수 있다. 러시아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터키, 그루지아 사이에는 많지는 않지만 유람선이나 페리도 운행한다.



국내 교통편

아에로플로트(Aeroflot) 항공사는 분해되어 많은 소규모 항공사로 모습을 바꾼 가운데, 사실상, 통제되고 있지 않은 하늘을 지배하면서 세계 최악의 지역 안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비행기로 여행하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예상할 수 없으며 어려운 일이다. 국내선 비행기에 자리를 얻으려고 시도하다 보면 결국은 국제선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국제선 항공사들이 국내선 전용 항공사보다 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럽권 러시아에서는 대규모 철도 체계가 십자형으로 교차되어 퍼져 있고, 이로 인해 기차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저렴하고 편안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당히 오래 걸린다. 철도는 모스크바 시간에 맞추어 운행된다. 유일한 일반적인 예외는 교외 철도 노선으로 이 노선은 지역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러시아버스는 현재, 외국인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작은 마을 사이를 오갈 때 아주 훌륭한 교통 수단이다. 러시아에서 직접 운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유머 감각이 있고, 상당히 울퉁불퉁한 도로 상황, 주유소를 찾기 위한 악전고투, 시시때때로 길을 잃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면 러시아를 돌아보기에 효율적인 수단일 수도 있다.강을 이용하는 수상 교통은 아직도 중요한 교통수단이며, 여름철에는 러시아 국내 장거리여행에 여객선을 타는 것도 가능하다. 주요 여객선은,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모스크바와 볼가 강 및 돈 강의 주요 거점(야로슬래블(Yaroslavl), 니즈니 노브고로드(Nizhny Novgorod), 볼고그라드(Volgograd), 아스트라칸(Astrakhan), 로스토프온돈(Rostov-on-Don))사이를 운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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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여행] 덴마크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덴마크(Denmark)

안락하고 고도로 컴퓨터화된 스칸디나비아의 문명사회에 약간의 시기심을 느끼며, 바이킹의 후예덴마크인은 바이킹의 뿔을 깎아내면서 더 문명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선, 가장 조심스럽게 EU 회원국이 된 덴마크는, 레고의 발명으로 두각을 나타내었고, 급부상한 재능 있는 축구선수들과 1996년 자전거 경주(뚜르 드 프랑스배Tour de France)에서 우승한 노란 털스웨터의 비야르네 리즈(Bjarne Riis) 등 다방면으로 확고한 덴마크의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덴마크의 인지도는 뭐니뭐니해도 전 세계사람들을 매료시킨 데니쉬 페이스트리가 아닐까.덴마크의 수도이자 장난감의 도시 코펜하겐이 아무래도 가장 발길을 끌어당기는 곳이다. 항상 말끔하게 면제품은 세탁되어있고, 단정하지 않게 대충 입어도 최신 유행의 옷차림 못지 않게 멋있으며, 옌센 (Jensens), 한센 (Hansens), 닐센 (Neilsens)같은 이름들이 덴마크의 인상이다. 스칸디나비아국가들 중 은행파산이 가장 적은 덴마크의 위상은, 항상 즐거운 축제로 가득한 섬에서 신나게 즐긴 여행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편지와 따뜻하게 악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통계 자료

국명: 덴마크 왕국(The Kingdom of Denmark)

면적: 42,930평방미터

인구: 520

수도: 코펜하켄(인구 140)

인종: 97% 덴마크인, 3% 외국인

언어: 덴마크어,영어, 독일어가 보편화

종교: 루터교

정체: 입헌군주제



지리, 지도 및 기후



덴마크는 작은 나라로서, 그 국토의 대부분은 유틀란드반도(Jutland)에 위치하고 있다. 유틀란드반도 남쪽에 접해있는 독일은 덴마크에 유일하게 연결된 유럽대륙 국가이다. 덴마크는 서쪽으로 북해, 동쪽으로 발틱해와 접해 있다. 북으로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부터 덴마크를 구분지어주는 스카게락(Skagerrak)해협과 카테가트 (Kattegat) 해협이 있다. 또 섬 밀집국인 덴마크에는 500개 가량의 섬들이 있느데, 그 중 100여개의 섬에만 사람이 거주한다. 코펜하겐은, 메인랜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장 큰 섬 지일란드(Zealand)에 있다. 덴마크는 대부분이 비옥한 농지인 저지대, 구릉지, 너도밤나무와 히쯔(관목)로 덮힌 황무지이다. 이 나라에는 산이라고는 없는데, 최고의 고지는 유틀란드 호수지방의 이딩 스코브헤(Yding Skovh j)로 이 곳도 해발 173m가 채 못 된다. 수세기 동안에 걸친 산림벌채와 지나친 방목으로 덴마크의 자연환경은 황폐화되었었다. 전 농토의 약 20%에 해당하는 지역이 해면과 높이가 비슷해 그 대부분이 환경학적으로 골치 아픈 습지대에 있어 펌프로 물을 빼내고 개간하였다. 자연은 지나치게 변형되어 덴마크 본래의 천연경관이 그대로 보존되 있는 곳이라고는 없다. 국토의 약 12%가 수목으로 덮여 있으나 원시림은 거의 없다. 삼림은 대부분이 너도밤나무와 오크로 덮인 낙엽수 지대이다. 이 외 느릅나무, 개암, 단풍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사시나무, 라임수, 밤나무 등이 있다. . 가장 큰 야생동물은 무게가 200킬로가 넘는 고라니(red deer)종이다. 그밖에 노루, 담황색에 흰 반점이 있는 사슴(fallow deer), 산토끼, 여우, 다람쥐, 고슴도치, 오소리 등이 있다 덴마크에는 거의 400여종에 달하는 조류가 있다. 그 중, 까치류, 비둘기류, 큰물닭, 거위, 오리 등이 가장 흔하다. 덴마크에서 가장 크며 끝없이 넓은 삼림지대인 롤드 스코브(Rold Skov) 77 평방미터의 공유림으로 그 안에 덴마크 유일의 국립공원인 레빌드 박케르( Rebild Bakker.)가 있다. 상당히 높은 위도를 감안한다면 기후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편이다. 덴마크에서 비와 회색빛 하늘을 기대하는 것이 덜 실망스럽지만, 햇빛이 갑자기 나타나는 날에는 놀랄 만큼 쾌적한 날씨에 기분이 배가한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는 5월부터 8월로 섭씨 25도 정도의 기온을 오르내리며 낮시간이 거의 18시간 지속된다. 1월과 2월이 가장 추워서 낮 평균기온이 0도에 머물지만 이는 같은 위도상의 다른 지역보다 약 10도 가량 높은 것이다.




역사

후기 빙하기에 유목사냥민들이 순록을 앞세우고 덴마크로 들어왔다. 순록떼는 '북으로 가라'는 소리를 듣고 돌아갔지만 구석기시대 덴마크인들은 그대로 정착을 해, 화전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외양간에 울타리를 치고 수직으로 시체를 묻고 생활하였다. 제조기술은 기원전 18세기부터 청동기시대에 걸쳐 크게 발전하였고, 교역은 남쪽으로 항로를 따라 멀리 확대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덴마크생산품은 제물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소택지에 묻혔다. 기원전 500년에 철기가 들어와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대단위 농경사회로 발전하게 된다. 오늘날 덴마크의 언어와 문화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서기 500년 스웨덴에서 남으로 이동해온 부족이 덴마크인으로 정착했던 시기로 거슬러 가야한다.덴마크왕조는 하르데곤의 아들, 고름(Gorm) 10세기 초 자신의 영토를 설정했던 때를 기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임을 주장한다. 고름의 아들 하랄드 블루투스(Harald Bluetooth)는 덴마크인을 완전히 정복시킨 후, 서둘러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블루투스의 뛰어난 후계자들, 포르크베아르드(Forkbeard)와 그 자손들은 영국에서 목재를 가져와 상점을 세워, 영국계 덴마크왕조로 태평세월을 보냈다. 반세기를 함께 잘 지냈지만 바이킹의 위세가 기울자 덴마크왕국의 국경은 현재 덴마크 땅으로 축소된다.반전, 암살 등으로 점철된 중세기를 지내고, 14세기 후반부 급부상한 왕조들 간의 상호결혼 결과 현명했던 마그레테여왕(Queen Magrethe)의 주재로 칼마르동맹(Kalmar Union)을 맺는다. 그러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모두는 같은 배를 탔지만 서로에게 분노하기 시작한다.스웨덴은 전쟁으로 낭비가 심했던 덴마크에 대해 특히 불만이 컸고, 마침내 동맹은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가 스웨덴의 왕으로 추대된 1523년 깨어진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그 후 3세기를 더 덴마크의 지배하에 남아있어야 했다.16세기에 종교개혁이 온 나라를 휩쓸어 교회는 불타고 그 결과로 시민전쟁이 초래한다. 투쟁은 1536년 카톨릭 교회의 몰락으로 종결되고 왕실을 이끄는 덴마크 루터교파가 설립된다. 크리스티안 4 (Christian IV), 17세기전반 50년을 통치하는 동안 스웨덴과의 참혹한 전쟁 속에 그의 백성들을 몰아 넣음으로써 엄청난 교역과 부를 손실했다. 덴마크는 부와 영토를, 왕은 눈 하나를 상실했다. 더한 불행은 수 십 년 뒤, 크리스티안의 계승자 프레데릭 3(Frederick III.)가 초래한 스웨덴과의 전쟁 패배였다. 그 후 덴마크는 서서히 이런 전쟁에서 벗어나 국민의 발전과 개혁에 힘쓰게 되었다.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이 코펜하겐을 두 번 침공하는데, 1801년에 덴마크함대에 큰 손실을 가했고 1807년에는 코펜하겐의 많은 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스웨덴인들은 덴마크가 쇠약해진 틈을 타 그들에게 노르웨이 양도를 요구한다. 19세기는 불운과 몰락이 시작되었던 시기로 자아가 강했던, 키 작은 한 프랑스인(나폴레옹)의 지배를 받던 때였다. 그러나 1830년대까지 덴마크는 예술, 철학, 문학 등을 통한 문화혁명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의 결과, 덴마크는 1849 6 5일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덴마크와 독일 모두의 전통을 세습한 유틀란드 남부의 슐레스비히(Schleswig)주민들이 새 헌법에 저항한 후, 독일이 슐레스비히를 지배한다.덴마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을 지켰고 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중립을 재선언한다. 하지만 1940 49일 독일전투기가 코펜하겐을 침공하자 덴마크는 항복하고 만다. 덴마크는 자치권을 고수할 능력이 없었고, 3년 후 독일은 본색을 드러내어 철저히 통제한다. 소비에트의 공격으로 보른홀름섬(Bornholm)이 심하게 폭격을 입었지만 나머지 덴마크 땅은 2차대전 시 그다지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정당 주도하에 포괄적인 사회복지 국가로 정립된다. 덴마크는 여전히 국민에게 폭넓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C(현재는 EU)가입을 1973년 투표로 정하기는 했지만, 덴마크인들은 EU 확대의지지를 망설여왔다. 실제로, 유럽경제 및 정치협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던 마스트리트조약의 비준을 묻는 국민투표가 1992 6월 실시되었다. 유권자들은 51% 49%로 아슬아슬하게 비준을 반대했다. 마스트리트조약이 정한 공동방어와 단일통화의 규약에서 면제를 받고나서야, 1993 5월 실시된 2차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조약을 허용하게 된다. 많은 덴마크인들이, 강대국에 의해 지배되는 유럽관료주의가 지역적 통제를 할 때 입게 되는 손실을 우려하기때문에 EU에 대한 덴마크의 지지도는 열의 없이 지속되고 있다. 19세기초 노르웨이가 덴마크와의 정치적 협력을 깼을 때, 노르웨이 식민지였던 아이슬란드, 그린랜드와 파로섬이 덴마크의 행정관할로 남게 되었다. 1380년부터 덴마크의 지배하에 있었던 아이슬란드의 외교정책은 여전히 코펜하겐의 통제를 받지만, 1918년 독립국가임을 선언한다. 그린랜드와 파로섬은 덴마크왕국에 속해있긴 하지만, 둘 다 원칙적으로 자치구이다. 파로섬은 1948년 이래로, 그린랜드는 1979년 이래로 지방자치제가 되었다. 덴마크가 은행, 국방, 외교관계 등의 책임을 유지하고, 그린랜드와 파로는 각각 두 명씩 국회대표자를 덴마크국회에 두고 있다. 그러나 덴마크와는 달리 둘 다 EU 회원국은 아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3,426

1인당 국내 총생산 GNP : US$ 57,261

연성장률: 1.4%

인플레이션: 2.9%

주요생산품: 농산품 ,생선, 맥주 ,가전제품, 가구 등

주요 교역국: 독일, 스웨덴, 영국, 미국



문화

덴마크어는 게르만어족 중 북방어족에 속하며 다른 스칸디나비아어와 크게 유사하다. 유명한 덴마크작가들로는 그의 동화가 성경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근대실존철학의 선구자로서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S ren Kierkegaard),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바베테의 만찬(Babette's Feast), Peter H eg, of Miss Smilla's Feeling for Snow fame, 등을 쓴 가장 탁월한 덴마크의 현대작가 카렌 브릭슨(Karen Blixen) 등이 있다.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덴마크 영화감독은 칼 드레이어(Carl Dreyer (1889-1968))이다. 드레이어는 다채로운 시각적 구성과 혁신적인 글로즈업 기법으로 인정받았던 1928년의 수작 '쟌다르크의 정열(La Passion de Jeanne d'Arc)'을 포함해 수많은 영화를 감독했다. 그 후로, 걸작 바베테의 만찬과 덴마크작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Martin Andersen Nex )의 책을 각색한 정복자 펠레(Pelle the Conqueror)를 통해 덴마크영화가 각광을 받게된다. 덴마크의 위대한 작곡가 칼 닐센(Carl Nielsen)은 현악4중주에서 오페라에 이르는 100 여곡을 썼고, 아름다운 합창곡 푸넨에서의 봄(Springtime in Funen)을 작사하기도 했다.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20세기 최고의 것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6개의 교향곡 중 제 4 Inextinguishable과 자극적으로 북을 치는 제5번이 가장 유명하다. 코펜하겐의 왕립극장에서는 덴마크 로얄발레단이 가을부터 봄까지 공연하는데 북유럽 최고로 평가받는다. 또한 덴마크는 디자인산업의 선두자로서 간결하고 산뜻한 선으로 표현된 스타일을 건축, 가구, 은제품 등 모든 것에응용하였다.완전한 현대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덴마크인은, 그래서 민속의상 착용, 전통적인 축제, 고전적 의상에 집착하는 것이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덜하다.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덴마크인들이 다른 생활양식에 대해 극단적이거나 묵인하기보다는 여유있고 융통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예로, 1989년 덴마크는 동성결혼을 법으로 인정하고 이성부부와 같은 파트너쉽을 게이에게 부여하는 최초의 유럽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덴마크어 'hygge' '편하고 안락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느데, 아마도 이보다 더 덴마크의 인생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을 것 같다. 이 말은 따뜻한 내부의 분위기를 얻기 위해 외부 세계의 소란과 혼란, 갈등을 몰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집을 설계하는 것에서부터 작은 카페나 펍(선술집)의 선호도에까지 덴마크인들이 생활,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덴마크인들은 즐거운 저녁초대를 한 주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 이상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 덴마크의 음식은 스뫼르브뢰드(sm rrebr d; 버터를 바른 빵)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데 빵 위쪽을 덮지 않은 오픈 샌드위치로서, 단순한 형태로부터 정성들여 장식한 것까지 다양하다. 덴마크음식은 주로 생선, 고기, 감자가 기본이다. 전형적인 요리로는 플래스케스테그(fl skesteg; 바삭하게 구운 돼지고기), 그라바드 락스(gravad laks; 딜이라는 향료에절여간한 연어로 단겨자와 곁들여 먹는다), 히비드랍스코브(hvid labskovs; 네모로 자른 고기, 월계수잎, 후추 등으로 만든 스튜)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데니쉬 페스추리'는 덴마크에서는 비엔나브뢰드로 불리며, 군침나오게 빵을 전시해 놓은 제과점이 두 집 건너 하나씩은 있다. 덴마크맥주 칼르스베리(Carlsberg)와 투보리맥주(Tuborg)는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가장 인기 있는 주류는 알보리산(Aalborg)의 독주(aqua vitae의 뜻) 아쿠아비트이고, 맥주, 와인, 그 밖의 주류는 대부분 레스토랑에서 주문할 수 있다.



축제 및 행사

덴마크의 주요 행사는 쉬지 않고 이어지는 수많은 음악축제로 재즈, , 가스펠, 아이리쉬, 클래식,컨추리, 케이줜 등을 총망라한다. 6월말 하지 전야제를 알리는 불꽃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인기있는 축제가 시작된다. 예를 들면 북유럽의 가장 큰 록음악 축제로 6월말이나 7월초 열리는 로실드 축제 (Roskilde Festival), 7월에는 국제적인 록, , 월드, 포크, 재즈음악인이 모이는 링에(Ringe)의 미드핀 축제(Midtfyns Festival), 7월초 10일간 열리는 세계주요 재즈축제 중 하나인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발,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 2주 동안 실내악과 클래식 협연이 특색인 코펜하겐 여름음악축제(Copenhagen Summer Festival), 북유럽 최대의 민속축제로 8월말에 열리는 턴더축제(T nder Festival) 등이 있다. 9월 첫째 토요일에 시작하여 10일간 열리는 오르후스축제( rhus Festival)는 수많은 덴마크인과 외국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음악과 연극공연으로서 시 전체를 끊임없는 환상의 세계로 만든다. 이 곳에서, 중세의 어릿광대들, 마상 창시합, 활쏘기 시합 ,바이킹식 배, 전통음식과 음료, 흥겨운 떠들썩함이 있는 바이킹 페스티발을 같이 볼 수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시간대: 한국이 덴마크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220볼트, 50-60헤르츠

도량형: 미터제를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



경비 및 환전

통화 : 크로네(Krone (Nkr))


일반경비

저렴한 숙박지 : US$40-60

중급호텔 : US$75-125

최고급 호텔 : US$200-300

저렴한 현지식사 : US$8-10

레스토랑에서 식사 : US$15-25

최고급 레스토랑식사 : US$30 이상

스칸디나비아국가를 제외한 다른 유럽국에 비해 덴마크의 물가는 확실히 비싸다. 호텔부터 상점의 모든 상품가격에 포함된 25% 세금은 의무적이다. 여행비용은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EK라 다르지만, 저렴한 여행도 가능하다.덴마크의 광범위한 캠핑장이나 호스텔 망을 잘 이용하고 식사를 해 먹는다면, 아마도 하루 30달러정도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중급호텔에 묵고 적당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하루 US$65-75정도를 예상할 수 있다. 자동차대여는 비싸기 때문에, 원하면 독일에서 3분의 1가격으로 빌려 국경을 넘어 오는 것도 좋다.어떤 종류의 여행자수표든지 주요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지만, 수수료가 상당히 비싸므로 필요한 돈을 한번에 바꾸는 것이 최선이다. 우체국에서도 환전이 되며 토요일 오전까지 열어 편리하다. 대부분의 주요은행은 자동현금지급기가 있어 신용카드로 현금지급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코펜하겐에는 24시간 이용 가능한 환전기가 있다.레스토랑 계산서와 택시비에는 봉사료가 포함되어 있다. 써비스가 좋을 때 계산을 반올림 처리하는 경우는 있지만 팁은 불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가격흥정은 하지 않는다.

 

여행 시기

북위를 고려하면 덴마크의 기후는 일 년 내내 상당히 온화한 편이다. 하지만 낮이 짧고 추운 겨울은 가장 피하고 싶은 계절일 것이다. 따라서 많은 여행목적지는 날씨가 따뜻해지고 낮시간이 길어지는 4월말이 되어야 활기를 찾고 10월이 되면 다시 수면기가 된다. 5월과 6월은 여행하기에 최적기로, 대지는 꽃들로 덮이고, 날씨는 쾌적하며, 많은 여행객들 을 헤치고 다니게 될 것이다. 가을 역시 여행하기에 좋지만, 시골 풍경이 대부분 갈색으로 바뀌고, 들판에서 수확하고 남은 곡식 찌꺼기를 태운 매연으로 여름처럼 상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여행객이 많은 시기는 7월과 8월이다. 야외공연과 거리예술을 많이 볼 수 있고, 해변에서의 일광욕을 즐길 수도 있다. 한 여름철 관광객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는, 박물관의 연장시간과 더 많은 관광거리이다. 8월 하순은 여전히 여름날씨이지만 혼잡하지 않아 여행하기에 특히 좋다.



주요 여행지

코펜하겐 (Copenhagen)



인구 150만의 코펜하겐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제일 크고 활기 찬 도시이다

6층 건물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구역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매력적인 도시이며 전반적으로 저층건물들이 많다. 전망을 해치며 우뚝 솟아있는 현대식 호텔들과 더불어 교회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도시의 주요한 역사적, 문화적 지역은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공원, 정원 ,분수, 광장은 시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 범국제도시인 코펜하겐은 많은 관광명소와 오락거리로 가득하다. 음악애호가들,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며 노는 사람들을 위해 이른 새벽까지 활기찬 밤풍경이 이어진다

중앙역 서쪽은 주요 호텔지역이고 동쪽은 티볼리 놀이공원이다. 티볼리공원의 북쪽 코너 반대편에는 중앙광장과 주요 버스정류장이 있는 시청광장(R dhuspladsen)이 있다. 버스는 시 남쪽 9km 거리의 공항과, 중앙역, 시청광장(R dhuspladsen)을 연결한다

Str get는 세계에서 가장 긴 보행자 전용 상점거리로 시 중심가를 지나 R dhuspladsen과 다채로운 Nyhavn 운하거리의 주요 광장인 Kongens Nytorv 사이를 잇는다운하 바로 북쪽의 아말리엔보리 궁전은 1794년이래 왕족의 주거지로, 여왕이 거처할 때는 화려한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의 이 궁은, 거의 비슷한 4채의 궁전건물이 중앙에 자갈이 깔린 광장과 말 탄 프레데릭 5(King Frederik V)의 거대한 조각상을 둘러싸고 있다. 한쪽 날개부분은 1863-1947년 동안 3대에 걸친 왕가의 방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개방되어왔다


꼭 둘러봐야 할 교회로는 베르텔 토르발젠(Bertel Thorvaldsen)의 보르 프루에 교회(Vor Frue Kirke)로 예수와 제자들 조각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티안스하운(Christianshavn)에 있는 보르 프레슬러 교회(Vor Freslers Kirke)는 정교한 바로크양식의 제단과 세밀하게 조각된 파이프오르간이 인상적이다. 95m의 나선형 교회탑에 오르면 시 전체의 장관을 볼 수 있는데, 현기증 나게 400계단을 오른 후, 다시 점점 좁아지는 마지막 160 계단을 올라야한다

Ny Carlesberg Glyptotek을 포함한 코펜하겐의 박물관들은 그리스, 이집트, 로마시대 의 탁월한 예술품과 조각품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박물관(Nationalmuseet)은 전기구석기시대부터 1840년대까지 걸친 방대한 덴마크의 역사적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가벼운 기분전환을 하고싶다면 중심가에 있는 백 년 된 놀이공원 티볼리로 가보자. 1843년에 생긴 이 놀이공원은 끔찍하게 비싸지만 매우 즐겁고 다채롭다. 이 곳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사격장에 가 보거나, 무언극 등의 공연을 즐기거나, 아니면 그냥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재미있다. 물론, 시내를 산책하거나 페리를 타고 10분 거리 부둣가에 있는, 유명한 시의 상징 인어동상 을 보지 않고 코펜하겐 관광을 마칠 수는 없다


대부분 저렴한 호텔은 중앙역 서쪽에 위치한다. 오랜 기간 선원들과 작가들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포함) 자주 찾던 Nyhavn, 지금은 최신 유행 노천카페와 삼각형 지붕으로 재건축된 옛 시내건물들이 자리잡고 있고, 일부는 퇴락하고 일부는 고급주택화로 변해버렸다.

Nyhavn거리는 점심식사나 오후에 맥주한잔하기에 좋은 분위기이다. 근처의 Str get거리는 싼 먹거리가 풍부하지만 대부분은 버거나 핫도그류이다. Str get거리 북쪽 라틴지역에는 좋은 레스토랑들이 있다. 또 이 곳은 마냥 돌아다니며 거리 행위예술을 구경하거나 라이브음악을 듣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시내 중심가 북쪽 N rrebro 근처에는 젊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훌륭한 밴드 클럽들이 많다. 또한 크리스티안하운에는 종종 good'n'smoky 재즈 모임이 있다.



오르후스 (Arhus)


유틀란드의 문화중심인 오르후스는 활기넘치는 대학도시로, 교향악 공연과 극장에서부터 밤새도록 흥청거리는 카페에 이르기까지 덴마크에서 손꼽히는 음악과 유흥의 도시이다. 가장 가 볼만한 곳은 덴마크 전역에서 옮겨와 수리한 75채의 건물로 옛 시골마을을 재현한 옥외박물관, 민속촌 감레비(Den Gamle By)이다. 대부분 건물들은 17세기와 18세기에 반목재로 지어진 것이고, 물방아, 풍차, 세기초(19세기) 건물들이 몇 개 있다.오르후스 대성당(Domkirke) 12세기 것으로, 정통 로마네스크양식의 예배당과 함께 있는 덴마크에서 제일 큰 성당이다. 성당의 나머지 부분은 15세기 고딕양식이다. 1060년에 세워진 보르 프루에 교회(Vor Frue Kirke)는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가장 놀랄만한 전시물은, 1952년 근교 소택지에서 잘 보존된 상태로 발견된 2000년된 그라우발레(Grauballe )인 시체이다. 오르후스는 유틀란드반도 동부해안에 위치하며, 비행기, 버스 기차로 쉽게 갈 수 있다.



리베 (Ribe)




리베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 된 마을이다. 하지만 최근 발굴에서 기원전 700년에 이미 시장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다수의 은화가 발견되었다. 스웨덴과의 끊임없는 전쟁은 지역 상업을 억압하여 그 결과, 중요한 중세 무역중심지였던 리베의 쇠퇴를 가져왔다. 현대화를 방해한 리베의 경제적 쇠퇴는 오히려 이 지역의 장점이 되어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구불구불하고 자갈이 깔린 도로, 16세기 반목재양식의 집 등을 보는 리베관광은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으로 발을 들여 놓는 것과 같다. 마을의 가장 뚜렷한 상징인 리베대성당은 마치 리베의 중요한 과거를 잘 증명하듯이 우뚝 서있다. 이 지방의 전경을 잘 보려면, 높이 27m 14세기 성당첨탑에 올라가 보자. 리베 비킹어(Ribes Vikinger)는 리베의 바이킹과 중세역사 관련물을 전시하는 대단히 큰 박물관이다. 한 전시실은 물을 가득 실은 바이킹배와 함께 기원 800년경의 시장을 재현하고 있고, 옛날 무역로를 따른 바이킹배의 항로를 보여주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도 있다. 마을 중심부 남쪽으로는, 34m나 되는 피르카트양식의 긴 가옥을 포함하여 다양한 재건축물로 바이킹시대의 리베를 재현한 바이킹센터가 있다. 리베는 남부 유틀란드에 있으며, 기차로 에스비야(Esbjerg)에서 40, 퇸데르( T nder)에서 50분 걸린다.



묀스 클린트 (M ns Klint)




덴마크에서 가장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며 장관을 이루는 백악절벽이 해발 128m높이로 솟아있다. 절벽에서 해변으로 걸어 내려가 다시 그대로 약 30분 되돌아 올라오거나, 어느 방향로든 해변을 따라 약 한 시간 반 가량 힘들게 걸으면, 바람에 울퉁붙퉁해진 울창한 너도밤나무 숲을 지나 되돌아 올 수 있다묀스 클린트는 지일란드남부의 묀섬에 있으며,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버스편이 매시간마다 있다.



에게스코브성 (Egeskov Castle)




성곽주변의 해자와 그 위의 적교로 이루어진 에게스코브성은 1554년에 세워진 르네상스시대의 보석이다. '작은 호수 가운데 오크숲'이라는 뜻인 에게스코브는 곧게 뻗은 수 천그루의 오크 기둥 위에 기초를 세웠다. 성곽주위에 광활한 15헥타르 공원은 17세기 중엽에 설계되었으며 한 세기를 묵은 관목 울타리,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공작, 기하학적 장식 무늬로 가지를 친 영국식 정원 등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골동가구, 전성시대의 그림들, 많은 사냥전리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미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3미터 높이의 죽순으로 이루어진 200년 된 미로를 걸어 보라. 지하에는 300여대의 다양한 시대 자동차가 전시된 골동자동차박물관이 있다. 오덴세(Odense)남쪽, 푸넨섬에 있는 에게스코브는 자동차나 기차로 갈 수 있다.



레고랜드 (Legoland)



유틀란드의 작은 도시 빌룬드에서 북쪽 1km에 있는 레고랜드는, 4200만개의 플라스틱 레고블럭으로 만들어진 10헥타르의 테마공원으로, 어린 시절 (걸리버여행기의) 거인이나 소인에 공포심을 가졌던 사람에게는 추천할 만하지 않다. 코펜하겐 외의 관광지로서는 덴마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가장 정교한 조형물은 전기로 작동되는 배가 있는 코펜하겐항구 전시물인데, 300만개의 블록이 사용됐다. 레고랜드의 명성은 빌룬드를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바쁜 공항으로 만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레고랜드는 빌룬드에서 혹은 베야레(Vejle)에서 버스로 갈 수 있다. 베야레에는 기차편도 자주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크리스티안스 섬 (Christians)

크리스티안스섬은 보른홀름(Bornholm)에서 북동쪽, 배로 약 1시간거리에 있는 아름답게 잘 보존된 17세기 요새이다. 섬 전체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 있으며 자동차, 현대건물, 고양이, 개 등도 없다. 에르톨멘(Ertholmene)이라 불리는 작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섬 중 하나인 크리스티안스섬(인구 140)은 작은 자매섬,프레데릭쇠섬(Frederiks )과 인도교로 연결되어있다. 크리스티안스섬 북서쪽에 있는 그래스홀름(Gr sholm)은 야생조류의 피난처로서 제비갈매기, 바다오리, 여러 바다새들의 중요한 부화장소이다

1684년에 세워진, 크리스티안스섬의 대형탑(Store T rn) 25m지름으로 된 인상적인 구조물이다. 100년 된 탑등대에서 360도로 섬전체의 장엄함을 조망할 수 있다. 프레데릭쇠섬의 1685년에 세워진 작은 탑(Lille T rn)은 지역 역사박물관이다. 1층에는 어구, 수제 연장, 철제품이 전시되 있고, 위층에는 대포, 가구류, 모형, 지방의 동식물 등이 전시되어있다. 미풍이 부는 날, 돌로 된 요새와 섬주위를 따라 가거나 배치된 포대를 따라 산책하면 안성마춤이다. 둥지를 튼 바다새들의 섬과 크리스티안스섬 동쪽에 호젓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만이 있다. 보른홀름에서 크리스티안스섬까지 5월에서 9월 사이 보트가 운행되며, 우편배달선은 1년 내내 있다.


에뢰 섬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에뢰 섬은 작은 마을들, 구릉지, 다양한 모습의 농가 등이 있는 목가적인 섬이다. 자전거로, 시골길을 따라 산재한 초가집, 오래 된 풍차방아간, 고대 묘지와 고인돌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1600년대 후반에 번성했던 상업도시, 애러셔빙 ( r sk bing)은 완벽하게 잘 보존되어있다. 섬의 좁은 자갈길을 산책하면서, 17-18세기의 수공으로 만들어진 창문, 멋있는 장식의 현관, 길가 정원의 키 큰 꽃 등으로 우아하게 꾸며진 반목재 집들을 감상해보자. 마을의 성격처럼 경치는 수수하다. 제일 큰 볼거리는 박물관 플라스케스킵스삼링엔 (Flaskeskibssamlingen)인데, 이 지역출신 선원으로 Bottle Peter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수공으로 제작된 병 안에 1700대의 배를 만들었던 피터 야콥센(Peter Jacobsen)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푸넨과 파아보리 (Faaborg) 에서 에뢰섬의 서쪽 끝 쇠비 (S by) 까지 가는 카페리가 매일 있고, 유틀란드의 몬마크(Monmark)에서 쇠비까지 가는 페리도 종종 있다. 에뢰섬 중앙의 에뢰셔빙까지는 스벤보리 (Svendborg)에서 페리가 있다. 루드쇠빙 (Rudk bing)에서 애뢰섬 동부의 마르스탈 (Marstal)까지 페리가 있으며, 북부 독일 키일 (Kiel) 에서도 페리가 있다.



스카겐(Skagen)




수세기 동안 어업항구였던 스카겐은, 히스와 구릉이 있는 밝은 지대로, 18세기 중엽 예술가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최근에는 도시인들이 선호하는 여름휴가지가 되었다. 마을 중심에서 도보로 15분만 가면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해변과 모래사장을 볼 수 있다. 스카겐박물관에는 1830년에서 1930년 사이에 빛을 그리기 위해 이 곳을 찾은 화가들의 (Kr yer, Michael & Anna Ancher)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스카겐 동북쪽 3km거리에 있는 그레넨(Grenen)의 길게 커브진 모래사장이 덴마크의 최북단이다. 해안으로 가는 길은 장미가 덮인 모래언덕으로, 그 정상부에는 시인 홀거 드라크만의 묘지(Holger Drachmann (1846-1908))가 있다. '묻혀진 교회'라는 뜻의 틸스산데교회(Tilsandede Kirke)는 흰도료를 칠한 중세풍 탑으로 주변마을과 농가가 묻힌 모래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다. 이 교회는 한때 덴마크에서 제일 큰 교회였으나, 1795년 바람에 밀려 쌓인 모래가 출입구를 막아버려 폐쇄되었다. 결국 1810년 완전히 무너졌지만, 여전히 교회탑은 항해의 표식으로 기능하도록 남아있다. 스카겐은 유틀란드 북쪽 끝에 있으며, 기차나 버스로 갈 수 있다.



레저스포츠

덴마크는 자전거가 생활화된 나라로 긍지가 높다. 10개의 장거리코스를 포함하여, 수천km의 자전거전용도로가 전국에 거미줄같이 얽혀있다. 체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사람은, 보른홀름 주위의 100km 단거리 코스와 독일 국경에서 스카겐까지 서부 유틀란드를 달리는 장거리코스를 시도해보도록. 코펜하겐지역의 인기 있는 자전거길은 뒤레하벤(Dyrehaven)까지의 12km 도로인데, 대부분 외레순드( resund) 해안을 따라가지만 쾌적한 숲속길을 빠르게 달리는 길도 있다. 보른홀름 남부해안에서 유틀란드 북쪽끝까지, 모래사장을 따라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전국에 걸쳐 많이 있다. 윈드서핑(덴마크사람들은 서핑이라 부름)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많아, 프로들이 좋아하는 바다는 물론 초보자에게 적당한 내륙의 피요르드해안과 물결이 세지 않은 해안만 등이 다양하게 있다. 7300km에 달하는 해안과 수 백 개의 섬들은 요트를 즐기기에 최적이다. 지일란드와 롤란드사이의 스모란드하벳(Sm landshavet)뿐 아니라, 푸넨 남쪽, 섬들이 산재한 곳에 조용한 피요르드해안이나 만지역이 많다. 덴마크의 시내와 호수에는 곤들메기, 농어, 송어 등이 풍부하다. 바다낚시는 거의 어디서나 할 수 있고 가장 흔한 물고기는 대구, 고등어, 가자미, 바다송어 등이다.



덴마크로 가는 길

덴마크행 국제 항공기는 대부분 코펜하겐 국제공항에 도착하나, 다른 스칸디나비아 나라나 영국에서 오는 항공기 중에는 오르후스,나 알보리, 에스베야, 빌룬드로 오는 것도 있다. 독일과 유틀란드반도 사이에는 기차와 버스편이 매일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 페리를 타고 덴마크로 올 수도 있다. 다른 배편으로는 독일 키일과 쉴트(Sylt)지역 도서, 아이슬란드 세이인스피요뉴(Sey isfj r ur), 노르웨이 오슬로나 라르빅(Larvik), 스웨덴의 헬싱보리(Helsingborg)와 림함 (Limhamm), 말뫼 (Malm ), 폴란드의 스위노첵 (Swinoujscie), 영국 하위치 (Harwich)와 뉴캐슬(Newcastle)등지에서 오는 것이 있는데, 성수기에는 매일 있고, 쇄빙선의 경우는 매주 있다. 덴마크를 떠날 때 출국세는 없다.



국내 교통편

주요 도시간 국내 항공편은 편리하며, 운이 좋으면 대폭 할인된 요금의 비행기표도 구할 수 잇다. 대부분 지역에 시외버스가 있고, 그 중 대다수가 기차 편과 연계되도록 시간이 짜여있다. 덴마크의 철도는 신뢰할 만하고, 요금도 적절하며 편수도 많다. 덴마크의 자동차는 우측주행이며, 안전벨트사용은 의무이고, 비상 삼각 표시판을 항상 구비해야 한다. 자전거도로가 전국에 연결되므로 도시 내에서는 물론 도시간 국내 여행에도 매우 실용적이다. 페리는 사람이 거주하는 모든 섬에 다 연결되지만, 모험을 즐기려는 여행자들은 요트를 빌려 휴가 동안 여유 있게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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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여행] 스웨덴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스웨덴(Sweden)

아바그룹, 지프(Zip),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독한 보드카(Absolut Vodka) 등에 못지 않게 스웨덴을 상징하는 것은 스웨덴식 정찬(sm rg sbord), 볼보 자동차, 테니스 애호가들이다 (가수 록세트(Roxette)는 절대 여기 속하지 못함). 화폐의 평가절하로 스웨덴 여행의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신선한 공기, 자연경관, 이 곳의 문화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은, 여행자가 낭비 없이 만족스럽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수도인 스톡홀름은 진보적인 도시이지만 전원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호젓한 장소들도 많다. 일단 도심을 벗어나면, 스웨덴의 정말 아름다운 숲과 거대한 호수들은, 스케이팅부터 엘크(북유럽의 큰 사슴류)사냥에 이르는 다양한 실외 레저활동을 즐기게 해 준다.



통계 자료

국명: 스웨덴왕국(The Kindom of Sweden)

면적: 450,000평방 킬로미터

인구: 890

수도: 스톡홀름(Stockholm :인구 100)

인종: 스웨덴인 90%, 핀란드인 3%, 사미족(원주민) 15%

언어: 스웨덴어, 영어가 널리 통용

종교: 루터교

정체: 입헌군주제



스웨덴 지리, 지도 및 기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스웨덴은 소시지 모양의 가장 큰 나라로, 면적은 45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자연경관의 특징은 빙하활동의 결과로 형성된, 발틱해 서남쪽 암석해안과 동남해안 스톡홀름 군도의 피요르드와 암초들이다. 풋나기 선원은 전 국토가 약 십 만개의 호수로 연결되어서 마른 내륙지라고는 없는 사실을 유감스러워 한다. 스톡홀름 남쪽, 욀란드(land)와 고틀란드 (Gotland)섬은 평평한 석회암지대이지만 해안은 모래사장으로 둘러 싸여 있어 도심을 벗어나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피서지이다. 노르란드(Norrland) (스웨덴 국토의 60%에 달하는 북부 지방 지명) 인구밀도가 낮고, 거의 한결같이 광활한 삼림지, , 급여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웨덴의 완만한 산맥인 스칸데르나 (Skanderna)의 서쪽은 노르웨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스웨덴 최고봉은, 빙하로 뒤덮인, 해발 2111m의 케비네카이세 (Mt Kebnekaise) 북쪽 봉우리이다.국토 전역에 있는 엘크, 사슴, 여우 등은 스웨덴 야생동물 중에서 가장 마주칠 가능성이 많이 있는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자동차 정면에 쉽게 나타날 정도는 아니다. 늑대, 스라소니, 불곰 등은 농토 확장과 열성적인 사냥꾼들로 인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일부 서쪽 지방과 산악지역에서는 그 수가 점차 다시 증가하고 있다. 오소리 무리는 가축을 잡아먹기 때문에 그들을 없애려는 농장주의 눈을 피해 산 속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다. 아름다운 물총새, 최고의 목수 딱따구리 등 다양한 새들이, 해변에서 눈이 쌓인 지역까지 지저귀며 여유 있게 훨훨, 혹은 급히 후다닥 날아다닌다. 북부 호수와 개울은, 큰 바다송어를 잡았다고 자랑하는 스웨덴 낚시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스웨덴의 햇볕아래서 여행을 해야 한다면, 반드시 5월말에서 6월말 사이, 8월 우기 전에 서둘러 이 곳을 찾아야 한다. 스톡홀름의 월평균 기온은 7월이 섭씨 약 17도로 가장 높으며, 이때 9시간은 확실히 햇볕을 쬘 수 있다. 같은 때, 북부 산악지대의 평균기온은 섭씨 약 11도이지만, 때때로 영하로 떨어지거나 심지어 여름에도 눈이 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 보스니아만(Gulf of Bothnia)의 기온 차는 거의 섭씨30도에 이른다. 스웨덴은 위도상 아주 북쪽에 위치하므로, 5월 중순부터 6월말까지는 해가 지지 않고, 이와 대조적으로 12월은 늘 어둡다. 예테보리(G teborg, Gothenburg)지역의 연 강우량은 스웨덴 최대로 700mm이상이며, 라플란드 (Lapland)지방은 잦은 눈으로 일년 중 약 200일은 눈으로 덮여있다. 많은 연안 항구들이 겨울 내내 얼어 있는 반면, 스톡홀름 군도는 두어 달만 얼음이 언다.




역사

중세부터 스웨덴역사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다양하고 수 많은 요새들, 집회장소, 제사지, 무덤 등은 인상적인 유적지이다. 인도유럽족이 도래한 이후인 청동기 시대에 비로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고 연금술도 나타났으며,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다. 초기 문명생활상은, 아직까지 스웨덴 많은 지역에 남아있는 암석화(h llristningar)에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최초의 교역소가 세워진 맬라렌(M laren)계곡에서, 고대유럽 룬문자가 새겨진 기념비가 발견되었다. 바이킹시대는 9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고, 로마, 비잔틴, 그리고 아랍동전들이 보관된 창고는, 스웨덴 바이킹의 부와 권력이 다음 세기에도 건재했음을 보여준다. 바이킹은 대체로 동으로 이동했는데 러시아에 그 흔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지역들과도 교역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가 뿌리내린 11세기 이전까지, 이교도의 신이나, 다소 세속적이 왕들이 백성들을 마음대로 지배하였다. 1397년 노르웨이와 함께 덴마크가 중재하여 스웨덴을 칼마르동맹(Union of Kalmar)에 가입시킬 때까지 스웨덴은 내부 분쟁으로 중세기를 헛되이 보낸다. 스웨덴 국민주의자들의 일세기에 걸친 불만이, 결국 구스타프 바사(Gustaf Vasa)가 주도하는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는 1523년 왕위에 오른다. 구스타프는 종교개혁과 강력히 중앙집권화된 국민국가의 도입을 시도한다. 국력신장의 결과, 스웨덴은 많은 핀란드와 발틱 국가를 지배하게 된다.1809,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권에 예속되어 있던 무한권력은 끝이 나고, 핀란드는 러시아에 빼앗기게 되었다. 같은 해, 스웨덴은 입법권을 왕과 국회(Riksdag)로 분리하는 헌법으로 제정하고, 관료주의 권력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행정감찰관직 제도를 도입시킨다. 1814년 군사력에 의한, 노르웨이와의 강제적 연합이 스웨덴이 전쟁에 개입한 마지막이 되었다. 뒤늦은 산업화는 제철과 스웨덴 발명품인 '안전한 성냥'에 토대를 두었다. 최소 300년 동안 중요시되었던 철광과 제철산업은 확장되기 시작했고 중산층의 번영을 창출했다. 그러나 스웨덴 농촌지역의 대부분 마을을 흩뜨려 놓은 1827년 법령은 즉각 심각한 영향을 미쳐 구시대의 사회구조를 붕괴하기에 이른다. 1900년까지 스웨덴인구의 4분의1이 도시로 이주하였고, 목재, 정밀기계, 철물 등에 기초를 둔 산업은 상승세를 탄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노동계층은 급진적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은 스스로 중립을 선언하였고, 1917년까지 상호존중의 정권 체제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식량부족은 사회불안을 초래하였고 의견 일치는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그 결과 최초로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사회민주당은 1932년 이후 정권을 독점하면서, 복지국가의 개념도입과 경제개입을 통하여 1920년대의 자유주의 경향을 바꾸어나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1970년대 경제적 압박이, 스웨덴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방해하기 시작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올로프 팔메 (Olof Palme)수상 암살사건과 그것의 모호한 처리과정을 보면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최초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도파가 이끄는 연합정당이 정권을 잡은 1991, 정치적 순풍은 우파로 옮겨간다. 극우경제의 실험과 EU 회원국 가입은 많은 스웨덴인을 불안과 회의에 빠지게 하여 1994, 결국 사회민주당이 슬그머니 소수정권을 다시 잡는다. 사회민주당은 1995년 선거에서 다시 패배해, 중앙 우파당(Centre Right party)이나 녹색당(the Greens)의 지지를 받는 수상 예란 페르손의 주도하에 간신히 권력을 고수하고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4 8,002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9,655

연성장률: 0.8%

인플레이션: 2%

주요 생산품: 목재. 철광, 자동차, 통신기기, 볼베어링

주요 교역국: EU, US




문화

가장 잘 알려진 스웨덴의 예술가 그룹은 작가들로써, 가장 영향력 있는 극작가이자 작가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August Strindberg)가 있으며 그녀의 작품은 널리 번역되었다.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삐삐 롱스트룸프(Pippi Longstocking : L ngstrump의 영어 번역이나 이름이므로 그대로 사용이 옳다.)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린 (Astrid Lindgren)도 빼놓을 수 없다. 카를 미카엘 벨만 (Carl Michael Bellman)의 구스타비안 발라드(The Gustavian balladry)는 스칸디나비아 밖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스웨덴인의 영혼을 진솔하게 노래한 것이다. 20세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빌헬름 모베리(Vilhelm Moberg)는 이민간 자와 이민 온 자(The Immigrants and The Emigrants)라는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카를 폰 린네(Carl von Linn )는 라틴명칭을 사용하여 식물의 종에 대한 현지조사를 최초로 실시한 18세기 과학자이다. 그러나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역시, 노벨 연구소와 누구나 선망하는 국제적인 노벨상의 최초 후원자, 알프레드 노벨 (Alfred Nobel)이 아닐까. 스웨덴어는 게르만어의 하나로 북방어족에 속하며, 스웨덴 전역과 핀란드 일부에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사람은 언어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해가 가능하다. 스웨덴인들은 대부분 제2외국어인 영어를 말하지만 서툰 사람들은 스웨덴식 모음을 감추지 못한다. 스웨덴은 루터교파 국가로 모든 시민이 원칙적으로 교회에 속한다(실제로 약 95%의 시민이 구성원이다). 하지만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배고픈 스웨덴인들은 보통 뜨거운 물에 데치거나 라드기름에 튀긴 생선을 아주 즐겨 먹는데, 절인 청어는 특히 인기가 있고 감자는 없어서는 안 될 주식이다. 야채는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으며 특히 감자는 질 좋은 스웨덴식 독주 재료로 매우 중요하다. 도수 높은 맥주, 와인, 그 밖의 주류는 시내나 상가에 있는, 국가독점의 시스템볼라게트(Systembolaget)에서 주중에만 살 수 있다. 보통 술을 사려면 가격표와 진열품을 보고 결정한 후, 대기표를 뽑은 뒤 차례를 기다려야만 한다. 금요일 오후는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축제 및 행사

하지에 열리는 한여름축제는 스웨덴사람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즐기는 날로, 꽃으로 장식된 기둥 주위를 춤추며 도는 우상숭배적인 의식은 세납이라는 독주에 힘입어 느슨해지게 된다. 12 13일의 루시아 축제(Lucia festival) 60년 역사밖에 안 되었지만 매우 인기를 얻고 있다. 신앙심 깊은 시실리 소녀의 순교를 기리는 이 축제는, 길고 흰 원피스를 입은 어린이들의 행렬, 어른을 위한 글로그 (gl gg; 뜨겁게 마시는 와인펀치), 노래를 부르며 곧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짚으로 만든 동물과 별로 트리를 장식하며, 과자를 굽는다. 그리고 산타 클로스는 아이들의 행동을 최후 평가하여 선물을 사기 위한 마지막 쇼핑을 한다. 산타가 굴뚝에 선물을 던져놓지 않고 직접 배달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스웨덴어린이들을 더 좋아하는가 보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햄을 요리하는데, 'dipping in the pot'이라는 전래 풍습을 지키기 위해 햄 국물에 빵 조각을 적셔 먹기도 한다. 신년을 맞이하는 하루 전날은 친구들끼리 모여, 종종 불꽃놀이를 하는 등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사교적인 시간이다. 스웨덴의 부활절은, 마녀가 악마와 함께 지옥에서 부활절 동안 떠돌아다닌다는, 기독교신앙에 부합되지 않는 믿음 때문에 마녀차림을 한 아이들이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그림을 주고는 돈을 받아간다.

4 30일의 발푸르기스(Walpurgis)은 겨울이 끝났음을 모닥불과 불꽃놀이로 축하하는 이교도 풍습이다. 5 1일 노동절은 행진과 노동운동행사로 진행된다.




여행자 정보

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특이사항 없음

시간대: 한국이 스웨덴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제를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

외래관광객: 600만명



경비 및 환전

통화: 크로나(Krona)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사:US$7

레스토랑에서 식사: US$15

저렴한 숙박지: US$15

중급호텔: US$50-90

스웨덴 물가는 대단히 비싸지만, 세심하게 준비하면 감당할 수 있다. 캠핑장이나 호스텔에 서 묵고, 간이식당에서 먹고 기차패스를 이용한다면(술을 마시지 않을 경우) 하루 US$ 40달러 정도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는 몸이 피곤할 것이다. 그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면, 하루에 한번은 좋은 식사를 하고, 싱를룸에 머무르며, 박물관을 구경하고 조금 많이 관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 가능한 나라의 것이라면 어느 나라의 현금도 환전가능하며,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여행자 수표도 환전에 거의 문제가 없다. 신용카드나 Cirrus 카드를 가지고 있다면 전국 어디서나 자동현금지급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 포렉스(Forex)가 여행자수표의 환전료는 조금 비싸지만, 현금은 환전료가 싸며, 환전이 쉽다.



여행 시기

해가 쨍쨍한 날을 원한다면 5월말부터 6월말에 여행하고, 8월은 습도가 높다. 많은 유스호스텔, 야영장, 구경거리 등은 여름철인 6월말에서 8월 중순까지만 열린다. 스웨덴의 여름은 매우 덥고, 햇볕이 강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겨울철 여행은 잘 계획해야만 하고 제한이 많다. 그렇지만 대도시들은 1년 내내 활기차다.



주요 여행지

스톡홀름 (Stockholm)



중세도시 스톡홀름은, 발틱해를 따라 24,000여 개의 섬과,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 섬, 암초 등의 군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도시를 바다로부터 보호하고 무역과 해양활동을 이상적으로 만들었다. 대부분 섬이 무인도이지만 여름철 성수기에는 보트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보트 정박장소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스톡홀름군도는 겨울철 20cm의 얼음에도 견뎌낸다. 시의 경치는 바다 쪽에서 보면 가장 멋지고, 유르고덴(Djurg rden)공원의 경치와 감라스탄(Gamla Stan)의 좁은 골목길 산책도 빼놓을 수 없다. 스타드홀멘(Stadsholmen)섬에 위치한 감라스탄은 13세기에 생겨난, 스톡홀름 구시가지다. 중세풍의 거리는 환상적인 골목길, 아치문, 계단 등으로 연결되어있다. 현재의 왕궁은, 17세기에 불타버린 왕궁을 1760년 복원한 것이다. 오늘날 궁의 방들과 무기고는 과거를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것들이다. 시 동쪽, 유르고덴의 큰 섬에는 아름다운 공원과 훌륭한 박물관들이 집중되어있다. 빼먹지 말고 봐야 할 것은, 세계 최초의 야외박물관 스칸센(Skansen)으로 스웨덴 전역에서 온 전시물을 둘러보면 시골에 온 기분이 들 것이다. 스칸센에는 동물원, 수족관, 임업전시관, 담배박물관도 있다. 유르고덴 서쪽으로는 유명한 바사박물관(Vasamuseet)이 있으며, 여기에서 17세기 선원들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는 해양 고고학의 위대한 업적의 산물이다.스톡홀름 시내에 많은 호스텔이 있고, 솁스홀멘(Skeppsholmen)과 감라스탄 남쪽에 정박한 선박호스텔들이 인기 있다. 시내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다양한 음식들이 제공되는 레스토랑이 많이 있다. 시내중심가 동쪽에 있는 Kungsgatan거리는 무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바드스테나 (Vadstena)



베테른(V ttern)호수를 따라 도시를 이룬 바드스테나는, 스웨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하나이다. 르네상스풍의 바드스테나 성은 호수를 배경으로 항구 위에 우뚝 솟아있다. 강력했던 초기 바사 왕실이 건축한 성은, 위층 방에는 그 시대 가구들과 반 다이크(Van Dyck)의 작품을 포함해 여러 그림들이 전시되 있다. 이에 못지 않게 인상적인 15세기 대수도원( klosterkyrkan)은 고딕양식에 약간의 르네상스풍이 가미된 건물로, 내부에는 성 비르기타(St Birgitta)의 유물과 신의 계시를 묘사한 중세 후기조각이 있다. 또한 과거에는 수녀원, 한때는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비앨보예텐 궁(Bj lbo ttens palats)도 유명하다. 린셰핑(Link ping), 옌셰핑(J nk ping), 외레브로( rebro)를 경유해 바드스테나로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



예테보리 (G teborg - 영어명은 고센버그(Gothenburg)




서해안에 위치한 스웨덴 제 2도시, 예테보리에는 멋있는 항구와 화려한 거리가 있다.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인 리세베리(Liseberg)는 가장 인기있는 놀이공원 중 하나로, 여기서는 150m 높이에서 공원을 장악하고있는 리세베리 우주정거장이 볼 만하다. 리세베리 다음으로 볼만한 것은 박물관들이다. 중앙박물관(Ostindiska huset)에는 고고학적으로 가치있는 지역의 역사 유물이 많이 있다. 미술관(Konstmuseet)에는 루벤스, 반 고호, 렘블란트 등 유럽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해양관련 역사를 전시하는 해양역사박물관(Sj fartshistoriska museet)도 있다. 예테보리는 항공, 버스, 기차, 배 등으로 쉽게 갈 수 있고, 시내 중심가에는 멋진 새 호스텔이 많이 있다.



비스뷔 (Visby)

성벽과 자갈길이 있는 중세도시 비스뷔 항구는 40개 이상의 자랑스런 탑들과 한자시대 때 비스뷔의 영광을 증명하는 유물들로, 살아있는 유적지이다. 드로텐(Drotten), 성 니콜라이(St Nicolai), 성 라스(St Lars), 성 카린(St Carin)등은 모두 성 안에 있는 동시대 유적지들로, 성 마리아성당(St, Maria)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이킹시대이전의 고틀란드(Gotland)암석화가 전시되 있는 고틀란드 폰살(Gotlands Fornsal)은 역사박물관이다. 8월의 두 번째 주에는 중세를 기념하여 재연하는 '중세 주간'이다. 스톡홀름에서는 항공으로, 본토 도시들에서는 페리로 고틀란드섬에 있는 비스뷔로 갈 수 있다.



욀란드 (land)

욀란드는 룬문자와 요새, 그리고 400개의 풍차가 있는 작은 섬이다. 그로보리(Gr borg)는 반지모양 요새로 철기시대 요새 중 가장 크며, 직경이 200m로 섬 남쪽에서 훌륭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근처에 있는 에케토르프(Eketorp), 요새화된 중세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서 부분적으로 재건축되었다. 이곳 북쪽에는 18세기에 불 타버린 보리홀름(Borgholm)성 유적도 있다. 섬 남북 끝에 있는 등대 또한 눈에 잘 뜨인다. 욀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긴 6000m의 다리로 칼마르와 연결되어 있다. 욀란드는 여름축제장소로 유명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요크모크 (Jokkmokk)


북극권 바로 북쪽 요크모크는, 원주민 사미족의 시장과 종교활동을 목적으로 생겼으며, 현재도 사미족 문화의 중심지이다. 사미족의 겨울시장은 매년 2월에 열리며, 굵고, 파란, 빨간, 노란색 등으로 된 전통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만약 더 북쪽 깊숙이 여행하면서 순록샌드위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생각한다면, 내부 산악지역에 관한 유익한 정보가 있는 박물관으로 가보자. 요크모크는 백야를 보기에 좋은 장소이지만 태양을 직접 쳐다보는 것은 위험하므로 지나친 열정에 시력을 손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요크모크 중앙 호수에는 송어떼들이 많이 있다. 요크모크는 다른 지역과 상당히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 박람회 때에는 출발 전 숙소를 예약해야만 한다. 대중교통은 내륙철도(Inlandsbanan)로 연결되는데 마름바난(Malmbanan)에서 내려 버스를 타면 된다.



푸루피얠레트 (Fulufj llet)

셰르나(S rna) 서쪽, 푸루피얠레트산 근처 언덕은 스웨덴에서 제일 긴 폭포(100m)인 뉴페셰르(Njupesk r)지역이다. 셰르나에서 노르웨이국경 쪽으로 드라이브하는 코스는 가히 환상적으로, 바위투성이지만 아름다운 자연보존구역을 감상할 수 있다. 셰르나로부터 30km지점부터는 산악도로로 바뀌며 오래된 숲 끝에 있는 폭포까지 2km정도 뻗어있다. 자세한 정보와 지도는 셰르나 관광사무소에서 구할 수 있다.



사렉 국립공원 (Sareks National Park)

사렉국립공원의 신비한 경치는 약 2000평방km에 달한다. 공원에는 100여 개의 빙산과 셀 수 없을만큼 많은 봉우리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몇 개는 높이가 2000m이상이다. 경치가 아름답지만 많은 주의와 노력을 필요로 하므로 건장하고 경험 많은(집에서 연습을 충분히 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아마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은 공원 동쪽 끝에서 멀지 않은 라파 옐브(Rapa lv)의 라이투레(Laiture)삼각주와 호수 너머의 경치일 것이다. 산장은 없고 다리도 거의 없지만 경험많은 하이커들에게 인기있는 코스로, 들어갔다 나오는데 일 주일 이상 걸린다. 가장 많이 가는 입구는 크빅쿄크 피얠스타훈(Kvikkjokk Fj llstation)에서 남쪽편이다. 요크모크(Jokkmokk)에서 버스편이 있다.



레저스포츠

스웨덴에서의 여행은 날씨에 크게 영향 받는다. 겨울철은 얼음이 충분히 두꺼운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 스톡홀름의 호수와 운하는, 가장 긴 달리기코스를 즐기는, 지역 어린이들과 달리기 열성자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하강 및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실얀(Siljan)근교 휴양지와 베스트만란드(V stmanland)및 스톡홀름의 스키센터에서 인기가 높다. 스코네(Sk ne), 욀란드, 고틀란드섬 등지의 평탄한 호수부근을 자전거로 도는 것은 스웨덴이 해빙할 무렵이라면 정말 매력적이다. 만약 물을 좋아하면 호수주위나 북쪽 강의 급류까지 카누를 즐길 수도 있다.하이킹과 오리엔티어링은 어디에서나 대중적이며 많은 가족들이 주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오리엔티어링팀을 구성한다. 사렉(Sareks)국립공원은 아주 경험많은 하이커에게만 추천되는 장소지만, 아마도 스웨덴에서 하이킹하기에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일 것이다. 비치파라솔보다는 귀마개가 더 필요할 것이나, 스웨덴에도, 특히 웁살라(Uppsala) 동쪽에 수영을 즐기기 좋은 해변이 있다. 물개서식지 가까이서 수영할 수 있는 동해안에서는 다이빙도 즐길 수 있다. 북쪽 산악지역에서 볼 수 있는 극광(오로라;Aurora Borealis)은 아주 장관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별로 흥미롭지 않다면, 동남부 해안 어딘가에 30년 전쟁 당시의 보물이 가득 찬 난파선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비싼 맥주 값에 불만인 사람은 침몰선을 찾아서 출발!



스웨덴으로 가는 길

주요 국제공항은, 스톡홀름 북쪽, 버스로 1시간 걸리는 아를란다(Arlanda)에 있다. 대부분 유럽국가의 수도에서 오가는 항공편이 매일 있다. 북미와 아시아에서 오는 대부분의 항공편은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 공항세는 14크로나로 비행기표 값에 포함된다.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폴란드, 에스토니아, 영국 등에서 스웨덴으로 오가는 버스와 기차는 페리와 연계된다. 예테보리(Gothenburg), 헬싱보리(Helsingborg), 말뫼(Malm ), 스톡홀름 등의 항구를 통해 스웨덴으로 입국할 수 있으나, 핀란드 북서쪽에서 오는 페리는 바로 스웨덴 북쪽 우메오(Ume )나 셸렙티오(Skellefte )로 향하며, 독일로 가는 페리는 트렐레보리(Trelleborg)에서 출발한다.



국내 교통편

국내 항공편이 매일 전국을 거미줄같이 연결하지만, 스웨덴의 광범위하고 효율적인 버스와 기차는, 정말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항공기 이용의 필요성을 못느끼게 한다. 기차는 시외교통수단의 기본으로서, 주요 지역을 버스보다 더욱 빨리 연결한다. 버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여행할 때의 유일한 수단이다. 스웨덴의 도로는 아주 잘 정비되어있지만 동틀 무렵이나 해질 때 큰사슴, 순록, 엘크 등을 조심해야 한다. 스웨덴에서 차를 운전하려면 완전히 인정되는 면허가 필요하며, 차를 빌리지 않는다면 국제면허증은 필요 없다. 여성들이 스톡홀름에서 밤에 택시를 탈 경우는 할인이 되는지를 물어보도록 하자. 자전거는 차도에서 달리는 것이 금지되 있으므로 길고 특별히 고안된 경치 좋은 자전거전용도로를 이용하도록. 스톡홀름이나 예테보리주변 군도를 항해하는 배가 있고, 라플란드(Lapland)에 있는 베테른(Vttern), 실얀(Siljan), 토르네트레스크(Tornetr sk)같은 호수를 항해하는 기선은 여름철에 인기 있으며 자전거나 도보 여행시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직접 보트를 운항하는 것은 수면의 급격한 변화를 고려할 때 위험할 수 있다. 표시된 운하를 조금만 벗어나도 위험에 직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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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행] 노르웨이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노르웨이(Norway)

산과 피요르드 해안, 빙하로 둘러 쌓여 거친 아름다움이 있는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광활한 자연 속에서 하이킹은 물론 연중 스키를 즐길 수 있고, 페리, 버스, 기차를 타고 멋진 자연경관을 즐기며 여행할 수 있다. 또한 백야의 나라로서 길고 쾌적한 여름날, 요란하지 않고 수수한 도시들, 오염되지 않은 어촌, 바이킹 배와 중세기의 목조교회를 비롯해 다양한 역사 유적도 빼놓을 수 없는 노르웨이의 매력이다.


통계 자료

국명: 노르웨이(Norway)

면적: 324,220평방km

인구: 4,326,000

수도: 오슬로 (Oslo - 인구 465.000)

인종: 노르딕 97% , 알파인과 발틱, 소수 랩 민족

언어: 보크몰(Bokm l)과 신노르웨이어(Nynorsk)

종교: 기독교 (개신루터교 93%)

정체: 입헌민주주의



지리 및 기후 (+ 노르웨이 지도)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에 위치하며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얇은 베이컨 조각 껍질 모양을 하고 있는 노르웨이 국토는, 피요르드로 이뤄진 긴 해안선과 유럽에서 가장 큰 빙산의 일부로 덮힌 내륙산악지대가 있다. 국토의 500 평방km 이상이 북극권 북쪽에 있으나 서부해안 지방은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1년 내내 얼지 않는다.노르웨이는 국토의 3%만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이다. 러시아, 독일, 영국에서 내뿜는 오염으로 인한 산성비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국토의27%는 여전히 산림지대로 남아있으며, 순록, 여우, 나그네쥐 등이 살고 있다.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3만 명의 소수민 랩족은 순록몰이를 하는 전통적인 유목생활을 하면서 최북단에서 살고 있다. 농업생산량이 부족한 노르웨이는 바다에 큰 관심을 쏟고 있으며, 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무역은, 경제는 물론 사회체제 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르웨이는 1993년 국제적인 포경금지운동에도 상관없이 상업적인 밍크고래잡이를 다시 시작하였다. 노르웨이 해안지역은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놀랄 만큼 온화한 기후이지만, 내륙산악 지방은 기온 차가 크고 북쪽 고지대는 혹독한 극지방의 영향을 받는다. 노르웨이가 가장 아름답고 환할 때는 5월부터 8월까지이고, 최악의 시기는 11월과 3월 사이이며 평균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백야는 5 14일부터 6 30일까지 최북단의 노르드캅(Nordkapp) 5 23일부터 7 17일까지 로포텐(Lofoten) 섬에서 볼 수 있다. 남부 노르웨이도, 하지에는 오전 4시부터 밤 11시까지 밝다. 한편 11월에서 1월 말까지 북쪽지방에는 해가 뜨지 않는데 만약 불안으로 고통 받거나, 누워지내야만 하는 사람, 혹은 밤에 활동하는 흡혈귀 같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을 것이다.



역사

노르웨이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만 년 전 빙하시대 말기부터다. 초기의 사냥꾼과 몰이꾼들은 이동하는 순록떼를 뒤쫓으며, 북으로 후퇴할 때는 빙산을 따랐다. 노르웨이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793년 바이킹 시대, 북방해적에 의한 영국 린디스파른 (Lindisfarne)수도원 약탈사건이었다. 다음 세기에 걸쳐 바이킹은, 유럽전역에서 약탈을 일삼으며 정착하였다. 바이킹의 지도자 하랄드 파이하이르 (Harald Fairhair) 900년경 노르웨이를 통일하였고, 올라프왕(King Olaf)은 점령했던 나라의 종교를 승인하였지만 그 1세기 후 국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바이킹족은 훌륭한 항해사들이어서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했었다. 아이슬란드로 추방되었던 노르웨이인의 아들, 붉은 에릭(Eric the Red) 982년 그린란드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그의 아들, 아이슬란드인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son) 1001, 노르웨이에서 그린란드로 가던 중 항로를 벗어나 항해하다가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북미대륙 해안을 탐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바이킹의 시대는 1066년 노르웨이왕 하랄드 하르드라다 (Harald Hardrada), 영국의 스탬포드 다리(Stamford Bridge)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 막을 내리게 된다.13세기에 오슬로는 세력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그 번영은, 페스트 때문에 많은 인구가 죽었던 14세기 중반까지 지속됐다. 1380년 노르웨이는 그 후 400년 이상 계속된 덴마크와의 동맹에 가입하였다. 1814년 스웨덴에게 영토가 양도된 노르웨이는, 같은 해 강압적인 동맹에 환멸을 느껴 자체적인 헌법을 채택하기 이르지만 독립을 위한 투쟁은 스웨덴의 침입으로 진압된다. 결국, 노르웨이의 새 헌법은 유지하도록 허가받았지만, 스웨덴왕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다. 점점 강해가던 민족주의에 힘입어 1905년 마침내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부터 평화적으로 독립한다. 그 후, 노르웨이는 공화제보다는 군주제를 투표로 선택하여 덴마크의 왕자 카를(Prince Carl)을 왕으로 책봉한다. 이를 받아들여 그는, 과거 유명한 노르웨이 바이킹의 이름을 따라 호콘 7(H kon VII) 라는 칭호를 받고, 그의 어린 아들도 올라프(Olav)라고 이름 지었다.노르웨이는 양대 세계대전동안 중립을 유지했지만 1940년 나치에 점령당한다. 호콘왕은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대부분의 노르웨이 선대를 연합국의 지휘하에 배치하였다. 격렬한 나치저항운동 결과, 나치들은 후퇴하지만 북쪽지방의 모든 도시와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왕실은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왔다. 1960년 노르웨이는 유럽자유무역연합(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에 가입하였지만 자신들의 소규모 농업과 어업 보전능력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유대를 강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져왔다. 1970년대 북해유전과 천연가스의 발견은 국가에 막대한 부를 가져왔고, 노르웨이는 세계 최고수준의 삶을 누리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EU의 회원국이 되려고 하지만 국민투표 과정을 거쳐야 한다. 1994년 국민투표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을 유럽시민에게 팔려는 유럽정부에게 충격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노르웨이에서 EU가입은 핵심적인 현안이지만, 정치 전반에 걸친 저항도 여전하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4,499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83,922

연 성장률: 3.5%

인플레이션: 2%

주요 생산품: 원유, 천연가스, 수산업, 조선, 제지

주요 교역국: 영국, 독일, 스웨덴



문화

노르웨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건물인 독특한 목조교회 건축으로 매우 유명하다. 목조교회 건축은 바이킹시대에 최초로 시작되어 초기 기독교시대인 11세기까지 계속된다. 노르웨이는 많은 문화적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서 결혼식이나 다른 축제행사에 섬세한 민속의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전통적인 민속춤, 노래, 구전동화(난장이 트롤이 자주 등장하는) 등이 또한 인기있다. 노르웨이는, 풍부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작곡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Edvard Grieg) ,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 (Gustav Vigeland), 극작가 헨릭 입센 (Henrik Ibsen) 등을 배출하였고, 또한 비욘셰르네 비욘손 (Bjornstjerne Bjornson), 시그리드 운드세트 (Sigrid Undset), 크누드 함순 (Knud Hamsun) 3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낳았다. 노르웨이요리로는, 락스(laks 불에 굽거나 훈제한 연어), 레케르(reker 삶은 새우), 토슈크 (torsk 대구) 가 있다. 크리스마스 때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루트피스크 (lutefisk -- 알카리용액에 훈제하여 젤라틴에 가깝게 만든 마른 대구요리)인데, 절대 먹어본 사람만이 먹을 수 있다. 아침식사로는 주로 에이트우스트(geitost)라는 달고 검은 염소치즈와 절인 청어를 먹는다. 금주가 사실상 관례화되어 있는 시골마을에서는 아마도 술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축제 및 행사

가장 중요한 국경일은 제헌절(5 17)로서 전통적인 민속의상을 차려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다. 또 다른 대중적인 휴일은 하지전야제 (보통 6 23일에 열린다.)인데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축하행사를 한다. 카라쇼크(Karasjok)와 카우토케이노(Kautokeino)에서는 사미족(랩족)의 다채로운 부활절행사가 열리는데, 축제행사로는 순록경주와 요이크 (joik: 전통노래), 음악회 등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시간대: 한국이 노르웨이보다 7시간 빠르다.

전압: 220볼트, 50-60헤르츠

도량형: 미터제를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



경비 및 환전

통화: 크로네(Krone (Nkr)

 

일반경비

저렴한 숙박지 : US$40-60

중급호텔 : US$75-125

최고급 호텔 : US$200-300

저렴한 현지식사 : US$8-10

레스토랑에서 식사 : US$15-25

최고급 레스토랑식사 : US$30 이상


일반적으로 노르웨이여행은 비싼 편이지만, 그 나름대로 절약한다면 해결방법이 있다. 캠핑장을 이용하고 식사는 해 먹는다면 하루 US$30 이하로 빠듯하게 해결할 수 있다. 만일 호스텔에서 자고, 아침은 빵집, 점심은 저렴한 식당, 저녁은 식품점에서 재료를 사서 해 먹는다면 하루 US$45로 가능할 것이다. 아침 부페가 포함된 저렴한 호텔에 머물고 중급 레스토랑에서 한번 식사하고 다른 끼니는 스낵으로 해결한다면 하루 US$60정도 예상된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만 포함한 것으로, 술과 차비는 별도로 추가된다. 우체국과 은행에서 주요 외국통화와 모든 여행자수표를 환전할 수 있다. 일부 은행은 수표 한 장 당 수수료를 부가하므로 고액권 여행자 수표를 소지하면 유리하다. 현금자동지급기는 보편화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주요 신용카드는 널리 통용된다. 레스토랑에서 봉사료나 팁은 계산서에 포함되어 있으며, 택시요금에도 추가 팁은 필요 없다. 노르웨이에서 가격흥정은 일반적이지 않다.



여행 시기

노르웨이 여행의 최적기는 5월부터 9월까지이다. 늦은 봄이 특히 상쾌한데, 과실나무에 꽃이 피며 낮 시간은 길어지고, 대부분의 호스텔과 행사가 열리면서도 그다지 번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스키나 북극 오로라를 꼭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노르웨이의 춥고 어두운 겨울은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백야는 5 13일에서 7 29일 사이에 볼 수 있고, 로포텐섬에서는 5 28일부터 7 14일 사이에 볼 수 있다.




주요 여행지

오슬로(Oslo)


오슬로는 오슬로피요르드(Oslofjord)의 중심지이자 스카에락 (Skagerrak)의 입구에 있다. 스칸디나비아국가의 수도 중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1050년 하랄드 하르드라다 (Harald Hardrada)에 의해 건설되었다. 1624년 화재로 거의 파손되어 크리스티안 4(Christian IV)가 초석을 다져 재건되었고, 그 이름을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로 바꾸었다. 이 이름은 1925년 다시 오슬로로 바뀔 때까지 쓰였다. 노르웨이에서 제일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슬로는 아주 수수한 도시이다. 중심가에는 많은 박물관, 공원, 역사유적 등과 더불어 새로운 건축물과 옛 건축물이 조화롭게 섞여있다. 또한 대부분의 볼거리가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거나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어서 아주 구경하기 좋은 도시이다.오슬로에서 꼭 봐야 할 곳은, 1300년 경 세워진 중세요새, 성인 아케르후스(Akershus) 요새이다. 아케르후스 성은 귀족들이 갇혀있던 어둡고 아주 작은 공간의 지하감방, 대단히 호화로운 대연회장과 접견실이 있는 위층, 호콘 7(H kon VII)와 올라프 5(Olav V)의 유골이 있고 아직도 왕실행사에 쓰이는 예배당 등이 있어서 특히 유명하다. 2차세계대전 시, 나치는 아케르후스를 감옥과 처형장으로 사용하였고, 오늘날은 독일 점령 당시와 독일에 대항한 노르웨이인의 항거를 생생히 보여주는 노르웨이 박물관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레지스탕박물관 주위는 공원과 같이 탁 트인 공간으로 도시와 항구의 경치를 조망하기에 훌륭한 곳이다. 여름철에는 여기서 음악회, 무용 및 연극공연이 열린다.비겔란드(Vigeland)공원은 푸른 나무, 오리가 노니는 연못, 그림자를 드리며 줄지어선 나무들이 펼쳐져 있으며, 잔디밭을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피크닉을 즐기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다.공원 중앙 산책로를 따라, 다작을 남긴 구스타프 비겔란드(Gustav Vigeland)의 다양한 감정과 자세를 취한 인간의 형상을 표현한 실물 크기 조각들이 서있다.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조각품으로 알려진, 돌덩어리를 둘러싸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조각이다. 비겔란드 작품을 보다 잘 살펴보려면 공원 건너편에 있는 비겔란드박물관을 방문해 보자. 그 외 예술의 전당으로는, 100여년 전 입센의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지은 사치스러운 로코코양식 국립극장과 노르웨이의 가장 유명한 예술가 뭉크의 5000점 이상의 스케치와 그림이 전시된 뭉크박물관이 있다. 뭉크의 가장 유명한 그림인 '절규(Scream)' 1994년 비정규 공휴일, 잠시 도난당하기도 했지만 현재 국립화랑에 있다. 페리로 항구를 가로질러 10분정도 가면, 뷔그되이(Bygd y)에 도착한다. 이 반도에는 오슬로에서 제일 뛰어난 볼거리인 노르웨이 최대의 야외민속박물관, 발굴된 바이킹배와 토르 헤이에르달(Thor Heyerdahl)의 발사나무 뗏목, 콘티키(Kon-Tiki)가 전시된 해양박물관, 복구된 목조교회, 아름다운 해변 등이 있다. 또 대중교통편으로 오슬로 북쪽 외곽의 광활한 자연지구 노르드마르카 (Nordmarka)에 가 볼 수 있는데, 이 곳은 하이킹과 스키코스가 있다. 오슬로에서 인기있는 숙소와 먹거리는 대부분 시 중심가에 있다. 중앙대로인 Karl Johans gate에는 상점들이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으며, 뜨내기 악사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 오로의 나이트라이프로는 연극공연, 라이브음악, 디스코, 클럽, , 게이바, 여장쇼(drag shows) 등이 있다.



리쇠르(Risr)


작은 어항 주변에 역사적인 흰 건물들이 몰려있는 이 곳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화가와 여행객들에게 인기있으며, 노르웨이의 요트매니아들이 여름철 요트를 타러 오는 곳이다. 비싸지 않은 수상택시를 타면 근처 섬들로 갈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스탕홀멘(Stangholmen)섬으로 레스토랑과 술집이 있고 오래된 등대가 있다. 리쇠르는 오슬로 남쪽의 커브진 남쪽해안에 위치한다.



중부 노르웨이

노르웨이 중부에는 노르웨이에서 제일 높은 산, 제일 큰 빙하, 경치가 장관인 피요르드가 있다. 당연히 이 지역은 노르웨이로 오는 대부분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이다.문화적 분위기와 붉은 타일지붕으로 낮은 스카이라인을 가진 역사적 도시, 베르겐(Bergen)은 서부 피요르드여행을 시작하는 거점이다. 여기서부터, 노르웨이에서 제일 길고 깊은 송네피요르드(Sognefjord), 경치가 좋은 하르당에르피요르드(Hardangerfjord), 거대한 요스테달스브린(Jostedalsbreen) 빙하, 장관의 에이랑에르피요르드(Geirangerfjord)의 폭포, 노르웨이 등산가들에게 최대 도전지인 온달스네스(ndalsnes) 근처의 구름에 가린 뾰족 정상, 트롤베겐(Trollveggen)등지를 여행할 수 있다. 게다가 휴양지, 훌륭한 국립공원,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찔한 경치를 보며 달리는 자동차여행 등이 있다. 오슬로- 베르겐 간의 470km 기차여행도 빼놓아선 안된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이 기차여행은, 산악지역을 지나고 바람에 풍화된 하르당에르(Hardanger) 평원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트롬쇠 (Troms)



북극으로 가는 관문 트롬쇠는 그러나 표현과는 달리, 노르웨이 북쪽 해안에 점점이 있는 자국히 평범한 지역이다. 이 곳은 거리음악과 문화행사, 노르웨이에서 1인 당 가장 높은 비율의 술집이 있는 활기찬 도시이다. 눈 덮인 산들은 뛰어난 경치를 제공하고, 도심에는 역사적인 건물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트롬쇠박물관은 랩족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이 곳에서 겨울스키도 즐길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요툰헤이멘 국립공원(Jotunheimen National Park)


요툰헤이멘 국립공원은 노르웨이 최고의 자연공원이다. 공원에는 60여 개의 빙산과 노르웨이에서 제일 높은 정상으로 이어지는 하이킹코스가 거미줄 같이 얽혀있다. 오솔길은 좁은 계곡들, 깊은 호수, 다이빙을 할 수 있을 만큼 깊은 폭포를 거쳐간다. 등산객을 위한 오두막과 숙소들이 길을 따라 많이 있다. 공원은 중부 노르웨이, 송달(Sogndal)과 롬(Lom) 사이에 위치한다.



오(A)


이름에서 호기심이 유발되는 이 마을은 모스케네스(Moskenes)의 로포텐 섬에 위치한, 잘 보존 된 어촌마을이다. 붉은 로르부(rorbu)와 건조대에서 말리는 수 많은 대구, 어디를 둘러봐도 그림엽서 같은 경치가 이 곳의 매력이다. 마을에 있는 대부분 건물들은, 오래된 보트와 보트 보관창고, 옛날 빵집, 창고 등으로 사용되며 노르웨이 어촌박물관 옆으로 늘어 서있다. 근처에는 주울 베르너(Jules Verne)와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en Poe) 소설에 영감을 준, 세차게 소용돌이치는 강줄기의 모스케네스스트라우멘(Moskenesstraumen)이 있다.



함메르페스트(Hammerfest)


인구 만 명의 어촌인 이 곳은, 세계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 도시 이름이 귀에 익숙하다면 바로 빌 브라이슨(Bill Bryson) 때문이다. 그가 북극광을 찾아 헤매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환상적인 천체 쇼를 기다리는 동안, 왕립 고대 북극곰협회(the Royal & Ancient Polar Bear Society)를 방문하거나, 함메르페스트 묘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순록을 보러 가는 것도 좋다.



레저스포츠

오슬로, 에일로(Geilo), 릴레함메르(Lillehammer) 외곽지역인 홀멘쿨렌(Holmenkollen)과 구드브란드스달렌(Gudbrandsdalen)지방에는 관리가 잘 된 수천km에 이르는 크로스컨트리 스키장과 스무 곳도 넘는 활강스키장이 있다. 핀세(Finse), 스트린(Stryn) 또는 요툰헤임멘(Jotunheimen) 산 가까이의 빙산에서는 여름에도 스키를 탈 수 있다. 온달스네스에서의 등산, 뢰스트(R st)의 로포텐섬과 배뢰(Vry)의 산에서 조류관찰, 송달근처의 니가르드스브레엔(Nigardsbreen)에서 빙산하이킹 등을 즐기며 노르웨이의 광활한 자연에 감탄해보자. 또 다른 하이킹 장소로는 요툰헤임멘과 론다네(Rondane), 하르당에르평원 등이다. 노르웨이는 또한, 민물 및 바다낚시를 즐기기에도 좋다.



노르웨이로 가는 방법(항공편 및 기타 교통수단)

오슬로는, 대부분의 유럽 주요도시에서 국제항공편으로 연결된다. 베르겐, 스타방에르(Stavanger), 트론헤임(Trondheim)에도 국제공항이 있으며 출국세는 없다.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스웨덴의 헬싱보리, 스톡홀름을 오가는 기차가 매일 있다. 또한 트론헤임과 나르빅 (Narvik)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기차도 있다. 노르웨이 전역은 수많은 고속도로와 국도를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으로 연결된다. 버스와, 선체가 두 개인 쌍동선를 이용하면 노르웨이 북부의 시르케네스(Kirkenes)에서 러시아의 무르만스크(Murmansk)로 갈 수 있다. 또한 덴마크, 스웨덴, 영국, 아이슬란드, 파로섬 등을 오가는 페리도 있다.


국내 교통편

노르웨이의 주요 국내항공사, SAS, Braathens SAFE, Wider e Norsk Air가 노르웨이 국내 50개 공항에 취항한다. 노르웨이는 도시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절약형의 여행자일지라도 비행기여행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또한 광범위한 버스 망이 있어 주요 도시는 물론 아주 먼 지역까지도 연결이잘 된다. 노선에 일부 제한은 있지만 국철도 잘 되어있으며 주요 노선은, 오슬로에서 스타방에르, 베르겐, 온달스네스, 보되(Bod)로 운행하는 것이다. 주요 렌트카 회사들은 공항과 도심에 사무실이 있지만 비용은 비싸다. 대단히 먼 장거리이동, 산이 많고 좁은 길 등의 여건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자전거여행은 그다지 적합치 않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한가지 좋은 점은 교통이 매우 한가하다는 것이다. 아주 멀리까지 가는 페리와 쾌속선은 연안 섬들, 해안 도시, 피요르드 지역 등으로 운항한다. 1세기를 넘는 동안 연안 증기선(Hurtigruten)은 북부해안을 따라 산재한 아주 작은 어촌에 물자를 보급하였다. 베르겐에서 매일 밤 북쪽으로 가는 배는 33개 항구를 거쳐서 시르케네스까지 6일 동안 항해한다. 시내교통은 일반적으로 효율적이며 대부분 시내버스가 있다. 오슬로에는 지하철, 전차, 페리 등의 대중교통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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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 여행] 라트비아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라트비아(Latvia)

라트비아를발트의 스위스라고 비유하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국토의 10분의 1이 해수면 보다 낮으며, 50m까지 낮은 경우도 있다. 산악지대가 거의 없는 작고 평평한 땅으로 이루어진 라트비아는 발트 이웃국가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끼어 있는 습지가 많은 축축한 나라이다. 하지만 라트비아에서는 많은 것을 즐길 수 있다. 수도 리가(Riga)는 매력적인 해안도시로 많은 여행자를 끌어들인다. 리가에서 유르말라(Jurmala), 시굴다(Sigulda), 전망이 훌륭한 가우야(Gauja)계곡, 룬달레(Rundale)에 있는 라스트렐리(Rastrelli), 등지의 해안 휴양지로 일일 여행을 가기 편리하다. 신생독립국가인 라트비아는 국가건설과 회생에 매우 열성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라트비아인의 30%는 러시아인이며 수도 리가는 라트비아민족이 러시아인 보다 수적으로 열세하다. 이러한 혼란스런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빠른 개혁을 막지는 못했고, 결과적으로 긴장된 상황을 가져왔다. 이것은 라트비아를 여행지로 택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중 하나이다.



통계 자료

국명: 라트비아공화국

면적: 64,589평방km

인구: 262

수도: 리가(인구874,100)

인종: 라트비아인 57%, 러시아인 30%, 벨라루스인 4%, 우크라이나인 3%, 폴란드인 3%

언어: 라트비아어, 러시아어, 소수민족언어들

종교: 루터교, 로만카톨릭, 러시아정교

정체: 공화국



지리 및 기후 ( + 라트비아 지도)





라트비아의 지리적 위치와 면적은 발틱 국가들에서 중간에 해당한다. 북쪽의 에스토니아 보다 크고 남쪽의 리투아니아 보다는 작은데, 하여튼 발트 3국은 동쪽의 이웃나라인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비해 아주 작다. 서쪽과 북서쪽으로는 발트해와 접해 있고, 발트해 안쪽으로 엄지손가락 모양의 리가만이 라트비아 북부 해안 쪽으로 들어와 있다. 동부 라트비아의 비제메(Vidzeme)고지에는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지점인 가이지나 칼른스(Gaizina kalns)가 있으며, 그 높이는311m이다. 라트비아의 약 40%를 차지하는 산림지대에는 엘크, 사슴, 야생멧돼지, 여우, 스라소니, 불곰 등이 많이 살고 있다. 내륙 운하에는 비버와 수달피, 해안가에는 물개가 산다. 또한 라트비아는 흰 황새 6500쌍의 서식처이다(서유럽 전체의 흰 황새 숫자 보다 6배 많다). 리가의 서쪽 가우야강 계곡에 라트비아 유일의 국립공원이 있다. 수많은 자연보호지가 있고 그 중 3곳이 서부 라트비아의 쿠르제메(Kurzeme)에 있다. 11월 초부터 해동기인4월까지는 기온이 섭씨4도 이상 거의 오르지 않으며, 하루에 겨우 몇 시간 밖에 해가 나지 않는다. 6월에서 8월의 낮 시간에는 보통 14도에서 22도 정도까지 기온이 오른다. 7월과 8월은 가장 더운 시기이지만 소나기가 지속적으로 온다.



역사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는 적어도 BC 9000년이지만, 현재 라트비아주민의 첫 시조는 아마도 BC30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들어온 피노-우그리족 수렵인으로 추정된다. 현대 라트비아인의 조상들인 발트 족은 BC 2000경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원후 몇 세기 동안 이 지역의 부족들은 게르만족 및 로마제국과 상거래를 했다. 그 후 그들은 바이킹과 러시아인들과 때로는 무역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을 하기도 했다. 12세기까지 피노-우그리족과 발트 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졌고 모두 자연숭배의 종교의식을 행했다. 로마교황의 북구 이교도에 대항한 십자군 소집령에 따라 게르만 선교단이 이 지역에 들어오지만, 13세기까지 성과는 별로 없었다. 리보니안 결사단(Livonian Order)이라 알려진 붉은 검과 십자가 문장이 그려진 흰 망토를 입은 십자군단이 1290년까지 이 지역을 강제로 개종시킨다. 라트비아는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발트 지역에서 개신교 스웨덴과 카톨릭인 폴란드-리투아니아간의 다툼은1592년 진정된다. 리가를 포함한 라트비아 동부 대부분은 스웨덴의 지배에 들어간다. 스웨덴의 통치기는 압제에 시달리던 라트비아의 긴 역사에서 문명화 기회를 갖게 한 호의적인 일로 회고되고 있다. 17세기 스웨덴 왕은 농노신분의 라트비아 농부들에게 보통교육을 시켰다. 라트비아인에게 교역, 전문직업, 상업, 지적인 영역 등에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농노해방은 라트비아의 민족적 회생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말 러시아화 정책의 비우호적이고 억압적인 과정에도 불구하고 라트비아는 서서히 스스로 주권을 갖는 자주국가로 부상했다. 라트비아는 세계 2차대전시 독일에 점령되었으나,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기 바로 7일전인 1918 11 18, 농부, 중산층, 사회주의자 그룹이 독립을 선언하였고 농민당의 지도자 카를리스 울마니스(Karlis Ulmanis)가 정부를 수립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자와 볼셰비키 및 발틱 독일정당 사이의 분쟁은 러시아가 라트비아 공화국과 영속적인 독립을 보장한다는 평화조약을 맺는 1920년까지 계속되었다. 1930년대 초 라트비아는 권위주의로 빠지고 1939 823(나치독일과 소련이 불가침협정을 체결하였을 때) 소련의 영향권 밑에 들어간다. 1940 8월까지 소련의 군사점령 하에 있었고, 공산당은선거에 승리하며 라트비아는 소비에트연방에 속하는 하나의 공화국으로받아들여진다. 전제국가화와 숙청이 시작되고 일 년 안에 35천의 라트비아인이 사형, 추방, 혹은 망명한다. 독일이 소련을 침입하였고 1941년 라트비아를 점령한다. 많은 라트비아인들이 나치를 해방자로 생각하였고 독일군대에 지원하지만 라트비아의 유태인 9만 명은 거의 모두 처형되었다. 많은 라트비아인이 1944년과 1945년 붉은 군대의 재 점령을 피해 서방으로 망명하기도 하였지만, 2세계대전 당시 총45만에 가까운 라트비아인이 손실되었다. 그리고 1945-1949년 스탈린 치하에서 175천이 사형 혹은 강제추방 당했다. 소련의 가혹한 라트비아지배가 다소 느슨해지는 최초의 조짐은 1980년 후반 미하엘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재건)를 고무하기 시작했을 때이다. 수 십 년간의 쓰라린 울분이 자치를 요구하는 대중집회로 나타났다. 1988년 라트비아 정부요원들이 대중집회와 정치모임에 참가하였고, 한편 민주적인 개혁을 위한 전면적인 압력은 대규모의 호응을 얻었다. 1990년 봄 민족주의자들은 라트비아국회에서 다수당이 되며, 2차 세계대전 이전의 헌법을 회복시키고 완전한 독립을 위한 과도기를 선포한다. 1991년 초 국민투표의 결과에서 다수가 소비에트연방에서 탈퇴하기를 원하였고,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에 대항한 쿠테타가 일어난 이틀 뒤인 8 21일 라트비아는 완전한 독립국가임을 선포한다. 이는 서방국가들의 지지를 받았고 19919 6일 마침내 소련도 독립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2주가 지나지 않아 라트비아는 UN에 가입한다.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는 적어도 BC 9000년이지만, 현재 라트비아주민의 첫 시조는 아마도 BC30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들어온 피노-우그리족 수렵인으로 추정된다. 현대 라트비아인의 조상들인 발트 족은 BC 2000경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기원후 몇 세기 동안 이 지역의 부족들은 게르만족 및 로마제국과 상거래를 했다. 그 후 그들은 바이킹과 러시아인들과 때로는 무역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쟁을 하기도 했다. 12세기까지 피노-우그리족과 발트 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졌고 모두 자연숭배의 종교의식을 행했다. 로마교황의 북구 이교도에 대항한 십자군 소집령에 따라 게르만 선교단이 이 지역에 들어오지만, 13세기까지 성과는 별로 없었다. 리보니안 결사단(Livonian Order)이라 알려진 붉은 검과 십자가 문장이 그려진 흰 망토를 입은 십자군단이 1290년까지 이 지역을 강제로 개종시킨다. 라트비아는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발트 지역에서 개신교 스웨덴과 카톨릭인 폴란드-리투아니아간의 다툼은1592년 진정된다. 리가를 포함한 라트비아 동부 대부분은 스웨덴의 지배에 들어간다. 스웨덴의 통치기는 압제에 시달리던 라트비아의 긴 역사에서 문명화 기회를 갖게 한 호의적인 일로 회고되고 있다. 17세기 스웨덴 왕은 농노신분의 라트비아 농부들에게 보통교육을 시켰다. 라트비아인에게 교역, 전문직업, 상업, 지적인 영역 등에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농노해방은 라트비아의 민족적 회생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말 러시아화 정책의 비우호적이고 억압적인 과정에도 불구하고 라트비아는 서서히 스스로 주권을 갖는 자주국가로 부상했다. 라트비아는 세계 2차대전시 독일에 점령되었으나,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하기 바로 7일전인 1918 11 18, 농부, 중산층, 사회주의자 그룹이 독립을 선언하였고 농민당의 지도자 카를리스 울마니스(Karlis Ulmanis)가 정부를 수립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자와 볼셰비키 및 발틱 독일정당 사이의 분쟁은 러시아가 라트비아 공화국과 영속적인 독립을 보장한다는 평화조약을 맺는 1920년까지 계속되었다. 1930년대 초 라트비아는 권위주의로 빠지고 1939 823(나치독일과 소련이 불가침협정을 체결하였을 때) 소련의 영향권 밑에 들어간다. 1940 8월까지 소련의 군사점령 하에 있었고, 공산당은선거에 승리하며 라트비아는 소비에트연방에 속하는 하나의 공화국으로받아들여진다. 전제국가화와 숙청이 시작되고 일 년 안에 35천의 라트비아인이 사형, 추방, 혹은 망명한다. 독일이 소련을 침입하였고 1941년 라트비아를 점령한다. 많은 라트비아인들이 나치를 해방자로 생각하였고 독일군대에 지원하지만 라트비아의 유태인 9만 명은 거의 모두 처형되었다. 많은 라트비아인이 1944년과 1945년 붉은 군대의 재 점령을 피해 서방으로 망명하기도 하였지만, 2세계대전 당시 총45만에 가까운 라트비아인이 손실되었다. 그리고 1945-1949년 스탈린 치하에서 175천이 사형 혹은 강제추방 당했다. 소련의 가혹한 라트비아지배가 다소 느슨해지는 최초의 조짐은 1980년 후반 미하엘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재건)를 고무하기 시작했을 때이다. 수 십 년간의 쓰라린 울분이 자치를 요구하는 대중집회로 나타났다. 1988년 라트비아 정부요원들이 대중집회와 정치모임에 참가하였고, 한편 민주적인 개혁을 위한 전면적인 압력은 대규모의 호응을 얻었다. 1990년 봄 민족주의자들은 라트비아국회에서 다수당이 되며, 2차 세계대전 이전의 헌법을 회복시키고 완전한 독립을 위한 과도기를 선포한다. 1991년 초 국민투표의 결과에서 다수가 소비에트연방에서 탈퇴하기를 원하였고,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에 대항한 쿠테타가 일어난 이틀 뒤인 8 21일 라트비아는 완전한 독립국가임을 선포한다. 이는 서방국가들의 지지를 받았고 19919 6일 마침내 소련도 독립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2주가 지나지 않아 라트비아는 UN에 가입한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337

1인당 국내 총생산 GNP : US$ 11,895

연성장률: 6%

인플레이션: 7.4%

주요산업: 식품, 목재가공, 섬유, 농업

주요무역상대국: 러시아, 독일, 스웨덴, 리투아니아, 핀란드, 영국



문화

국제적으로 알려진 라트비아 예술가나 작품은 거의 없다. 이 나라의 문학은 19세기 안드레이스 품푸스(Andrejs Pumpurs)가 민속전래이야기에 바탕을 둔 민족서사시인 곰살해자라는 뜻의 라츠플레시스(Lacplesis)로 시작되었다. 만약 훨씬 덜 모호한 언어로 글을 썼다면 라트비아문학의 거장인 야니스 라인스(Janis Rainis)는 세익스피어나 괴테 만큼 인정받았을 것이라고 라트비아인들은 주장한다.다이나스(dainas)라고 알려진 라트비아의 운문은 종종 짧고 시적이며 일본의 하이쿠(haiku)와 비교된다. 19세기에 민족서정시와 노래의 방대한 집성이 크리스야니스 바론스(Krisjanis Barons)에 의해 이루어졌다. 실제로 140만 민족서정시와 3만 곡의 노래가 라트비아어로 쓰여졌다. 최초의 주요 라트비아의 화가는 야니스 로젠탈스(Janis Rozentals) 20세기 초에 농촌풍경과 초상화들을 그렸다. 빌헬름스 푸르비티스(Vilhelms Purvitis)와 야니스 발터스(Janis Valters)는 당시의 탁월한 풍경화가였다. 라트비아 집시사회의 지도자인 카를리스 루데비치(Karlis Rudevics)는 그가 번역한 집시의 시와 전설의 영감을 받은 뛰어난 회화작품으로 유명하다. 라트비아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발틱어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두 언어 중 하나이며, 라트비아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생각하고 있다. 라트비아의 국민 중 단지 반 정도만 제일언어로 라트비아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서부와 동부는 방언이 심해 중부의 표준 라트비아어와는 많이 다르다.라트비아인은 레트(Letts or Latgals), 셀로니아(Selonians), 세미갈리아(Semigallians), 쿠우르(Cours) 등의 부족을 조상으로 한다. 7대 도시에서 라트비아족이 러시아인 보다 수적으로 열세하다. 20만 라트비아인이 주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독일, 영국, 미국 등의 서방국가에 살고 있다.. 라트비아에서는 훈제음식(특히 생선)과 낙농제품, 계란, 감자, 곡물이 대중적이다. 훈제된 넙치, 장어, 청어, 정어리 등이 주식을 이루는 음식들이고 특별히 저장 처리된 칠성장어는 라트비아의 진미음식이다. 스프와 소시지 역시 대중적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신선한 열매로 만든 파이와 케이크가 풍성하다. 라트비아의 주요 맥주는 알다리스(Aldaris)이지만, 가장 마셔보고 싶은 술은 진하고 독한(45) 리가 블랙 발삼(Riga Black Balsam)으로 불쾌할 정도로 강한 맛을 지닌 흑색 혼합음료이다. 이것은1755년부터 라트비아에서 유일하게 제조되고 있다.



축제 및 행사

1873년 라트비아에서 첫 번째 국가적인 음악제(Song Festival)가 열린 이래 연중행사 중 가장 감동적인 행사의 하나로 발전해왔다. 축제는 매5년마다 열리는데 대규모 합창단이 수도에 있는 거대한 야외원형극장에서 노래할 때 그 절정에 이른다.큰 행사인 하지 축제는6 23일에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이때 시골의 호수나 소나무 숲에 모여 축제를 벌인다. 특별한 맥주, 치즈, 파이 등을 마련하며, 풀을 엮어 만든 화환을 매달아두는 한편, 행운을 가져오고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준다고 믿는 꽃과 향내 나는 풀을 집 주변에 달아 둔다. 가다티르구스(Gadatirgus)는 대규모의 미술 및 공예전시회로 6월 첫 째 주 리가에서 열린다. 음악, 댄스, 전시회, 퍼레이드 등의 행사가 있는 발틱국제민속제(Baltika Annual International Folklore Festival) 1987년부터 발틱 국가들의 수도에서 돌아가며 개최되고 있으며 보통 6월 중순 일주일 동안 열린다. 다음 행사는 2000년 리가에서 열린다.그 외의 음악제로는 국제오르간음악제(International Festival of Organ Music)가 수도에서 6월에 있다. 오페라음악제(Opera Music Festival) 7월 시굴다(Sigulda)에서, 고대음악제는 8월 바우스카(Bauska)성에서, 리이파야의 록음악제(Liepajas Dzintars) 8월 중순 리이파야에서 열린다. 814일에서 16일 사이 아글로나(Aglona)에서 로만카톨릭의 최대 행사인 예수승천일(Ascension Day)축하행사가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 체코, 덴마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헝가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영국 등의 시민권자를 제외한 모든 나라 사람들은 비자가 필요하다. 건강상 유의사항: 진드기에 의한 뇌염에 주의(만약 숲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라면 예방주사 맞기를 권한다.)

시간대 : 그린위치 표준시 보다 2시간 빠르다.

전압 : 220볼트, 50헤르츠

도량형 : 미터법

관광객 : 일년에10만 명 이상


경비 및 환전

통화: 라츠 Lats (plural: lati)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2-10

중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10-25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25 이상

저렴한 숙박: US$3-20

중급호텔: US$20-80

고급호텔: US$80 이상

스칸디나비아국가와 비슷한 물가를 고려하면 라트비아 여행은 꽤 비싼 편이다. 아마도 숙박비지출이 가장 클 것이다. 다행히 육상교통비는 아직까지 저렴한 편이다. 빠듯하게 예산을 잡은 여행자라면 하루에 US$30로 그럭저럭 지낼 수 있지만, 몇 번 식당에 가거나 안락한 숙박을 한다면 쉽게 그 두 배의 비용이 든다. 라트비아에서 호화롭게 지내려면 여느 서유럽 나라들과 비슷한 비용이 든다. 여행자수표의 현금화는 리가, 다우가프필스(Daugavpils), 시굴다 등의 도시바깥에서는 어려울 수 있지만, 모든 도시에서 부동화폐를 교환할 수 있다. 미국 달러와 독일 마르크는 가장 쉽게 환전할 수 있으며, 발틱 국가나 서유럽 화폐도 환전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현금자동지급기, 상점, 레스토랑, 호텔 등에서 주요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라트비아에서는 18%의 부가가치세가 붙기 때문에 가격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되어 있는지를 주의하여 살펴야 한다. 팁은 의무사항이 아니지만 계산서를 반올림하여 웨이터에게 5내지10%의 팁을 주는 것이 관례이다. 만일 웨이터가 잔돈이 없다고 하면서 팁을 주도록 유도하면 카운터에 지불해서는 안 된다. 벼룩시장에서는 흥정을 할 수도 있지만 에누리는 약간 밖에 할 수 없다.



여행 시기

봄에서 여름(4월부터9)사이가 가장 좋은 여행시기이다. 이때가 좋은 날씨, 긴 낮 시간, 신선한 음식, 나라전체에서 열리는 많은 민속제를 즐길 수 있는 시기이다. 질척거리고 추운 이 기간 전후의 몇 주를 꺼려하지만 않는다면 이 때가 야외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이다. 겨울(11월부터 3월말까지)은 아주 혹독하게 추울 수도 있으나, 연극공연과 음악회가 많이 열리고 스키어들에게 더 없이 좋은 때이다. 7월과 8월은 여행성수기이므로 호텔은 자주 완전히 만원이 된다.





주요 여행지


리가(Riga)



리가는 다른 발틱국가의 수도인 탈린이나 빌니우스처럼 예쁘지도 건축학적으로 흥미롭지도 않지만, 대단히 활기찬 대도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도시에는 러시아인의 수가 라트비아인을 능가하기 때문에 인종간의 긴장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다.리가는 다우가바(Daugava)강 양쪽에 위치하며 도시의 입구인 리가만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약15km 떨어져있다. 수세기전의 게르만양식 건물들이 역사구역인 옛날 리가 베츠리가(Vecriga) 전역을 덮고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 피터교회의 나선모양 탑을 오르면 이 곳 여행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주변경치를 공중에서 볼 수 있다. 1330년 리보니안결사단(Livonian Order)의 본부로 리가성은 지어졌었지만 지금은 라트비아 대통령의 거처이다.리가의 구시가지 동쪽에는 19세기풍의 공원과 넓은 가로수길이 있다. 1935년 세워진 자유의 기념물(Freedom Monument)은 이 지역의 상징이다. 옛 리가를 둘러싸고 있는 신시가지는 19세기와 20세기 초부터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이 혼재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옛 리가의 남쪽에는 체펠린기구비행기의 격납고가 여러 곳 있었고, 활기 넘치는 중앙시장은 현대 도시생활의 중심이자 생활수준을 알 수 있는 적절한 기준이 된다.2차대전때 리가의 유태인 강제이주지구는 마스카바스(Maskavas) 교외에 있었는데 지금은 리가의 유일한 유태교회와 유태인 박물관이 이 곳에 있다. 옛 리가의 동쪽8km 지점에 있는 자동차박물관을 놓치지 말고 보기를 권한다. 고르키, 스탈린, 후루쉬초프, 브레즈네프 등 과거 소련지도자들이 소유했던 자동차들과 존경 받지 못하는 그들의 실물크기 모형들이 볼만하다.여름이면 돔광장(Doma laukums)으로 테이블과 의자들이 쏟아져 나와서 광장은 값싼 카페, 맥주노점, 심야 바 등이 가득채워지는 유흥장소로 바뀐다. 리가에서 외식을 결정하기가 어렵지만 진정옛날 분위기로 돌아가고 싶다면, 옛 리가에 신선하지 않은 빵, 플라스틱 컵, 충충한 갈색벽, 굉장히 싼 가격의 보드카 등이 있는 소련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유르말라(Jurmala)



해변이란 이름의 유르말라는 리가의 서부해안을 따라 20km 이어져 있는 일련의 작은 마을과 휴양지들을 포함한다. 해변, 모래언덕, , 박물관, 미술관, 레스토랑, , 여인숙 등이 있어, 잠시 쉬며 노독을 풀기에는 최고이다. 게다가 전혀 혼잡하지않고 가기도 쉽다. 리가에서 한 시간에 여러 번의 기차편이 있고, 리가 기차역의 정면에 유르말라를 오가는 특별 택시가 있다. 만일 차를 몰고 유르말라에 가면 통행세를 지불해야 한다.




시굴다 (Sigulda)



이 지방에서라트비아의 스위스라고 알려진 시굴다와 그 주변은 줄지어선 위풍당당한 중세의 성들과 가우야계곡의 가장 아름다운 지류를 따라 흩어져있는 전설을 지닌 동굴들이 멋있는 경치를 뽐낸다. 시굴다는 가우야국립공원의 주진입로이며 미성년자를 위한 건강휴양지이자 동계스포츠의 중심지이다. 옛 시굴다성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옛날 십자군 기사단이 거주했던 곳에 19세기에 새로 지어진 시굴다성은 지금은 요양소로 쓰인다. 구트마니스 (Gutmanis)동굴과 빅토르의 동굴은 지역 민속학연구에 중요하다. 시굴다는 리가 동쪽53km에 있으며 버스와 기차편이 자주 있다.




바우스카(Bauska)



바우스카의 시골마을의 주요 볼거리는 1443년에서1456년 사이에 지어진 리보니안 기사단의 요새였던 성이다. 이 인상적인 건축물은 16세기와 17세기에 있었던 수 차례의 전쟁으로 파손되어 재건축되었지만, 1706년 북구대전쟁 (Great Northern War)으로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재복구는1976년에 비로소 다시 시작한다. 성의 박물관은 지금 16-17세기 미술품 약간과 복구작업시에 발굴한 다양한 고고학적 자료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고대음악제(Ancient music festival) 가 성 안과 주변의 높은 운동장에서 열린다.바우스카에서 불과 서쪽 12km에는 라트비아에서 건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18세기 룬달레(Rundale) 궁전이 있다. 이 궁은 18세기에 이태리 출신의 바로크시대 천재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에 의해 설계되어 지어졌다. 그는 상 페테스부르그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많이 건축했었다. 바우스카는 리가-빌리우스 주도로의 리가 남쪽 65km지점에 있다.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매일 여러 편의 버스가 있다.



쿨디가(Kuldiga)



쿨디가는 라트비아의 쿠르제메(Kurzeme)지방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곳은 도심에서 북으로2.5km 지점에 있는 고대 요새의 옛터에 의해 입증되는 쿠우르(Cours)족의 정착지로 중요했었다. 17세기 마을 공회당, 18세기의 곡물창고, 로만카톨릭, 러시아정교, 루터교회들, 1807년에 만든 물레방아, 조각공원, 지역박물관 등이 있다. 쿨디가의 벤타(Venta)강에서 낚시나 수영을 즐길 수 있으며, 강에 있는 폭포의 2m 높이가 라트비아의 지형이 평평한 만큼 대단하게 느껴진다. 더 대단한 것은 폭포의 너비가 275m에 걸쳐 있으므로 유럽에서 가장 폭이 넓은 폭포이다. 쿨디가는 리가 서쪽 150km에 있고 버스로 연결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둔다가(Dundaga)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Crocodile Dundee)의 기원을 3개의 호수사이에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의 중심에 1995년 시카고의 라트비아 영사관이 둔다가에 기증한 거대한악어상이 있다. 이 동상은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렐리아로 망명하여 아웃백(Outback)에서 악어를 잡으며 일생을 보낸 아르비츠 폰 브루멘페츠(Arvids von Blumenfelds)라는 이 지역출신에게 헌정되었다. 이 둔다가 출신의 영웅이 이룬 업적에 기초하여 영화가 만들어졌다.땅신령의 결혼을 방해하는 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른 한 어여쁜 소녀를 죽을 때까지 둔다가성에 감금하여 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소녀의 혼령이 아직도 성에 남아있어 보름달이 뜰 때면 나타난다고 말한다. 둔다가는 리가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리가만에서 내륙으로20km 지점에 있어서 자동차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마짜라차(Mazsalaca)

이 작은 마을에는 13세기 루터교회나 목공예 박물관이 있으나 그것으로 유명하지는 않다. 마짜라차는 이리로 변한 사람과 연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철교에서 강 아래쪽으로 약2 km, 도심에서 그 두 배 거리에 있는 늑대인간 소나무(Werewolf Pine)는 만일 보름달 아래서 이리 모습으로 변하기 바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소나무 뿌리 사이를 네발로 기어 다니면, 사람이 이리가 된다고 믿어진다. 별로 유효하게 다양하지 못한 육체적 욕구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는 연인들이라면 얼마나 그들이 서로에게 잘 맞는 지를 알아보러 근처의 꿈의 계단(Stairway of Dreams)으로 향할 수 있다. 서로의 불행에 운수 나쁜 피해자라면 악마의 동굴(the Devil's Cave)에 잠시 들러 거기서 샘물을 한 모금을 마시면 놀라운 치료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마짜라차는 리차 북서쪽의 비제메(Vidzeme)지역 북부에 있는 살라차(Salaca) 강가에 있다. 비록 단선의 저속 기차이지만 하루에 한번 이 북쪽 마을까지 오는 리가와 연결되는 교외선 철도상에 있다.



아글로나 바실리차(Aglona Basilica)

아글로나 바실리차는 라트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이며 건국이래 로만카톨릭의 제일 중요한 성당이다. 이 교회는 1699년에 건축되었으나 1993년 교황 요한 파울 2세의 방문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안뜰에 둘러싸여 버렸다. 바실리차는 라트갈레(Latgale) 고지의 서부지역을 가로지르는 다우가프필스-레젝크네(Daugavpils-Rezekne) 사이의 주도로 상에 있는 아글로나 마을에서 북으로 8km에 있다. 이 지역에 가려면 자동차나 자전거 심지어 카누로 가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다. 다우가프필스에서 아글로나로 가는 버스 편은 아주 드물다.




레저스포츠

가우야계곡은 동계스포츠의 중심지로 시굴다에 봅스레이 경기장이 있고 발미에라(Valmiera)에는스키점프대가 있다. 리가에 있는 야외스케이트장은 기온이 영하 3도 이하로 내려가면 개장한다. 카누타기는 가우야, 살라차, 아바파(Abava) 등의 강과 라트갈레 호수지역이 매우 인기가 있다. 가우야 국립공원은 시굴다에서 조직하는 승마유람을 하면서 돌아볼 수 있다. 개인회사들이 리가의 남쪽 20km에 있는 발도네 (Baldone)에서부터 안내자를 동반하는 조류관찰여행을 제공한다.




라트비아로 가는 방법(항공 및 기타 이동수단)

국영항공사인 발틱에어(Air Baltic)는 스칸디나비아항공(SAS)과 협력관계이며, 리가와 코펜하겐, 프랑크푸르트, 제네바, 함부르그, 헬싱키, 키에프, 런던, 민스크, 모스크바, 스톡홀름, 탈린, 빌니우스, 바르샤바 등지를 연결한다. 리가와 북미,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간에 직항 편은 없다. 라트비아는 아직까지 받지않는 출국세를 언젠가 받아낼 것을 생각만 하고 있지만 일단 관광객이 몰려온다면덴마크,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에서는 리가까지 직행버스로 갈 수 있다. 기차여행을 좋아하다면 베를린-상페테스부르그 노선이 라트비아의 남동부 다우가프필스 를 통과하므로 이용할 수 있다. 또 리가와 모스크바, 상페테스부르그, 민스크 사이에 기차편이 있고, 다우가프필스와 헤르니피치(Chernivtsi)도 기차로 연결된다. 만일 바다공기를 마시고 싶다면 독일의 트라베뮌드(Travemünd),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슬리테(Slite), 에스토니아의 사아레마아(Saaremaa)섬에 있는 로우마싸아레(Roomassaare) 등에서 리가로 가는 직항 페리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국내 교통편

리가공항은 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14km에 있는 유르말라에 있고 버스나 택시로 연결된다.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로 가는 교통편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버스와 그 보다는 적지만 기차로 에스토니아의 거의 모든 지역에 갈 수는 있다. 버스, 기차 모두 값은 싸지만 느리다. 리가에는 광범위한 도심전차, 트롤리(무궤도버스), 버스로 연결된 포괄적인 교통망이 있다.주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거리가 대단히 멀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와 자전거를 이용하는 여행이 라트비아에서는 인기가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대여 회사는 리가와 공항에 사무소를 갖고 있다. 자동차운전은 우측통행이며, 주요 도로를 따라 24시간 영업하는 주유소들이 있다. 9일 동안 동부 라트비아의 비제메와 동부의 라트갈레를 자전거로 순회하고, 3일을 리가와 그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을 라트비아 여행자클럽을 통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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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여행] 핀란드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밤이 무척이나 길고 긴 핀란드에서, 실내에 움츠리고 앉아 보드카를 한 두잔 마시는 것 이외에도 할 일은 무척 많다. 얼어붙은 드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스키를 탈 수도 있고 여행의 노독을 풀기 위해 향기로운 자작나무 가지로 가볍게 몸을 두드리며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백야를 볼 수 있는 몇 달 동안, 투르크군도(Turku archipelago)와 올란드섬 ( land Islands)을 포함한 해안 지방에서 요트타기와 낚시하기는 더 없이 좋다. 유럽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자연을 지닌 내륙지방은 매년 수많은 트렉커들이 찾아오는 곳이다.남쪽의 수도 헬싱키(Helsinki)에는 30여 개의 갤러리와 박물관들이 있으며, 북쪽에는 싼타 클로스가 일년 중 364일을 쉬고 있다. 순록투어나 쇄빙선 크루즈를 즐기며, 자정에 골프를 칠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 또 어디 있겠는가?



통계 자료

국명: 핀란드(Finland)

면적: 338,000 평방km

인구: 500만 명

수도: 헬싱키 (Helsinki - 인구891,000 )

인종: 98% 핀족, 0. 7% 사미족, 집시

언어: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영어가 널리 통용된다.)

종교; 루터교와 러시아정교

정체: 민주주의 공화국



지리 및 기후 + 핀란드 지도



338,000 평방km의 면적을 가진 핀란드는 유럽에서 7번째로 큰 나라이다.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하며 이들 나라와의 국경선은1269km에 달하고, 노르웨이의 북극지방과 716km, 스웨덴 북서쪽과는 586km의 국경선을 이룬다. 핀란드만(The Gulf of Finland)은 남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Estonia) 를 구분 짓고 있다. 국토의 3분의 2는 삼림지대이며 그 나머지는 북극권이다. 후기빙하기에 형성된 호수들은 이 나라의 특징으로, 소택지와 습지를 포함하면 국토의 약 10%가 물로 덮여있는 셈이다. 핀란드에서 제일 높은 곳은 해발 1328m의 할티(Halti)이다. 활기가 넘치는 5월 말에서 9월 사이, 핀란드의 식물 종은 놀랄 만큼 다채롭다. 7월에 남부 일부 저지대 계곡들은 마치 정글과 같다. 수종은 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가 대부분이며, 가문비나무가 대표적인 수종인 낙엽수림의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핀란드 숲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털로 뒤덮인 큰 공모양의 동물은 갈색 불곰이다. 그 외의 포유류는 엘크, 여우, 스라소니, 나그네쥐, 고슴도치 등이 있으며, 핀란드 북쪽에는 순록이 많고 비버도 아주 흔하다. 멧닭, 딱따구리, 두루미, 새 먹이의 일종인 물수리 새 등을 포함하여 3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두 조류는 되 새와 버드나무 새이다. 핀란드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다. 남부는 1월과 2월에 섭씨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북부는 종종 섭씨 영하30도 이하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이 시기에는 하루의 대부분이 어두컴컴하다. 여름이 다시 돌아와 백야가 진가를 발휘하게 되면, 북쪽은 섭씨 약 15, 남쪽은 섭씨 20도 정도가 된다 (섭씨 30도를 넘을 수도 있지만)




역사

핀란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일 만 년 전 빙하기 말기부터이다. 핀란드인 조상들은 기원 훨씬 전 발틱 해안 북부에 도달하였는데, 그 이전에 북 러시아의 절반을 지배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킹시대 말, 스웨덴 무역상과 우두머리들은 발틱지역 전역으로 그들의 관심을 넓혔다. 수세기 동안 프로테스탄트의 스웨덴제국과 동방정교인 러시아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있었던 핀란드는, 12세기부터 1809년까지 7세기 동안은 스웨덴에 속해 있었다.러시아와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핀란드 전역은 황폐화되고 심한 기근을 겪는다. 1696년부터 1697년까지 1년 사이에 핀란드인의 3분의 1이 기근으로 죽었다. 러시아에 항거하는 격렬한 전쟁으로 1700년대는 점철되었고, 1809년 결국 러시아에 패하고 만다. 19세기 후반에 밀어닥친 민족주의에 힘입어 핀란드는 대공국 (Grand Duchy)이 되어 크게 자율성을 얻지만, 새로운 억압과 러시아화 정책을 겪어야 했고, 이는 독립을 향한 의지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 전제군주제의 몰락과 1917년 사회주의혁명의 영향으로 핀란드상원은 1917 12 6일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지를 받던 적색당과 독일을 모범으로 삼는 민족주의자들의 백색당이 격돌하는 등 부도덕한 내부폭력이 들끓게 되었다. 108일간 끌었던 처참한 시민전쟁은 3만 명 가까운 핀란드인을 동족의 손에 죽게 만들었다. 백색당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약해진 독일은 신뢰를 잃어 더 이상 정치의 모범이 될 수 없었고 소련과의 관계는 곧 정상화되었다. 정치적인 해결은 시민전쟁의 상처를 다소 치유할 수 있었지만, 평화시대에 있었던 대학살에 관한 후문은 어두운 핀란드역사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1930년대 초에는 반공 폭동이 빈번하였고, 1932년 불가침조약 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련과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하였다. 소련 방위에 대한 관심이 결국은 핀란드 카렐리안 지역에서 일어난 1932년 겨울전쟁 (Winter War)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달 동안 핀란드는 용감히 싸웠지만, 결국 카렐리아 (Karelia) 일부와 그 인근 섬 몇 군데를 잃게 되었다. 서방 연합군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핀란드는 마침내 독일을 향해 원조를 청했고, 18세기 이래로 러시아에 속해있던 일부 지방을 포함하여 카렐리아를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1944년 여름 러시아 군대가 대규모 반격을 감행했을 때, 핀란드는 화평을 청하게 된다. 1945년 봄 전면적인 평화가 올 때까지 핀란드는 라플란드(Lapland )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참혹한 전쟁을 치르게 된다. 핀란드는 전쟁으로 심각한 군사적 피해는 물론 소련이 요구하는 배상금 때문에 경제적인 재앙을 겪게 되었다. 국력이 약해진 핀란드는 소련과의 관계에서 카렐리안 협부(Karelian Isthmus)를 양도하고 소련의 국경선 방위정책을 인정하는 등 새로운 노선을 택하게 된다. 우르호 케꼬넨 (Urho Kekkonen) 대통령은 재임25년 동안(1956-81) 현명하게 균형 잡힌 정책을 펼쳤다. 그는 국내에서 강한 권력을 유지하였고 동쪽의 큰 곰(소련)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스칸디나비아 형제국들과 유대를 강화하려고 애썼다.소련의 붕괴로 핀란드는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으로 자유시장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핀란드는 1980년대 후반 경기침체를 겪었고, 설상가상으로 밀접한 경제관계를 가졌던 채무국 소련의 붕괴는 큰 타격을 가져왔다. 핀란드의 관대한 사회보장 정책은 급격한 실업률 상승을 가져와 정부재정에 심각한 압박을 가했다. 1990년대 과열되었던 핀란드 경제는 불안정한 화폐가치로 냉각기를 거치게 되어 화폐가치가 약 25% 정도 떨어진다. 1994년 후반 핀란드는 EU가입을 투표로 정하고 1995년 회원국이 된다. 1995년 선거에서 사회민주연합당이 우파연합을 밀어내었다. 2000 2월 좌파성향의 타르야 할로넨 (Tarja Halonen.)이 최초의 여자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712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6,602

연성장률: 0.2%

인플레이션: 1.2%

주요생산품: 금속 및 기계장비, 제지

주요무역국: EU, 미국, 러시아



문화


공공 건물, 도심, 가구 등에서 볼 수 있는 알바르 알토 (Alvar Aalto)의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지만, 무민 나라(the Moominland)의 저자 토베 얀손 (Tove Jansson)이 아마도 가장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현대 핀란드인일 것이다. 위대한 현대작곡가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는 러시아 압제에 굴하지 않았던 핀란드 국민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가장 핀란드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시벨리우스와 함께, 전래민요 엘리아스 뢴로트(Elias L nnrot)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카렐리아즘에 깊은 영향을 받은 민족주의 화가 아크셀리 갈렌 카렐라 (Akseli Gall n-Kallela)는 민족서사시인 칼레발라(Kalevala) 1830년대 편찬하였는데, 창조신화와 선과 악이 싸우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칼레발라는 서사적 신화이다. 알레크시스 키비 (Aleksis Kivi), 문명과 떨어져 숲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형제 이야기를 다룬 일곱 형제(Seven Borthers)로 핀란드 현대문학의 초석을 다졌다 핀란드어는 우랄어로 핀노-우그리아어족에 속한다. 에스토니아어, 카렐리아어와 가깝고, 사모에드 (Samoyed)와 볼가 (Volga)분지에서 쓰이는 언어와 어원이 같다. 핀란드어는, 핀노-우그리아어 중 가장 널리 쓰이는 헝가리어와는 거의 유사점이 없다. 인구의 6%가 스웨덴어를 사용하며, 핀란드는 공식적으로 이중 언어국이다. 핀란드-스웨덴어(Finlandssvenska)는 스웨덴에서 쓰이는 말과 매우 유사하다. 핀란드음식은 스웨덴과 러시아요리를 기본으로 하여 다양하게 변형되었고 지역성이 강하다. 감자는 여러 가지 생선이나 고기소스에 따라 나오는 기본음식이다. 일부 전통음식은 사냥한 짐승이나 새를 요리하는데, 뇌조, 순록스튜, 훈제연어, 절인 연어 등이다. 강한 맥주, 와인, 주류는 허가 받은 술집이나 레스토랑에서 팔고, 국가의 주류 판매망인 알코(Alko)에서 살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엄격한 주류 수입규제와 함께 주류가격을 엄청나게 비싸게 하며 수익성 좋은 주요 사업으로 만들게 했다. 핀란드인의 유머는 독주를 즐기는 지방사람과 그들의 믿기 어려운 과묵함을 연관시켜 종종 농담거리로 만든다. 핀란드 금욕주의 영웅인 페까 (Pekka)와 토이보넨 (Toivonen.)에 관한 아래의 농담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 어느 날 페까와 토이보넨이 오랜만에 만나서 숲 속으로 사우나를 하러 간다. 그들은 두어 시간 동안 보드카를 마신다. 페까는 토이보넨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다. 토이보넨은 아무 말 않고 두 시간 동안 또 계속 술만 마셨다. 그리고 나서 그가 천천히 대답하길, "우리가 여기 실없이 떠들러 왔는가, 술 마시러 왔는가?"-



축제 및 행사

하지(Juhannus)는 핀란드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이다. 사람들은 일년 중 가장 낮이 긴 날을 축하하기 위해 도심을 떠나 여름별장으로 간다. 모닥불을 피우고 호숫가에서 흥겹게 수영하며 뱃놀이를 한다. 엄청나게 술을 마시는 것 또한 하지 축제의 한 특징이다. 7월의 포리째즈축제(Pori Jazz Festival)는 가장 인기 있는 째즈 축제이지만 중세기의 성 올라빈린나 (Olavinnlinna Castle)에서 열리는 사보린나오페라축제(Savonlinna Opera Festival)가 가장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몇 축제는 대부분 먼 지역에서 열린다. 예를 들면 쿠모(Kuhmo)의 실내악축제, 코꼴라(Kokkola) 근처 카우스티넨 (Kaustinen)의 민속음악제 등이다. 하지의 주말에 열리는 록 페스티은큰 연례행사이며 가장 오래된 축제는 7월 투르크에서 열리는 루이스록(Ruisrock)축제이다. 난탈리 (Naantali)와 한코 (Hanko)마을에는, 가장 게으른 사람을 뽑아 바다에 던지는 7 27일 잠꾸러기의 날(Sleepyhead Day)이 있으며, 가장 생소한 행사로는 해마다 7월 손카예르비(Sonkaj rvi.)에서 열리는 아내를 업고 뛰는 경기(wife-carrying championship)이다.



여행자 정보

비자: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 간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 미끄러운 보도에 주의. 버섯을 딸 때는 식용인지 반드시 확인할 것.

시차 : 한국이 핀란드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220볼트, 50헤르츠

도량형: 미터제 사용(도량형환산표-영문)

외래관광객: 250만명



경비 및 환전

통화: 마르까 (Markka)


일반경비(핀란드 물가)

저렴한 현지식사: US$6-8

중급레스토랑 식사: US$16-22

고급레스토랑 식사: US$25 이상

저렴한 숙소: US$25-30

중급 숙소: US$40-90

고급 숙소: US$100 이상


경기부진을 겪기 바로 직전인 1990년 공식 보고에는,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로 발표되었었다. 그 이후로 마르까의 가치가 상당히 떨어져 훨씬 견딜 만해졌다. 최저 여행경비는 하루 US$25정도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숙박은 호스텔에서, 식사는 스스로 해 먹고, 주류는 물론 음료경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약간 비용을 늘려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싶다면 하루 US$50정도 예산해 보자. 좀 즐긴다 싶은 기분을 느끼려면 하루 US$100정도는 필요하다. 욕실이 딸린 숙소, 택시, 레스토랑에서의 하루 한 두 번 식사가 포함될 수 있다.핀란드의 세 개 국립은행 지점이 여러 곳에 있지만 개인 환전소 보다 약간 비싼 수수료를 부가한다. 여행자수표는 환전료가 비싸다. 일반적으로 나라전역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Visa Plus카드로는 자동현금인출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팁은 일반적으로 필요 없고, 봉사료는 레스토랑 가격표에 보통 포함되어 있다. 어떤 상점에서도 가격흥정은 하지 않지만, 트레킹 장비나 중고 자전거를 구할 때 혹시 말을 잘하면 10%정도의 할인은 받을 수 있다.



여행 시기

일년 중 어느 때라도 핀란드여행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 박물관과 갤러리는 연중 개방된다. 추운 겨울에도 여름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으나, 여름과 5월에서 9월 사이의 따뜻한 시기가 여행의 최적기이다. 여름은 날씨가 따뜻하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백야가 있는 시기이다. 북극권의 북쪽 겨울은 기묘한 푸른 빛과 서서히 젖어 드는 우울이 으스스하게 합쳐지는 때이다. 11월부터 눈이 내리지만 늦은 겨울까지도 눈이 질척거리게 남아 있다. 가장 추운 달인 2월에는 스키타기에 그리 좋지 않고, 반면 6월까지는 라플란드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주요 여행지

헬싱키(Helsinki)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문화, 재정, 경제활동의 중심지이다. 푸른 공원과 수로, 활기찬 시장광장 위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닷바람, 많은 노천카페 등이 있는 헬싱키는 여름에 여행하면 좋다. 고층건물도 없고 19세기 풍의 건물에 둘러싸인 시장광장 풍경은 소도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반도에 세워진 헬싱키에서 당일로 소풍 가기에 최적의 장소는 핀란드 만에 있는 수오멘린나 (Suomenlinna)섬으로, 이 곳까지 페리가 연결된다.헬싱키에는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이 몇 군데 있다. 국립미술재단의 아테네움 (Ateneum)이 주요 미술관으로 19세기 이후 핀란드 및 국제적 미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시 중심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사미족과 피노-우그리아(Finno-Ugric) 민속유물을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립박물관 천장의, 칼레바라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프레스코화를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래된 화물열차 12대가 있는 라이티올리케넨네 박물관(Raitioliikennemuseo)은 흥미로운 전차박물관이다. 낡은 창고에 위치한 이 곳은 수 십 년 전 핀란드 거리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단단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암석교회(Rock Church)는 알비노 성가를 듣고자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다. 시의 서쪽으로 있는 기숙사 마을 에스푸(Espoo)에는 유명한 핀란드화가 갈렌 칼렐라(Gallen-Kallela)의 아름다운 화실이 있다. 헬싱키와 수오멘린나섬 사이에는 페리와 모터보트가 운행되는데, 이 섬에서는 거대한 요새의 옛터를 산책하거나 몇 개의 박물관을 구경할 수 있다. 스웨덴 전성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요새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에렌스베르드박물관 (Ehrensv rd Museum)이 가장 볼만하다. 요새 양쪽에 있는 벙커와 동굴 속에서 몸을 비집고 나오기 위해서는 손전등이 필요한데 마치 소년이 되어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것이다.헬싱키 시내중심에는 배낭족 호스텔이 많이 있지만, 여름철에는 야외에서 침낭을 풀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햄버거레스토랑, 케밥, 구이 등이 시내에 많지만 기름진 음식을 싫어한다면 시내 중심가 남쪽이나 시장광장 주변 카페들로 향해보자. 연극은 핀란드어로 공연되므로 여행자들은 오페라와 발레를 더 좋아할 것이다. 헬싱키 시내에는 한밤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괜찮은 술집과 클럽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투르쿠(Turku)



최초의 수도였던 투르크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수세기에 걸친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소실되었고, 1812년 대 화재는 결국 수도를 헬싱키로 옮기게 만들었다. 오늘날 투르쿠에는 훌륭한 관광요소가 많이 있어 인기 있는 여행지로 꼽힌다. 가끔 지역주민들은, 투르쿠가 핀란드 여러 지역으로 문화를 전파했지만 다시 돌려 받지는 못했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화재와 더불어 개발업자들의 발자취가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파괴해버려, 이 중세 풍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8세기 지역은 루오스타린메키(Luostarinm ki) 뿐이다. 여름이면 이곳의 오래된 목조건물에서 예술가들이 작품활동을 한다. 북쪽에 있는 중세기 투르쿠 대성당(Turku Cathedral)은 핀란드 복음-루터파 교회(Evangelical-Lutheran Church)의 국가적 성지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교회에는 박물관이 있고 매일 개방된다.1280년에 세워진 투르쿠 성은 핀란드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사적 건물이다. 이성에는 흥미로운 박물관이 있는데, 각 방들은 특정 세기나 시대를 연상시키는 장식들로 꾸며져 있다. 핀란드 남부해안에 위치한 투르쿠는 스웨덴을 통해 입국하면 가장 편리하게 갈 수 있는 도시이다.




올란드 (AÅland)



지역 자체의 고유한 깃발과 문화를 가진 올란드 주는 약 6400개의 자치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몇 개의 스웨덴 방언을 사용하는 올란드 주민들은 거의 핀란드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아름다운 섬은 자전거여행, 캠핑, 통나무집에서 휴가를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이고, 민속춤, 5월제의 기둥 장식, 작은 마을의 매력을 감상하며 섬마을의 다채로운 문화를 경험하기에도 아주 좋다.본 섬의 동쪽 끝에는 가장 흥미로운 자치구역인 순드(Sund)가 있는데, 그 곳의 카스텔홀름(Kastelholm)성이 인상적이다. 16세기와 17세기 그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성의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록에는 138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언급되 있다. 또한 근처에 있는 얀 카를스고덴(Jan Karlsg rden) 야외박물관도 빠트릴 수 없는 여행지로, 핀란드에서 하지 축제를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보마르순드(Bomarsund)요새 폐허지는 올란드와 나머지 핀란드 지역이 러시아지배에 있었던 때를 상기시키는 곳이다. 1842년 완성된 주 요새는 25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다. 페리가 정기적으로 올란드와 스웨덴 및 핀란드본토를 연결한다. 여러 섬을 여행하고 싶으면 섬 사이를 운항하는 무료 페리를 이용할 수 있다. 순드는 버스로 갈 수 있지만, 자전거가 더 매력적인 교통편이다.



라우마 (Rauma)

라우마 구 시가지는,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서 핀란드의 첫 번째 지역으로 등록된 곳이다. 북구 나라에서 보존되어 있는 것 중에는 가장 큰 목조마을이지만 라우마의 구시가지는 박물관이 아니라, 많은 공예가, 레이스 만드는 사람, 금세공인 등이 18, 19세기에 세워진 작은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 생활의 터전이다. 흥미 있는 house museum이 몇 있고, 루터파 개혁가들이 1538년 수도자들을 몰아낼 때까지 카톨릭 수도원으로 사용한 15세기 프란체스코 교회도 있다. 구 시가지의 중심인 시장광장은 오늘날까지 상업활동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상쾌하게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서서 마시는 pystcaffe를 한번 방문해 보자. 혼란스런 피노-우그리어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말소리를 듣는다면 라우마의 또 다른 특징이 발견된 것이다. 라우마의 방언은 전혀 별개의 언어처럼 들린다. 핀란드 남서쪽에 위치한 라우마는 헬싱키에서 버스로 4시간 조금 더 걸린다.



올라빈린나 성(Olavinlinna Castle)



올라빈린나성은 아름다운 사보린나 (Savonlinna)호수지역에 있는 주요 관광지이다. 1475년에 세워진 올라빈린나성은 스웨덴-핀란드 제국의 동부변경 방어가 그 목적이었다. 성의 이름은 10세기 카톨릭 성인인 노르웨이인 올로프(Olof)에서 유래한 것이다. 18세기 초 이래로 약200년 동안 러시아가 성을 점령하면서 붉은 탑과 성벽 안에 노란 건물을 증축하였다. 성안에 있는 작은 두 박물관에는 성 자체의 역사를 알려 주는 전시물과 함께 러시아 정교의 보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가이드 없이 성을 구경할 수는 없지만 일 년 내내 매 시간 가이드 투어가 있다. 성은 사보린나의 동쪽 마을에 위치하며, 헬싱키에서 비행기, 기차, 버스 등으로 갈 수 있다. 성으로 연결된 다리는 배가 지나갈 때 들어 올려진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크리스티네스타드 (Kristinestad)

1649년에 세워져 도시 자체에 옛 풍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목가적인 크리스티네스타드는 아주 흥미로운 곳이다. 고양이를 채찍질하는 사람의 골목길(Catwhipper's Lane)로 알려진 229cm폭의 좁은 이 길은 핀란드에서도 가장 좁은 길이다. 이 거리 이름은 1880년대 페스트의 전염을 방지하고자 고양이 잡는 사람을 고용하여 병든 고양이를 죽인 데서 연유한 것이다. 시내 중심에는 18세기에 세워진 울리카 엘레오노라(Ulrika Eleonora's)교회가 있다. 천장에는 봉헌하는 배가 달려있어 전형적인 해안 교회를 나타내고 있다. 해양박물관에는 한 늙은 선장의, 바다와 관련된 개인 수집품이 소장되어있다. 크리스티네스타드는 핀란드 서부해안에 위치하며 포리(Pori), 바사(Vaasa), 템페레(Tempere)에서 버스가 연결된다.



이나리(Inari)



아름다운 호숫가에 자리잡은 이나리는, 살아있는 사미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며 북부 라플란드에서 가장 흥미 있는 마을이다. 사멜라이스 야외박물관(Saamelaismuseo)에서는 공예품, 순록농장, 핀란드 원주민의 고기잡이 전통 등을 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7km의 산책로가 나오는데, 18세기 피엘파예르벤 (Pielpaj rven)숲속 교회로 가는 길이며, .교회 근처엔 오두막집과 사우나가 있다. 여름에는 보트를 타고 아름다운 우꼬(Ukko)섬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곳은 이나리 어부들을 위한 고대의 제례장소로 유명하다. 마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순록농장이 있지만, 이 지역에서 4천 여 마리의 순록을 보면 굳이 농장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나리는 이나리 호수 옆, 동부 라플란드의 북극권도로(Arctic Road)변에 있다.



렘멘요키 국립공원(Lemmenjoki National Park)



핀란드에서 제일 큰 국립공원 렘멘요키에서는, 라플란드에서 가장 신나는 트레킹을 즐길 수 있으며, 황량한 원시의 강들과 극지방의 경치를 볼 수 있다. 렘멘요키강의 급경사면은 라바다스쾬에스(Ravadask ng s)폭포를 보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며, 또 폭포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는 머물 수 있는 오두막도 있다(공원에는 무료로 머물 수 있는 등산객용 오두막이 몇 채 있다). 대부분의 트레킹 노선은 렘멘요키에서 바스코요키(Vaskojoki)강 사이의 상당히 좁은 곳에 있다. 좀 더 힘든 트레킹을 즐기려면 서점에서 렘멘요키의 10만분의 1 지형도를 구비해 가야 할 것이다. 이 곳을 가기 위해서는 이나리(Inari)에서 출발하는 우편버스나 쿨탈라(Kultala)에서 수상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콜로베시 국립공원(Kolovesi National Park)

1990년에 세워진 이 아름다운 국립공원은, 잘 보존된 인상적인 소나무 숲이 있는 몇 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은 언덕, 암석절벽, 동굴, 선사시대의 암석화 등을 볼 수 있다. 대리석무늬 물개(marble seals)인 사이마 (Saimaa)가 이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공원 내에서는 모터보트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환상적인 경치를 보려면 노를 저어가는 보트가 유일한 수단이다. 최고의 장소를 찾으려면 비용이 들더라도 가이드가 필요하다. 10쌍의 노를 젖는 옛날식 긴 교회 보트 (church longboat)를 타고 단체로 여행한다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콜로베시국립공원은 동부 사보(Savo)에 있으며, 사보린나(Savonlinna)에서 버스와 페리가 운행된다.




레저스포츠

산책, 사이클, 카누, 캠핑 등은 거의 핀란드 전역에서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노르딕스키가 대중적이며 다양한 난이도의 크로스-컨트리 코스도 있다. 활강(Downhill) 스키를 즐기는 사람은 라플란드나 북부카렐리아의 콜리(Koli), 쿠사모(Kuusamo)의 루카(Ruka)같은 휴양지로 간다. 하이킹이나 트레킹은 6(남부에서는 5)에서 9월까지가 최적기이다. 산속의 무료 오두막집이 북쪽 오솔길을 따라 있는데, 대부분은 문이 잠겨 있지 있고 기본적인 침상, 요리시설, 건조보관식품, 마른 장작 한 더미, 심지어 산 속에서도 통화가 가능한 전화 등이 있다. 사용 후 언제든지 원상으로 정돈하고 장작을 보충하고 깨끗이 청소해 놔야 한다. 가장 쉬운 하이킹을 하려면 카렐리아의 루나(Ruunaa) 지역과 국립공원을 가 보는 것이 좋다. 카르훈키에로스 (Karhunkierros)와 렘멘요키의코스는 그 경관이 대단히 아름답다.보트는 바다와 호수 모두에서 탈 수 있고, 최적의 장소는 투르크군도이지만 항해하기가 힘들다. 카누타기는 호수가 가장 좋지만 여름에는 특히 투룬마 및 올란드군도가 좋다. 라플란드와 북부카렐리아에는 험한 급류가 있다



핀란드로 가는 길

전세계에서 핀란드 행 항공편은 편리하게 되어 있다. 대부분 주요 유럽도시와 뉴욕, 샌프란시코, 카이로, 방콕, 싱가포르, 북경, 시드니, 동경에서 Finnair SAS가 헬싱키행 비행편을 운행한다. 22개의 다른 나라 항공사들도 헬싱키로 정기 운항한다. 출국세는 없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 핀란드로 들어가는 버스나 기차는 자주 있다. 러시아를 통해 입국하면 약간의 성가신 문제가 있지만, 국경통과가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전형적인 관광입국(예를 들면 헬싱키- 상트 페테스부르그 같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국경을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러시아 비자를 확인해 보자. 러시아의 전면적인 혼란상황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인기가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준다. 모스크바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표는 헬싱키에서 구할 수 있다. 할인항공권을 제시하며 다가오는 사람은 거의 사기꾼이므로 주의하도록. 스웨덴, 에스토니아, 독일 등에서 헬싱키, 투르크, 바사, 피에타르사리 (Pietarsaari.) 등으로 운항하는 발틱페리가 있다. 페리는 장거리 항로에 적합하게 잘 꾸며져 있어 호텔이나 쇼핑가와 다름없다. 사실 배 삯보다는 면세점 수입으로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국내 교통편

핀란드는 국내철도, 버스, 항공노선 망이 최상의 수준이다. 20여 개의 도시는 물론 위도 67도인 북쪽까지도 항공편이 매일 있다. 기차는 더 효율적으로 도시간 노선을 따라 북극권까지 운행하며, 버스는 내 외국인들에게 장거리여행을 위한 기본적인 교통수단이다. 비포장도로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산길을 어쩌다 만날 수도 있지만, 시 중심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나 고속도로망은 잘 되어 있다. 핀란드에서 운전하려면 국제면허증은 필요 없지만, 운전면허증은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운전자는 우측통행이고 헤드라이트를 항상 켜고 운전해야 한다. 자전거는 대부분 도심에서 대여할 수 있으며 여름철에는 추천할 만한 교통수단이다. 호수나 강에는 여름 내내 페리가 운행하므로 도보나 자전거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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