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독일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독일의 부유함은 겉모습에도 잘 드러나 보인다. 잘 치장된 큰 도시, 화려한 추수행사들, 풍부한 예술과 문화, 방대한 숲만큼이나 다양한 생물 등.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독일의 역사는 아직도 무겁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 곳 여행자들에게도 이 나라의 복잡한 과거와 오늘날 그 역사의 영향력을 집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통계 자료

정식명칭: 독일연방 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

면적 : 357,000 sq km

인구: 8,100만명

수도 : 베를린( Berlin (인구: 350 만명)

) 인종: 다수 백인과 소수 터키인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난민의 대부분이 독일에 흡수되었다.

언어 : 독일어

종교 : 90% 기독교인이며, 200만 여명의 이슬람교인과 30,000여명의 유대교인(유태인 학살 이전에는 50만명에 이르렀다)이 있다.

정체 : 연방 공화국




지리 및 기후

독일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특징적인 몇 개의 지형에 의해 나뉘어진다. 네덜란드에서 폴란드로 이어지는 평평한 북부 저지대는 북쪽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북부독일과 남부를 가르는 중앙고지대는 하르쯔산맥과 바바리아 삼림에 깊은 틈을 만들어 놓은 라인 단층괴로부터 뻗어나와 독일의 심장지대를 이룬다. 라인강과 마인강은 이 지역 남서부를 지나는데, 내륙으로 이어주는 수상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석탄도 풍부했기에 이 지역은 독일에서 최초로 산업화되었다.독일의 알프스는 바이에른 지역에 위치하며, 오스트리아 접경지대를 따라 빙하시대에 형성된 콘수탄체호수로부터 독일의 남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베르흐테스가덴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의 산은 남쪽지방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2000m가 넘는다. 알프스 산허리에서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2966m)까지 환상적인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독일은 인구밀도가 높고 산업화된 나라로 자연주의자들을 위한 파라다이스는 분명 아니다. 국토의 3분의 1은 경작지이며, 조금 멀리 여행할 때는 도시를 거치지 않고 여행할 수는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개발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야생생물을 위한 터전은 별로 없다(조류관찰은 물론). 대부분 숲도 독일방식대로 잘 정리 되어있다. 동남쪽 지대의 바바리아 숲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산악 숲 지대이며, 블랙 포리스트는 그래도 야생의 기운이 남아 있는 곳이다. 숲에 사는 동물로는 야생돼지와 사슴, 여우 등이 있으나 우루루 떼를 지어 다닐 정도는 아니다. 독일의 기후는 지역적인 차이는 보이지만 극단적인 변화는 없는 편이다. 가장 쾌적한 때는 5월에서 10월 사이로, 여름철은 북부지방에서도 반팔과 반바지 차림을 할 수 있다. 가을은 독일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로, 숲 지대는 온통 황금빛으로 물드는 때이고, 관광인파와 숨막히는 더위로부터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참 돌아다니다 보면 아직은 갈증을 느낄 시기이므로 이 때는 독일의 맥주 한잔이 어느 때보다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겨울은 고원지대를 제외하고는 습한 편이다. 특히 눈이 내려 금방 녹아버리는 남쪽지대는 더하다.




역사

역사적으로 보면 독일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전 유럽의 역사를 좌지우지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독일은 국내 분쟁과 외국 정복자의 힘에 눌려 불완전한 독립공국과 도시 국가형태의 혼합 상태로 존재해 왔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브란덴부르크 통치자가 이룩한 프러시아가 들어섰고 1871년에야 비로소 독일은 하나의 통일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많은 중요한 사건들은 독일인들이 자국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도록 하였다.



고대&중세 시대

라인강 서쪽지방과 마인강 남쪽지방은 로마제국의 영토였지만, 그 너머에 있던 야심만만한 용병부족들은 로마도 결코 진압할 수 없었다. 로마제국이 쇠잔해지면서 이 부족들은 작은 왕국들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유럽지방으로 뻗어 나갔다. 아헨국 왕족출신 프랑크족 정복자, 촬르마네가 대부분의 기독교권 유럽을 포함해 거대한 제국을 이룩했다. 그러나 814년 그가 죽음으로써 제국은 분열되었다.AD962년 오토1(오토대제)가 촬르마네 제국 동쪽지방에 <신성 로마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는 오늘날의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베네룩스를 포함하는 영토였다. <신성 로마>란 용어는 남아있던 로마 제국의 위엄을 계승하고자 붙여진 것이다.비엔나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는 13세기 신성 로마제국을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쯤에 이르러 제국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제국은 합스부르크 황제에게는 말로만 충성을 다짐하며 지방 군주들이 실세를 잡았던 도시국가들의 집합체 정도였다. 뤼벡을 중심으로 독일과 발틱 도시국가들이 연합한 한자 동맹이 1358년에 만들어지자 북부독일에 통합의 기운이 깃들었다(570).



종교 개혁

에르푸르트의 수도원출신 학자 마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그에 있는 한 교회 문에 95개의 정정사항을 붙인 후, 유럽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루터는 소위 죄를 저지른 자에게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면서 처벌을 면해주는 교회의 돈벌이 사업을 반대하였다. 1521년 교회는 그를 비난하였고 그는 아이젠나흐에 있는 바르트부르그성으로 숨었다. 그곳에서, 그는 희랍어로 쓰여있던 성경을 일상 생활에 사용되는 독일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구텐베르그가 발명한 인쇄기술로 인쇄되어 대중에게 읽히게 된 것이다.교회를 개혁하려는 루터의 노력은 상인들, 부유한 도시인들, 그리고 무었보다도 야심만만한 독일 왕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이런 기존교회에 대한 반항때문에 프로테스탄트 운동과 개혁이 일어났다.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평화협정으로 도시의 종교는 그 통치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선포되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로 불려지기 시작한 기존의 교회는 개혁 반박론으로 알려진 프로테스탄트교회 반대 캠페인을 폈다.



30년 전쟁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국가 사이의 긴장은 유럽 전역으로 발전되어 급기야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은 30년 전쟁(1618-48)으로 이어졌다. 독일은 유럽 권력 싸움의 전장이 되면서 인구의 3분의 1과 수많은 도시, 마을을 잃게 되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모든 지역은 황폐화 되었고, 이것을 복구시키는데는 수세기가 걸렸다.1648년 베스트팔리아(Westphalia) 평화협정으로 독일은 두 종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였고, 정치분쟁은 종식되었다. 독일어권 국가들은 신성 로마제국의 느슨한 토대 위에 독립적인 공국으로 남게되지만, 주요 영토들을 다른 국가에게 뺏기면서 계속 힘을 잃었다.



프러시아의 독일 통합

18세기는 베를린에 수도를 둔 프러시아 왕국이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로 발전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군인왕)와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2(프리드리히 대제)의 뛰어난 조직력으로 프러시아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를 넘어 동쪽으로 팽창했다.19세기 분열되어 있던 독일은 나폴레옹의 정복 대상이 된다. 1806년 아우스텔리츠(Austelitz)에서 패한 후 오스트리아 출신 황제 프란시스 2세는 신성 로마 황제직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강인한 독일 저항의 주무대인 프러시아는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무참히 패배한 후, 독일은 나폴레옹의 독일 침략 야망을 1813년 라이프찌히 전투에서 산산히 부수며 승리했다. 1815년 비엔나의회가 유럽의 국경선을 재정리하였을 때, 35개주로 구성된 독일연합이 신성 로마제국을 대체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총독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Klemens von Metternich)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의회를 이끌게 되었다. 독일 연합은 1830년과 1848년 유럽에서 일어난 자유혁명으로 분열되지만 오스트리아 궁정은 분열된 독일을 계속 지배했다. 프러시아의 잘 다듬어진 군사력과 시민정신이 마침내 이런 상태를 깨뜨려, 1866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철의 재상)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단숨에 북부독일을 합병시켜 나갔다. 1871년 프러시아가 프랑스에 승리를 거둔 후 남부독일의 카톨릭세력과 반프러시아 국가들은 비스마르크와 협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프러시아의 왕 빌헬름 1세는 독일 황제(카이저)가 된다.



1차 세계대전과 히틀러 등장

빌헬름 1세의 아들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를 1890년 추방시켜 버리지만, 이후 급속히 성장하는 독일의 정치적 이슈를 카이저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국, 러시아, 프랑스와의 긴장상태는 점점 심해지고, 마침내 1914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그 당시 독일의 유일한 동맹국은 힘이 약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뿐이었다. 전쟁으로 독일의 힘은 더 빨리 약화되었고 1918년 독일은 평화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저는 폐위되어 네덜란드로 도망치고, 전쟁과 상실감이 증가하면서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쯤 나라에 대한 분노가 터져 버리고 만다. 베를린에 기지를 둔 스파르타쿠스 동맹이 주축이 되어 전면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이 봉기하지만, 그 지도자 칼 리베크네흐트(Karl Liebknacht)와 로자 룩셈부르그(Rosa Luxemburg)가 처형되면서 진압된다. 이어 바이마르공화국이 들어선다.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은 거대한 독일 영토를 잘라 버리고 엄청난 액수의 전쟁보상금을 부가한다. 프랑스와 벨기에가 계속적으로 보상을 요구하면서 라인강 지역을 점령했지만, 사실상 이를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계속된 물가인상과 비참한 경제환경 때문에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출연하게 되었다. 이들 중 한 명이 오스트리아출신의 독일 군인 아돌프 히틀러로, 그가 세운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 당(Nazi) 1923년 뮌헨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나 실패로 돌아간다. 이로 인해 히틀러는 9달간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그의 저서 <나의 투쟁- Mein Kampf>을 쓴다. 1929년 세계 경제공황은 특히 독일에 큰 영향을 미쳐 무수한 실업자, 파업과 거리의 시위를 야기시켰다. 에른스트 탤만이 이끌던 공산주의자당이 지지를 얻기도 하지만 부유한 자본가들은 나찌당을 지원하기 시작하고 경찰은 나찌당의 거리 시위대를 눈감아주게 되었다.나찌당은 일반 선거에서 힘을 더해가며 1933년 선거에서는 사회 민주주의당을 이기고 국회에 다수당으로 입성한다. 히틀러가 총독으로 임명되고, 다음해 그는 제3공화국이라고 부른(3공화국이란 앞선 신성 로마제국과 빌헬름 1세의 독일제국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국가 최고 통치자가 된다.



2차 세계대전과 독일 분단

1935년부터 독일은 고속도로 건설 같은 전략적인 공공사업을 벌이며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나갔다. 히틀러는 1936년 라인강 지역을 재점령하고, 1938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일부와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드디어 1939 9월 스탈린과 '양국이 동유럽에서 자유롭다'는 협정에 서명한 후, 히틀러는 폴란드를 공격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독일은 재빨리 유럽의 많은 영토를 침략하지만 1943년부터 늘어만 가는 막대한 손해를 보기 시작한다. 무차별적인 폭탄공격으로 독일의 중심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고, 인구의 10%가 줄어들게 되었다. 독일은 1945 5월 히틀러의 자살 이후 무조건 항복을 했다. 2차 세계대전에 일어난 최대의 비극은, 수백만의 유태인, 집시들이 역사상 최초로 집단 살해된 것이었다. 인종주의자 나찌당의 원리에 입각하여,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분류된 이 사람들을 유럽에서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수용소들이 세워졌다.얄타와 포츠담회의에서 연합군은, 독일을 26전 베르사이유조약에서 결정했던 것보다 4분의 1이나 축소해 국경을 재조정하였다. 동독에 살던 약 650만 독일 민족들이 이주 당하거나, 수 세기동안 살아온 동유럽에 있는 자신의 집을 빼았긴 채 독일로 쫓겨났다. 독일은 네 개의 점령지로 분할되었고 베를린에는 승리한 4개국이 연합하여 주둔하였다.소비에트 점령지에서는 사회주의연합당(SED) 1946년 선거에 승리하며 빠르게 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였다. 1948 6월 구소련은 독일의 서방 점령지와 베를린 사이의 모든 육로교통을 차단하였다. 이 때문에 서방연합군은 유명한 베를린 공중보급(Berlin Airlift)이란 군사작전을 펴면서 구소련이 1949 5, 봉쇄를 풀 때까지 서베를린 지역에 비행기로 물자를 공급해야했다. 1949 9월 독일연합공화국(BRD-구서독)이 서방지역에 들어섰고, 이에 대응해 다음달에는 구소련 주둔지에 독일민주공화국(DDR-구동독)이 베를린에 수도를 두며 형성되었다.



분단에서 통합까지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서방의 보호를 받으며 서독은 전후 미국으로부터 거대한 양의 자본을 받으면서 콘라트 아덴라우어의 지휘아래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동시에 동독은 구소련에 전쟁보상금으로 천억달러를 지불하며 거의 빈손으로 재건을 시작했다.서독의 경제적 우위는 비참한 동독의 숙련된 노동자들을 유혹하여 도망치게 했다. 동독은 이 사람들을 잃으면서 큰 타격을 받고 급기야 1961년에는 서베를린 둘레에 장벽을 쌓아 서독과의 국경을 봉쇄하기에 이른다. 냉전이 심화되면서 양 독일 진영의 TV와 라디오방송은 서로의 체재를 비난하는 방송을 부지런히 내보냈다.동독의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의 융통성있는 지도와 어울려, 서독의 오스트폴리티크(동독문제전담부)의 총독, 빌리 브란트는 두 독일 사이의 편안한 정치관계를 만들어 냈다. 1971년 구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독일에 주둔하던 4개국은 공식적으로 베를린의 분할을 인정하며 동의했다. 그러나 정작 서독은 많은 다른 서방국들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동독을 승인하지 않았다.비록 서독이 누리는 번영의 반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호네커의 정책은 동독에 높은 생활 수준을 창출했다. 1985 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구소련의 정권을 잡은 후로 동독 공산주의당은 구소련의 지지를 점차 잃게 되었다. 1989년 헝가리는 국경선 부근의 통제를 느슨히 하며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하는 것을 허락했다. 다른 동유럽국들과 마찬가지로 개혁을 요구하는 군중시위가 라이프찌히에서 일어났고, 곧 동독의 다른 도시로 퍼져 나갔다. 동독 정부는 헝가리로 여행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망명을 결심한 사람들은 프라하의 서독대사관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했다.고르바초프는 동독에 개혁을 종용했지만 호네커는 거절하였다. 사임한 호네커를 그의 보안 책임자였던 에곤 크랜쯔(Egon Krenz)가 대신했으나 동독을 구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크랜쯔는 자유선거를 약속했으나, 교활하게 11 9(나찌의 유태인 박해 수정일)을 선택하여 베를린 장벽을 열어야했다. 이 때문에 그날은 독일 공휴일로 축하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 지도권내의 부정부패가 밝혀지면서 크렌쯔와 그의 정치국은 한스 모드로우(Hans Modrow)가 이끄는 라이벌 개혁당 SED를 지지하며 권력을 내 주어야했다.평화와 인권보호 활동주의자들은 자유스런 사회주의적 동정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독내에서 오랫동안 반대세력의 주축이었다. 개혁을 선호하던 대중의 분위기는 갑자기 바뀌어 서독과의 완전한 통일을 원했다. 헬무트 콜이 이끄는 기독민주연합당(CDU)은 동독 통화를 1 1로 바꾸어주는 후한 환율을 적용하며 통일의 빠른 진전을 도모한다. 만약 1 1 환율이 아니었다면 동독화폐는 환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의 몰락을 직접 체험하게되는 시민층 반대세력과 아울러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의 끝으로 몰리며 소외감을 느낀다.경제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경제구조가 다른 양 체재를 급속히 통합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동독기업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나 동독의 신임 CPU수상 로트아르 드 마지에르 (Lothar de Mazi re) 1990 7 1일 통화통합을 결정한다. 콜 수상도 서독국민들에게 통일을 한다해도 세금을 올리는 일은 없을 거라며 안심시킨다. 그해 9월 동.서독과 연합군은 2 플러스 4 조약(Two-Plus-four Treaty)에 사인하고 전후 점령지 체재를 마감한다. 독일은 1945년 이후로 폴란드와 구소련에 합병된 영토를 받아들이고 동쪽 국경선을 승인한다. 1990 10 3일 독일민주공화국이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으로 합쳐진다. 콜수상이 이끄는 CPU 연합당이 1990 12 2일 전독일 선거에서 야당 사회당을 물리친다.



중간에 선 나라 독일

많은 염세주의자들조차 통일에 드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예측하지 못했다. 동독과 서독은 곧 서로서로를 베시스와 오시스(Wesis, Ossis-서쪽 사람, 동쪽 사람이라는 뜻)라 부르며 자신들이 생각했던 차이보다 실제로는 더 큰 차이가 존재함을 깨닫는다.낮은 경제성, 다량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많은 동독기업들은 수백만을 실직자로 만들며 문을 닫아야 했다. 정부는 1992년 후반세계적인 불경기가 독일로 밀어닥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통일 붐"을 유도하며 막대한 공공비를 지출한다. 스타치(Stasi), 동독 비밀경찰에 협조한 자료의 발표는 ''민주주의자들의 사희 불신을 심화시킨다. 수 백명의 전직 SED관료와 판사들이 동독시절에 저지른 인권 침해으로 고발된다. 에리히 호네커는 쇠약해진 건강 때문에 살해죄는 면하나 칠레로 쫓겨가 그곳에서 1994 5월 생을 마감한다. 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동독의 장기적 전망은 밝다. 동독은 서독의 많은 지역도 갖추지 못한 최신장비와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다. 1994년은 일대 전환기로 사회, 경제상황은 눈에띌 만큼 향상되었다. 한때 독일에 주둔했던 5천명의 러시아군인, 연합군과 그 가족들은 1994년 후반 철수하게 된다. 신나찌당은 동독전역에 불어 닥친 불경기와 동독지방의 혼란을 이용하려 하지만 약한 지지기반으로 의회에서 대여섯 좌석만 확보한다. 극우 동정주의자들이 이민자를 공격하고, 보호소 운영을 지지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힘든 통일과정을 맛보며 동시에 유럽통합이라는 벅찬 과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독일은 '중심에 선 나라'라는 역사적 역할을 되찾아 가고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3 6,52

1인당 국민총생산 GNP : US$ 40,415

연성장률 : 2.4%

인플레이션 : 1.8%

주요생산품 : 자동차, 기계 화학 등

주요교역국 : 프랑스, 네델란드, 이태리, 영국




문화

여행의 주목적이 독일문화의 답사라고 할 정도로 독일의 예술범위는 넓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진보가 많았고 이는 예술작품과 건축분야에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음악에 있어서도 유럽최고의 풍요로운 음악전통으로, 초기 음악의 대부분은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18세기들어 급속히 번창하였다. 바하, 헨델, 베토벤, 바그너, 스투라우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말러 등 세기의 거장들을 배출해냈다.독일인들은 고기와 감자를 정말 좋아한다. 요즘엔 채식전용과 건강식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식당 밖에는 항상 메뉴와 가격이 적혀 있다. 칠판에 분필로 써놓은 그날의 특별메뉴, 그리고 일찍 문을 닫는 곳과 유명 식당의 쉬는 날(Ruhetag)을 주의깊게 보자. 독일인들은 하루식사 중 점심을 가장 신경써서 먹기 때문에, '오늘의 메뉴'가 점심 때만 가능 한 곳이 많다


Gaststatte는 레스토랑보다는 가벼운 곳이며, Weinkeller Bierkeller도 간단한 식사를 즐기기에 아주 좋다. 독일식 아침식사에는 롤빵, 버터, , 치즈, 몇 장의 고기, 삶은 달걀, 커피와 차가 나온다. 집에서 식사를 하는 이들은 점심을 주로 푸짐하게 먹고, 저녁때는 가볍게 치즈와 빵만으로 이루어진 저녁을 먹는다. 독일의 국민음료가 맥주임을 여행 중에 실감하게 될 것이다. 비교적 싸면서 맛도 좋은 맥주는 지역과 양조방법에 따라 각기 특징적인 색깔과 맛을 띤다.한때는 유머감각없고 너무 딱딱할 정도로 규율적이라 여겨진 독일인들은, 오늘날은 느긋하고 품위 있으며 인생을 즐기는데 훨씬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통일은 이런 생활방식을 동쪽으로 확산시키며 더 강하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발전과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의 정서에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전히 사냥꾼은 녹색옷을 입고 굴뚝청소부는 모자를 쓰고 검은색 천을 덧댄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바바리아 여자들은 특유의 치마와 블라우스를 걸치는데 이를 디른들(Dirndle)이라 부르며, 바바리아 남자들도 바바리아 전통의상인 가죽 반바지와 로댄(Loden)이라 부르는 짧은 웃옷과 중절모를 특별한 날에 입는다.


현대독일에는 금기사항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일반적으로 독일인은 점잔을 빼지않는다. 수백만이 정기적으로 누드해안을 방문한다. 최근에는 정중한 예절을 지키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여전히 중요하게는 여긴다. 매우 친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헤어(Herr)와 프라우(Frau)를 평상시에 사용한다(그러나 실상은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 사용되는 Du()라 불리는 것을 Sie(당신)보다 더 좋아한다). 직업명이 성대신에 종종 사용된다(예를 들면 Herr Professor 교수님 혹은 Frau Docktor 의사선생님). 만날때와 헤어질때 항상 악수를 하고 서로 아는 남녀의 뺨에 키스하는 것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더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동독인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제외하고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 학살은 터부시되는 화제거리이지만 기술 있게 이해심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함께 토론할 수 있다. 유태인 학살을 솔직, 대담하게 묘사했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1994년 독일 전역에서 상영된 바 있다.




축제 및 행사

떠들썩한 추수행사에서부터 정장을 입는 오페라 축제까지 독일사람들은 파티에 젖어 있다. 겨울축제는 독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쾰른, 뮌헨, 마인쯔 등 대도시에서는 애쉬 웬스데이(Ash Wesnesday)를 맞기 전 카니발 속에서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다양한 축제에는 또한 독일문화의 유산인 음악이 빠질 수 없다. 특히, Bayreuth, 3월 바하 페스티발과 7월 바그너 페스티발 등 한 작곡가를 중점적으로 홍보하는 행사 등이 여러 지역에 걸쳐 다양하게 일어난다. 이 외 다양한 재즈페스티발을 만날 수 있는데, 프랑크푸르트(3)와 스투트가르트(4), 베를린(10)이 가장 활기 넘치고 인기있는 재즈행사를 벌인다. 가을은 추수행사의 계절로, 특히 라인강 지역은 연일 불꽃의 축제로 떠들썩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 유명한 뮌헨의 10월축제(Oktoberfest)인데 명성에 반해 악몽의 축구관중들을 연상케하며 독일문화를 보여주기보다는 쇠퇴기의 관광산업을 보는 것 같다. 바바리아 대부분 지역에서도 맥주페스티발이 열리는데 10월축제보다 훨씬 매력적인 분위기다. 독일의 크리스마스축제는 독일가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가장 화려한 크리스마스축제는 뮌헨(Munich)과 뉴렘베르그(Nuremberg), 에쎈(Essen)과 하이델베르그(Heidelberg)에서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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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른, 뮌헨, 뒤셀도르프, 마인쯔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다양한 행사의 카니발(Shrovetide,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파싱(Fasching)이라 하는 스로페티드)이 시작된다. 성회일 직전에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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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에서 국제 장난감 박람회, 베를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3

프랑크푸르트 음악 박람회; 프랑크푸르트 재즈 박람회; 튀링엔 지방 바하 축제; 독일 전역의 봄축제; 아이제나하의 여름기원축제 등이 있다.

 

4

스투트가르트 재즈 축제; 뮌헨 발래 행사; 만하임 5월 축제; 발푸르기스축제((Walpurgisnacht)-하르쯔산맥에서 노동절 전날 밤에 열립) 등이 있다.

 

5

스투트가르트의 국제마임 축제; 뤼데스하임의 적포도주 축제; 드래스댄 국제 재즈 축제; 드래스댄음악 축제(5월 마지막주-6월 첫주) 등이 있다.

 

6

코헴의 모젤와인 주간;할레의 핸델 축제; 킬의 보트경주 ; 뮌헨 영화 축제; 프라이부르크의 국제 연극 축제

 

7



독일전역의 민속 축제; 뮌헨 오페라축제;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축제; 베를린의 독일-미국 민속 축제; 쿨름바하 맥주축제; 바이마르의 음악세미나

 

8

하이델베르그 고성 축제; 라인란트 지방의 와인 축제

 

9-10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세계 제일의 맥주축제); 베를린 음악&연극 축제

 

10

프랑크푸르트 도서 박람회; 브레멘 자유시장; 라이프찌히의 게반트하우스 축제; 베를린 재즈페스트 등이 있다.

 

11

라인란트 지역과 바이에른 지방의 성 마틴 축제

 

12



뮌헨, 뉘른베르크, 베를린, 에센, 하이델베르그를 비롯한 많은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린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3개월간 머물 수 있다.

보건위생 : 비싼 의료비가 가장 주의대상이다.

시간대 : GMT/UTC + 1시간(여름에는 + 2시간)

전압 : 220V, 50 Hz

도량형 : 미터제 사용 (도량형 환산표 참조(영문))

외래관광객 : 1700 만명




경비 및 환전

통화 : 독일 마르크(Deutschmark (DM))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 US$5-10

레스토랑 식사 : US$15-20

저렴한 숙박 : US$20-40

중급호텔 : US$50-100(2인실)

독일 통일과 화폐통합으로 물가상승률이 떨어진 마르크화는 다른 유럽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향이다.거금도 쉽게 쓸 수 있는 독일에서, 자제하는 마음으로 교통패스와 저렴한 패스트푸드, 또는 음식을 해먹는다면, 하루 US$50정도가 예상된다. 거의 모든 날을 식당에서 해결하고, 가까운 곳도 쉽게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보송보송한 솜털이불이 있는 호텔에서 잔다면 적어도 하루 US$100 예상해야 한다. 주요 국제 신용카드인, MasterCard, Visa, American Express는 주요호텔이나, 주유소, 백화점 등에서 사용가능하나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카드로 결재할 생각으로 식당에서 배불리 먹는 것은 금물. 현금인출기(ATM)는 독일전역에 있고, 환전은 대도시 은행과 환전소에서 일반적으로 할 수 있다. 팁은 일반적으로 주지 않아도 되나 정말 친절한 써비스에 대해서는 줄 수도 있다.



 

여행 시기

독일의 기후는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연중 어떤 기후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옷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5월에서 10월까지가 여행의 최적기이고 스키를 제외한 모든 스포츠와 관광을 즐길 수 있다. 크리스마스나 다른 휴일 전후에는 여행 성수기를 지나 여행객의 인적이 드물지만 기후는 매우 맑고 좋다. 동독은 온난한 서유럽의 해양성기후와 동유럽의 거친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중간지대에 속한다. 베를린의 연평균기온은 11도이며, 1월에는 영하 1, 7월에는 영상18도까지 올라간다. 연평균 강수량은 585mm이고 장마철은 따로 없다. 5월에서 9월 사이는 캠핑을 즐기기에 매우 좋다.




주요 여행지

베를린(Berlin)



독일 최고의 도시 베를린은 유럽내 어느 도시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 이도시는 프러시아의 군사적, 산업적 중심지로서 발전의 성숙기에 접어들었으나 2차 대전시의 수많은 폭격으로 조각나 버렸다. 전쟁으로 많은 인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베를린의 생산량은 아일랜드나 그리스의 총 생산량과 같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3세기 슈프리강(Spree River)에서 기원한 베를린은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중심무대를 한번도 내준 적이 없었다. 거대한 빌딩, 찬란한 박물관, 극장, 세련된 레스토랑, 차분한 나이트클럽 등에서도 독일의 심장부답게 냉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재통합이라는 거대한 계획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베를린 시는 독일의 무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곳이 기도 하다.



뮌헨(Munich)



맥주에 취하고 소세지로 배를 불린 다음 이곳을 돌아본다면 유럽 여느 도시와 같이 세계화된 도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 구석구석에서 뮌헨 시민들은 삶을 어떻게 즐기는지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2000여개가 넘는 맥주홀이다. 뮌헨의 볼거리는 무궁무진한데 독일 어느 지역보다 많은 공연장과 풍부한 박물관, 다양한 공원들이 대표적이다. 우선 세계최대의 과학기술박물관인 독일 박물관(Deutsches Meseum)을 들 수 있는데, 마치 디즈니랜드와 스미스쏘니언 학회가 하나의 지붕아래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깊은 탄광에서 천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학문명이 총망라되어 있는 곳으로 너무나 넓어 다 둘러보기란 불가능하므로 흥미로운 곳만 골라서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또 유럽에서 가장 큰 공원 중 하나인 영국공원(Englischer Garten)이 가 볼만하며, 특히 Schwabinger Bach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가 제일 멋있는 길이다. 햇살 좋은 여름날이면 나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데, 평일 근무시간이라도 코트, 넥타이, 양복 등을 잔디 위에 단정히 개어 놓은 수백명의 나체 일광욕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에 환전해 준 그 은행직원이 지금 잔디 위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다카우(Dachau)수용소도 꼭 가볼 만한 곳으로, 1933 3월 히틀러에 의해 건설된 최초의 나찌 수용소인 이곳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지만 20만명 이상의 죄수들이이곳을 거쳤다. 그 당시 뮌헨에는 1만명 가량의 유태인들이 있었는데 전쟁 후 200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뮌헨은 독일전역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프라하 동북쪽, 로마 남쪽까지 연결되어 있다.



프랑크푸르트/마인(Frankfurt/main)



'뱅크푸르트'또는 '마인하탄' 등의 별칭을 지닌 도시이며, 특히 마인강이 도시중앙을 흐르고 있어 일반적으로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이라 불리운다. 이것은 폴란드 국경 근처에 있는 프랑프푸르트/오데(Frankfurt/Oder)라는 도시와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프랑크푸르트/마인은 서부 독일의 금융 중심지이며 지리적으로도 중심에 위치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박람회, 소비재 박람회, 악기박람회 등 중요한 무역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65만에 이르는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독일경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도시 세금의 10% 이상이 문화발전에 할애되고 있다. 따라서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부유한 박물관들이 대부분 이 곳에 모여있게 되었다. 르네상스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세계예술작품들이 전시된 슈타델박물관(Stadel Museum)과 유명한 독일작품들이 전시되는 현대미술박물관(Museum fur Moderne Kunst) 등이 있다프랑크푸르트는 또한 음악으로 활기찬 도시이며, 특히 재즈로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산 독주에는 Ebbelwei가 있다.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마르부르크 (Marburg)는 재미있는 까페와 펍문화가술렁이는 활기찬 대학도시이다.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하이델베르크는 1693년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웅장한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중세거리를 보려는 관광객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4백만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마크 트웨인이 유럽여행을 시작한 곳이 바로 하이델베르크였으며, 영국의 터너 역시 하이델베르크를 사랑했다고 한다. 터너는 이곳에서 영감을 받은 위대한 풍경화들을 많이 남기었다. 하이델베르크는 학생들(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다)이 많아서 그런지, 인구 14만명인 도시치고는 매우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성수기(7-8)에는 도시전체가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루니, 가능하면 이 때를 피하는 것이 좋다.하이델베르크성은 독일 고딕-르제상스양식의 결정체로 이 도시 제일의 관광명소이다. 반쯤 폐허가 된 모습이 이 성의 낭만적인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구시가 어느 곳에서나 언덕을 뒤덮은 이 웅장한 붉은 사암 성곽을 볼 수 있으며, 221,726리터의 저쟝량을 갖는 18세기의 거대한 포도주 저장통(Grosses Fass)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이다. 하이델베르크는 저렴한 숙박지가 별로 없으며 음식값 비싼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이 꾸준히 몰려드는 것은, 하이델베르크 성의 낭만적인 매력과, 멋진 광경에 숨을 헐떡거리며 몇번이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좁은 언덕길 산책로 등으로 이 도시가 여행자를 유혹하기 때문일 것이다.Frankfurt, Stuttgart, Munich 등 여러 지역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 기차가 연결된다.



뤼벡(Lubeck)

독일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슐레스비히 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에 있는 뤼벡은 한자동맹의 여왕으로 알려진 중세도시로서, 12-16세기에는 발트해 지역의 무역을 지배했던 한자동맹의 수도였던 곳이다. 함부르그에서 쉽게 갈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뤼벡은 주요관광노선에서 벗어나 있어 남쪽의 다채로운 관광지에 비해 조용한 곳이다. 구시가는 2차대전 시 심각한 폭탄 피해지역이었으나 아주 신중히 다시 건설되어 오늘날 위엄있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저렴한 숙소와 식당이 많이 있는 뤼벡은 또한 흥겨운 꼭두각시극의 본고장으로 한번 쯤 꼭 보는 것이 좋다. 마리엔 교회(Marienkirche)에는 2차대전 시 잇단 폭격으로 교회의 종이 돌 바닥에 부서진 채로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것은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증거'라는 문구와 함께 전쟁을 고발하기 위해 주민들이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마리엔 교회 북쪽에 있는 부덴부르크하우스(Buddenbrookhaus)는 토마스만이 태어난 곳으로, 그의 소설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로 이 집이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튀빙겐(Tubingen)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튀빙겐은 그림같이 고요한 대학도시이다. 반목조 가옥들과 오래된 돌벽들을 감상하며 오솔길을 거닐어 보자. 지금은 대학건물로 사용되는, 르네상스양식의 호엔튀빙겐 성(Schloss Hohentubingen)에 오르면 고풍스런 도시의 전경이 경사진 붉은 지붕들 위로 한눈에 들어온다.튀빙엔은 슈투트가르트에서 당일코스로 쉽게 다녀올 수 있으며 튀빙겐행 기차는 매 2시간마다 있다.오늘날 이곳의 학생들은 자유로운 지적 전통을 지켜온 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어느 까페에서든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저녁거리를 위해 과일과 야채로 풍성한 이 곳의 시장을 산책 겸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프리지아 군도(Frisian Islands)

프리지아 섬들은 모래사장, 바다, 맑은 공기, 태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곳이다. 이곳은 네덜란드 북부에서 해안선을 따라 덴마크까지 이르고 있다. 많은 주민들이 프리지아 방언을 쓰는데, 프리지아어는 영어에 매우 가까우나 사실 알아듣기 힘들다. 북프리지아 섬들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서부해안지역이며 덴마크에도 접한 곳이다. 해양지역은 Wattenmeer국립공원을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암룸(Amrum), 푀어(Fohr), 랑게네스(Langeness)섬들의 모래언덕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야생동물과 가축들은 엄격한 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북프리지아 군도에서 가장 인기있는 곳은 질트(Sylt), 온천, 해양스포츠, 고급레스토랑 등으로 유명한 휴양지이며 여름이면 매우 붐비는 곳이다. 이웃한 푀어와 암룸 섬이 보다 편안하면서 덜 붐비는 곳이다. 프리지아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갖다 올 수 있는 헬리고란트(Heligoland)섬은 2차 대전 시 해저기지였으며 아직도 지하터널과 벙커들을 관람할 수 있다. 섬 주변의 산책로도 멋있다.



하르츠 산맥(Harz Mountains)

주로 독일인과 스칸디나비아인에게 알려진 하르츠 산맥에는 알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은 봉우리와 계곡은 없다. 그러나 알프스의 상업주의와는 달리 사계절 내내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지역이다. 한때 이 지역에는 은과 납, 구리 등을 캐는 광산들이 많이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아 눈요기 거리만 되고 있을 뿐이다. Naturpark Harz는 하이킹하기에 좋은 지역으로 경치도 아름답다. 자전거여행에도 인기있는 지역이지만 구불구불 나 있는 산악도로 일부는 자동차와 같이 달려야 하므로 출발 전 지도를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활강스키는 완만한 경사면과 설질로 기대 이하일 수도 있지만,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뛰어난 코스를 가지고 있다.




레저스포츠

일인 3명 중 1명이 운동클럽 회원에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독일에는 휼륭한 자연시설이 갖춰져 있다. 싸이클은 가장 일반적인 취미거리로 많은, 서독의 도시에는 훌륭한 자전거길이 갖춰져 있고, 손상된 도로들이 더러 있지만 동독도 자전거여행하기에 좋은 곳이다. Black Forest와 하르쯔산(Harz Mountains), 바바리아 알프스 외 많은 곳에 훌륭한 하이킹트레일이 나 있다. 알프스지역이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지만 사람들로 붐빈다(특히 휴가철). 겨울철 스키는 다운힐과 크로스컨트리 모두에 더없이 훌륭한 지역이다. Black Forest지역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경사가 심하지만 역시 인기 있는 스키지역이며, 따뜻한 계절에는 숲을 여행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독일의 강과 호수들은 보트타기에 더없이 좋으며 특히 남부독일과 발틱해에서 거대한 호수지역을 형성하는 베를린 근방 크루즈가 가장 인기 있다. 항해와 윈드 써핑은 남부 콘스탄체(Constance)호수지역에서 인기 있다.




독일로 가는 길

독일의 주요 항공관문은 프랑크푸르트, 뮌헨, 베를린이며, 그 중 프랑크푸르트는 런던의 히드로 공항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혼잡한 공항이다(한국에서 독일로 갈 때도 대부분 이곳으로 도착한다). 공항 출국세는 US$5정도이며 항공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유럽대륙에서 독일로 들어올 때는 버스나 기차가 싸고 편리하다. 독일은 다른 유럽국들과 훌륭한 도로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유럽과 연결된 도로는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국경지대에서 지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특히 폴란드에서 올 때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독일을 입국할 때는 제3자 보험에 가입 되 있어야 한다. 배편은 독일 북부연안과 스칸디나비아, 영국, 세인트 피터즈버그사이에 운행된다.


국내 교통편

독일 국내여행은 편리하다. 국내선항공은 광범위하게 연결되나 정말 다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비를 생각할 때 굳이 이용할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차여행으로 독일기차시스템은 완벽에 가깝다. 동부와 서부의 기차시스템은 현재 모두 합병되었으나 동부가 가격면에서 아직까지는 싸다. 다양한 요금과 패스들이 있으며, InterCity Express (ICE)를 탈 때는 추가요금이 있는데 독일전역을 250km/h로 달린다고 칠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기차연결이 힘든 외지를 여행할 때가 아니라면 버스여행은 기차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독일의 도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며, 자동차여행을 할 때 완벽할 정도이나, 도심에서 주차가 문제된다. 속도 무제한 아우토반(autobahns)을 달리는 것은 최고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악몽일 수도 있다 : 눈 깜빡할 사이에 추월해 가는 포쉐, BMW의 괴물 스피드라이트와 지겨운 트래픽 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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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행] 프랑스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장미 빛 인생과 까망 베르치즈, 보브와르와 드뷔시 그리고 에펠탑 등 몇 개만 대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프랑스이므로,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나라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을 드러낸다 해서 누가 거기에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비록 리바이스와 빅맥 햄버거집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 문화순수주의를 비난하고 싶을지라도, 프로방스에서 1년을 지내던가 파리에서 1주일만 있어 보면 왜 대부분 외국여행자들이 시라노(Cyrano)거리들을 여유롭게 산책하거나 마네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잔디밭에서 피크닉 하기를 꿈꾸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낭만'의 상징인 되어 온 프랑스이므로, 파리에 있던지 피레네나 꼬뜨다쥐르를 여행하던지 혹은 유스호스텔에 있던지, 지나친 환상은 자제하고 기대치에 맞게, 삶의 기쁨을 찾아 여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도록




통계 자료

국명 : 프랑스 공화국

면적 : 551,000 sq km (214,890 sq mi)

인구 : 5,830만 명

수도 : 파리(Paris-인구 1,300만 명)

인종 : 92% 프랑스인, 3% 북아프리카인, 2% 독일인, 1% 브르타뉴인, 2% 기타(프로방스, 카탈로니아, 바스크인 등)

언어 : 프랑스어 (플라망어, 알사스어, 브르타뉴어, 바스크어, 카탈로니아어, 프로망스어, 코르시카어 등)

종교 : 90% 로마카톨릭교, 2% 신교, 1% 이슬람교, 1% 유대교, 6% 사교

정체 : 민주주의




지리 및 기후

캘리포니아보다 약간 더 넓은 프랑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유럽에서 넓은 나라이다. 영국해협이 북서쪽으로, 대서양은 서쪽으로 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피레네산맥을 건너 스페인이 있고, 코르시카를 포함한 지중해가 남동쪽으로, 동부알프스와 쥬라산맥이 스위스와 이탈리아에 뻗어있다.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평평한 프랑스의 북동쪽 국경은 독일과 룩셈부르크, 벨기에와 접하고 있다 .1790년 프랑스는 약 6100sq km마다 데빠르뜨망(department)이라는 행정단위를 나누어 현재 96개의 데빠르뜨망이 있고 이 외 5개의 해외프랑스령이 있다. 해외 데빠르뜨망으로는, 카리브해의 과들루쁘(Guadeloupe)와 마르띠니끄(Martinique), 태평양 섬인 뉴칼레도니아(New Caledonia), 타히티(Tahiti) 그리고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 남미의 프렌치 기아나(French Guiana), 마다가스카르 동부 인도양에 있는 레위니옹(Reunion) 그리고 뉴펀들랜드(Newfoundland)남부 대서양에 있는 쌩 피에르(Saint Pierre)와 미클롱(Miquelon) 등이다. 프랑스 알프스지역인 4800m의 몽블랑은 유럽에서 최고봉이다. 프랑스 고대산맥 중 가장 장엄한 것은 마씨프 쌍트랄(Massif Central), 국토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의 방대한 프랑스 중부지역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는, 르와르강(Loire)으로 마씨프 쌍트랄에서 대서양까지 장장 1020km에 달한다. 이 외 수로역할을 하는 주요 강으로는, 쎄느강(Seine), 론강(Rhone), 갸론(Garonne)과 라인강(Rhine)이 있다. 3200km에 달하는 해안선이 노르망디의 백악절벽과 브르따뉴의 고지대에서부터 대서양을 따라 있는 해변가까지 뻗어 있다. 남동부 지중해연안은 자갈과 바위해변이 많으나, 랑그독(Languedoc)과 루시용(Roussillon)에 있는 해변에서는 낭만의 모래성도 쌓을 수 있다.여러 기후와 영토가 섞여 있어 프랑스에는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농사기술과 도시계획화, 오염 등으로 종의 균형이 깨져, 피레네 아이벡스 염소, 코르시카 사슴, 갈색 곰, 늑대, 수달 등은 현재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부 동물과 조류들- 샤무아 영양, 큰 아이벡스종, 비버, 황새, 독수리 종 - 은 국립공원의 소생프로그램에 힘입어 아직도 야생에서 살고 있다. 너도밤나무와 오크나무, 소나무가 빽빽한 숲은 국토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숲 지대는(방대한 습지대와 마찬가지로) 대다수 포유류와 조류의 생태를 유지하게 해준다. 프랑스는 온난기후가 주류를 이루며, 산악지대와 북동부를 제외하고는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이어진다. 북서부는 대서양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습도가 높고, 때로 극심한 서풍이 불며 강수량도 많다. 북동부 지방은 전형적인 대륙성기후를 보여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로 뚜렷한 계절차이를 보인다. 앞의 두 지역 중간에 있는 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낮은 강수량을 보이며 그나마 비도 불규칙적으로 온다. 파리의 연평균기온은 12도 정도이나 1월에는 영하로 내려갈 때도 있으며 8월에는30도 이상을 넘을 때도 있다. 남부연안 평지대는 쾌적한 지중해 기후가 주류를 이루는데, 서리는 거의 내리지 않으며, 봄과 가을에는 짧지만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 반면 여름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남부는 북서풍 지역으로 1년에 100일 정도는 론(Rhone)계곡 저지대에서 불어오는 차고 건조한 바람을 맞아야 한다. 특히 봄에는 혹독하고 가차없이 불어와 심할 경우 사람도 날려버린다.




역사

*선사시대

9-4만년 전, 구석기시대 중반에 프랑스지역에 인간이 살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BC 25천년 경 석기시대에 크로마뇽인들은 동굴벽화와 조각품들로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또한 프랑스에 신석기시대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BC4000-2500년으로 추정되는 거석과 고인돌이다. 청동기시대가 도래하면서, 구리와 주석의 수요로 BC2000년 즈음에는 프랑스와 그 외 유럽국가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대와 중세

프랑스 원주민은 원래 리구리아인이었는데, 켈트족 고울인들이 기원전 1500-500년에 이주해 와 그들을 정복하고 동화시켰다. 고울족은 로마시대에 북쪽으로 진출하려는 로마인들을 맞아 수 세기에 걸쳐 싸워왔으나 결국 줄리어스 씨저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 후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로마문화를 흡수하고 2세기에는 기독교를 도입하게 되었다. 게르만인들이 로마영역 밖에서 침략을 일삼고 있을 때인 5세기까지도 프랑스는 로마통치하에 있었다. 게르만 중에서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진출한 것은 동게르만인이었는데 이들이 로마제국을 멸망시키면서 라틴족과 혼합된다. 게르만의 이동과 로마인들과의 융합, 통화과정 후 프랑크족이 유럽에서 대통합의 왕국을 건설했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크왕국이다. 프랑크족은 5세기 경 전 유럽을 통합하여 프랑크왕국을 세워 약 400년동안 로마교황과 손을 잡고 서유럽을 통치했다. 프랑크왕국의 주요구성원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게르만족,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고울족(현재 프랑스적인 요소에 영향을 끼친), 그리고 로마문화를 계승한 이탈리아지역의 라틴족이었는데, 이들은 각각 인종, 문화, 전통이 달라 갈등을 겪다 결국 동프랑크(현재 독일과 동유럽국 지역), 서프랑크(현재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로 3분된다.새로운 질서 속에서 안정을 되찾은 유럽은 다시 한번 격동에 휘말리는데, 8-9세기에 사라센이 동남쪽에서 침입하고 마쟈르인(아시아계로 현재 헝가리인)이 동쪽에서 침입하고 게르만의 일파인 노르만인이 침입한 것이다. 노르만족에게 시달리던 서프랑크왕국(프랑스)은 융화책으로 현재의 세느강주변 땅을 그들에게 주는데 바로 노르망디 지역이다. 이들은 프랑스에 동화되었으나 후일 노르망디공국을 세우게 된다. 987년 귀족들이 위 까페(Hugh Capet)를 왕으로 선출하면서 까페왕조가 들어서는데, 프랑스 역대왕조는 이 까페가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현재 프랑스의 국가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한편 노르망디를 지배하고 있던 윌리암은 1066년 영국을 점령하고 영국에 프랑스제도를 이식한다. 12세기 중엽 헨리2세가 영국과 노르망디를 모두 지배하게 되었고 나아가 현재 프랑스 영토의 3분의 1을 지배하게 된다. 그 후 이 프랑스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 300년동안 계속 갈등을 겪다가 결국, 어머니가 까페왕조의 혈통인 영국왕 에드워드 3세에 이르러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1453)을 치루게 된다. 1348년 흑사병이 온 나라를 흽쓸었을 때에만 잠시 중단되었던 이 전쟁 중에 17세기 시골소녀 잔다르크가 등장한다. 그녀에 의해 역전된 전세는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고, 1453년 깔레를 제외한 프랑스의 모든 영토에서 영국인들은 추방당하게 된다.


*르네상스

15세기 말경,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사상과 미학이, 군사전략상 이태리에 머물렀던 프랑스귀족들에 의해 일부 소개되었다. 이 영향은 프랑소아1세 때 지대하게 미쳤고 퐁텐블로(Fontainbleau)와 슈농소(Chenonceau)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종교개혁

530년대 유럽을 휩쓸던 종교개혁의 바람은 랑스에서도 강하게 일었다. 프랑스에 종교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사람은 제네바로 망명한 캘빈(John Calvin)이었다. 1562 1월칙령이 발표되자 구교도(주로 귀족)들은 심하게 반발했다. 그들의 이런 반발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측면도 다분히 있었다. 1562-1598년 사이의 종교전쟁은 세 집단이 관련되면서 더욱 복잡해진다. 프랑스 신교도인'위그노', 기즈당이 이끄는 구교도, 군주 중심의 구교도로 갈라진 전쟁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프랑스를 분열시켰다. 1572 824, '성 바톨로뮤 학살'이 일어났는데, 결혼축하를 위해 파리에 갔던 3000명의 위그노들을 구교도가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 학살은 지방에까지 확산되었는데, 이 후로 프랑스에서 신교도세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구교도가 대부분이다. 그 후 실권을 잡은 구교도들의 내분으로 앙리 3세는 암살당하고, 위그노였던 나바르의 왕 앙리는 구교로 개종한 후 앙리4세가 된다. 그는 598년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와 시민권 보장의 내용을 담은 '낭트칙령'을 선포하는데, 100년도 채 안되 1685년 루이14세에 의해 폐지된다.


*루이 14

태양왕 루이14세는 1643 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715년까지 통치했는데, 긴 통치기간 동안 프랑스 군주의 권력을 옹호하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프랑스의 권위를 높이고 프랑스의 문화예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만들지만 영토를 확장하기위해 전쟁을 많이 일으켰으며 베르사이유궁전같은 사치스러운 건물을 짓느라 엄청난 국고를 낭비해(지금은 관광수익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그의 후계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그 뒤를 이은 루이15세와 16세는 매우 무능했다. 루이15세는 오스트리아와 연합해 영국, 프러시아에 대해 7년 전쟁을 벌였는데, 전쟁에 패해 서인도제도의 식민지와 인도를 영국에게 빼았겼다. 그러나 이 패배는 미국혁명이 몰고 온 급진적 민주사상을 프랑스에 유포한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1780년대까지도 무능하고 결단력없는 루이16세와 그의 아내 마리앙뜨와네뜨는 개화파에서 보수파에 이르는 사회 모든 계층을 멀리한 채 지냈다. 1789년 루이16세가 삼부회에서 개혁파들의 세력을 약화시켜 보려했으나 거리에는 파리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였고 드디어 그 해 714일 구제도 붕괴의 상징인 바스띠유 감옥이 붕괴되고 말았다. 1793 1월 루이16세는 지금의 파리 콩코드광장 단두대 위에서 급진파와 시민들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1794년 중반까지 참수형으로 무려1 7000명이 처형되었다. 말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베스삐에르를 포함한 초기혁명 지도자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기도 했다.


*나폴레옹

나라는 더욱 혼란해졌고 이를 틈타, 프랑스군인 지도자들이 사회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는데, 이 때 나폴레옹이 역사에 등장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불가능은 없다'며 알프스를 건너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면서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되고 그는 이 힘을 몰아 독립적 정치세력을 키우기에 이른다. 처음에는 나폴레옹이 제1제정을 맡았으나 1802년 국민투표로 종신제정을 선포하고 그의 생일은 국경일이 되었다. 1804년 황제로 즉위한 그는 더 많은 지지와 세력확보를 위해 많은 전쟁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1812년 대륙의 마지막 라이벌인 짜르를 정복하러 러시아로 향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물러서고 말았고 이 틈을 타 나폴레옹의 적들이 파리로 쳐들어오면서 나폴레옹은 엘바로 유배되고 만다. 1915년 그는 엘바를 탈출해 군을 모아 다시 파리를 탈환하나 원털루전에서 패하고 결국 남태평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에서 1821년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쨌든 전쟁의 영웅인 그가 이룩한 '나폴레옹 법전'은 오늘날까지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국가 법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19세기

19세기 프랑스는, 어리석은 정부와 쓸모 없는 전쟁이 난무한 혼돈의 시기였고, 공화국으로서 나라가 설립되는 제3공화정이 1870년 출범된 의미 깊은 때이기도 하다. 3공화정에 도덕적,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힌 것은 1894 '드레퓌스 사건'이었다. 유태인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첩보원으로 누명을 써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으면서 이 사건이 시작되었는데, 군 통치부, 우익정치가들, 구교도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다시 심의되어 결국 그의 결백이 증명되었다. 이 사건은 군대와 교회의 불신감을 더욱 강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시민에 대한 군의 통제는 더 심해졌으며 1905년 교회와 정부는 법적으로 분리되었다.이 시기에, 아프리카 식민지를 두고 경 관계에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 간에 앙땅뜨 꼬르디알(Entente Cordiale)이라는 협약이 체결되어 이 후 둘은 협조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세기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프랑스는 230만의 사상자와 폐허가 된 많은 영토, 산업의 붕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륐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에게 장악되는 등 상황은 더 악화되었고 비굴한 비쉬정권이 나타났다. 한편 프랑스가 전쟁에서 항복하자 당시 부차관이었던 샤를르 드골(General Charles de Gaulle)은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정부를 세웠고 독일과의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지하 레지스땅스를 만들었다. 1944년 중반,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프랑스는 해방되었다. 드골은 전쟁이 끝나자 파리로 돌아와 임시정부를 세웠고, 1846 1월 대통령직을 사임하지만 그의 복귀를 원하는 대중들의 요구로 제4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적극적인 미국의 우너조로 프랑스 경제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식민통치의 재시도는 실패했고, 백만 프랑스인이 거주하는 알제리아에서는 아랍민족주의자들이 그들의 독립을 얻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4공화국은 1958년 끝났으나 알제리아 폭동에 대한 패배에 분노한 극우파들의 쿠데타 음모와 시민폭등을 저지하기 위해 드골은 권좌에 다시 복귀했다. 1962년 제리협상으로 알제리전쟁은 끝났으나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75만의 '삐에 느와르(검은 발이라는 뜻으로 알제리태생의 프랑스사람) 가 프랑스로 들어와야 했다. 이 시기 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프랑스 식민지와 보호국들도 독립을 찾기 시작했다.정부와 온 나라에 전면적인 변혁을 가져온 것은 1968 '5월 혁명' 이었다. 시작은 데모하는 대학생들과 경찰의 충돌 정도 였으나 이것은 점점 확산되어 9백만 파리시민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등 전국을 거의 마비상태로 몰아넣었다. 드골은 무정부상태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위기를 넘겼고, 안정이 되어 갈 즈음 교육제도개혁을 포함한 중요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1969년 드골은 드골파인 죠르쥬 뽕삐두에게 자리를 넘긴다. 1974년 발레리 쥐스까르 데스뗑이, 198년 에는 사회당인 프랑소와 미테랑(Francois Mitterand)이 자리에 오른다. 미테랑은 1988년 재선에 당선되나 1986년 의회선거에서 쟈끄쉬락이 이끄는 우파가 다수당이 된다. 임기 마지막 2년 동안 미테랑 대통령은 반대당 내각과 전례 없는 보혁 공존(cohabitation꼬아비따씨옹)을 하게 되며 결국, 1995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당을 앞서며 국무총리였던 쉬락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놀라운 것은 쟝 마리 르뺑(Jean-Marie Le Pen)이 이끄는 반 이민 국민전선(FN) 20%도 득표하지 못하였다. 1995 7월 빠리와 리용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는데 이것은 정부의 알제리 지원에 반대하는 테러집단에 의한 것으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초기에 쉬락은 EU에서의 확고한 입지와 유고슬라비아 전에 대한 대처로 국민의 신임을 얻었으나, Mururoa의 폴리네시아섬에서 핵실험을 시행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프랑스와 외국으로부터 많은 반발을 샀다. 마지막이라고 표방한 이 실험으로 쉬락정부의 프랑스와 태평양주변국과의 외교관계는 악화되었고, 타히티를 포함한 태평양과 카리브해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들에서는 독립의 원성이 높아졌다. 한편 국내에서는 복지비를 제한한다는 쉬락의 정책발표로, 1968년이래 최대의 시위가 일어났다. 1995년 말 3주 동안 빠리의 공공 써비스는 마비되었고, 이로 인해 경제가 악화되면서 유럽경제와 화폐통합에 대한 프랑스의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게 되었다. 쉬락은 화폐통합에 대한 국민투표라는 명목하에 1997년 임시투표를 하게 되지만, 변덕스러운 프랑스인들은 쉬락의 RPR당을 저버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녹색당의 연합을 지지하게 된다. 아직도 대통령의 권좌에 있는 쉬락이 넘어가야할 두 단계는, 현 사회주의당 국무총리인 리오넬 죠스뺑(Lionel Jospin)과 평균치에 걸려있는 화폐통합이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 8,530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41,511

연성장률 : 4%

인플레이션 : 2%

주요 생산품 : 정유,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농산물, 사치품, 화학품, 자동차제조, 에너지 생산품 등

주요 교역국 : EU, USA



문화

문화란 개념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프랑스인들은 그것을 전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비록 현대 세계시장에선 이제 구석자리로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른 나라사람의 취향과 생각에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얼마나 프랑스적인 것에 도취해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장 먼저 튀는 것은 프랑스 건축물로 12세기 중반 북부 프랑스에서 기원된 고딕양식이다. 이 양식은 샤르트르(Chartres)와 렝스(Reims), 아미엥(Amiens)의 성당 양식으로 이어진다. 그 후 15세기 말 샤를르 8세가 이탈리아를 수회 침입할 무렵, 르네상스가 프랑스 전역에 퍼졌고, 이는 건축, 시각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라블레(Rabelais)와 몽테뉴같은 작가들에게는 이것이 프랑스문학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16세기말에서 18세기후반까지 지속된 바로크시대에는 회화, 조각, 고전건축이 한층 정교하고 세련되며 우아해졌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국내뿐만 아니라 널리 유럽에도 영향을 끼쳤다이 시대 프랑스 연극은 당대 최고의 희극작가 몰리에르(Moliere)로 인해 웃음이 주류를 이루었다. 1789년 혁명 지도자 중 하나인 쟈끄 루이 다비드(Jaques Louis David)는 나폴레옹에게 발탁되어 공식적인 국가의 화가가 되었고 실상 미술분야의 독재자 역할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혁명독재자였던 마라(Marat)가 욕실에 누워 죽은 그림이다. 이 시기 문학은 볼테르(Voltaire)와 루소(Rousseau) 등 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음악에서는 프랑스음악에 르네상스바람을 일으키며 오페라와 교향곡을 작곡한 현대관현악의 창시자 베를리오즈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영향하에 가브리엘 포르(Gabriel Faure)와 인상파음악가 끌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탄생하였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와 함께 시로 널리 인정받은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이 외 유명한 작가로는 스탕달(Stendhal)과 마리 앙리 베일(Marie Henri Beyle), 방대한 프랑스 사회역사를 다룬 소설 '인간의 희극(La Comedie Humaine)'을 쓴 오노레 드 발작(Honore de Balzac) 그리고 조르쥬 상드로 더 잘 알려진 오로르 뒤뺑(Aurore Dupain), 몽테크리스토백작의 알렉쌍드르 뒤마(Alexandre Dumas) 등이 있다. 19세기중반 낭만주의가 소설과 시에서 새롭게 대두되었는데 이 주류의 세 거장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그리고 에밀졸라(Emile Zola)가 있다. 시인 랭보(Arthur Rimbaud)는 불후의 명작을 두 편을 남겼는데,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s)과 지옥의 계절(Une Saison en Enfer)이 그것이다.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도 이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로, 미술역사상 가장 정교한 초상화화가로도 평가되고 있다. 인물화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 풍경화는 밀레(Jean-Francois Millet)와 바르비종 학파, 그 뒤로 마네(Edouard Manet)와 사실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마네의 후기작품들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모네(Claude Monet)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 중 피사로(Camille Pisarro)와 드가(Edgar Degas)를 꼽을 수 있다후기인상주의는 20세기 획기적이고 많은 양식을 파급시켰다. 그 중 특히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 후 1차 세계대전의 부정적인 반향으로 허무주의가 나왔고,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샹은 실생활의 물건들을 작품으로 전시하는데, 예를 들면 소변기를 전시해 놓고 'Fountain and signed'란 타이틀을 붙여 논 것이 유명하다.문학에서 20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있다


2차대전 후에는 실존주의가 일어났고 쟝뽈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브와르 그리고 알메르 까뮈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후반 젊은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 1984 '연인(L'Amant)'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마르그리트 뒤라(Marguerite Duras)도 참신하고 개성있는 작가들이다. 1950년과 6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혁명기이다. 이 시기 새바람을 일으킨 영화감독의 선두주자는 쟝뤽고다르(Jean-Luc Godard),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그리고 루이말르(Louis Malle)등이다. 이 감독들은 1970년대까지 독주하였는데, 이후는 새 바람의 실험적인 선을 넘지 못하였고, 불란서 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틀(수준 높고, 엘리트하며, 솔직하고 지루한 기획이라는)이 생기게 되어 더 이상 앞서지 못하였다


1980년과 90년대 가장 성공적인 감독들의 영화는, 특이한 소재와 이상한 스토리, 독특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근본적이고 시각적으로 눈에 두드러지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주목 받는 감독으로는 디바(Diva)와 베티블루(Betty Blue)의 쟝쟈끄베네(Jean-Jacques Beineix) 그리고 제5원소와 니키타, 프로페셔날을 직접 쓰고 감독한 뤽베쏭(Luc Besson) 이 있다


종교는 로마카톨릭이 다수인데 실제로 교회생활은 거의 없고, 예배참석률도 매우 낮다. 1905년 정부와 교회가 분리됨에 따라 일반적으로 신앙도 세속적이 되었다. 이어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그 뒤로 신교, 유대교 등이 있다. 프랑스 음식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간요리, 로크포르 치즈, 달팽이 요리, 과일 파이 등 많은 독특한 요리들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끌어당길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요리와 포도주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요리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형적인 프랑스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카페오레 한 사발과 크루와쌍, 버터와 쨈을 바른 빵 한 조각이다. 점심과 저녁은 거의 비슷하게 먹는데, 주로 전채요리는 떼뜨빠떼(돼지머리를 젤라틴화시킨 것)나 생선수프의 일종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그리고 주요리로 송아지나 양고기로 요리한 화이트소스 스튜(블랑켓트(Blanquette)) 그리고 후식으로 치즈나 사과 파이등이 대표적이다. 식사 전에는 키르(kir)라고 하는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이 나오기도 하며, 디제스티프(digestif)라고 하는 소화촉진제로 꼬냑이나 아르마냑 브랜디가 식사 후에 나오기도 한다. 식사 후 소화를 돕고 얘기를 더 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는 에스프레소나 맥주, 파스티스(pastis)같은 술류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산 와인 등이다.




축제 및 행사

프랑스는 한마디로 '축제의 장'이다. 수많은 도시에서는 매년, 음악, , 연극, 영화, 예술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들이 개최된다. 시골마을은 나름대로 그 지역 성인에서부터 농사 수확물까지 여러 주제로 다채로운 전시와 축제가 펼쳐진다. 프로방스지방의 쌩뜨 마리 드 라 메르(Saintes-Maries-de-la-Mer)에서는, 집시의 수호자인 사라(Sarah)를 경배하는 화려한 집시축제가 매년 5월 열린다. 열광적인 노래와 춤이 이 행사의 특징이다. 주요 국경일로는, 노동절인 May Day (51-이 날 많은 사람들이 행운을 준다고 하는 뮈귀예[muguet:백합꽃의 일종]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와 바스티유의 날(Bastille Day (714-친구들에게 폭죽을 던지며 경축한다.)이 있다. 지역 행사로는 파리의 쁘레따뽀르떼 패션쇼(2월초), 깐느 영화페스티발(5월중순), 스트라스부르그 국제 영화페스티발(6 3주동안 열림), 아비뇽 연극페스티발(7월중순-8월중순), 낭시 째즈페스티발(109일에서 24일까지) 등이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3개월간 여행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햇빛에 의한 화상, 발의 물집, 벌레물림, 과음, 과식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시차 : 한국이 프랑스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제를 사용(도량형 환산표 참조[영문])

외래 관광객 : 6,050만 명 



      

경비 및 환전

통화 : 유로 (EURO)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 US$5-15

중급 레스토랑 : US$15-30

최고급 레스토랑 : US$30 이상

저렴한 숙소 : US$25-35

중급 호텔 : US$35-60

최고급 호텔 : US$60 이상

커피 한잔에 US$5정도인 이 곳이 유럽에서 저렴한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쉴 만한 장소로 은행을 찾아야만 할 정도는 아니다. 최저로 경비를 쓴다면 하루 US$40정도 예상하지만, 이 경우 식사는 매일 공원에서 치즈와 바게트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편안한 침대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다니려면 최소 US$80은 잡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생과 노인을 위해서는 여러 곳에서 할인요금이 적용된다. 프랑스에서는 여행자수표가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회계관리방법이며 거의 모든 종류의 여행자수표가 사용 된다. 대도시와 관광지에서는 특히. 은행과 환전소에서는 현금보다 여행자수표를 더 환율 우대한다. 방끄 드 프랑스(Banque de France)가 일반적으로 가장 좋은 환율을 제시한다. 현금인출기에서는 모든 주요신용카드와 은행카드가 사용가능하며, 신용카드로 물건 구입 시 보다 좋은 환율을 적용 받을 수 있다. 팁을 주는 것은 미묘한 문제로, 식당과 숙박지 같은 경우는 계산서마다 10-15%의 팁이 요구되는데, 일반적으로 대부분 사람들은 써비스가 만족스러울 경우 동전 몇 개를 놓고 간다.




여행 시기

프랑스 최고의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봄이다. 해변 휴앙지들은 5월에 문을 열어 관광객 맞을 준비를 한다. 가을도 쾌적하긴 하지만 기간이 짧아 10월말쯤에는 '꼬뜨 다쥐르'에서 일광욕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추워진다. 겨울은 알프스, 피레네 그리고 여러 산악지대에서 겨울레저를 즐기기에 좋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방학에는 많은 학생들로 스키장이 대만원을 이룬다. 7월 중순에서 8월 하순까지는 대부분 도시인들이 해변으로 산으로 외딴지역으로 그들의 5주 휴가를 떠나기 때문에 휴양지의 호텔과 야영지는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는 반면, 한적한 도시의 상점, 식당, 극장, 호텔 등은 외국 여행객들이 많이 머무르긴 하지만 대부분 문을 닫고 여름을 지낸다. 2, 3월 방학기간도 마찬가지이다.




주요 여행지

파리(Paris)



광범위하게 따져 인구 1300만 명이 거주하는 빠리는, 대표적인 명물 노틀담과 에펠탑, 일출, 일몰 그리고 밤마다 변하는 세느강과 강변의 황홀한 아름다움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19세기의 넓은 가로수 길과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물, 박물관과 공원, 정원, 산책길 등 빠리 곳곳에서 풍기는 웅장함과 독특한 분위기를 만족스럽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계절 모두 매력적인 도시인 빠리를 걷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귀에 익었던 샹송을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것이다. 행정상 빠리는 20개의 구(arrondissements아롱디쓰망)로 나뉘어져 있다. 빠리 주소에는항상 구번호가 적혀 있는데, 1er 1, 19e 19구를 뜻한다. 주소의 다섯자리 우편번호에도 구가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75001 1, 75014 14구이다.빠리의 전철시스템은 아주 편리하며 교통수단이 교차되는 곳 500m이내에는 항상 지하철역(Metro)이 있다.


생 말로(Saint Malo)



항구도시 생 말로는 브르따뉴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로, 랑스(Rance)강 입구에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다운 해변은 세계에서 가장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해변 중 하나로 밀물과 썰물 때 해수면의 높이가 13m까지 차이를 보인다. 생 말로 북쪽에는 '에메랄드 해안(Cote d'Emeraude 꼬뜨 데메로드)'이 있다. 생 말로는 17, 18세기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 중 하나로, 영국을 대상으로 한 많은 상선들이 이곳을 근거로 활동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인 1944 8월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에서 구시가지의 80%가 파괴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주요 유적지들은 복원되었지만 나머지는 17, 18세기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이 곳의 볼거리로는 11세기의 생 뱅쌍 성당(Cathedrale Saint Vincent)과 수세기를 지내오면서 거의 그대로 보존된 성벽(이 곳에서 보는 파노라마가 일품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역사가 전시된 구시가박물관(Musee de la Ville뮈제 드라빌)과 거대한 수족관(Le Grand Aquarium) 등이 있다. 생 말로에서 몽생미쉘(Mont-Saint-Michel)을 당일로 갔다올 수 있다.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 샤또 드 샹보르)



프랑소와 1세에 의해 1519년 건축되기 시작한 샹보르 성은 르와르지방에서 가장 크고 가장 방문객이 많은 성이다. 르네상스풍의 건물과 장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왕의 초대를 받아 앙브와즈(Amboise(이곳에서 45km 남서쪽))에서 1516년부터 3년 후 그가 죽기까지 살았다고 한다. 프랑소와1세의 창조물인 샹보르에는 해그의 상징인 'F'자와 광폭한 성질을 가진 도롱뇽 무늬가 건물 내 대다수 방에 새겨져 있는데, 800명의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15년간 샹보르성의 건축에 힘을 쏟았다고 한다. 몰리에르는 이곳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을, 루이14세 및 청중들 앞에서 처음 상연하였다. 성에 있는 나선형 계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간주되며, 화려한 초창기 르네상스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의 440개 방 중, 단지 10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옥상 테라스에서는 이 지역의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을 볼수 있다.



비아리츠(Biarritz)



이 고급스런 해변도시 비아리츠(인구 3만명, 그러나 여름엔 4배가 된다)는 베이욘느(Bayonne)에서 서쪽 8km거리에 있다. 나폴레옹3세가 그의 부인 유제니와 함께 찾아오곤 했던 19세기 중반무렵부터 휴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부유한 영국인들이 많이 찾아왔으며 빅토리아여왕과 에드워드 7세도 방문했는데 방문을 기념해서 그들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겼다. 멋진 해안과 유럽에서 손꼽히는 파도타기 지역으로 유명하다. 여름철마다 각종 텐트가 줄지어 있는 그랑드 해변(Grande Plage) 19세기 중반 나폴레옹3세와 그의 부인 유제니를 위한 별장으로 건설된 곳이다. 그랑드해변에서 남쪽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자줏빛 절벽과 만나는데 Rocher de la Vierge라는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성마리아의 하얀 조각상이 있다. 비아리츠의 해양박물관(Musee de la Mer)에는 24개 탱크의 수족관이 있으며 다양한 물고기와 물개, 상어 등이 전시되어 있다. 비아리쯔는 물가가 비싸서 여행예산에 심한 타격을 줄 수도 있는 곳이지만, 베이욘느나 앙글레(Anglet)에 있는 호스텔에 묵으면서 하루 정도 들러 볼 만한 곳이다.



싸를라 라 까네다(Sarlat-La-Caneda)



보통 싸를라(Sarlat)라고 불려지는, 뻬리고르지역의 이 아름다운 르네상스도시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재난에도 불구하고 16세기와 17세기의 석회암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쌩 싸쎄르도 대성당(Cathedrale Saint Sacerdos)은 원래 9세기에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지어진 것이었으나, 그 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증축, 재건축된 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쪽으로는, 싸를라의 중세 공동묘지 쟈르뎅 데 뻬니땅(Jardin des Penitents) 12세기에 성 베르나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벌통모양의 탑 랑떼른느 데 모르(Lanterne des Morts:죽은 자의 빛)가 있다. 라리베르떼 광장(Place de la Liberte)에서 열리는 토요시장도 볼 만하다. 싸를라에 있는 여행사에서 남쪽의 베제르(Vezere)계곡과 라스꼬 제2동굴 등 인근의 여러지역으로 가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샤모니(Chamonix)



인구 1만명인 샤모니는 프랑스 알프스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가진 곳이다. 알프스 주변의 웅장한 경관은 거의 히말라야 산맥과 흡사한데, 골짜기 바닥에서부터 3.8km 수직으로 솟아있는 몽블랑(Mont Blanc)과 얼음으로 뒤덮인 뾰족한 봉우리들, 그리고 수 km의 빙하계곡들이 장관을 이룬다. 늦봄과 여름에는 빙하들이 약간씩 녹아 꽃과 나무로 가득한 주변의 초원과 언덕에 촉촉한 물기를 제공한다.샤모니 지역에는 330km에 달하는 등반로가 있고, 겨울에는 최고의 스키지역으로 200km의 다운힐과 크로스 컨트리 스키장이 있다.에기유 뒤 미디(Aiguille du Midi)는 몽블랑 정상에서 8km 떨어진 한적한 바위꼭대기로, 샤모니에서 이곳으로 오는 뗄레페리끄(telepherique)는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는 케이블카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빙하와 눈 덮인 평원, 바위산 등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대개 아침 일찍 올라가야 시야도 좋고 비 맞을 확률도 적다. 5월 중순에서 9월까지는 Aiguille du Midi에서, 이탈리아 국경부근에 있는 봉우리 뿌엥뜨 엘브로네(Pointe Helbronner(3466m))와 이탈리아 휴양도시 꾸르마예르(Courmayeur)로 갈 수 있다.계곡 서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르브레방(Le Brevent 2525m)은 몽블랑과 계곡 동쪽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샤모니에서 뗄레꺄빈(telecabine)과 뗄레페리끄로 올 수 있는 이곳에는, 다양한 루트의 하이킹코스도 있다.알프스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 얼음의 바다)는 길이 14km 1950m로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1913m의 정상까지는 등반기차로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기차는 샤모니의 몽땅베르 기차역(Gare du Montenvers)에서 출발한다. 아를르(Arles)인구 52천의 아를르는 꺄마르그(Camargue)충적평야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가 폼페이를 도와 마르세이유를 침략, 점령하던 BC49년부터 번영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중요한 무역도시로 발돋움하더니1세기 말엽에는 2만석 규모의 원형극장과 12천석 규모의 극장건물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아렌느(Arene)와 떼아트르 앙띠끄(Theatre Antique 고대극장)으로 불리우는 이 두 건물들은 아직까지 투우경기와 문화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12세기 지어진 쌩트로핀 성당(Cathedrale Saint Trophine)과 쌩트로핀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물로, 반 고호가 해바라기같은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아를르 시내광장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긴 콧수염을 휘날리며 광장에서 뻬땅끄(petanque 프랑스 구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목을 축일 수 있다.



아를르(Arles)



인구 52천의 아를르는 꺄마르그(Camargue)충적평야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시저가 폼페이를 도와 마르세유를 침략, 점령하던 BC49년부터 번영하기 시작했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어 중요한 무역도시로 발돋움하더니 1세기 말엽에는 2만석 규모의 원형극장과 12천석 규모의 극장건물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아렌느(Arene)와 떼아트르 앙띠끄(Theatre Antique 고대극장)으로 불리우는 이 두 건물들은 아직까지 투우경기와 문화행사를 위해 사용되는 곳이다.12세기 지어진 쌩트로핀 성당(Cathedrale Saint Trophine)과 쌩트로핀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물로, 반 고호가 해바라기같은 그의 유명한 작품을 이곳에서 그렸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다.아를르 시내광장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긴 콧수염을 휘날리며 광장에서 뻬땅끄(petanque 프랑스 구기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목을 축일 수 있다.



깐느(Cannes)



깐느는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항구, , 언덕, 해변가 산책로, 해변, 그리고 거기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어우러져 방문객을 흥겹게 한다. 세련된 매너로 돈을 물쓰듯 하는 부자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일 것이다. 깐느는 많은 페스티발과 문화행사로 유명하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깐느 국제 영화제(5월중순)일 것이다.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질 않지만 5-10월이 가장 붑비는 관광철-이 때를 피해가면 지역 주민들이 좀 더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해져 스트레스 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해변가를 끼고 산책하기에 좋은 곳들이 많다. 한때는 어항이었지만 지금은 유람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구항구(Vieux Port 비유뽀르)에는 으리으리한 요트들이 많이 정박되어 있다. 이 곳의 주변거리는 여름철 해가 지면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의 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아주 아름다운 야경을 이룬다. 구항구 바로 서쪽에 있는 언덕 르쉬께(Le Suquet)는 맑은 날 밤에 올라 깐느 시의 훌륭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꼭대기에는 카스트르박물관(Musee e la Castre)도 있다. 불르바르 드 라 크루와젯(Blvd de la Croisette)은 전나무와 야자수가 드리워진 길로, 이곳을 걷는다면 리비에라에서 가장 멋진 길에서 산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고급 호텔들이 많이 있는데 이 호텔들이 해변을 거의 소유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해변은 페스티발 궁전 가까이 있는 좁은 모래 사장 뿐이다. 무료 해수욕장으로는, 쁠라쥬 뒤 미디(Plages du Midi)와 쁠라쥬 드 라 보까(Plages de la Bocca)가 있다.유칼리나무와 소나무로 뒤덮인 성 마가리트섬(Ile Sainte Marquerite)은 알렌상드르 뒤마의 소설로 유명해진 '철가면' 17세기 말 유배되었던 곳으로, 육지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다. 면적이 넓지 않아(3.2x0.95km) 다양하게 난 길들을 따라 섬을 횡단하거나 둘러보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마가리트 섬보다 더 작은, 성 오노라섬(Ile Saint Honorat)에는, 한때 이 지역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떨쳤던 5세기 수도원이 있다. 이 두 곳은 깐느에서 페리로 연결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일 우썽 (Ile d'Ouessant)



아름답지만 야생적인 이 섬은 브르따뉴 해안에서 가장 험한 곳이다. 이 지역의 거친 특성과 험한 바위들은 무서움을 느끼게도 한다. 8km길이 집게발모양의 섬은 매년 수로로 들어오는 50,000척의 배들에게 등대 노릇을 한다. 과거의 세기들을 극복하고 이 곳은 더 이상 다른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가진 않는다. 이 곳의 집들은, 성모마리아를 위해 파랑과 하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부목과 내부 인테리어를 구별하기 위해 초록과 하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곳 할머니들이 거칠고 마디 굵은 손으로 매듭을 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섬 어디에서나 검은 색의 작은 양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곳의 주요음식은 양스튜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등대와 이 지역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그리고 멋진 산책로와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의 자랑거리이다.본토에서 20km 떨어져 있는 이 섬은 브르따뉴 북서부연안의 르 꽁께(Le Conquet)와 브레스크(Brest)항에서 갈 수 있다.


피레네 국립공원(Parc National des Pyrenees(빠르 나씨오날 데 삐레네))



1967년에 생긴 피레네 국립공원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따라 100km까지 뻗어 있고, 460평방km의 공원에는 수 백개의 고지대 호수들과, 프랑스 피레네에서 가장 높이 솟은 3300m의 비뉴말봉(Sommet du Vignemale)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공원면적은 단지 12%정도에 불과하다. 연강수량은 2000mm이며 대부분은 눈이 내린다. 보호동물종으로는 갈색 곰(15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음)과 스라소니, 샤무아영양, 마멋, 그리고 멸종위기의 조류인 수염난 대머리수리와 황금독수리가 있다. 공원에는 암벽등반가와 하이커들이 선호하는 350km의 등반로들이 있는데, 그 중 몇 곳은 스페인과 연결되어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연중 개방되는 산장들이 많이 있다.인근에 있는 뽀(Pau)에서, 가이드와 함께 이 곳을 등반하는 소규모 그룹에 참여할 수 있으며, 개별 하이킹과 자전거여행도 가이드 받을 수 있다. 루르드(Lourdes)남쪽에서 30km거리, 공원 동쪽편의 꼬트레(Cauterets)가 가장 편하고 가기 쉬운 관문이다.


베젤레(Vezelay)



베젤레는 작은 성곽마을로, 많은 포도밭과 해바라기 들판, 브루넷 농경지와 인상파 그림을 떠올리는 목초더미들이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며,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시골풍경에 자리잡고 있는 역사적인 마을이다. 원래 이곳은 방어의 목적으로 언덕지대에 세워졌는데 10세기에는 순례자들이, 그 후에는 십자군 원정 때 왕과 대공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되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9세기에 지어진 성 마들렌느 성당(Basilique Sainte Madeleine)이다. 중세기 동안, 이 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이 묻혀있던 장소로 여겨 그녀를 기리는 722일에는 순례자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아 들었다고 한다. 이 전통은 꾸준히 이어져, 지금도 매년 행사에서 마을을 도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훌륭하게 복구된 교회는 부르고뉴 양식의 걸작품으로, 로마네스크 건축물에 그로테스크한 조각물, 조각된 기둥들과 웅장한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뒤에 있는 공원에서는 뀌르(Cure)강 계곡과 인근 마을들의 멋진 전경을 볼 수 있으며, 이 마을들 어느 곳이든지 시골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산책로들이 많이 있다. 베즐레는 아발롱(Avalon)에서 15km, 옥세르(Auxerre)에서 51km 떨어져 있고, 모르방 자연공원(Parc Naturel Reginal du Morvan)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그라스(Grasse)

깐느에서 7km 떨어져 있는 그라스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주요 향수생산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있는 향수제조의 대가(흔히 네쯔(nez:불어로 ''란 뜻)라고 불리는)들은 이 자연의 선물인 '향기'를 연구하여 6000여종 이상의 향을 만들어 내왔다. 오렌지빛 지붕으로 눈에 띄는 이 마을에는 향수의 도시답게, 쟈스민, 센티폴리아 장미종, 미모사, 오렌지색 사과꽃, 취하게 하는 나르시스 등이 재배되고 있다.4여개의 향수공장 중 3개만이 일반에게 공개된다. 그 중 하나인 프라고나르(Fragonard) 17세기 무두질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투어에 참가하면, 비누더미, 향기나는 가죽다발, 향료가 가득한 상자들로 쌓여진 창고를 둘러보며 이곳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무수히 많은 꽃들에서 향료를 추출하고 걸러내어 무수한 향 테스트를 한 후 1리터의 향수가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을 다 구경한 후 나오는 사람들로부터는 향수냄새가 진동을 할 것이고 손에는 향수꾸러미가 여지없이 들려 있을 것이다.



코르시카(Corsica)



꼬뜨다쥐르 남동쪽으로 170km거리에 있는 코르시카는, 급류가 굽이치는 산악에서부터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안까지, 지중해에 있는 섬 들 중 가장 다채로운 지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방대한 하이킹지역뿐만 아니라 멋진 배경의 사진장소들도 많이 제공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프랑스와 전혀 다른 언어와 요리, 생활방식으로 색다른 이국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코르시카 독립에 대한 끊임없는 움직임이 이런 이질적인 문화을 더욱 갈구한 것이다. 대부분 민족주의자 단체들은 내부의 보복살인과 재산피해를 가져오는 폭력을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곳에서의 여행자들은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항구도시 아작시오(Ajaccio)는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대부분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코르시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최근 현대화의 바람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파스텔풍 도시의 구시가 골목길에는 산책과 사색을 즐기기에 좋은 여유가 남아 있다. 나폴레옹의 교훈을 남기는 수많은 기념비와 박물관 외에도, 화강암 봉우리 '라 쁘웽뜨 드 라 빠라따(la Pointe de la Parata)'에서 일출을 볼 수도 있고, 마을에서 가까운 해변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섬에서 가장 알아주는 자연지역은 레깔랑슈(Les Calanche), 붉은색과 오렌지빛 화강암으로 된 산악지형은 악마성과 평범성을 가진 양면의 인간과 동물 그리고 빌딩 모양을 하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지중해와 북부산악지대의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근처엔 짧지만 쉽지않은 하이킹코스도 많이 있다. 코르시카 최남단에 있는 보니파시오 성( Citadelle of Bonifacio)은 길고 좁은 석회암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중세기동안 수회의 잔인한 공격을 받았던 마을의 좁은 골목길 등에서는 중세풍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에서 가까운 칼비(Calvi)는 코르시카 북서쪽 해변마을이며, 북쪽 25km 뻗어있는 칼비와 루스섬(l'Ile Rousse)사이의 해안에는 아름다운 해변가들이 줄지어 있다.코르시카 여행에 최적의 시기는, 항상 태양을 볼 수 있고 꽃들이 활짝 피는 5월과 6월로 이 때는 유럽여행객들로 붐비지도 않는다. 코르시카의 마을들로 가려면 프랑스 여러 공항과 유럽 대도시에서 직항편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더 저렴한 방법으로는 페리를 이용하는 것인데 페리는 종종 잦은 파업으로 노선이 끊길 때가 있고 심지어는 몇 주 동안 운항이 중단될 때도 있다.




레저스포츠

프랑스의 다양한 지리와 기후는 각종 많은 야외레포츠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하이킹을 취미 삼아 즐기며 그에 걸맞게 하이킹코스들도 무수히 많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들은GR(Grande Randonnee)로 표시된 길들인데, GR 5로 표시된 곳은 알프스에서 연결되며, GR4 마씨프 쌍트랄, 가장 인기있는 GR 10은 지중해와 대서양에 걸쳐있는 피레네산지와 연결된 곳이다. 싸이클은 프랑스의 또 다른 인기종목으로, 랑그독(Languedoc)지방의 라 마르쥬리드(LaMargeride)는 산악자전거지역으로 특히 알려져 있다. 이 외 알프스, 브르따뉴, 피레네 등지도 인기있는 곳이다. 스키도 빼놓을 수 없는 대중 스포츠로, 유럽에서 가장 좋은 스키지역을 자랑하는 알프스(샤모니(Chamonix) )와 조금 저렴한 꼬트레(Cauterets)부근 피레네지역, 그리고 크로 컨트리스키로 알아주는 마씨프 쌍트랄지역이 대표적인 스키지역이다. 수영하기에 적합한 장소로는, 대서양 연안(라 로쉘(la Rochelle)부근)과 노르망디 연안, 남부 브르따뉴, 지중해(코르시카연안을 포함한) 등 해안가와 호수지역, 즉 안느시호수(Lac d'Annecy), 제네바호수 등이 있다. 홀가분한 몸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을 반영하는 곳이 또한 해변가로, 나체주의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특히 랑그독-루시용(Languedoc-Rousillon)지역과 꼬뜨다쥐르 해안가등에 많이 있다. 이 외 다른 것으로는, 알프스와 피레네등지에서 하는 암벽등반과 부르고뉴와 프랑스 바스크 지역에서의 승마, 프로방스 베르동(Verdon) 계곡에서의 래프팅, 비아리츠(Biarritz)에서의 써핑, 그리고 랑그독지방에서의 행글라이딩 등이다. 몸보다 머리를 쓰고 싶다면 프랑스어와 요리수업을 수강하는 것도 가능하다.




파리로 가는 길

에어 프랑스와 다수 항공사들이 파리와 다른 지방 도시들로 연결된다. 국제선이 바로 연결되는 파리 이외의 도시로는, 보르도(Bordeaux), 리옹(Lyon), 마르세유(Marseille), 니스(Nice),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툴루즈(Toulouse) 등이 있다여러 유럽도시에서 오는 국제노선 버스와 기차들은 주로 파리와 연결되며, 일반적으로 버스가 기차보다 속도와 안락함에 있어 조금 뒤지지만 저렴한 장점이 있다(특히 26세 이하와 60세 이상에게 적용되는 10%할인을 받을 경우와 특별 할인적용구간인 경우는 더더구나).영국해협을 건너는 터널이 1994년 완공되어 유로스타가 운행됨에 따라 조용하고 빠르게 런던과 연결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버스등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초고속기차도 운행되고 있다.가장 조용한 페리와 하버크라프트가 깔레(Calais)와 도버(Dover), 불로뉴(Boulogne)와 포크스톤(Folkestone)사이에 운행되고 있다. 브르따뉴와 노르망디에선 영국과 연결되는 많은 루트가 있다 ; 생 말로(Saint Malo)에서는 카페리와 하이드로포일로 웨이마우스(Weymouth), (Poole), 포츠마우스(Portsmouth)로 갈 수 있으며, 로스코프(Roscoff)에서 플라이마우스까지도 페리가 연결된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사이에도 페리가 있는데 쉐르부르(Cherbourg)와 코크(Cork)를 연결한다. 이 외 영국해협의 섬들과 사르디니아(Marseille-Porto Torres), 이탈리아(Corsica-Genoa) 그리고 북아프리카(Marseille-Algiers, Marseille-Tunis, Sete-Tangier)등으로 페리가 운행된다.


국내 교통편

프랑스 국내선이 대부분 주요도시들로 연결되는데, 가격은 매우 비싼 편이다. 그러나 때로 나오는 할인티켓들은 기차나 버스보다 저렴할 때도 있다.정부에서 운영하는 프랑스 국철 SNCF(Societe Nationale des Chemin de Fer)는 거의 전 지역으로 연결되는 노선으로 더할 나위없이 편리하다. 초고속열차 TGV((train a grande vitesse)로 인해 여행이 훨씬 빠르고 쉬워졌는데 어떤 곳은 항공보다 신속한 여행이 될 때도 있다 (Paris-Lyon 구간 등).주로 단거리를 운행하는 시외버스들은 그리 노선이 많지 않으나 기차연결이 잘 안되는 지역(브르따뉴나 노르망디 등)에서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보다 장거리를 이용할 경우는 기차보다 속도가 느리지만 저렴하다(그러나 단거리 이용 시는 기차보다 느리면서도 비싼 편이다). 자동차로 여행한다면 경비도 비싸지만, 대도시 내에서의 주차와 교통사정으로 쾌적한 여행에 제동이 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대부분 지역에서 경적(프렌치 브레이크 페달이라고 불리기도 함)을 울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상 일단 운전대를 잡으면 너무 소극적이거나 지나치게 교통예절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여행자임을 광고하여 눈에 띌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 도착하여 렌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싸며, 일찍 예약해 지불할 경우 할인해 주는 프로그램들을 찾아 빌린다면 괜찮을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싸이클여행은 권할 만하다. 경치와 도로상태가 좋고 자전거를 위한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여행방법으로 보트크루즈가 있는데 4-12인승이 일반적으로 대여되는 것이며, 주단위로 빌릴 수 있다. 파리 시내 대표적 교통수단은 메트로와 RER(지하철과 국철)이고(다른 대도시에도 지하철이 있다) 이 외 시내 대중교통수단으로는 전차, 버스, 알프스지방에 많은 케이블카같은 텔레페리크, 비싼 택시, 그리고 셔틀페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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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스페인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스페인은 플라멩고, 음악, 역사, 회화, 건축, 문학, 영화, 스포츠, 투우, 축제 등 다방면으로 넘쳐나는 예술과 문화의 발굴물이다. 떠들썩한 스페인사람들과 매력적인 여름날씨는 몇 십년 동안 북부유럽의 안개와 끈적한 습기를 피하기 위한 훌륭한 장소로 각광받아 왔으며 졸부들의 별장으로 해안가는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제국과 정복자들이 남겨 놓은 역사적인 화려한 유물들과 고야와 피카소 등 뛰어난 화가들의 작품, 돈키호테의 로망스 등 역사의 자취들이다.



통계 자료

국명 : 스페인(Spain)

면적 : 504,788 평방 km

인구 : 3,920만 명 (성장률 : 0.2%)

수도 : 마드리드(Madrid: 인구: 2,984,576)

인종 : 스페인인(카탈로니아인과 바스크인은 투철한 독자성을 나타낸다.)

언어 : 카스틸 스페인어 (그리고 카탈로니아어, 갈리시아어, 바스크어 등)

종교 : 99% 로마 카톨릭

정체 : 입헌 군주제




지리 및 기후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볼 때 유럽에서 가장 다양한 토양을 가진 나라일 것이다. Almeria의 사막에 가까운 지형부터 Wales의 초지, Galicia의 깊은 해안지대, Castilla La Mancha의 일광이 좋은 평야지대와 Pyrenees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이베리아 반도 80%를 차지하는 스페인은 국토의 반 이상이 평평한 고원지대인 mesetas가 차지하고 있다. 5개 산맥이 메세따스를 중심으로 국토 전역에 뻗어 있는데 프랑스와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피레네 산맥, 안달루시아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북부의 엑스트레 마두라에서 지중해까지 뻗쳐 내려오는 중부 코딜레라 산맥과 토칠레라 이베리카 산맥, 그리고 북부 대서양 연안을 따라있는 코딜레라 칸타브리카 산맥 등이다. 주요 강으로는 Ebro, Duero, Tajo(Tagus), Guadiana, Guadalquivir 등이 있는데 이 강들은 제각기 산과 산 사이의 서로 다른 줄기에서 시작되며, 지중해로 흐르는 Ebro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대서양으로 흘러간다.

보는 즉시 방아쇠를 당기라는 유행어가 스페인의 야생동물계를 파괴해버렸다. 아직 볼 수 있는 것은 붉은 다람쥐와, 영양, 붉은 사슴, 야생염소, 마멋, 그리고 다양한 파충류군이며, 식물계는 이보다는 더 풍부한데, 특히 고산지역에 많이 있다.태양이 가장 강렬한 7, 8월에는 스페인을 찾는 대부분 관광객들은 해안가로 몰린다. 이 때 마드리드의 더위는 숨막힐 정도이며 현지인들은 휴가를 떠날 때이다. 북부와 발레아레스 제도의 여름철 온도는 평균 30도를 웃돈다. 북부지방의 겨울은 비가 그칠 날이 없지만, 갈리시아 벽지와 피레네산맥에서는 눈이 내린다. 대개 지역적으로 나누면 여행 적기는, 여름에는 북부가 좋고, 봄에는 안달루시아, 가을에는 중부, 그리고 겨울에는 남부가 좋다.




역사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교두보로 오랫동안 침략전쟁의 목표물이 되어왔다. 기원전 3000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여러 부족들이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와 반도에 정착했고, 기원전 1000년경에는 캘트족이 스페인 북부에 자리잡았으며, 거의 비슷한 시기에 페니키아와 그리스 상인들은 지중해 연안에 뿌리를 내렸다.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침공은 스페인 전역이 하나의 권력아래 통합되는 계기가 되었고, 서서히 로마법과 언어, 관습 등이 피지배 민족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리하여 서기 74년까지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로마제국의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서기 1세기 기독교가 전해졌지만, 지배계층인 로마인들에 의해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서기 409, 스페인의 로마 정부는 막강한 게르만군의 침략을 받아 무너지고, 419년에 이르러 비지고스 왕국이 들어선다. 이 왕국은 711년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다가 이슬람이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고트 왕국의 마지막 왕조인 로데릭 왕조를 쳤을 때 멸망했다.


무어인의 스페인과 왕정복고운동

714년까지 이슬람군이 북부 산악지대를 제외한 스페인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알 안달루스(Al Andalus)라고 부르는 무어족의 남부 스페인 점령은 거의 800년이나 계속되었다. 이시기 동안 예술과 과학은 발전했고, 새로운 곡물과 농경법이 소개되고, 궁전, 이슬람 사원, 학교, 정원과 공중 목욕탕이 세워졌다. 722, 비지고스(Visigoth) 왕인 펠라요(Pelayo)가 북부 스페인의 코바돈가(Covadonga)에서 무어족에 대한 첫 번째 반격을 가했는데, 이 전투는 기독교인들에 의한 스페인 왕정복고 운동의 첫 움직임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펠라요와 그 후계자들은 작지만 강력한 기독교 왕국을 세우고, 영토 내에서 무어족을 쫒아 내는데 성공한다. 그 후 9세기 초까지, 영토를 계속 확장한 기독교왕국과 무어족의 이슬람 왕국 사이에, 바르셀로나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국경이 생겼다. 1085년 톨레도의 뒤를 이은 알퐁소 4(Leon Castile의 왕)는 무어족을 물리치기 위해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즈(Almoravids)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알모라비즈는 대부분의 알 안달루스 지역을 획득하여 1144년까지 스페인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 이 권력은 다시 다른북아프리카 부족 알모아즈(Almohads)에게 넘어가 1212년까지 지속된다. 그러나 1266년까지는정통 스페인 기독교 왕조가 그라나다 주를 제외한 전 스페인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13세기말까지 카스틸(Castile)과 아르곤(Argon)은 기독교 스페인의 두 핵심파워로 부상하였고, 1469년에는 Castile의 이자벨라 공주와 Argon의 페르디난드 왕자의 결혼으로 양국이 통합된다. 카톨릭 통치권으로 된 이 나라는 스페인 전 지역의 통일을 달성하여 황금시대 진입의 초석을 닦게 된다. 그러나 1478년 악명 높은 스페인 종교재판소를 설립하여 유태인과 비교도를 추방하고 처형하는 참극을 자행하기도 한다. 1482년 그라나다를 함락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 무어왕의 항복을 받아내어 장기간의 왕정복고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황금시대

1492년 인도로 가는 길을 찾는 도중, 우연히 바하마(Bahamas)에 이른 콜롬부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이를 스페인 영토로 선포한다. 이 신대륙 발견이 도화선이 되어 스페인은 해외 개발과 개척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고, 신대륙을 식민화하여 부의 노획과 신대륙 고유 문명 파괴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리하여 신대륙에서 유입되는 금과 은은 3세기 동안 스페인 팽창 정책의 재정적 원천이 되었다. 황금시대는 예술분야에 있어서도 황금기를 구가하여, 그레꼬(El Greco), 벨라스케스(Diego de Velazquez)와 같은 화가나 베가(Lope de Vega)와 쎄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와 같은 작가들을 배출해냈다. 1516년 페르디난드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인 손자 챨스(Charles)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고, 1519년 챨스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어, 오스트리아, 남부독일, 네델란드, 스페인 그리고 북 아메리카 식민지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다스리게 된다. 그러나 챨스와 그 후계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유입되는 금, 은이 줄어들어 재정이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 침략전쟁을 강행하여, 국가재정을 탕감하였다. 1588년에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의 드레이크경(Sir Francis Drake)이 이끄는 함대에 격퇴된다. 30년 전쟁을 치르는 동안 네델란드, 프랑스, 영국과도 불화가 생겨 챨스 2세가 왕위에 등극했을 즈음 이미 스페인은 빚더미에 내밀려 쇠퇴의 일로를 걷고 있었다.


18-9세기

챨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운명함으로서 합스부르크 왕조는 막을 내렸고, 스페인 왕위를 둘러싸고 전쟁이 계속된 끝에 프랑스 국왕 루이의 손자 필립 5세가 왕권을 장악해서 부르봉(Bourbon)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부르봉 왕조는 스페인을 통일하고 안정과 개혁을 추구하며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18세기말까지 지속되었으나, 이런 발전도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변혁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되었다. 루이 16세가 1793년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때, 스페인은 신설 프랑스 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했으나 패전했다. 1808년에는 나폴레옹 군대가 포루투갈 침략의 경유지라는 구실로 스페인에 들어와서는 챨스 5세를 설득해 결국 왕위를 자신의 동생인 조셉(Joseph Bonaparte) 에게 넘겨주도록 했다. 이에 대항하여1808 5 2일 마드리드 폭동 이후 스페인 국민은 하나로 단결, 그 후 5년간 프랑스에 대한 독립 전쟁을 지속했다. 마침내 1815, 웰링톤(Willington)이 이끄는 군대는 나폴레옹을 몰아내고, 페르디난드 7세를 옹립하고 왕정을 복고하기에 이른다. 페르디난드의 20년 통치는 스페인 정국을 큰 혼란 속에 빠져들게 했다. 그는 종교재판을 부활시키고 자유주의와 헌법주의 주창자들의 목을 베었고, 자유 발언을 억압했다. 스페인 경제는 후퇴일로에 놓였고, 미국은 이를 틈타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1833년 그가 죽자 그의 동생 카를로스(Don Carlos)가 이끄는 보수파와 그의 딸 이자벨라(후에 이자벨라 2세가 됨)를 옹호하는 자유파 사이에 제 1차 왕권 쟁탈전이 야기된다. 1868년에는 9월 혁명이 일어나 이자벨라 2세가 쫒겨나고 1873년 제1공화국이 선포된다. 그러나 18개월만에 군대가 이자벨라의 아들 알퐁소 12세를 왕으로 하는 왕정 복고를 단행한다. 19세기 동안 스페인 경제는 이러한 정치적 격동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에 힘입어 번창했다. 그러나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은 급기야 스페인왕국의 몰락을 초래하는데, 미국이 해전에서 잇달아 스페인을 격퇴함으로서 스페인은 그간 확보해 온 식민지들을 잃게 되었다. 일단 쿠바가 독립을 선언했고, 푸에르토리코, , 필리핀이 미국의 손에 넘어갔다



20세기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도, 모로코에서 군부가 초래한 혼란들, 증가하는 정치적 불안과 급진파들에 의한 기초 질서 전복 시도 등 스페인을 둘러싼 소란들은 그칠 줄을 몰랐다. 1923년 내란의 위기상황에서 Miguel Primo de Rivera가 스스로를 군부 독재자로 자칭하고 나와 1930년까지 나라를 지배했고, 1931년에는 알퐁스 13세가 도망가면서 제 2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제2공화국 역시 갈등의 불씨를 끄지 못하여, 1936년 선거를 둘러싸고 다시 국론이 양분되었다. 그 한 세력은 공화국 정부와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자,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사회주의자, 시민단체, 권력이 약화된 교회세력 등, 전적인 합의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형성된 그 지지세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군대, 교회, 왕족, 파시즘적 스타일의 팔란세당(Falange Party)이 연합한 보수 우익 국수주의였다. 1936년 공화국 경찰에 의한 야당 지도자 소테로(Jos Calvo Sotelo)의 암살 사건은 군대에 정부 전복의 구실을 제공했다. 뒤이어 일어난 1936-39년 내전동안,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장군이 이끄는 국수주의 세력은 나찌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로부터 거의 무제한적으로 군사, 재정 지원을 받은 한편, 선출된 공화국 정부는 러시아와 유명지식인, 예술인(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로리 리등)으로 구성된 국제조직의 심리적 지원이 고작이었다. 1939년 프랑코가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60만 이상의 스페인국민이 죽음을 당했으며, 전후에는 수천 공화당원들이 처형되고 감옥에 가거나 국외로 추방되었다. 프랑코가 권좌에 있는 35년간 스페인은 경제 봉쇠로 따돌림받고, 나토와 UN으로부터 축출되었으며, 경제 공황에 빠졌다. 그러다가 1950년에 들어서 관광 정책이 활성화되고, 미국, 로마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는 등 국교 정상화와 외자 유치에 힘쓰기 시작하면서 경제가 서서히 회생하기 시작, 1970년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국의 하나로 재부상하기 시작했다. 1975, 알퐁소 13세의 손자이자 후계자, 본명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세칭 프랑코왕이 죽었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스페인은 독재 정치에서 민주 정치로의 진화를 이룩했었다. 1977년에는 첫번째 선거가 실시되었고, 1978년에는 새 헌법 초안이 마련되고, 1981년에는 복고주의자의 쿠데타가 있었으나 실패로 끝났다. 1986 EC(현재의 EU)에 가입했고, 1992년에 이르러 스페인은 일류국가로의 복귀를 주창하고 나서,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세빌리야 92 엑스포를 열고, 마드리드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선포하기도 했다. 1996년 투표에서 엘튼 존의 팬이자 전 세무감시관인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Jose Maria Aznar)가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1 6,078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32,067

연성장률 : 3.5%

인플레이션 : 4.3%

주요 생산품 : 섬유, 의류, 식품, 음료, 금속, 화학

주요 교역국 :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문화

스페인에는 뛰어난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황금기(16-17세기 중반)의 대표적 인물로는 톨레도에 기반을 둔 화가로서, 그레코(El Greco)와 벨라스케스(Diego Vlazquez)가 있고, 18세기에는 고야(Francisco Goya)의 대작들이 단연 으뜸이다. 20세기에는 피카소, 달리 등 카탈로니아 그룹 소속 화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스페인에서 건축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화려한 역사를 가진다. 가장 초기의 조형물은 발레아릭 군도의 Menorca에 있는 선사시대 기념비이며, 로마시대 유품으로는 Merida Tarragona의 마을터, 세고비아의 대형수로의 흔적을 꼽을 수 있겠고, 무어족 시대의 것으로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와 코르도바의 메스키타(Mezquita)가 있다. 이외에도 이슬람과 크리스찬 조형이 섞인 무데자르(Mudejar) 빌딩들, 고딕양식의 성당과 성, 궁전들, 그리고 환상적인 모더니즘 기념물과 가우디의 복잡한 조각물 등이 스페인을 수놓고 있다.

초기 스페인 문학의 대표작은 11세기 용감한 기독기사였던 엘시드(El Cid)의 생애를 그린 Cantar de Mio Cid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Don Quizote de la Mancha) 17세기에 씌어진 것이다. 20세기 주요 작가로는 서-미 전쟁 시대 형성된 98세대(Generation of the 98)의 멤버인 우나무노(Unamuno)와 가쎄(Gasset)가 있고, 연극 Blood Wedding Yerma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Federico Garcia Lorca가 있다. 소설 The Family of Pascal Duarte Camilo Jose Cela 198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며, 자전적 작품 Forbidden Territory로 유명한 Juan Goytiso는 가장 주목받고 있는 현대작가이다. 지난 25년간 여성 작가들, 특히 페미니스트들의 저작활동이 활발했는데, 모랄레스(Adelaide Morales), 마투테(Ana Maria Matute), 로이그(Montserrat Roig) 등이 대표적이다.

전통 춤 플라멩고는 스페인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달루시아가 전통적인 플라멩고의 고장으로 이곳 남부에 가면 플라멩고 쇼를 보여주는 클럽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체로 비싸고 사업차 온 관광객들만을 상대로 하는 경우도 있다. 남부지방에서 열리는 여름 축제가 플라멩고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스포츠관람은 광적인 것으로 특히 축구의 열기는 대단하다. 국제동물보호협회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긴 하지만 투우의 열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카톨릭이 생활 전반에 걸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20%정도만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신자들이고, 오히려 교회에 대한 회의주의가 더 만연한 것 같다. 국민들은 내전 중 억압과 부패, 구질서의 상징이었던 교회를 불태우고 성직자들을 죽이기도 했었다.

스페인 음식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평을 받고 있다. tapas pinchos같은 스낵은 스페인사람들에게 거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고, paella, gazpacho, chorizo등도 인기 있는 음식이다. 스튜나 수프, 해물요리, 육류요리들은 라틴아메리카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들이다. 쓸쓸히 혼자 식사하거나, 여행자들만 벅적거리는 곳에서 먹고 싶지 않으면 위장의 타이밍을 스페인 사람들과 맞춰야 한다. 아침은 롤빵이나 페스트리로 간단하게 하고 주요식사시간은 점심으로 1.30에서 4시 사이이다. 저녁은 가볍게 하며 10시에서 11시경이다.


축제 및 행사

스페인의 문화 행사는 대단히 열광적이며 축제 뒤에는 항상 휴일이 뒤따른다.

2- San Sebastian 에서 열리는 La Tamborada. 도시 전체가 화려하게 장식되고 열광적인 분위기가 된다). 카니발은 2월말이면 어느 지역에서나 불 수 있는데, 가장 시끌벅적한 것은 Sitges에서 열리는 것이다.

3 - Valencia지방의 Las Fallas. 1주일간 지속되며 한밤의 댄스파티와 최고의 불꽃놀이, 화려한 행렬이 펼쳐진다.

4 - Semana Santa(성스러운 주)는 부활절 일요일 바로 전주이며 거리 곳곳에서 성스러운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이 기간 중 숙박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세빌리야(Seville)가 가장 볼만한 곳이다.세빌리야에서는 4월 말 1주일간 Feria de Abril축제가 펼쳐진다.

7/8 - 7월에 있는 Pamplona의 투우 경주는 가장 유명한 스페인 축제이다.

8월 중순까지는 북부해안가를 따라 Semana Grande 축제가 열린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9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다.

시차 : 한국이 스페인보다 9시간 빠르다.

전압 : 220 volts, 50 Hz

도량형 : 미터제 사용 (도량형 환산표[영문]참조)

관광객 : 4,510




여행 경비 및 환전

화폐 : 페세타(peseta)

환율 : US$1 = 144 pta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 US$4-8

식당 식사 : US$10-15

저렴한 호텔 : US$8-18

중급 호텔 : US$18-40

스페인은 유럽여행 중 비교적 저렴한 곳에 속한다. 절약한다면 1 US$20-25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 가장 저렴한 숙박에서 묵으며 식당 식사와 박물관, 바 등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너무 숨막힌다고 생각된다면 조금 더 윗 단계로 1 US$40정도 예상할 수 있다. 여행자 수표는 은행과 환전소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현금보다 조금 더 나은 환율을 적용 받는다. 신용카드는 중급 이상의 호텔과 레스토랑, 그리고 장거리 기차표를 구입할 때 사용 가능하다. 요즘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도 현금인출기가 있다. 돈을 휴대할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하는데, 관광객들이 소매치기의 주 타겟이 되기 때문이다-1995 6월에서 9월 사이 단 4개월 동안 영국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20만 개가 스페인에서 분실되었다고 한다. 레스토랑 메뉴판 가격은 봉사료가 포함된 것이며, 팁은 개인의 선택에 따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만족한다면 잔돈이나, 계산서의 5%정도를 남겨 놓는다. 바나 카페에서는 잔돈을 남겨놓는 것이 상례이다. 시장과 저렴한 호텔에서는 가격흥정이 가능하다.




여행 시기

스페인 여행에 이상적인 시기는 5, 6, 9(남부는 4월과 10월도 좋다)로서, 이 때 여행한다면 극심한 더위와 북적거리는 여행인파를 피할 수 있다. 남부와 남동부 지중해 연안은 따뜻한 기후로 겨울철 여행에 좋으며, 북서부와 해변, 고산지대에서는 뜨거운 여름을 피할 수 있다. 축제의 열기에 동참하고 싶다면 Semana Santa(부활절 전주) 10월 사이에 몰려 있는 축제기간에 방문할 것.





주요 여행지

마드리드(Madrid)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는 친절함이나 풍요로움에서는 바르셀로나에 뒤진다 할지라도 훌륭한 박물관의 소장품이나 미술화랑, 쾌적한 공원과 정원, 그리고 화려한 나이트라이프 등에서 충분히 도시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마드리드에 익숙해지기 가장 적절한 장소는 Puerta del Sol이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교통의 요지는 아닐지라도 스페인의 간선도로를 따라 측정된 거리를 'Km 0'라는 푯말로 표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 그대로 스페인의 센타라는 데 의의가 크다. Sol의 북쪽에 있는 나무 타는 곰의 형상은 마드리드에서 유명한 만남의 장소이다. 마드리드가 굉장한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관광객들의 관심은 주로 서쪽의 Campo del moro와 동쪽의 Parque del Buen Retiro 부근에 집중된다. Gran Via가 가장 흥미로운 거리이지만, 마드리드의 진정한 명물은 Plaza Mayor이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아트 갤러리로 손꼽히는 프라도 박물관(Museo del Prado)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15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스페인, 플랑드르, 이탈리아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고야의 작품들로 '옷 입은 마야' '나체의 마야'를 비롯해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벨라스케스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미술사 공부를 위해서라도 가봐야 할 곳은 띠쎈 보르네미짜 박물관(MuseoThyssen-Bornemisza)이다. 1993년 스페인 정부가 Thyssen-Bornemisza일가가 소유한 800여점의 그림을 사서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중세 종교미술을 비롯하여 엘 그레코, 카라바기오에서부터 드가, 모네, 반 고호, 미로, 피카소, 그리스, 폴락, 달리, 리히텐스타인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 찬란한 미술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 박물관으로 Museo de la Escultura Abstracta(Chillida, Miro 등의 추상 작품들이 전시), Museo Municipal(고야의 작품과 옛지도, 은제품, 도자기 등이 전시), Museo Casa de la Moneda(조폐국의 역사와 다양한 동전, 지폐등이 전시), Museo de America(16-20세기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물품들이 전시) 등이 있다. 미술이나 역사 기행에 지쳤다면 프라도로 가는 입구 맞은 편에 있는 아름다운 식물원(Real Jardin Botanico)에서 자연의 향기로움과 함께 휴식을 취해 보자. 실내장식으로 유명한 18세기 마드리드 궁전(Palacio Real)은 한 번 가 볼 만 하다. 굉장한 정성을 들여 치장한 벽이나 천장이라든지, 아주 고상한 왕의 방과 그 밖의 방들을 둘러볼 수 있다. 투우하면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마드리드로 Plaza de Toros Monumental de las Ventas가가장 큰 투우장이다. 일요일에는 가장 큰 벼룩시장 중 하나인 El Rastro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혹시 카스테레오를 도둑맞았다면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 지도. 주머니나 가방을 털리지 않도록 항시 주의해야 한다. 마드리드에서 숙박 구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특히 마드리드의 숨막히는 더위로 여름철은 사람이 없으므로 각오하고 이곳에서 묵는다면 많은 가격 흥정도 가능할 것이다. Santa Ana지역이 가장 대표적인 숙박 중심지로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도 부근에 많이 있다. 마드리드 나이트 라이프를 주도하는 곳은 Malasana지역의 Plaza del Dos de Mayo이다.



바르셀로나(Barcelona)



만일 스페인에서 한 도시만 방문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바르셀로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까딸로니아의 현대적 건축양식-아르누보나 고딕, 무어양식 등의 다양한 스타일- 19-20세기에 걸쳐 발전되었으며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안토니 가우디시대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가우디의 뛰어나고 독특한 건축물은 사그라다 가족교회(Sagrada Familia)와 구엘(Guell)공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피카소와 미로 박물관을 비롯, 세계적인 박물관도 빠뜨릴 수 없다. 고풍의 바리 고틱(Barri Gotic)지구와 곳곳의 나이트라이프도 바르셀로나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바르셀로나 여행의 시작은 La Rambla Placa de Sant Josep Oriol, Placa Reial을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의 얼굴을 가진 이 곳에는 다양한 구경거리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물결, 까페, , 상점 둥, 관광객에게 나무랄 데 없는 장소이다. 시 북쪽에는 환상적인 구엘 공원(Parc Guell)이 있는데, 이곳은 전성기 가우디의 대표작품이다. 이 곳의 이름은 가우디 후원자인 부유한 은행가 Eusebi Guell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인데, 이 곳을 놓친다면 바르셀로나를 여행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바르셀로나의 평화로운 고딕 성당 앞에는 매 일요일 정오 많은 관중들이 몰리는데, 이곳에서 전통적인 카탈란 춤인 사르다나(sardana)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성당 동쪽편에는 바셀로나 역사 박물관(Museu d'Historia de la Ciutat)이 있다.바르셀로나에는 괜찮은 야외시장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볼 만한 곳은 Els Encants 중고시장으로 Placa de les Glories Catalanes에 있으며, 골동품시장은 Placa Nova, 수공예품시장은 Placa de Sant Josep Oriol에 있다. 또한 바르셀로나에 있는 수많은 바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데, 가장 많은 바와 식당이 집중된 곳은 La Rambla주변 지역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저렴하다고 하는 숙박지들도 La Rambla 양쪽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톨레도(Toledo)



톨레도는 의심할 바 없이 스페인에서 가장 웅장한 역사적 도시이다. 이 오랜 도시는 따조(Tajo)강 위의 작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환상적인 박물관과 기념탑, 미술관, 교회, 성들, 그리고 그 사이에 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곳은 당일치기 관광버스가 북적거리는 곳이므로 조용한 거리와 까페 등 진정한 중세도시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하룻밤 묵는 것이 좋다.톨레도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알카자(Alcazar), 중세부터 공화당 포위하의 20세기까지 줄곧 많은 전쟁의 배경이 되어 온 곳이다. 시 중심에 있는 장엄한 성당에는 화려한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El Greco, Velazquez, Goya의 작품들이 있다. 다른 볼거리들로는, 두 개의 유태인 회당(Sinagoga de Transito Santa Maria de la Blanca) Iglesia de Santo Tome(이 곳에 El Greco의 명화 '오르가 백작의 매장'이 있다), Museo de Santa Cruz 등이 있다.




발렌시아(Valencia)



스페인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며 발렌시아 지방의 수도인 이곳은 상큼함이 매력인 도시이다. 파엘라(paella)와 성배(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술잔)가 유래한 곳으로 유명하고, 날씨도 무척 좋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스페인에서 가장 흥겨운 축제로 꼽히는 3월의 Las Fallas이다.

발렌시아에서 가장 관광객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바로크풍 궁전인 Palacio de Marques de Dos Aguas, 내부와 외부 모두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들로 꾸며져 있다. 궁전 안에 도자기 박물관(Museo de Nacional de Ceramic)이 있는데 장대하고 인상적인 도예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Museo de Bellas Artes는 프라도와 빌바오 박물관 다음가는 유명한 곳으로, El Greco, Goya, Velazquez 등 수많은 발렌시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현대미술회관(IVAM)에는 20세기 스페인 인상주의 예술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발렌시아 성당도 볼 만한데 타워꼭대기에 오르면 시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라나다(Granada)



그라나다는 13-15세기 스페인의 이슬람 지배기인 무어왕국의 수도였으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명성을 떨쳤었다. 오늘날 위대한 무어 유적의 본거지가 되고 있으며 가장 장엄한 건축물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알함브라 궁(Alhambra). 여기에 그라나다 남동부에 있는 Sierra Nevada(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Alpujarra 계곡, 신비스러운 마을들이 그라나다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가장 위대한 이슬람 건축 예술의 정수인 알함브라는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서 단연 돋보인다. 알카자바(Alcazaba) 11-13세기에 걸쳐 지어진 알함브라의 이슬람요새로, 타워에서 내려다 보는 도시전망이 매우 인상적이다. 14-15세기 전성기 때 그라나다 통치자가 세운 Casa Real(왕궁)은 알함브라의 중심부로 돌세공이 섬세하다. 마지막으로 제네랄리페(Generalife)는 술탄의 여름 궁전으로 영혼을 달래는 알함브라 정원에 위치해 있으며, 휴식을 취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알함브라 외에 그라나다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도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구 이슬람 지역인 Albacin까지 알함브라에서 강을 건너 갈 수도 있고(밤 늦게는 피할 것), Plaza Bib-Rambla를 그냥 거니는 것도 멋진 시간이 될 것이다. Albacin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Casa del Castril)이나, 아랍 목욕탕(El Banuelo), Gran Via de Colon에 있는 왕실교회( Capilla Real- 1492년 그라나다의 해방자인 페르디난드와 이자벨라가 딸과 사위와 함께 묻혀 있는 곳)도 들러보자. 왕실 교회 옆, 일부가 16세기에 지어진 성당과 도심 북쪽, 짚시의 동굴인 Sacromonte도 인기 있는 볼거리이다.



세비야(Sevilla)


세비야는 멋진 공원들과 유원지, Alcazar Giralda 탑과 같은 무어인 유적지, 플라멩고, 투우, 활기찬 학생도시로 스페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Expo92로 이 도시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엑스포공원은 현재 첨단기술의 테마공원이 되었다. 그러나 세비야는 스페인에서 물가가 비싼 편으로 여행계획을 세심하게 짤 필요가 있다. 또한 여름에는 숨막힐 정도로 덥다는 것도 염두에 두자. 진정한 세비야를 경험하고 싶다면 부활절 전주행사인 Semana Santa 4월의 Feria de Abril에 오도록 계획을 짜 보자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것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기본 구조물(1402-1507)은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1618-929에 이루어진 증축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지랄다(Giralda)로 알려진 인근의 탑은 무어시대의 것으로 꼭대기에서 시내의 아름다운 경관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성당 정문에는 콜롬부스의 유품들이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이 외에 스페인의 무어시대 궁전인 Alcazar Archivo de Indias 박물관(1492년부터 미국의 식민지해방에 이르기까지 약 4천만 개에 이르는 장서를 보유한 곳), 미로와 정원, 작고 귀여운 분수대, 그늘진 잔디의 쾌적한 휴식공간이 있는 Parque de Maria Luisa 등이 볼 만하다.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



산 세바스티안(바스크어로는 Donostia)은 정말로 매력적인 곳이다. 바스크의 중심도시인 이곳은 남부의 휴양인파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스페인 부유계층의 휴양지이다. 1930년대 Generalisimo Franco가 복잡한 바스크어인 Euskara의 사용을 금지했을 때는 더 심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강한 분리, 독립의 정서가 느껴지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 도시는 인구 180,000명의 아주 안락한 휴양도시로 아름다운 만 Bahia de la Concha가 주위를 두르고 있다. 이 곳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스페인에서 제일 복받은 사람들이라고 거리낌없이 얘기하는데, 이곳의 해변과 흥겨운 저녁시간을 며칠 보내보면 그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Playa de Concha Playa de Ondarreta는 도심에 위치한 해변으로서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답다. Ondarreta에서 만의 한 중앙에 있는 Isla de Santa Clara까지는 수영해서 갈 수도 있다. 여름에는 이 섬을 향해 돛을 올리고 오는 땟목들이 여기 저기에서 쉬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16세기 도미니카 수도원 Museo de San Telmo는 수도원에 갖춰야 할 모든 것은 조금씩 다 있다(오래된 비석들, 조각들, 농목축전시품, 근사한 예술품들, 삐그덕거리는 스페인 마루바닥까지). 꼭대기에 예수상이 있는 Monte Urgull에서 동쪽을 향해 내려다 보면 La Concha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또한, 미식의 도시로도 불린다.



발레아레스 제도(Balearic Islands)



스페인 동쪽 해안, 지중해의 푸른 물결 사이로 떠올라 있는 발레아레스 제도는 매년 외국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이처럼 많은 관광객들은 이 섬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자연, 수려한 해변, 풍부한 일조량,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를 비롯해 충분한 숙박시설과 식당 등 편리한 관광시설들을 살펴볼 때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게다가 이런 관광시설과 어우러진 과거와의 강한 유대가 더욱 이 섬의 매력을 발산시킨다. 많은 바와 해변가 뒤로는 고딕식 대성당과 석기시대 유적, 작은 어촌들, 환상적인 숲길, 끝없이 이어지는 올리브 숲과 오렌지 과수원이 있다.

4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섬은 마요르카(Mallorca)이고, 그 뒤로, 미노르카(Menorca), 이비자(Ibiza) 그리고 가장 작은 포르멘테라(Formentera)가 있다. 포르멘테라가 가장 개발이 되지 않은 곳이며, 이비자는 히피, 게이, 패션광, 누드족 등 특이 취향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라스 우르데스(Las Hurdes)

스페인 어디서든 관광객으로 물들지 않은 곳은 없지만, 북부 엑스트레마두라 산악지역인 라스 우르데스만큼은 가장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직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확실히 더디감을 느끼는데, 이곳의 많은 주민들이 아직도 옛날 돌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림같은 작은 마을의 풍경과 폭포, 기분좋은 산책로 들이 이곳에 펼쳐져 있는데, 이곳을 완전히 다 보려면 자동차가 최상이다.



사라고사(Zaragoza)



아라곤 지역의 수도인 Zaragoza는 스페인에서 가장 스페인다운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곳의 매력은 아직 관광객에 의해 때묻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며, 그리하여 대부분 여행자들은 이곳을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사이에 있는 기차역 쯤으로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내려서 시간을 보낸다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구시가에는 정통 스페인풍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며 아라곤 음식 또한 최고이다. 볼거리로는 Aljaferia궁전과 무어시대의 건축물, Caesaraugusta 로마포럼, 17세기 교회당인 Basilica de Nuestra Senora del Pilar 등이 있다.



테루엘(Teruel)

아라곤 남부 깊숙이 자리잡은 떼루엘은 인근의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피레네 산맥 지역과는 별개의 세상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카탈로니아나 바스크어가 사용되지 않으며,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Castil-La Mancha Valencia의 시골과 더 가깝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떼루엘은 어느 지역과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분위기를 지닌 곳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 지방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무데자르 건축과 오랜 지배를 해 온 무어인의 유적들이다.떼루엘에는 4개의 장엄한 무데자르 탑이 있는데, Santa Maria성당과 El Salvador교회(13세기), San Martin교회와 San Pedro교회(14세기)가 그것이다. 이 지방에 소재한 무데자르 건축물들은 스페인 최고로 평가받는 것들로, 안쪽에 박힌 돌들과 타일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떼루엘 지역 박물관(Museo Provincial de Teruel)에는 지역 특산물과 고고학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호모 에렉투스 시대의 것도 있다.




레저스포츠

스키는 저렴하기도 하지만 시설도 잘 되어 있다. 보통 12-5월이 스키시즌으로, 가장 가기 편한 곳은 Sierra Nevada와 피레네, 마드리드 북부지역이다. 스페인은 또한 트레커들의 천국으로, 특히 피레네와 삐꼬 드 유로파(Picos de Europa)가 유명하다.싸이클은 대중적이긴 하지만 산악지형이 많이 나타나며, 붐비는 도로 그리고 여름철에는 견딜 수 없는 무더위 등의 장애가 따른다. 해변가에서의 수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나 여름철에는 넘치는 인파로 까치발로 걸어 다닐 각오를 해야 한다. Pais Vasco에서는 써핑하기에 좋다.




스페인로 가는 길

스페인에는 Madrid, Barcelona, Bilbao, Santiago de Compostela, Sevilla, Granada, Malaga, Almeria, Alicante, Valencia, Palma de Mallorca, Ibiza, Mao 등 많은 국제공항이 있다. 버스와 기차 연결망도 잘 되어 있는데, Lisbon, London, Paris 등에서 스페인까지 정규버스가 있다. 26세 이상이거나 기차 패스가 없다면 버스여행이 더 저렴하다. 스페인에서 영국이나 모로코로 직항 페리편도 운항된다. 스페인을 나오는 출국세는 티켓을 구입할 때 포함된다.


국내 교통편

스페인 여행 중 항공편을 선택하는 유일한 경우는 섬으로 가는 때이다. Barcelona, Valencia Alicante가 저렴한 전세기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발레아레스 제도와 스페인 본토 간에도 정규 페리가 운항되지만 시간 면에서 항공편이 더 나은 조건일 때가 많다. 육로여행에서는 기차보다 버스가 버스회사나 연결 편에서 훨씬 다양하고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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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스위스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여행지 추천, 경비, 여행코스)





스위스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들은, 초컬릿, 뻐꾸기 시계, 하이디의 요들송, 쌀쌀한 은행원...스위스가 중립적이기는 하지만 색깔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 이태리의 절묘한 조화가 강인한 국민문화를 형성했으며, 지친 여행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알프스의 풍경은 스위스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괴테는 스위스를 '거대하면서도 잘 정돈된' 국가로 정의했는데, 장엄한 알프스의 자연지대와 깔끔하면서도 효율적인, 마치 정밀시계와 같은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 자료

정식국명: 스위스 연방공화국(The Federal Republic of Switzerland)

면적: 41,295 평방 km

인구: 690만명

수도: 베른(Bern :인구 150,000)

인종: 74% 독일인, 20% 프랑스인, 4% 이탈리아인, 1% 로만쉬

언어: 독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쉬어

종교: 49% 로마 카톨릭, 48% 신교

정체: 연방공화국




지리 및 기후

서유럽의 가운데 위치한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둘러쌓여 있다.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의 중, 남부지역에 걸쳐 있고, 북동쪽의 쥬라산맥은 프랑스국경과 접해 있다. 이 두 산맥사이에 자리한 베른의 미텔란트(Mittelland)-언덕, , 계곡지대-에 스위스의 도시들이 몰려 있다. 국토의 60%가 산악지역이며, 4분의 1지역이 숲으로 덮여 있다. 농업은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며, 소들은 여름에 눈이 녹자마자 고지대로 올라가 사육된다. Monte Rosa의 두포봉(Dufour) 4634m로 최고봉이긴 하지만, 4478m의 마테호른봉(Matterhorn)이 더 유명하다.다양한 기후대가 나타나므로, 티치노(Ticino)의 야자수에서 알프스의 북구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군이 자라고 있다. 산악지대는 침엽수림이 빽빽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관목숲과 고지대 초원으로 변한다. 고지대 동물로는 아이벡스라고 하는 커다랗고 구부러진 뿔을 가진 야생염소와 영양이 있다. 강력한 환경법이 있는 스위스에도 81종의 조류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산이 지역의 기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더운 지중해성기후인 남쪽의 Ticino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은 중부유럽기후로 여름(6-9)에는 20-25도 정도이고, 겨울(11-3)에는 2-6도 정도이다. 여행할 지역의 고도에 따라 다양한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3000m이상 되는 고도에는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다. 여름철이 여행하기에 가장 쾌적하지만 대부분 여행객이 이 시기에 몰리므로, 봄과 가을에 여행하는 것이 숙박 등의 흥정과 여유로움 에서는 더 좋을 것이다. 알프스의 리조트들은 11월 하순부터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까지 문을 연다.




역사

처음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켈트 일족인 헬베티아인들이었다. 로마인들은 BC107년 경 세인트버나드 통로를 통해 이곳에 나타났으나 험한 지형 때문에 정복 의사를 분명히 할 수 없었다. 그들은 5세기부터 점차 게르만계 알마니아 종족에 의해 이곳에서 밀려난다. 부르군트족과 프랑크족도 이곳에 정착했고 점차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토는 1032년 신성로마제국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었으나, 중앙통제력이 약해 이웃한 귀족들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겨루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중부 유럽의 가장 막강한 왕조인 게르만족 합스부르크가에 의해 완전히 바뀐다. 루돌프 1세는 약소귀족을 점차 몰아내며 합스부르크가의 세력 확장을 주도했다.




*스위스 연방

1291년 루돌프가 사망하자지방권력가들은 독립의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Uri, Schwiz, Nidwalden의 산간 공동체들은 1291 81일 동맹을 결성했는데 이 상호 협조 조약은 스위연방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합스부르크가에 대한 항거는 빌헬름 텔이라는 유명한 전설에 이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레오폴드공작은 1315년 강력한 오스트리아군을 파병함으로써 이에 응수하려 했으나, 그들은 모르가르텐에서 스위스인들에게 패한다. 연방은 곧 루체른(1332), 쮜리히(1351), 글라루스와 쥬크(1352), 그리고 베른(1353) 등의 다른 지역들도 참여하도록 조치하였다. 셈파하(1386), 네펠스(1388)도 연방에 합류하였고 합스부르크는 이곳에서 계속 패하였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은 스위스인들은 점진적인 영토확장을 시도하여 합스부르크로부터 영토를 빼앗았다. 또한 그들은 버건디 공작인 찰스를 상대로 그랜드와 모렛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프라이부르크, 조로툰, 바젤, 샤프하우젠, 아펜첼 등이 연방에 흡수되었고, 1499년 도나크에서의 승리로 막스밀리언 1세의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게 된다. 그러나 스위스는 과욕을 부려 1515년 마리그나노에서 프랑스와 베네치안에 맞서서 패하고 만다. 이 패배로 인해 그들의 국토확장 의지는 좌절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강대국들과 경쟁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들은 확장 정책을 포기하게 되며, 중립을 선포하게 되었다. 중립국이지만 스위스의 용병들은 이후 수세기 동안 다른 군대에서 싸워왔으며, 그들의 기술과 용맹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유럽전체의 대변혁을 야기하였다. 루터, 쯔빙글리, 칼뱅에 의한 새로운 교리는 급속히 퍼져나갔으나, 신생주들은 카톨릭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수세기 동안 내부적인 갈등이 지속되긴 했지만 국제적 분쟁으로 야기되는 것은 막을 수가 있었다. 1648 30년 전쟁이 끝난 후 스위스는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중립국으로 승인되었고, 이후 자유롭게 재정과 지식인들의 중심지로 번창하게 되었다. 1798년 프랑스가 침범하여 헬베틱 공화국을 세웠으나, 스위스는 강력한 중앙집권에 격렬히 저항하여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1803년 이전의 주 연방으로 되돌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총체적 사법권은 여전히 프랑스가 가지고 있었다. 아르가우, 세인트갈렌, 그라우뷘덴, 티치노, 투르가우와 바우트 등의 주가 계속해서 연방에 참여하였다. 마침내 나폴레옹은 워털루전에서 영국과 프러시아에 의해 패하게 되었고, 비엔나 의회는 발레, 제네바, 노이체텔 주를 추가하는 것과 함께 스위스의 독립과 영구 중립을 의결했다.


* 현대국가

점차 하나의 국가로서 체계를 잡아가면서도 각 연방주들은 독자적인 통화와 우편제도를 운영할 정도로 강력한 독립체제를 유지하였다. 1848년 새로운 연방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그러한 독립성은 상실되었다(1874년 개정됨). 베른이 수도가 되고 국가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연방의회가 설립되었으며, 각 연방들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권과 사법권을 가지게 되었다. 정치적 안정을 찾자 스위스는 경제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원 때문에 그들은 고도의 기술과 노동집약적 산업을 발전시켰다.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전엔 접근하기 힘들었던 알프스 지역에 철도망을 건설하였다. 국제 적십자가 앙리뒤낭에 의해 1863년 제네바에서 창설되었고 무상 의무교육이 도입되었다. 20세기에도 스위스는 중립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도 적십자 지구 창설을 통해서만 개입했다. 전후 스위스는 어떠한 군사적 분쟁과도 무관한 순수한 재정적, 경제적 개체로서 국제연맹에 가입하였다. 2차 세계대전도 사고로 몇 번 폭격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무사히 넘겼으며, 망명 중인 동맹국 전범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다른 유럽국들이 전후 국가의 재건에 어려움을 겪은 반면, 스위스는 기존의 상업적, 재정적인 산업기반을 탄탄히 다질 수가 있었다. 쮜리히는 국제적 금융과 보험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고, 국제보건기구와 같은 국제기구들의 본부도 제네바에 들어섰다. 파업과 공장폐쇄 등 노동저항을 폐지하는 합의가 노사간에 체결되었고, 1948년의 노인 연금제 실시 등의 사회개혁도 도입되었다. 중립성이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해 스위스는 UN이나(현재는 관찰자 입장으로서 돈은 대지만 표결권은 갖지 않는 위치를 취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 자유 무역기구(EFTA)에는 가입하고 있다. 다른 EFTA가입국들이 EU가입을 신청하자 스위스도 결국 1992년에 가입신청을 하게 되었다. 완전한 EU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EEA(유럽 경제구)에 들어야만 했으나 1992 12월 실시된 투표에서 국민들이 EEA가입을 반대하자 정부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스위스의 EU가입은 보류되고 있으며, 그 동안 정부는 국민들이 언젠가는 동의할 것이라는 기대 하에 EU와의 융합을 위한 기초작업을 수행 중에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4,884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58,084

연성장률 : 0.7%

인플레이션 : 2.0%

주요 생산품 : 금융, 보험, 제약, 화학, 정밀공업

주요 교역국 :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문화

2월은 많은 도시에서 카니발이 열리는데, 특히 바젤의 카니발이 유명하다. 3-10월 동안은 발레(Valais)저지대에서 소싸움이 벌어지는데 여기서 이긴 소가 여름 목초지 이동시 소떼의 우두머리에 서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몽뢰(Montreux)재즈 페스티벌이 7월에 열리는데 세계최고의 재즈 연주자들이 모이게 된다. 국가기념일인 81일에는 나라 전역에서 불꽃축제가 벌어지며 베른 동쪽의 에멍딸(Emmental)에서는 스위스 레슬링이 벌어진다. 11 4번째 월요일에는 베른에서 유명한 양파시장(Zibelmarit)이 열리는데, 도시 전역이 상인들과 눈물로 뒤범벅된다.




여행자 정보

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특이사항 없음

시간대: 한국이 스웨덴보다 8시간 빠르다.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제를 사용

외래관광객: 600만명




경비 및 환전

가장 알뜰한 스위스 여행 방법중 하나는 스위스 프랑 환전하는 것이다. 다만 모든 국내 시중 은행에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울 수 있다. 또한, 예산을 잘못 잡아 너무 많이 환전했을 경우 다른 나라에서 직접 쓸 수도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 환율 우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70~90% 우대에 대한 것은 달러나 유로에 대한 것이고, 스위스 프랑은 30~50%이면 굉장히 잘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서울역 환전센터가 환율 좋기로 유명하지만, 최대한도가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본인이 자주 가는 은행이 더 좋을 수 있다.

써니뱅크, 위비뱅크라고 해서 은행 앱으로 환전하고, 공항에서 찾는 것도 요즘 인기가 많은 방법 중 하나다.


화폐: 스위스 프랑(francs)

환율

CHF 1 = 1,149 원 

EUR 1 = CHF 1.08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US$5

레스토랑 식사: US$15

저렴한 숙박: US$12

호텔: US$40


산악 열차 추가 비용 (일반/스위스패스 소지자)

융프라우 CHF 145/132

고르너그랏 CHF 90/45

피르스트 CHF 60/30

리기 CHF 117/무료

 

액티비티 비용

패러글라이딩 사진 포함 CHF 200

스카이다이빙 사진 포함 CHF 500 이상

캐녀닝 사진 불포함 CHF 110~180

래프팅 사진 불포함 CHF 110


유럽 어느 곳보다 스위스는 비싼 곳이다. 최저 예산을 세운다면, 호스텔 숙박과 식사를 직접 해결했을 때 1 US$35정도 든다(기차 패스 소지한 경우). 그러나 팬션에서 머물며 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이트라이프도 좀 즐긴다면 두 배 이상 예상된다. 대부분 여행자수표와 신용카드가 유용하며, 환전 시 별도의 커미션은 없다(현금과 여행자 수표 모두). 그러므로 환율이 좋은 곳을 골라 환전하는 것이 최상이다(보통 호텔이 가장 환율이 안 좋다). 팁은 필요하지 않고, 호텔, 식당, 바 같은 곳에서는 15%의 봉사료가 붙게 되어 있다. 택시를 탈 때도 봉사료가 붙는다.




여행 시기

스위스는 여행의 목적에 따라 연중 여행에 적합한 곳이다. 여름은 6월에서 9월까지로 가장 쾌적한 기후를 느낄 수 있을 때인 만큼 관광객들이 몰리므로 한가로운 여행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4-5월이나 9월 하순-10월 경이 좀 더 한가하고 흥정도 해볼 수 있는 때이다.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알프스 리조트들은 11월 하순에 문을 열어 크리스마스에 절정을 이루고, 눈이 녹기 시작하는 4월 문을 닫는다.




주요 여행지

취리히(Zurich)



스위스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취리히는 스위스의 지적, 문화적 중심지이다. 은행과 갤러리가 여기저기 있어 미와 재력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19세기 취리히가 국제적인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행정관이자 철도왕이었던 Alfred Escher의 공이 크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레닌, 트로츠키, 제임스 조이스 등의 지도자들과 다다이즘 확립의 핵심인물인 트리스탄 짜라(Tristan Tzara), 한스 아르프 등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도시는 취리히호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시내 중심부로는 림맛(Limmat)강이 흐르고 있다. 주요 볼거리는 구시가의 보행자 도로에 몰려 있는데, 구불구불한 골목길, 16-17세기 가옥과 길드홀(중세 농업 조합이었던 길드의 집회장), 분수 등이 있다. 쮜리히에는 1030개의 분수가 있는데 모두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한다. 만약 식당에서 수돗물을 달라고 하면 웨이터는 가까운 분수로 컵을 들고 뛰어갈 것이다. 우아한 Bahnhofstrasse 150년 전 붕괴된 도시 성벽이 있던 자리에 생긴 거리로, 발 아래는 금, 은 보화가 가득한 은행금고이다. 성 베드로교회(St Peter's Church) 13세기 탑에는 유럽에서 제일 큰 시계(직경 8.7m)가 있다. 근처의 Fraumunster교회는 1970년 샤갈이 83세 나이에 완성시킨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순수미술 박물관(Kunsthaus)에는 15세기 종교미술부터 모네, 마네, 만라이(Man Ray)의 현대미술까지 총망라한 수많은 영구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의 북쪽 모조로 만든 성에 있는 스위스 국립박물관(Schweizerisches Landesmuseum)에서는 스위스의 생활상과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문화적인 탐험에 지쳤다면 기분전환을 위해 쮜리히호의 물가를 따라 쾌적한 산책을 하며 썬탠이나 수영을 즐기는 것도 좋다.호스텔은 중심가에 몰려 있으며 Limmat 강 동쪽편으로 저렴한 호텔들이 몇 군데 있다. 여름철에는 숙박잡기가 별따기이므로 사전예약이 필수이다.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려면 Niederdorfstrasse로 가보자.



제네바(Geneva)



제네바 호수(레만호)가에 자리잡고 있는 제네바는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은 스위스의 불어사용권에 속한 곳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에 속해 있는 도시로 보는 것이 옳다. 핵 확산, 민족분쟁 등 전 세계 문제가 중립 협상테이블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들고, 이곳의 3분의 1이 외국인이며, 유엔(유럽지부)을 포함한 200개 이상의 국제기구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도시이지만 도시 자체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안전한 도시이다.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위치로 인해 산책과 보트여행 등 즐길 거리가 많다. 완벽한 장관을 펼치는몽 살레브(Mont Saleve)까지는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다. 론강(Rhone) 남쪽 편으로구시가가 있고, 중심가는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섞인 성 피에르 성당(Cathedral St Pierre)이 주를 이루고 있다. 1536년부터 1564년까지 칼뱅이 설교를 한 곳이기도 한 이 곳의 탑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멋있다. 근처의 부르 드 푸르 광장(Place du Bourg-de-Four)은 제네바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한 때 로마포럼이기도 했으며, 중세 시장에서 관광 상점가로 변해가고 있다.제네바에서 문화적인 욕구를 맘껏 충족시킬 수도 있다. 예술과 역사박물관(Musee d'Art et d'Histoire)에는 다양하고 많은 미술, 조각, 무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아담한 쁘띠 빨레(Petit Palais)에는 훌륭한 현대미술작품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유엔건물 옆에는 적십자와 적십자군 박물관이 있어 현대사에서 인류에게 저질러진 잔학성들이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다. 이 외에 악기 박물관, 시계박물관, 볼테르 박물관 등이 있다. 제네바에도 나이트라이프가 많이 있으나 비용이 많이 든다. 외교사절들과 세계각지의 관료들, 은행가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저렴한 식당과 숙박지가 많지 않으므로. 소수의 호스텔과 저렴한 호텔들은 강 양편에 위치해 있고, 저렴한 식당들은 대학 근처나 꼬르나벵 기차역 북쪽과 서쪽에 몰려 있다.



루체른(Lucerne)



역사적으로, 그리고 대표적인 스위스 이미지-, 호수, 소방울, 알프스 마을과 에델바이스로 뒤덮힌 잔디밭-의 멋진 경치로서, 스위스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루체른은 근교로 소풍다니기 좋고, 중세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 그 자체로도 매우 매력적인 곳이다. 로이스(Reuss)강 북쪽 둑 구시가에는, 페인트로 칠해진 15세기 건물들과 탑, 17세기 르네상스풍의 시청, 그림엽서 풍경의 두 개의 다리(카펠교(Kapell)와 슈프로이어교(Spreuer)) 등이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중심가 북동쪽에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자 기념비가 있는데, 프랑스 혁명 때 전사한 스위스 군인들에게 헌정된 것으로 1820년 자연석을 조각해서 만든 것이다. 옆으로는 환상적인 빙하공원(Gletschergarten)이 있는데, 이곳의 큰 빙곡 웅덩이는 2000만년 전 이 지역이 적도부근에 위치했던 야자수 해변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유명한 교통박물관(Transport Museum)에는 열차, 비행기, 자동차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흥미있는 것은 20분짜리 스위스 홍보영화인데 이것을 보고 있으면 비행기, , 자동차, 그리고 걸어서 스위스를 여행한 느낌이 든다. 야외에서 신선한 공기를 즐기고 싶다면, 로이스강이나 루체른 호숫가에서 페달보트나 노젓기 보트, 카약 등을 빌려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강 둑에는 야채시장들이 늘어서 있으므로 신선한 공기와 아울러 신선한 식사도 할 수 있다.



융프라우(Jungfrau)



스위스의 절경을 꼽는다면, 인터라켄(Interlaken)남쪽 융프라우지역이다. 4000m고도의 세 지대- 융프라우(Jungfrau), 묑크(Monch), 아이거(Eiger)-가 이 지역의 최고봉으로 많은 케이블카와 등반기차가 이곳을 운행하며 경관이 매우 훌륭하다. 그린발트(Grindelwald)가 이 지역에서 가장 손꼽히는 스키와 하이킹을 제공하므로 붐비는 휴양지이다. 7월 이곳에서 열리는 요들축제가 볼 만하다.


쉬용성(샤또 드 쉬용Chateau de Chillon)

쉬용성은 스위스에서 방문객이 어느 곳보다 많은 역사적인 건물이다. 제네바호 오른편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은 이 요새는 바이런이 갇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는 종교개혁의 추종자 보니바르(Bonivard)에 대해서 쓴 후, 이 요새 지하감옥 다섯 번째 기둥에 4년간 묶여 있었다고 한다. 바이런도 자신의 이름을 세 번째 기둥에 새겨 넣었다. 11세기에 세워졌으나 아직도 건재한 이 성은 건립 이후 많이 보수되고 확장되었다. 타워, , 지하감옥, 무기와 가재도구, 주방기구, 가구 등이 있는 많은 방을 둘러 보는 데에는 최소한 2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곳은 스위스 리비에라 중심지인 몽뢰(Montreux)에서 45분 정도 호숫가를 따라 걸어가면 된다.


베르니즈 오버랜드(Bernese Oberland)의 성들

베른 남부, 중부 스위스의 Thun호수 주변에 있는 성들을 둘러보는 것도 흥미있는 여행거리이다. (Thun)마을 언덕에는 12세기의 Schloss Thun이 있는데, 그 안에는 훌륭한 역사박물관이 있으며, 로마네스크 탑꼭대기에서 멋있는 이곳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호숫가에는 있는 13세기의 Schloss Oberhofen은 가장 멋진 성으로 손꼽히는데, 한 때 합스부르크가가 거주했으며, 가구, 초상화, 무기 등 훌륭한 소장품들과 함께 터키식 흡연실까지 볼 만하다. 이곳의 정원은 19세기에 꾸며졌으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Hilterfingen부근에 있는 Schloss Hunegg 1860년대에 건축되었으며, 1900년에 개축되었다. 신 르네상스와 아르누보양식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트로 다니면 이 세 곳의 성을 하루에 다 훑어 볼 수 있다.



체르마트(Zermatt)



체르마트은 스키와 하이킹, 등산을 위한 휴양지로, 알프스에서 제일 유명한 마테호른봉(4478m)에 오르면 모든 것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은 연중 스키를 즐길 수가 있고 난코스의 스키슬로프가 많아 초보자들보다는 능숙한 스키어들에게 환영 받는 곳이다. 2월부터 4월까지가 가장 붐비는 시기이며, 초여름도 설질이 양호하고 리프트가 붐비지 않아 즐기기에 적당하다. 산에서의 풍경이 장관으로, 케이블카와 곤돌라로 오르면 Mt Rosa Matterhorn을 볼 수 있다.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3100m)까지 가는 등반기차도 인기 있다. 클라인 테호른(Klein Matterhorn, 3820m)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케이블 역이며 다른 여름 스키 슬로프로도 연결된다. 체르마트 시내를 구경하려면 걸어서 다녀도 충분하다. 전통 발리스식 통나무집들이 모여 있는 힌터 도르프(Hinter Dorf)지역도 멋진 산책로가 된다. 마테호른과 몬테로자를 등반하다 죽은 이들의 기념비가 많이 있는 묘지를 걷는 것은 미래의 등반가들에게 생생한 경험이 될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아스코나(Ascona)



알프스 남부 티치노(Ticino)의 저지대에 있는 이곳은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로, 스위스에서 만날 수 있는 이태리풍 마을이다. 마기오레(Maggiore)호수변에 위치한 아스코나는 이 지역 예술의 중심지로, 골목길은 갤러리와 공예품점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 거주했던 미술가와 지식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에 몰두했고, 한 때 망명 중인 레닌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현대미술 박물관(Museo Comunale D'Arte Moderna)에는 Paul Klee, Hans Arp, Ben Nicholson, Alexej Jawlensky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스따바예 르 락(Estavayer-le-Lac)

노이체텔(Neuchatel)호수변에 위치한 이 작은 휴양도시는 고풍의 시가지가 완벽히 보존되어 있는 곳이며, 각종 수상스포츠 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이 곳을 특징지워주는 또 다른 곳으로는 지역박물관이 있는데, 130년된 개구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19세기 한 군인의 괴상한 취미에서 나온 것인데, 개구리를 죽여 모래로 속을 채워 넣어 인간을 흉내내게 한 것(공부하고, 게임하고, 사랑하는 등등)이 그의 취미였다나.


프랑슈 몽따뉴(Franches Montagnes)

대부분 여행자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이곳은, 쥬라(Jura)산의 목초지와 숲지대가 아름다운 지역으로, 1500km의 하이킹 트레일과 200km 스키트레일이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승마도 인기있는 종목으로, 이곳의 말들은 온순하며 조용하다. 이 지역의 중심지는 세뉴레쥐에(Saignelegier), 이곳에서 8월에 '말 축제(Horse Show)'가 열린다.





레저스포츠

스위스의 산과 호수는 하늘이 준 운동장이다. 알프스와 프리-알프스, 쥬라에 걸쳐 수많은 스키리조트가 있으며, 체르맛과 베르비에(Verbier)에서 특히 멋진 슬로프와 경관,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이 나라 최고의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하이킹으로, 장장 50,000km의 하이킹로에는 정기적으로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어디에나 갖춰져 있다.

Pontresina Meiringen에는 시설이 잘 갖춰진 등반학교가 있고, Zermatt은 전문등반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등반지대이다. 스키등반은 발레(Valais)지역의 오뜨루트(Haute Route)가 인기있다. 많은 리조트에서는 패러글라이딩과 행글라이딩 그리고 장비대여가 가능하다. 수상스키, 항해, 윈드써핑은 호수지대에서 인기있다. 래프팅은 라인과 사안(Saane) 등 알프스지역 강에서 할 수 있으며, 카누는 주로 Schwyz지역의 Muota Jura Doubs강에서 행해진다.



스위스로 가는 길

주요국제공항은 취리히와 제네바이며, 바젤(Basel), 베른, 루가르노 공항에도 국제선이 취항한다. 출국세는 없다. 유럽에서 스위스 입국 시 기차가 가장 대중적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며, 버스는 속도와 안락함에서 좀 뒤지지만 더 저렴할 때가 있다. 주변 유럽국에서 자동차로 입국하는 것도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암스테르담에서 라인강을 따라 스위스까지 보트로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증기선으로 스위스를 입국하는 루트도 있는데, 독일에서 콘스탄체(Constance)호수나, 이탈리아에서 마기오레(Maggiore)호수, 또는 프랑스에서 제네바호를 경유해 오는 방법 등이다.


국내 교통편

스위스에는 기차, 버스, , 케이블카 등 다양한 대중교통수단이 구석구석 잘 연결되어 있어, 국내 비행편은 여행객들에게 큰 필요성이 없다. 기차 네트워크는 5000km에 달하며, 깨끗하고 편하며 운행도 잦다. 노란색 포스트버스(마을버스)는 기차역 옆에 정거장이 있어 기차와 연결되어 운행된다. 대부분 도시에는 렌터카 회사가 있다. 도로상태도 좋고, 도로표시도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많이 막히는 곳도 없어 자동차여행은 편하지만, 멋진 풍경을 지날 때 집중해서 감상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자전거 대여는 대부분 기차역에서 할 수 있고, 대여소가 있는 어떤 역에나 반납할 수 있다. 그러나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계획한다면 굉장한 근력이 필요할 것이다. 큰 호수들에는 증기선이 운항하며, 기차패스로 대부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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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 이탈리아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지도, 물가, 여행코스)




유럽지도 위에 자리잡은 부츠형상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것들이 다 모여있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교황, 화가, 정부, 시인, 철없는 정치인, 세력가 등등. 3천 년의 역사와 문화, 요리 등은 이 나라를 아직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유혹의 대상이다. 로마 유적지를 둘러보고, 르네상스 미술품을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하고, 좁은 중세언덕 마을에서 묵어도 보고, 알프스에서 스키도 타보고, 베니스 수로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운 성당을 감상하는 등.. 이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이탈리아 한나라에서만 머물러도 충분할 것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음미하며, 패션의 도시를 구경하는 기본적인 욕구충족도 이탈리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쁨 중 하나겠지만.



통계 자료

정식국명 : 이탈리아 공화국 (Italian Republic)

면적 : 301,250 평방 km

인구 : 5,760만 명

수도 : 로마(Rome, 인구 260만 명)

인종 : 이탈리아인

언어 : 표준 이탈리아어와 다양한 방언들 그리고 독일어, 프랑스어, 슬로베니아어

종교 : 85% 로마카톨릭, 5% 유대교와 신교

정체 :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향해 길게 장화모양으로 뻗어 있어 사람들의 머리에 쉽게 기억되는 나라이다. 시칠리아, 사르디냐섬을 편입시키고, 지중해의 일부인 아드리아해, 리구리아해, 티레니아해, 이오니아해로 둘러 싸여 있다. 이탈리아 북부는 서에서 동으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와 차례로 국경을 접해 있다.산이 많은 지형으로 국토의 75%가 산악지대이다. 알프스가 프랑스,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경계를 짓고, 아펜니노산맥이 이탈리아반도의 주골격을 이룬다. 대표적인 활화산으로는 스트롬볼리(애올리아섬), 베수비오(나폴리근교), 에트나(시실리)가 있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은 나라 곳곳에서 풍부히 느낄 수 있지만 산업화와 도시쓰레기 문제로 환경오염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심한 지역으로는 리구리아해, 북부아드리아해(산업공해로 조류문제 발생), 로마와 나폴리 등의 도시들을 들 수 있으며, 급속한 산업화로 북부지역의 공기오염도 심각하다. 그러나 사르디냐 해안처럼 눈부실 정도로 깨끗한 해안도 아직은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아무데나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버릇이 있어 관광객들이 깜짝 놀라기도 한다.이탈리아 사람들의 사냥에 대한 열정과 환경에 대한 개조는 이탈리아 특유의 동물 및 조류를 멸종 위기에 놓이게 하였다. 운이 좋다면, 갈색 곰과 스라소니를 볼 수 있고, 고지대에는 늑대, 마 멋, 영양, 사슴 등이 있다. 야생 수퇘지와 고양이는 사르디냐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하늘에는 매와 금 독수리가 사냥꾼의 총을 피해 날아다닌다.이탈리아는 온대지역이지만 북부와 남부의 기후가 다르다. 여름은 똑같이 매우 덥지만 남부가 특히 덥고 건조하다. 겨울에는 북부지역이 매우 춥지만(특히 알프스, 포 계곡) 남부와 시칠리아, 사르디냐는 전반적으로 온화하다.





역사

지중해의 전략적 위치에 자리잡은 이유로 이탈리아는 수 천년동안 침략자들의 타겟이 되어 온 반면 로마제국을 확장시키는 유리한 고지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역사는 외세침략의 편린으로 이루어졌고 국민들의 인종적 배경 또한 다양하다. 로마제국의 몰락에서 1860년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 통일운동)전까지 이탈리아는 한번도 통일을 이룬 적이 없었다. 기원전 753년 로물러스가 로마를 건설하기 수 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구석기 네안데르탈인이 20,000년 전 빙하기부터 살고 있었는데 기원전 2000년경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면서 대륙에 몇몇 이탈리아 종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에트루리아

기원전 900년경 이전부터 에트루리아 문명을 기반으로 한 종족이 아르노와 티베르계곡 사이의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로마제국 건설 후에도 에트루리아 문명은 계속 꽃을 피워, 타르퀸Tarquins이라고 알려진 에트루리아왕이 로마공화국이 건설된 기원전 509년까지 로마를 다스렸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말 로마가 최후의 에트루리아 도시를 점령하면서 에트루리아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로마공화국

기원전 390년 골족의 지배에서 풀려난 로마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으로 영토를 확장시켜 갔다. 원래 남부지역은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8세기 전부터 시라쿠스 등 식민지를 건설하여 아테네에 버금가는 국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기원전 265년경 로마가 남부를 그리스에서 빼앗고 시칠리아는 카르타고의 침략을 받는다. 기원전 241년 로마는 알프스를 넘어온 한니발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패하지만 기원전 202년 다시 격돌하여 승리한다. 그 후 몇 년 동안 로마는 스페인과 그리스를 점령하고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한다.



확장 & 제국

기원전 1세기 시저의 통치하에서 로마는 골족을 격퇴하고 이집트로 진출한다. 시저가 기원전44 3월 이데스 사건으로 조카인 브루터스에게 암살된 후 안토니와 옥타비우스는 권력투쟁을 벌인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기원전31년 이집트에서 죽게 되고 드디어 기원전 27년에 로마제국이 출범한다. 시저의 양아들이며 후계자인 옥타비우스가 시저의 왕권을 계승, 로마의 최초 황제가 된다. 옥타비우스의 통치기간동안 버질, 호레이스, 리비등 위대한 작가들이 로마 문학을 꽃피웠다. 황제는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로디우스, 네로로 이어진다.



, 서로마제국

3세기말경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할된다. 분할시켜야 할만큼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로마를 동서로 분할시킨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의 탄압으로도 유명한 황제이다. 후대황제인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제국의 수도를 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개명된 비잔티움으로 옮겨간다. 4세기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국력이 성장하지만 동시에 외래의 끊임없는 위협을 받는다. 5세기 초 게르만족이 로마를 침략, 마침내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전사 오도아체르가 황제를 퇴위시키고 스스로를 이탈리아의 통치자로 칭한다. 동로마제국은 후에도 여전히 건재하여 553년 비잔티움의 일부를 회복한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는 야만족들의 세력다툼을 위한 전장으로 혼란을 겪는다. 남부와 시칠리아는 1036년 노르망족이 쳐들어와 왕국을 건설할 때까지 아랍의 점령 하에 있었다. 서로마제국을 재건하기 위해 교황 레오2세가 800년 프랑크왕 샤를마뉴를 황제로 명한다. 그러나 샤를마뉴가 죽은 후 또다시 제국은 멸망하고 962년 게르만 왕 오토1세가 신성로마제국을 건설한다.




도시국가

중세 이탈리아 북부에는 강력한 도시국가가 발달하고 남부에는 노르망족이 강력한 장원제를구축한다. 프레드릭 바바로사가 황제로 임명된 12세기 중엽이후, 교황 알렉산더3세와 왕의 반목이 도시들을 구엘프派(Guelph: 교황지지)와 기벨리네派(Ghibelline:왕지지)로 분열시키면서 이탈리아는 다시 전장터로 변한다. 항상 정치적 갈등이 존재했지만 경제적, 건축적, 예술적 성장은 여전히 계속되어 단테, 페트라르카, 복카치오, 지오토, 치마부에, 피사노 등 많은 위대한 학자, 예술가들이 배출된다. 도시국가는 강력한 족벌체제 하에서 번영했다.




르네상스

15세기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는 옛 로마의 영화를 재현하고자 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다. 이 시대에 잔인한 도시간의 전쟁, 내부적 갈등, 프랑스의 침공이 있지만, 피렌체에서 싹튼 르네상스가 나라 전체로 퍼지면서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브라만테, 보티첼리, 다 빈치, 마사치오, 리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같은 천재들이 나왔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에도 종교개혁의 영향력이 미치고 1559년경 많은 지역이 스페인에 함락된다. 1713년 스페인왕위전쟁 결과로 통치권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 전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강력한 북부 도시국가들의 세력은 계속 성장한다. 1796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처음으로 이탈리아는 통일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1815년 비엔나의회가 귀족의 권한을 회복시키고 옛 국경분할 논쟁을 재현하며 국민들 간의 반목을 조장하면서 리소르지멘토, 즉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가리발디, 게바우어, 마찌니의 주도하에 통일운동이 꽃피기 시작한다. 1861년 이탈리아왕국이 공식으로 선포되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가 왕이 된다. 베니스는 1866년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하고 로마는 1870년 교황청에서 독립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기는 수월하지 않았다. 게바우어는 1861년 죽기 바로 전 통일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 북부와 남부의 통일은 오스트리아나 로마와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무솔리니 & 세계 제2차 대전

1차대전이 끝난 지 몇 년 후 이탈리아는 또다시 혼란에 빠져드는데, 이 와중에 1919년 무솔리니가 결성한 파시스트당이 1921년 선거에서 의회 135석중 35석을 확보하여 승리한다. 사회의 불안정과 파업이 계속되자 1921 10월 왕은 무솔리니에게 정부를 세울 것을 요구하고 무솔리니는 국회 내 7% 지지율로 수상이 된다. 파시스트는 폭력과 위협으로 무장하여 1924년 선거에서 승리한다. 이 승리로 1925년 말 무솔리니는 행정부의 수반이 되어 반대당을 축출하고 언론과 노조를 장악하며 투표자수를 3분의 2로 줄이는 등 파행을 거듭한다. 1936년 이탈리아는 히틀러와 로마-베를린 축을 결성하고 1941년 독일 동맹국으로 2차 대전에 참가한다. 군대의 횡포와 1943년 연합국의 침공으로 무솔리니는 항복하고 잠적한지만, 1945년 부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살된다.



이탈리아공화국

1946년 국민투표에 의해 입헌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이 들어선다. 이탈리아는 1957년 유럽경제연합의 설립국가로 참여한다. 1970년대 이탈리아는 테러 때문에 혼란을 겪으며, 기독민주당의 수상인 알도 모로가 1978년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 후 암살당하기도 한다.2차 대전 후 몇 십 년간 중도우익파인 기독민주당이 공산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과 연합하여 집권한다. 80년대에는 상당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지만 90년대 이탈리아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심각한 경제위기와 범국가적인 뇌물스캔들로 나라전체가 흔들린다.



1990년대와 현재

1992년 초 밀라노에서 탄젠토폴리(tangentopoli:'뇌물 도시'를 의미) 스캔들이 터져 나온다. 사회당 간부들이 공공 건설 계약권을 주는 대신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수사를 통해 수 천명의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들의 혐의가 드러나면서 집권당인 사회당은 쑥밭이 된다. 1994 3월 선거를 통해 이탈리아는 우익으로 방향을 선회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연방주의자들의 북부리그와 네오파시스트 국가연합을 규합한 새 우익연합단체인 자유연합이 다수의 표를 확보한다. 자유연합을 이끄는 미디어재벌 실비오 베를러스코니는 불과 선거 3달 전에 정치에 입문하여 이탈리아의 수상이 된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정부는 9달 만에 무너진다. 1998년 선거에서 마씨모 달레마(Massino D'Alema)는 최근 50년만에 처음으로 공산주의를 포함한 중도 좌익을 결성하여 좌파정당의 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0 4월 지방선거에서 실망스런 결과를 보이자 그는 사임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지울리아노 아마토(Giuliano Amato)가 수상으로 임명되어, 2차 대전 후 58번째 정부를 이끌어가고 있다.




경제

국내 총 생산 GDP : US$ 2 2,930

1인당 국민총생산 : US$ 35,872

연성장률 : 1.5%

인플레이션 : 1.8%

주요생산품 : 관광, 공업, 섬유, 화학, 식품가공, 자동차, 의류, 신발 등

주요교역국 : EU (특히,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미국

유럽공동체 가입여부 : 가입되었음




문화

'살아있는 미술관'으로 표현되는 이탈리아에서는 미술품을 보기 위해 굳이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로마, 피렌체, 베니스, 하다못해 움브리아의 작은 중세 산악도시의 아담한 교회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에서의 미술감상은 숨쉬는 것과 비유될 수 있을 정도이다. 역사적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예를 들어 로마에서는 로마공회당, 콜롯세움, 판테온이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시대의 교회와 궁전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근대 이탈리아 성악가 혹은 음악가들은 대외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진 못했다. 예외인 단 한 사람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Sugar로 알려진 주케로(Zucchero)이다. 대신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페라나 악기 연주분야에서는 항상 성공하였다. 비발디는 현재의 협주곡을 만들었고,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베르디, 쿠치니, 벨리니, 도니제티, 로시니 등은 현대 오페라의 장을 열게한 거장들이다. 또한 현재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 오페라의 스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있다


영화는 1904년 토리노에서 비롯된 무성영화를 시발로 2차 대전 후 네오리얼리즘과 함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비스꼰띠, 로셀리니, 비또리오 데 시카, 펠리니, 안토니오니, 파솔리니, 베르톨루치, 프랑코 제피렐리 등 유수와 같은 감독들이 이탈리아 영화계를 이끌어 왔다.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배우로는 루돌프 발렌티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안나 마냐니,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 등이 있다


이탈리아인들을 가장 열광시키는 것은 종교 페스티발과 축구이다. 음식과 8월 휴가가 그 다음으로 꼽힌다. 페스티발이 열리는 날이나 축구시합이 벌어지는 몇 시간 동안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을 정도로 열광적이다. 또한 대부분 가게, 사무실, 기관들이 오후에 서너 시간 동안 문을 닫거나 업무를 중단할 정도로 점심식사는 이탈리아인들이 존중하는 전통이다. 8월 중 특히 페라고스토(Ferragosto)라고 하는 수태고지절이 속한 1주일 동안은 여름더위와 전국적인 휴일이 겹쳐 이탈리아 도시는 텅 비어버린다. 이탈리아인의 문화적 행사, 사고와 전통은 지방마다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북부에서는 가볍고 꼭 조이는 옷이 아무렇지 않지만 시칠리아와 사르디냐에서는 원치 않는 관심을 끌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유념해야 한다. 맨발과 반바지 차림으로는(남성들도 포함) 이탈리아 교회들에 출입할 수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교회가 관광객들에겐 단지 관광명소이지만 이탈리아인에게는 종교적인 숭배장소이므로 예배시간에는 관광을 피하도록 하는 것도 유의하자.이탈리아인들에게 음식은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을 의미한다. 요리스타일은 지역마다 다른데 특히 남부와 북부는 차이는 현저하다


북부음식은 크림이 많이 들어가고 에밀리아-로마냐의 지역적 특성을 드러낸다. 볼로냐스파게티(이탈리아에서는 '스파게티 알 라구al ragu'라고도 함), 토텔리니, 모타델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토스카니, 움브리아지방 사람들은 올리브유와 허브를 많이 쓰고 좋은 향, 신선한 농산물을 사용해 지역 특성을 요리로 보여준다

남부로 갈수록 음식이 더 매콤해지는데 돌치(dolci:케이크와 페스츄리빵)가 북부보다 달콤하고 맛이 풍부하다. 나폴리에서는 피자를 꼭 먹어 보고, 시실리에서는 영양가 많고 달콤한 리코타케익 카사타cassata를 놓치면 후회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이탈리아에서 음식 걱정할 필요가 없다. 채식주의자 전용식당은 거의 없지만(있어도 대부분 비싸다), 야채가 이탈리아요리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식당에서 콘토르니(contorni;여러 방법으로 요리한 야채)를 판다. 남부로 갈수록 야채요리가 다양하고 맛있어 진다. 


식당은 다음과 같은 여러 종류로 나뉜다. 

트라볼라 칼다(travola calda;'핫 테이블'을 의미)는 미리 조리되어 있는 고기요리, 파스타, 야채요리를 파는 셀프서비스식당으로 가격이 싸다. 

로스티체리아(rosticeria)는 고기요리를 주로 파는 식당이지만 그 외 다른 메뉴도 많다. 

피자가게에는 물론 피자를 팔지만 풀 메뉴도 항상 준비되어 있다. 

오스테리아(osteria)는 간단한 식사를 먹을 수 있는 와인바나 작은 트라토리아(trattoria;이탈리아말로 '작은 음식점'을 의미)를 가리킨다. 

트라토리아는 싼 리오스토란테(riostorante;레스토랑)이다. 사실상 리오스토란테면서 트라토리아라고 간판에 쓰거나 반대로 트라토리아이면서 리오스토란테라고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에 붙여 놓은, 가격이 적힌 메뉴를 꼼꼼히 확인해 봐야 한다. 트라토리아에 들어섰을 때 메뉴판이 없어 당황할 필요는 없다. 매일매일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최고의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하기 위해 메뉴가 변하는 식당도 있기 때문이다. 봉사료(servizio)는 음식값의 10내지 15% 정도이다. 점심시간은 보통 12시30분에서 3시까지이지만 2시 이후에는 거의 주문을 받지 않는다. 저녁 시간은 남부와 북부가 다르다. 북부가 더 이른데 보통 7시30분부터 시작되지만 시실리에서는 8시 이전에 여는 식당을 찾기 힘들다. 11시30분 이후까지 문을 여는 식당은 거의 없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는 이탈리아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티에피도(tiepido;'차거운') 카푸치노와 브리오시, 코르네토나 패스츄리빵을 바에 서서 먹는다. 점심식사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며 가게, 사무실 문을 닫고 매일 오후 3, 4시간을 점심식사와 낮잠(시에스타)으로 보낸다. 


풀 코스의 안티파스토(antipasto;전채)로는 브루체타(bruschetta: 토핑을 곁들인 마늘빵), 튀긴 야채, 프로스치우토 에 멜로네(prosciutto e melone: 멜론으로 싼 햄요리)를 먹는다. 전채 다음에 오는 코스를 프리모 피아토(primo piatto)라고 하는데 파스타나 리조토요리가 나온다. 다음코스인 세콘도 피아토(secondo piatto)는 고기나 생선요리가 나오는데 주요리에 해당한다. 그 다음으로 이탈리아인들은 인살라타(insalata;샐러드)나 콘토르미를 먹고 고기요리에 돌치나 카페를 곁들이기도 한다. 음료는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에 들러서 마시기도 한다. 

점심, 저녁식사 후에는 가까운 젤라테리아gelateria에 가서 맛있는 젤라티(gelati: 아이스크림)를 먹고 바에서 디제스티보(digestivo;술)를 한잔 마신다.

이탈리아에는 카페 등에 좌석값이 있다. 일단 앉으면 가격이 아주 달라진다. 카푸치노가격이 1200L 정도이지만, 자리에 앉아서 마시게 되면 2500L에서 5000L, 심지어 베니스 산마르코광장이나 로마 스페인계단같은 관광지에서는 10,000L가 넘는 곳도 있다. 파는 파니니(panini: 샌드위치)나 피자조각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 아니면 알리멘타리(alimentari: 청과물가게)에서 손님이 고른 야채들로 파니니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만들어주기도 한다. 파스티체리아(pasticceria)에서는 패스츄리, 케이크, 비스켓을 판다.과일, 야채는 노천시장에서 사고, 살라미, 치즈, 와인 등은 알리멘타리나 살루메리(salumeri: 청과상과 델리카트슨 중간)에서 살 수 있다. 


이탈리아와인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 이탈리아인들이 와인을 즐겨 마시는데 보통 고기요리를 먹을 때 와인을 함께 마신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밖에서 술 마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와인 종류는 지방마다 다르므로 여행하면서 각 지방의 와인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이탈리아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토스카나의 치안티chianti, 산지미나노의 베르나치아vernaccia, 베로나의 소아베soave, 베니스인근 발폴리첼라valpolicella가 산지로 유명하다. 오리비에토, 트렌티노산 와인도 훌륭하다. 로마의 프라스카티frascati의 맛도 괜찮다. 시실리, 사르디냐 와인은 맛이 달고 진한게 특징이다.와인은 점심, 저녁시간에 곁들이고 피자는 대부분 맥주와 같이 먹기때문에 피자리아에서는 와인을 팔지 않는다. 맥주는 '비라birra'라고 하는데 페로니Peron)가 가장 싼 지방맥주이지만 비레리아birrerria나 바에서 다양한 종류의 수입맥주도 판다.




축제 및 행사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대부분 도시마다 고유의 종교적, 문화적 행사들이 기록된 달력을 발행한다. 다양한 축제들이 벌어지는 시기에 맞추어 여행하고 싶다면 이탈리아 관광청에 가서 모든 문화행사가 실린 이탈리아연감을 보여달라고 하면 된다. 부활절을 맞기 전 카니발(pre-Easter Carnival)행사는 베니스에서 볼만하며, 부활절주간의 화려한 행렬은 타란토(Taranto)가 특히 볼 만하다. Chieti Sicily 그리고 Florence에서는 부활절 일요일날 성대한 불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성인들을 기리는 축제들이 특히 화려하고 볼만한데 : 바리(Bari)에서 San Nicola 축제와 나폴리(Naples)에서 San Gennaro 축제, 아브루쪼(Abruzzo)에서 뱀 페스티발과 파두아(Padua)에서의 Sant' Antonio축제(6) 등이 있다. 행사로는, 사르디니아 기마행진, 4대 해양공화국 요트경주대회(Pisa, Venice, Amalfi, Genoa에서 교대로 6월에 열린다), 시에나에서의 Il Palio(7월과 8), 그리고 베니스에서의 역사적인 요트경주대회(9) 등이 볼 만하다. 많은 행사 및 축제들은 대부분 5월에 열린다. 요약하면, 국경일은, 16(예수공현일), 부활절월요일, 425(독립일), 51(노동절), 815(수태고지축일 이탈리아語로 페라고스토'ferragosto), 111(성인의날), 128(성모마리아 무염수태의날), 1225(크리스마스), 1226(스테판성인축일). 그리고 각 도시마다 수호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공휴일이 있다. 주요도시의 수호성인축일은, 베니스 -성 마르크축제(425), 제노바, 투린, 플로렌스 - 성 세례요한축제(6 24), 로마 -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축제(629), 나폴리 - 성 제나로의 축제(919), 밀라노 - 성 암브로제의 축제(127).


*카니발Carnevale



Ash Wesnesday 10일 동안 많은 도시에서 카니발이 열린다. 베니스카니발이 가장 유명하고, 리구리아의 비아레지오와 투린근처의 이브레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서를 따르는 카니발을 연다.



*성주일(Holy Week, 부활절前 일주일)

이 기간 이탈리아 전역에 중요한 페스티벌이 열린다. 그 중 시칠리아의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전통축제가 유명하다. 아씨시 성 주일 의식에는 순례자들이 많이 참석한다.*손수레의 폭발(Scoppio del Carro)피렌체 두오모광장에서 부활절일요일에 열리는 이 화려한 행사는 화약이 가득 실린 수 레를 폭발시켜 예수의 고행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 행되면 사람들은 길조로 여긴다.



*Corso dei Ceri

이탈리아에서 가장 특이한 축제 중의 하나로 515일 구비오(움브리아)에서 열린다. 남자 들이 체리ceri라고 불리는 거대한 목조건축물을 옮기는 경주인데 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우발도를 경배하기 위한 행사이다.



*Il Palio

72, 816일 시에나에서 열리는 독특한 말 경주대회로 대 광장에서 벌어진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다.

보건위생 : 특이사항 없음

시차 : 한국이 이탈리아보다 8시간 빠름 (써머 타임 시는 7시간 빠름)

전압 : 220V, 50 Hz

도량형 : 미터법



여행 경비 및 환전

통화 : 리라(lira)


일반경비

저렴한 현지식사 : US$3.50

레스토랑 식사 : US$15

저렴한 숙소 : US$12

호텔 : $30

저렴한 경비를 예산한 여행자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숙식비는 다소 비싸게 느낄 것이다. 호스텔에서 자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술은 가급적 피하고, 박물관출입도 다소 자제하는 등 신중을 기한다면 1 US$35을 넘지 않을 수도 있다. 좀 더 윗 단계로, 1-2개 정도의 호텔과 하루 한번 정도의 식당식사, 꼭 가야 할 박물관 정도를 방문한다면 1 US$80정도 예상된다. 아주 편안한 호텔에서 머물고, 식사도 식당에서 거의 하고, 박물관, 갤러리 등을 다 보려면 1 US$120정도 소요된다(여기에 차까지 렌트 한다면 2배 정도 들 것이다). 끝없는 소비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탈리아의 호화로운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들은 골드 신용카드 하나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 여행자수표를 환전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은행이며 환율도 가장 좋다 : 상점환율이 가장 나쁘며 사람도 없으므로 신속하게 환전할 수는 있다. 이탈리아에서 신용카드는 보편적으로 쓰이며, 비자카드는 은행에서 현금서비스 받기가 가장 쉽다. 봉사료는 식당 계산서에 포함되어 나오므로 별도의 팁은 요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스름잔돈은 보통 그냥 남겨두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 같은 곳에서도 대개 얼마간의 잔돈은 두고 나오지만 의무적은 아니다. 주의할 것은 이탈리아의 바에서 의자를 차지할 경우 가격이 2(혹은3) 더 오른다는 것. 택시를 탈 경우 팁은 주지 않아도 되지만, 호텔 포터들은 약간 기대할 것이다.




여행 시기

이탈리아여행의 적기는 봄(4-5)과 가을(10-11)이다. 날씨도 좋고 요금도 싸고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아 여유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관광성수기인 7,8월은 매우 더운데다 인플레이션도 심하고 대부분 이탈리아사람들의 휴가철로 문을 닫는 곳도 많다. 또 관광객들이 많아 바다와 산에 위치한 호텔들은 일찌감치 예약이 끝난다. 겨울에는 바닷가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대개 문을 닫는다. 보통 12월에서 3월 하순까지는 스키시즌이고, 6월에서 9월 사이는 수영시즌, 그리고 7월과 9월은 알프스에서 트레킹하기에 좋다. 남쪽을 여행한다면 11월과 12월까지도 겨울추위를 느끼지 않고 머무를 수 있다.




주요 여행지

로마(Rome)



'나는 이제야 내 젊은 날의 꿈을 실현하였다,' 1786년 겨울 괴테는 로마에 와서 이렇게 썼다. 오늘날의 로마는 옛날보다는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낭만과 환상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역사, 전설, 기념비로 가득 찬 이 도시는 또한 매일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의 터전이기도 하다. 로마에서 여행자를 알아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버스가 콜로세움을 지날 때 머리를 돌려 바라보는 사람은 십중팔구 여행자이다.로마에 제일 먼저 정착한 종족은 에트루리아, 라틴, 사빈느족으로 팔라틴, 에스퀼리네, 퀴리날레 등지에 정착하였다. 고고학적인 증거로는 팔라틴을 최초 정착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도시를 세운 것은 전설 속의 로물루스와 레무스형제이다. 이들은 레아 실비아와 전쟁신 마르스 사이에서 태어나 티베르강에 버려지는데 늑대가 이들을 데려다 기른다. 후에 누가 이 도시를 통치할 지 두고 싸우다가 팔라틴 언덕에서 로물루스가 쌍동이 동생을 죽이고 로마의 왕이 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그 도시가 확장하여 당시에는 전세계를 의미하던 유럽을 통치하는 등 역사상 비교할 대상이 없는 유일한 제국이 된다. 로마는 서구 양대 제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제국과 기독교교회의 본산이다. 한 편에 공회당과 콜로세움이 있고 또 다른 편에 성 베드로교회당과 바티칸이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에, 모든 광장에서는 역사가 숨쉬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에 지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적어도 1주일은 지내봐야 로마의 진면모를 엿볼 수 있다. 광대한 도시이지만 역사적 중심지는 그리 넓지 않다. 주요 관광지가 대부분 테르미니 중앙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몰려 있다. 그러므로 콜롯세움에서 공회당, 팔라틴을 지나 스페인계단, 바티칸까지의 코스를 하루에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빡빡한 일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름다운 광장들을 어슬렁거리다가 카페에서 커피와 케익을 먹는 재미도 로마여행에서 중요하니까. 주요 유적은 중앙역 서부에 몰려 있지만 항상 지도를 잊지 말고 들고 다니자. 헤매고 다니는 것도 재미로 삼을 수 있지만 시간낭비가 되거나 절망적일 때도 있다. 제한된 일정 때문에 여행일정을 잡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오전에는 일단 박물관에 가는 것으로 잡는다. 대부분 박물관이 오후 2시경 문을 닫기 때문이다. 콜롯세움, 성베드로교회당, 로마 공회당은 오후에도 문을 연다. 그리고 대부분 박물관이 월요일에 휴관한다.이 방대한 도시에서 가장 멋진 것이 무엇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고고한 바틴칸과 시간을 초월한 포럼을 둘러보며, 최고속도의 피아트 밤비노에 한 잔의 카페 라떼를 마실 때, 로마의 황홀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플로렌스(Florence)



르네상스의 요람, 단테,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메디치가의 고장인 피렌체는 미술, 문화, 역사가 태동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중세에는 은행, 무역에 바탕을 두고 경제가 번영하면서 건물들이 많이 지어지고 다른 도시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세력이 커지고, 메디치가의 통치하에서 최고의 번영을 이루며 르네상스를 탄생시킬 만큼 문화적, 예술적, 정치적으로 성숙한다. 상점이 늘어선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도시의 상징인 두오모(Duomo), 보석으로 가득한 우피찌 갤러리(Uffizi Gallery), 메디치 교회당 등 수많은 관광지를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피렌체는 성수기에 2000여개의 관광버스들이 드나들 만큼 이탈리아에서 가장 붐빈 도시이다.



베니스(Venice)



117개의 작은 섬에 세워진 베니스에는 운하가 150, 다리가 400개가 넘는다. 자동차가 없고 인도로만 이루어진 미로 같은 길에서는 아무리 정신을 차린다 해도 한번쯤은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베니스의 낭만과 아름다움의 열쇠는 걸어 다녀야만 찾을 수 있다. 아카데미아와 역 사이의 좁고 굽이치는 길에서 몇 시간 동안 헤매게 될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산마르코, 리알토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보내기에 이 거리만큼 재미있는 곳도 없다.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주는 지도는 복잡한 베니스거리에 대한 충분한 가이드가 되지 못하므로 간단하게 'Venezzia'라고 써 있는, 거리명이 모두 나타난 싼 지도를 사는 것이 좋다.베니스는 카나레지오, 카스텔로, 산 마르코, 도르소두로, 산 폴로, 산타 크로체의 6개 지역으로 구분되며, 거리는 칼레(Calle), 루가(Ruge), 혹은 살리짜다(Salizzada), 작은 길은 깔레타(Caletta), 라모(Ramo), 운하옆길은 폰다멘타(Fondamenta), 운하는 리오(Rio), 부두는 리바(Riva)로 불린다. 베니스에서 광장(Piazza)이라고 불리는 곳은 산마르코 광장뿐이다. 다른 곳은 캄포(Campo)라고 한다. 산마르코에서 출발하여, 아카데미아 다리, 도르소두로, 산 폴로의 좁고 조용한 거리, 광장을 샅샅이 다녀 보면 베니스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도시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실'이라고 한 산 마르코광장은 비둘기떼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성수기에는 비둘기와 자리싸움을 해야할 정도이다. 광장 정면에 있는 우아한 산 마르코 대성당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묻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산 마르코 광장 옆에 있는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은 총독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궁전계단을 내려오면 궁전과 옛 감옥을 이어주는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가 있다. 이름과 다르게 이 다리는 로맨틱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아마도 감옥에서 처형된 카사노바를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다리는 죄수들이 처형장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틴토레토, 티치아노, 베로네제 등 베네치아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된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부근에 잭슨폴락,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샤갈 등 현대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베니스를 둘러싸고 있는 섬으로는 리도(Lido), 무라노(Murano), 부라노(Burano), 토르첼로섬이 있다. 리도는 베니스 남동으로 뻗은 긴 섬으로 베니스와 아드리아해의 경계를 이루며 한때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던 해변휴양지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쇠락한 곳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무라노섬은 베니스유리가 태동한 곳이다. 유리박물관에 가면 유명한 베니스유리의 발달과정을 볼 수 있다. 부라노섬은 조용한 어촌마을로 이 섬 아낙들의 레이스뜨기가 유명하다. 토르첼로섬은 비잔틴 모자이크가 장식된 대성당이 볼 만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성가대 뒤쪽의 성모상 모자이크이다. 이 섬들로가는 유람보트는 모두 산 마르코 광장에서 출발한다.



밀라노(Milan)



이탈리아의 경제, 패션 중심지로서 밀라노는 오랫동안 우아하고 문화적인 도시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곳의 패션, 요리, 오페라, 교회(세계에서 4번째로 교회가 많다), 르네상스풍의 성과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벽화 등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계속 끌어당기고 있다. 켈트족이 세운 도시였지만 BC222년 로마의 점령 이후 무역, 교통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13세기부터 비스콘티가와 스포르차가의 지배아래에서 밀라노의 번영은 시작되었다. 밀라노의 쇼핑과 요리, 나이트클럽(이탈리아에서 제일 많은 게이집단이 있는 관계로)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주요 쇼핑가와 관광지는 거대한 두오모광장(Piazza del Duomo)과 높은 스포르차성(Castello Sforzesco)주변에 몰려있다. 1386 Gian Galeazzo Visconti가 설계한 두오모광장은, 뾰족하고 요동치는 구조와 첨탑, 조각상, 기둥이 어우러진 대리석정면 등 아름다운 고딕건물이 인상적이다. 스포르차 성은 15세기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에 의해 재건되었고 이 곳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등 많은 조각품이 소장되어 있다. 또 밀라노여행의 필수코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빈치아노 수도원(Cenacolo Vinciano)에 그려져 있다. 1995년 복원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지만 수세기 동안의 홍수와 폭격, 부식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8월은 대부분의밀라노시민들이 휴가를 떠나므로 도시가 휴점 상태이다



나폴리와 폼페이(Naples & Pompeii)



캄파니아주의 수도인 나폴리는 북적거리면서도 매혹적인 환상의 도시이다. 아름다운 나폴리만에 자리하고 베스비오(Mt Vesuvius)산의 그늘에 위치한 이 도시는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에 속한다. 나폴리에서 역사적인 장소로는, 제수 누오보 교회(Chiesa di Gesu Nuovo), 산타 치아라 교회(Chiesa di Santa Chiara) 등 교회로 둘러싸인 광장 Piazza del Gesu Nuovo가 있고, 이외 두오모, 미술관이 있는 레알레궁(Palazzo Reale) 그리고 San Carlo Opera House 등이 있다. 13세기의 누오보 성(Castel Nuovo)에서는 나폴리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뮤제오 광장에 위치한 국립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에는 그레코-로만 미술작품, 품페이와 헤르클라네움에서 발굴한 보물을 포함, 파르네제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나폴리에는 비밀범죄단체 카모라(Camorra)가 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담배밀수와 판매를 위주로 했으나 요즘에는 마약, 건설, 재정, 관강개발 등에도 손을 뻗치고있다.서기 79년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재와 진흙 속에 파묻힌 폼페이(Pompei)는 당시 로마인들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부유한 로마인들의 휴양지였던 이곳은 거대한 폐허사이에 신전, 포럼, 로마원형극장 등이 있고 상점과 호화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그 안의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나폴리 국립 고고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Villa dei Misteri에는 아직도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아말피 해안(Amalfi Coast)



소렌토에서 살레르노를 따라 50km에 이르는 이 해안은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에 속하는 지역이다. 구불구불한 도로와 푸른바다 위의 해안절벽, 그리고 절벽을 따라 성냥갑같은 집들이 그림엽서같은 마을의 풍경을 이룬다.아말피 해안 (4K)포지타노(Positano)는 이 해변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화려한 곳이다. 그러나 여전히 저렴한 호텔들도 찾아볼 수 있다. 포지타노에서 아말피로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마을이 프라이아노(Praiano)로 그렇게 빼어난 경치는 없지만 아말피해안 내 유일한 캠핑장 등 경제적인 곳이 많다. 아말피(Amalfi)는 중세 이탈리아에서 막강한 네 해상공화국 중 하나였던 곳으로 오늘날 주요관광 리조트 도시이다. 인상적인 두오모(Duomo), 카프리의 푸른 동굴과 비교되는 그로토 스메랄도(Grotta dello Smeraldo, 에메랄드 동굴) 등이 볼 만하다. 아말피 뒤 언덕에 버스로 갈 수 있는 라벨로(Rabello)가 있다. 이곳에는 한때 교황의 집이었고 후에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집이었던, 11세기 빌라 Villa Rufolo가 있다.살레르노(Salerno)는 에트루리아에서 로마, 중세시기까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2차대전 중 연합군의 주요 상륙지역으로서 많이 파괴되었다.



시에나(Siena)



세 언덕 위에 위치한 아름답고 온화한 도시 시에나는 아직도 옛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적갈색의 시에나토 고딕건물들이 즐비하다. 중세기에는 독립공화국이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피렌체와 심한 경쟁을 치뤄야 했다. 피렌체인들이 흑사병을 퍼뜨리기 위해 죽은 당나귀와 배설물을 시에나에 버리는 유명한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다고 하는데, 1348년의 흑사병으로 10만 인구 중 6만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시에나 화파를 태동시키고, 성 카타리나, 성베네딕트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7,8월에 걸쳐 캄포광장에서 말경주대회(Il Palio)가 열린다. 캄포광장(Piazza del Campo)은 거대한 조개모양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 광장이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에 속하며 흑백 줄무늬 대리석정면 중 하단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죠반니 피사노의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궁전, 광장, 예술품, 박물관, 교회들이 있는 구시가는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다.



아씨시(Assisi)



해마다 수백만의 관광객, 순례자들이 찾아오지만 성 프란시스의 고장 아씨시는 아름답고 조용한 옛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주요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그렇다. 수바지오산(Mt Subasio)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눈부신 하얀 대리석건물과 함께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다. 시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14세기의 거대한 로카 마기오레(Rocca Maggiore), 이 언덕요새에서 계곡너머로 멋있는 경관이 펼쳐진다. 아씨시여행의 주요목적은 종교순례이다. 성 프란시스는 1182년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죽은 2년 후 1228년에 성 프란시스 예배당(St Francis' Basilica)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제국의 유물로는 발굴된 로마 공회당(Foro Romano)과 기둥이 남아있는 미네르바신전 등이다. 기타 교회로는 산타치아라 교회당(Basilica di Santa Chiara), 산타 마리아 마기오레(Santa Maria Maggiore), 산 삐에트로(San Pietro), 산타 마리아 델리안젤리 예배당(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 등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시실리(Sicily)



시실리 하면 즉각 연상되는 것은 해변과 마피아일 것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오늘날까지도 시실리 경제와 생활방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마피아로 시실리는 상반되는 모습을 지켜오고 있다. 시실리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그 전략적 위치 때문에 끊임없는 침략과 식민지로 고통 받았고, 그런 역사적 특성으로 인해 그리스신전, 로마유적, 노르망교회와 성, 아랍과 비잔틴 돔 등이 혼합되어 남아있다. 쇠퇴했으나 황금기의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수도 팔레르모(Palermo), 시라쿠즈(Syracuse)의 그리스유적,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에트나 산(Mt Etna), 그리고 잘 개발된 관광휴양지 리파리(Lipari)와 부자들의 섬 파나레아(Panarea), 지대가 험한 불카노(Vulcano), 경치가 아름다운 활화산 스트롬볼리(Stromboli)가 속한 애올리아군도(Aeolian Islands) 등 다양한 지대가 속해 있다. 다른 볼거리로는 몬레알레(Monreale)에 있는 웅장한 12세기 성당과, 그리스 극장, 경치좋은 공원, 궁전, 성당과 해변 등이 있어 관광객이 몰리기는 하지만 가 볼만한 타오르미나(Taormina)가 있다. 시실리는 온대성기후로 겨울에도 온화하다. 여름에는 매우 덥고 바닷가마다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휴가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므로 해변과 관광을 동시에 즐길 만큼 적당히 더운 봄이나 가을에 여행하는 것이 한가하고 좋다.



사르디니아(Sardinia)



지중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사르디니아 섬은 그리스, 페니키아, 로마, 피사, 제노바, 스페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받았었다. 이런 파괴 속에서 사르디(Sardi)라고 불리는 이 지역사람들은 섬 거주민으로서의 독특한 동질성과 단결력을 만들게 되었다. 사르디니아 섬의 풍경은 D H 로렌스가 묘사한대로 '야생적이고, 수풀이 무성하고, 하늘이 드러나 있는 땅'의 이미지로부터 도르갈리 근처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작고 큰 계곡들, 바위투성이로 고립된 제나레젠투 산맥, 보사와 알게로사이의 오염되지 않은 해안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오랜 사냥역사로 많은 동물종이 멸종됐지만 아직도 몇 종의 야생동물은 남아 있다. 특히 아시나라섬의 백색당나귀, 서해안의 그리핀독수리, 남서지방 지아라 디 제스투리(Giara di Gesturi), 내륙의 몸집이 작은 말 등이 대표적이다. 날씨가 아주 덥고 해안이 피서객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8월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보통 5월에서 9월까지 날씨가 온화한 편이다. 수도인 칼리아리(Cagliari)는 흥미로운 중세구역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아주 매혹적인 도시이다. 다른 여행지로는 관광지의 물이 들지 않은 아름다운 꼬스따 베르드(Costa Verde)해안선과, 인기있는 관광 리조트 알게로(Alghero)의 해변과 동굴들, 누오로(Nuoro)지방의 전통문화와 트레킹 등이다.



파에스툼(Paestum)

살레르노(Salerno) 남쪽에 있는 파에스툼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그리스 유적지이다. 꽃과 풀로 가득찬 들판에 우뚝 서있는 3개의 도리스 신전과 함께 불가사의한 장소로, 쎄레스(Ceres)와 넵튠(Neptune)신전, 포럼, 성당과 성벽이 경관을 이룬다. 이곳의 박물관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고대 건축물 수집품 중 하나인 장식 벽이 소장되어 있다. 내륙으로 12km 가면 이탈리아 남부에서 손꼽히는 자연환경지역이 나오는데, 다이아나의 숲(Woods of Diana)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중세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도시 산 지미냐노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핑크색, 녹색, 황금색이 어우러져 마치 수를 놓은 듯한 토스카나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이 도시는 중세 제후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탑으로 유명하다(원래 72개였으나 지금은 14개밖에 남아있지 않다)총안무늬의 궁전과 치솟은 탑들이 마을 광장 주위에 있고, 그 중 두오모 광장 옆에 있는 토레 그로싸(Torre Grossa) 54m로 가장 높은 탑인데, 이곳에 올라가면 구름에 싸인 환상적인 토스카나의 자연경관이 보인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폐허의 요새, 프레스코벽화 교회, 시에나와 피렌체학파의 예술품이 특징인 박물관 등이 이 특별한 도시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한다.



트레미티 군도(Tremiti Islands)

가르가노(Gargano)반도에서 40km 벗어난 지역에 3개의 섬이 트레미티 군도를 이룬다. : 산 도미노(San Domino), 산 니콜라(San Nicola), 카프라이아(Capraia). 이 섬들은 이탈리아 다른 섬에 비해 개발이 덜 되어있고 상대적으로 관광지의 오염도 덜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바글거리는 관광객으로부터 탈출해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산 니콜라에 있는 산타마리아 교회(Santa Maria) 11세기에 세워진 베네딕트수도원으로 검은 성모상과 11세기 모자이크 마루, 비잔틴 십자가가 특징이다. 산 도미노는 후미진 절벽과 바위수영장, 동굴 등이 있는 모래해변가가 인상적이다.



친퀘 테레(Cinque Terre)



자칫 소홀하여 다섯 개의 멋진 마을로 이루어진 친퀘테레를 그냥 지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지역은 북서부의 리구리아 연안에 접한 산악지대로 마구잡이의 관광개발을 면한 곳이다. 마을은 언덕을 따라 굽이굽이 아름다운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고, 올리브 숲과 포도밭으로 이뤄진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또 마을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 해안가에 있는 리오마기오레(Riomaggiore)는 낚시잡이배가 늘어선 마을이고 여기서 Lovers' Lane을 따라 5개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마나롤라(Manarola)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코르니글리아(Corniglia)마을은 고지대에 위치하며 오르는 길이 구불구불하여 겁이 많은 사람은 감히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을 중에서 가장 멋진 해안배경을 갖는 베르나짜(Vernazza)는 산책로와 바다를 굽어보는 광장이 있는 곳이다. 마직막으로 몬테로쏘 (Monterosso)마을은 유일하게 가까이 해변을 가지고 있는 마을로, 멀리서 보면 바위에 새겨진 커다란 동상 같은 모습이다.





레저스포츠

박물관과 갤러리 그리고 진한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커피 외에 시간을 보낼 또 다른 방법은, 야외레포츠이다. 이탈리아알프스지역 특히, 돌로미테(Dolomites)에는 장거리 하이킹트레일이 있다. 갑작스런 기온변화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에 준비를 해가야 한다. 아펜니노산에도 좋은 하이킹트레일이 있는데, 특히 Parco Nazionale d'Abruzzo Calabria Sila Massif가 유명하다. Tuscany지방의 Alpi Apuane Sardinia 동부에 있는 Gennargentu에도 멋진 하이킹코스들이 있다.이타리리아 알프스에는 많은 스키리조트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절경을 이루는 곳은 Dolomites이다. 5대 주요 리조트로는, Veneto Cortina d'Ampezzo Trentino Madonna diCampiglio, San Martino di Castrozza, Canazei 그리고 Valle d'Aosta Courmayeur 등이다.스키시즌은 보통 12월에서 3월하순까지이며, 몽블랑(Mont Blanc)등지에서는 연중 스키를 즐길 수 있다.윈드써핑과 항해는 대중적인 스포츠이며, 대부분 해변리조트에서 보트 및 장비를 대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자전거여행도 해볼 만하다. 단지 애로사항은 국토의 75%에 해당하는 산악과 고지대이므로 오직 필요한 것은 스태미나와 성능좋은 자전거이다. 인기있는 싸이클여행지역은 투스카니 구릉지대와 움브리아(Umbria)의 발네리나(Valnerina)지역이다. 고행의 코스로는 구불구불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Passo Stelvio 지역이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직항편은 주로 로마로 취항한다. 출국세는 항공티켓 구입 시 같이 포함된다. 유럽 내에서 기차로 이탈리아를 입국하는 방법도 보편적이나 기차 안에서의 도난사고가 비일비재하므로(이탈리아 관광수입의 또 다른 방법(?)) 절대적인 주의가 요구된다. 버스로 입국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있으며 기차보다 편하지는 않으나 저렴하다. 페리는 그리스, 터키, 튜니지아, 말타, 알바니아, 이집트, 스페인과 연결된다.


국내 교통편

이탈리아 국내선항공요금은 비싼 편으로, 시간이 많다면 써비스가 좋은 버스와 기차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버스는 빠르고, 기차로 연결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나 도시간을 연결할 때 유용한 수단이다. 공공 또는 사유 철도 노선망은 나라전역에 걸쳐 연결되어 있으며, 저렴하면서도 간편하고 효과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페리는 나폴리에서 시실리를 운행하며, 제노아(Genoa), 리보르노(Livorno), 나폴리(Naples)에서 사르디니아로도 운행된다. 자동차로 여행한다면 좀 더 외진 지역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는 것 외엔 도로상태도 좋고 연결 망도 잘 되어 있어 자동차여행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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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 포르투갈 여행정보(상식, 여행팁, 지도, 물가, 여행코스)

포르투갈 일반정보, 지리 및 기후, 역사, 경제, 문화, 축제 및 행사, 여행팁, 환전, 환율, 여행경비, 여행시기, 주요 여행지, 가는 방법, 교통 등 다양한 정보를 다루고 있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가장 저렴하면서도 흥미있는 여행지이다. 아름다운 해변과 과거의 영광이 남아 있는 마을과 도시들, 올리브과수원과 포도밭을 배경으로 하는 풍경들. 그러나 40여 의 독재기간은 포르투갈을 유럽의 중심세력 밖으로 몰아냈고, 진보적인 현대생활로부터 격리시켰다. 이곳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은 이러한 포르투갈의 낙후성을 옛날의 향취를 고수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북 유럽인들은 썬탠을 즐기러 그들의 여름 휴가지로 저렴한 포르투갈을 택한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더 이상 이웃 스페인의 들러리가 아니며 지난 20여 년간 낙후성을 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다른 유럽 국들과 새로운 관계를 추진하였으며 경제를 활성화하고, 물밀듯한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그들만의 최선의 문화를 지키려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의 투쟁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데, 포르투갈은 EU의 경제주류로 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스듬히 바다 저 편으로 과거의 향수를 그리는 것 같다.



통계 자료

정식 국명 : 포르투갈

면적 : 92,389 평방 km

인구 : 1,050만 명

수도 : 리스본(Lisbon: 인구 650,000)

인종 : 99% 포르투갈인, 1% 아프리카인

언어 : 포르투갈어

종교 : 99% 로마카톨릭, 1% 기타

정체 : 의회 민주주의



지리 및 기후

유럽 내에서도 비교적 작은 나라에 속하는 포르투갈은 스위스의 약 2배 정도의 크기로 동쪽에서 서쪽까지 560km이며 북쪽에서 남쪽까지 220km이다. 북부와 중부, 특히 해안지방은 인구밀도가 높고, 남부는 밀도가 낮다. 내륙은 수풀이 우거지고 산이 많다. Serra da Estrela가 제일 높은 산맥으로서 Torre(1993m)에서 정점을 이룬다. 국제 기준 국립공원(72,290헥타르인 Peneda Geres)이 하나 있고, 10개의 자연 공원(가장 크고 유명한 것이 101,060헥타르의 Serra da Estrela이다.), 8개의 자연 보호구역과 3개의 보호지역이 지정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기후는 대체로 온난한 편인데, Algrave Alentejo지역의 한여름은 굉장히 덥다. 겨울의 북부지방은 비가 많이 오며 날씨는 추운 편이다. 산악지대에서 눈은 흔한 편이고, 특히 Serra da Estrela에는 기본적인 스키 설비가 마련되어 있다.




역사

포르투갈의 초기 역사는 기원전 7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했던 켈트족은 후에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서고트로부터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8세기에 무어족이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와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그들의 문화, 건축, 농경법이 이곳에 소개되었고, 12세기에는 무어족에 대한 저항 운동이 성공하여 이들을 몰아내게 되었다. 15세기에는 헨리 항해법의 기초 아래 정복과 개척의 시대에 돌입하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한 모험가들인 바스코 다 가마, 페르디난드 마젤란, 바르토로 뫼우 디아즈가 다 이 시대의 사람들로서, 무역 루트를 개척하고, 인도, 아시아, 브라질, 아프리카에 이르는 식민 제국 건설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16세기 말경부터는 쇠퇴하여 국제 사회의 새로운 파워로 부상하던, 이웃나라 스페인에게 점령당하기에 이른다. 포르투갈은 얼마되지 않아 주권을 되찾지만, 쇠퇴를 향해 가는 국운과 시대의 흐름을 뒤집지는 못했다. 18세기에는 나폴레옹이 포르투갈 함락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지만, 앵글로-포르투갈 연합군이 이를 잘 막아냄으로서 국가 수호에 성공한다. 19세기, 경제는 파산하고, 내란이 일어나고, 정치는 수렁에 빠지지만, 1910년의 전제 군주제 철폐와 민주 공화국 설립을 기점으로 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주 공화국도 잠깐이어서 1926, 안토니오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onio de Oliveria Salazar)에 의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1968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어둡고 암울한 독재가 이어진다. 그의 재위기간 동안의 억압정치와 무의미한 국력 소모전인 아프리카 침략 전쟁은 국민들의 불만만 가중시켜, 결국 1947 4 25일 군부에 의한 쿠데타 '부활의 혁명'이 일어났다.

1970년대와 80년대의 포르투갈은 정치적으로는 극좌와 극우의 대립, 경제적으로는 이어지는 파업과 정부와 사유 자본가들 간의 대립이라는 혼란의 역사로 점철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1974-75년에는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십만 명이나 되는 난민들이 본국으로 들어오는 사태가 일어났다. 최근에 들어서는 1986 EU가입과 1992년의 유럽통화기구(EMS) 정회원 자격을 획득함으로써 안정과 번영으로의 도약을 도모하려 노력 중이다. EU가입으로 포르투갈은 굉장한 발전과 현대화를 보여왔지만 늘어나는 실업자, 계속되는 농업과 교육면의 후퇴가 90년대의 새로운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1995년 선거에서 후보들은 10년간 보수주의로 집권한 사회민주당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면서 그 동안 행해왔던 사회민주당의 불명예스러운 처사에 대해 불만을 보여주었다. 1998년에는 Lisbon Expo가 열렸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426

1인당 국민총생산 GNP : US$ 21,019

연성장률 : 3.3%

인플레이션 : 2.3%

주요 산업 : 섬유, 관광, 농업

주요 교역국 : 스페인, 독일, 프랑스, 영국




문화

밀어 닥치는 외세의 영향에도 불고하고, 포르투갈인들은 고유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전통적인 포크 댄스는 여전히 포르투갈인의 자존심으로서 전수되고 있으며, 각 지방에서는 축제의 전통도 잘 지켜지고 있다. 16세기, 소극과 종교극에서 뛰어났던 질 비센뜨(Gil Vicente)가 포르투갈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륑쉬 드 까묑쉬 (Luis de Cam es)가 오쉬 루시아다스(Os Lus adas)라는 발견과 개척의 시대를 찬양한 서사시를 썼다. 19세기에는 알메이다 갸렛뜨(Almeida Garrette)가 로맨틱 드라마를 많이 썼고,페르난도 뻬소아(Frenando Pessoa)도 이 시대에 드라마와 시작 활동을 하였는데, 포르투갈 현대 작가로는 드물게 외국까지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가장 잘 알려진 포르투갈 음악은 16세기의 선원들의 갈망을 노래한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린 파도(fado)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리스본에서 듣는 파도는 상업화되어 있고 비싼 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즈(Am lia Rodrigues)는 최고의 파도 여가수로 포르투갈 레코드 가게 어디서나 음반을 살 수 있다. 16세기 동안 건축에서는 매뉴얼 1 Manuel I의 이름을 따서 붙힌 매뉴린 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이 시대를 풍미했던 개발과 개척 정신의 반영으로 장식에 있어서 트위스트와 소용돌이를 주제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장식용타일인 아줄레조스(Azulejos)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원래 무어족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포르투갈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리스본에는 아줄레조스 박물관도 있다.종교는 로마 카톨릭이 압도적이며 99%를 차지하며, 개신교인은 1만명 이하이고, 유태교인 수는 5천 이하이다.


축제 및 행사

Braga에서는 부활절 주간에 Holy Week Festival이 열리는데, 다양한 행렬이 벌어지며 그 중 가장유명한 것은 맨발의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벌이는 Ecce Homo 행렬이다. 5 Barcelos에서 열리는 Festas Das Cruzes(십자가의 축제)에는 행진과 민속예술경연, 지방 특산물 공예품전시회가 있다. Feira Nacional Da Agricultura(전국농경축제) 6 Santarem에서 열리는 축제로, 투우와 포크송, 춤 등 다채로운 이벤트들이 많이 벌어진다. Festa Do Santo Antonio(성 안토니오 축제) 6 13 Lisbon의 알파마(lfama)지구에서 벌어진다. Festas De Sao Joao(성 요한 축제) 6 16일에서 24일까지 열리는 오뽀르뚜의 파티이다. 23일 밤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릭(대파처럼 생긴 큰 부추)이나 플라스틱 망치로 악의없는 친근함의 일타를 교환하며 즐긴다. 아고니아(Agonia) 박람회와 축제는 815일 이후 첫 번째 일요일에 열리는데, 민속예술, 행진, 불꽃놀이와 공예전이 유명하다. 전국 말 축제는 11 3일에서 11일까지 골레강(Golega)에서 말 애호가들의 관심 속에, 온갖 종류의 말들이 모여 전시회와 경마를 벌이고, 투우도 행해진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3개월동안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보건 위생 : 여름 철 햇볕에 타는 것

시차 : 한국이 포르투갈보다 9시간 빠르다.

전압 : 220V, 50Hz

도량형 : 미터제 사용(도량형 환산표[영문]참조)

관광객 : 1000만 명

경비 및 환전

통화 : 에스쿠도(escudo)

 


여행경비(물가)

저렴한 현지식사 : US$4-6

레스토랑 식사 : US$8-10

저렴한 숙박 : US$10-15 (도미토리)

중급 호텔 : US$40-80 (2인실)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곳 중 하나이다. 최하로 경비를 예상한다면 호스텔이나 캠핑장을 이용하고 식사는 알아서 해 먹었을 경우 성수기일 때 하루 US$25정도이다. 저렴한 숙박과 가끔 비싸지 않은 식사를 사 먹는다면 US$30이다. 비수기일 때 동반자와 함께 여행을 한다면 괜찮은 식사와 숙박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2 US$70정도 든다. 관광지를 피하면 경비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환전 시 여행자수표는 현금보다 1%정도 나은 환율을 적용 받으나, 수수료가 비싸다(US$100환전 시 13%의 수수료가 적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AMEX여행자수표를 AMEX지점에서 환전한다면 수수료가 들지 않는다. 대부분 관광지에서는 현금인출기를 찾을 수 있다. 약간의 US달러와 영국 파운드를 소지하고 있는 것도 좋다. 써비스가 아주 부실한 경우를 빼면 레스토랑에서의 팁은 10%정도가 적당하며, 스낵바 같은 곳에서는 약간의 잔돈을 남기는 정도이다. 택시운전사들에게는 10%정도의 팁을 준다. 시장에서 물건 구입 시, 좋은 인상으로 흥정을 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도 만만치는 않다. 비수기에 숙박을 구한다면 흥정도 가능할 수 있다.



여행 시기

포르투갈의 기후는 대체로 온난한 편인데, 알그라베(Algrave)와 알렌떼조(Alentejo)지역의 한여름은 굉장히 없다. 알그라베의 관광시즌은 2월 말에서 11월까지이고, 성수기는 6월에서 9월까지이다. 겨울의 북부지방은 비가 많이 와서 추운 편이다. 산악 지대에서 눈은 흔한 편이고 특히 세라 다 에스뜨렐라(Serra de Estrela)에는 기본적인 설비뿐이긴 하지만, 스키장도 있다. 북부지방의 관광철은 대개 5월에서 9월까지이다. (3월말에서 4월까지)과 늦여름(9월과 10월초까지)에는 관광객들이 덜 오고, 비수기 할인도 받을 수 있으며, 녹음도 우거져 즐길 만하다.




주요 여행지

리스본(Lisbon, Lisboa)

수도 리스본은 인파와 소음, 교통체증으로 부산하긴 하지만, 낮은 스카이 라인과 타조 강(Rio Tejo)의 산들산들한 미풍때문에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은 도시이다. 이곳의 꾸밈없는 진솔한 분위기와 군데군데 독특하게 멋을 부린 맵시가 돋보이는 산뜻한 건축양식이 매력적이다. 리스본이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것은 바로 이런 매력과 물가가 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리스본의 옛 파사데스(Facades)양식들은 재개발의 열풍 속에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언덕과 산이 많은 지형이나 방향은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저지대에서는 로시오(Rossio)를 정점으로 하는 바익사(Baixa)가 중심지이다. 이곳에는 형형색색의 부서진 건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데 한가로이 거닐기에 좋다. 로시오의 동쪽으로는 까스떼로 드 사웅 조르제(Castelo de S o Jorge)가 있는데 서고트족의 전성기에 지어진 이 성은 리스본의 전망을 보기에 좋은 곳이다. 알파마(Alfama)지역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이 있으며, 레스토랑, 주점, 나이트클럽 등이 많다. 로시오 서쪽에 있는 벨렝(Bel m)지역에는 1496년 지어진 제로니모 수도원(Jeronimos Monastery)가 있는데 이 도시에서 가장 멋진 장소 중 하나이다. 이 외 포르투갈의 수많은 박물관들도 볼거리 중의 하나로, Madre de Deus 교회 안에 있는 아줄레조스 국립박물관과 까로우스떼 굴벵기안 박물관(Fundacao Calouste Gulbenkian), 현대 예술센터(Centro de Arte Moderna), 국립 고대 예술박물관(Museu Nacional de Arte Antiga) 등이 볼 만하다. 리스본에는 저렴한 숙소와 식당들이 많이 있으며, 대부분이 시 중심부에 있다.


신트라(Sintra)


리스본 근교에서 딱 한 장소만 골라 가야하는 처지라면 단연코 신트라를 으뜸으로 추천한다. 포르투갈 황실과 영국 귀족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신트라는(바이런은 이 지역에 반했다) 무성한 삼림과 초현실적 감각의 건축물로 리스본의 도시적 이미자와는 완전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레뿌블리까 광장(Praca da Republica)에 있는 박물관 지하의 관광 안내소에서 이곳의 지도와 숙박 시설의 사진이 담긴 책자를 받을 수 있다. 주말과 매년 7월에 열리는 음악 축제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평일에도 숙박 업소는 연일 붐비므로 예약은 필수적이다. 신뜨라 궁전(Palacio Nacional de Sintra)과 페나궁전(Palacio de Pena), 모우로스 성(Castelo dos Mouros)이 주요볼거리이다.


에보라(Evora)

에보라(VORA) 포르투갈 건축물의 산실인 성곽 마을 에보라는 아레네요 지방의 수도로서, 울창한 올리브 숲과 포도밭, 밀밭, 아름다운 꽃들로 덮인 광활한 지대이다. 에보라의 매력은 훌륭히 잘 보존된 마을 안쪽의 좁은 일방 통행로에 있다. Largo do Marqu s de Marialva에 있는 세 성당(S cathedral)에는 수도원이 있고 교회 보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있다. 근처의 에보라 박물관(Muser de Evora)에는 로만, 메뉴린 양식의 조각품들, 16세기 포르투갈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로마 통치시대의 다이아나 사원(Temple of Diana)은 에보라의 가장 잘 팔리는 기념 엽서의 소재이기도 하다. 길라도 광장에서 남쪽 방향으로 몇 블럭 떨여져 있는 Igreja de S o Francisco에는 소름끼치는 납골당 사원(Capela dos Ossos)이 있다. 이곳은 수 천명의 뼈와 해골로 지어졌다.


라고스(Lagos)


라고스는 알그라브에서도 가장 멋진 해변을 자랑하는 주요 휴양지이다. 구 시가지에 있는 시립 박물관 Municipal Museum에는 진귀한 교회의 보물들, 수공예품, 동물의 장기를 저장한 것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근처의 성 안토니오 교회(Chapel of Santo Ant nio)에는 독특하고 정밀한 바로크식 목조 작품들이 있다. 해수욕장으로는 프라이아 다루즈(Praia da Luz), 동쪽으로 광대한 모래 사장을 가진 메이아 프라이아(Meia Praia), 서쪽으로 좀 더 떨어진 프라이아 도 핀앙오(Praia do Pinh o) 등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뻬네다 제레스 국립공원(Peneda-Geres National Park)

스페인과의 국경부근에 있는 이 국립공원은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고 다양한 야생 동,식물 생태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포르투갈 여행자나 휴가차 이곳에 온 사람들은 주로 중심 캠핑지대 내에서 머무르고, 하이커들은 좀 더 깊숙히까지 들어한다. 단거리 하이킹코스도 많이 있고, 승마나 카누대여를 위한 시설도 있다. 공원의 중심인 Caldas do Geres(혹은 그냥 Geres라고도 불리운다.)는 평범한 온천마을이다.



도우로 계곡(Douro Valley)


이 계곡은 오뽀르토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국경지대까지 장장 200km 에 걸쳐서 펼쳐지는 절경지대이다. 상류지대에는 전 지역이 포도밭이다. 간혹 가다 이것을 원료로 폴트와인을 가공하는 공장들을 틈틈히 볼 수 있다.도우루 강은 1980년대 이후로 둑을 쌓고 제방을 만든 덕에 물살이 약해져서,보트로 여행 하는데 별 어려움이나 위험이 없을 것이다. 또 하나 권장할 만한 방법은, 오뽀르또Oprto에서 뻬소 다 레구아(Peso da R gua)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2시간 반 정도 거리이고, 하루 12번 이상 기차가 오고 간다. 이 기차 여행의 마지막 50km 정도는 강둑에 딱 붙어서 가기 때문에 강 경치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목적지까지 도달한 후 뽀끼노(Pocinho)까지 계속해서 여행하고 싶으면 하루에 4번 운행되는 다른 기차로 갈아타면 된다(4시간 반 소요됨). 자동차나 자전거 여행자들은 강의 남으로든 북으로든 둑을 따라 여유있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염두에두어야 할 것은, 주말에는 오뽀르뚜의 빠듯한 도시 생활에서 탈출해 온 사람들 때문에 무척 붐빈다는 것이다.


몬시크(Monchique)

디스코 음악이 들리는 시끄러운 해수욕장이 싫다면 조용한 삼림지역인 Serra de Monchique로 가면 좋을 것이다. 이그레이아 마트리즈(Igreja Matriz)교회에 가면 놀라운 메뉴린 양식의 현관이 있는데 가까이 살펴보면 매듭장식으로 연결된 돌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 6km정도 가면 나른한 온천 휴양도시 칼다스 드 몬시크(Caldas de Monchique)가 있다. 온천욕이나 병에 담긴 물을 마셔보자. 몬시크 최적의 하이킹코스는 8km가량 울창한 삼림지역을 뚫고 자동차 혹은 도보로 알가르베의 '지붕'이라고 하는 포이아(Foia)에 가는 것이다.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사그레스(Sagres)

사그레스는 포르투갈 남서쪽 극단의 바람막이 벼랑에 있는 작은 어촌 항구이다. 광활하고 바람 많은 해안 지역인 항구에 탐험대장 Henry는 해양학교를 설립하고 후에 포르투갈 제국을 세운 탐험가들을 양성했다. 사그레스 근처에 몇 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특히 쾌적한 곳은 동쪽 17km지점의 어촌 마을 살레마(Salema)이다. 사그레스에서 6km 떨어진 곳에 있는 깍아지른 절벽, 성 벵상트의 곶(Cabo de Sao Veincente)를 가보지 않고는 사그레스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유럽의 남서쪽 극단인 황량한 이 곶에는 등대가 외롭게 서 있다.



레저스포츠

Algarve해안에서는 수영, 스노클링, 윈드써핑, 낚시 등 수상스포츠가 인기 있으며 서해안에서는 써핑이 인기 있다. Porto에서는 카누와 급류타기를 할 수 있다. 남부 포르투갈에는 좋은 골프코스들이 있고, 이 외 즐길 것으로는, Serra de Estrela Peneda-Geres 지역의 하이킹과 조랑말 트레킹이 있다.




포르투갈로 가는 길

TAP (Air Portugal)는 리스본에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미국, 캐나다로 직항편을 운항한다. Porto Faro에도 국제선이 취항한다. 출국세는 US$13이며, 항공권과 함께 지불하게 된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에서 포르투갈까지 버스편이 있으며, 기차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올 수 있다.




국내 교통편

포르투갈 국내선은 비싸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탈 이유가 없다. 기차가 훨씬 저렴하지만 버스가 더 빠르다. 특히 주요도시와 Algarver 간에 고속버스를 운행하는 버스(개인버스회사의)를 탈 경우. 포르투갈에는 십 여개의 렌터카 회사들이 있는데, 기름값이 비싸므로 심사 숙고할 것. 관광지에서는 자전거도 대여할 수 있다. 시내교통으로는 전차, 버스, 싼 택시들이 많이 있다. 리스본에는 전철과 케이블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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