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추암, 일출 명승 제1호로 지정 예고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도 나오는 곳인 동해 추암을 문화재청이 5일 '일출 명승 제1호'로 지정 예고했다.

동해시는 앞서 지난해 12월 동해시 추암동 산 68번지 일원 6만1천㎡를 일출 명승으로 지정 신청했다.

 

촛대바위 일출의 유명세는 물론 빼어난 해안 절경과 쪽빛해변을 바탕으로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추암은 그동안 전문가들의 문화재 지정가치 검토에서 자연경관의 우수성과 인문학적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정조 12(1778)년 단원 김홍도는 관동의 풍경을 그린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이라는 60폭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인 능파대(凌波臺)는 현재 추암의 풍경과 매우 흡사하다

‘금강사군첩’은 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김홍도가 44세에 그린 화첩으로 명칭은 널리 알려진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나오는명사금강사군산사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임, 그 중에서 이 작품은 추암 전망대에 올라 그 당시의 기암괴석을 보고 바위의 절리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또 추암에는 삼척 심씨 시조인 심동로가 관직에서 물러나 제자를 가르치고 생활했던 세거지인 북평 해암정(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3)이 추암 촛대바위와 어울려 멋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추암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일출명소 제1호로 지정 예고됨에 따라 명소화는 가속할 전망이다.


기암괴석의 해안절경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리움 배인 촛대바위의 사랑 이야기와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 추암은 한국관광공사 선정한국의 가볼 만한 곳 10에 뽑힌 곳이고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역대의 명사 시인들이 즐겨 찾아 그 절경을 노래하였으며 조선 세조 때 체찰사 한명회가 그 경승에 취한 나머지 미인의 걸음걸이를 비유하여능파대(凌波臺)”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그 아름다움은 가히 동해 남부의 해금강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동해 추암 촛대바위는?

동해시의 명소 추암 촛대바위는 수중의 기암 괴석이 바다를 배경으로 촛대바위와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비경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장소다. 촛대처럼 생긴 기이하고 절묘한 모습의 바위가 무리를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촛대바위와 주변 기암괴석군을 둘러싼 바다는 수시로 그 모습을 바꾼다. 파도 거친 날에는 흰거품에 가려지며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닮기도 하고 파도 잔잔한 날에는 깊은 호수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곳 해돋이는 워낙 유명해 많은 여행객들과 사진작가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우암 송시열도 이곳을 둘러보고는 발길을 떼지 못했다는 말이 전해지는 곳이다. 촛대바위, 형제바위의 일출은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도 자주 나온 곳이다.


촛대바위의 전설

옛날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그 어부에게는 정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정실이 얼굴이 밉상이었는지, 마음이 고약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부는 첩을 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첩이 천하일색이라, 정실의 시기를 사고 말았고, 밥만 먹으면 처첩이 서로 아웅다웅 싸우는데, 종래는 하늘도 그 꼴을 보지 못하고, 그 두 여인을 데리고 갔단다. 그러자 홀로 남은 어부는 하늘로 가버린 두 여인을 그리며 그 바닷가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 있다가 망부석처럼 바위가 되었는데, 그 바위가 지금의 촛대바위라고 한다고 한다. 지금의 촛대바위 자리에 원래는 돌기둥이 세 개가 있었다. 그런데 작은 기둥 2개가 벼락을 맞아서 부러졌는데, 그것을 두고 민가에서 야담으로 꾸민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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